창조경제의 기수, 싸이의 오해
슈퍼스타 K 시즌 4에서 싸이의 ‘인디음악 관련 발언’을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일단 싸이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자.
“인디가 자본이 유입이 안되면 인디인 거야? 인디의 기준이 정확히 뭐야?”
“범주씨 인디잖아. 여기 나왔잖아. 인디예요?”
“너는 네 만족을 위해 음악을 해, 아니면 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만족이 먼저인 것 같아? (남들이 좋아하는 음악인 것 같다) 그렇지! 그게 맞아. 우리가 대중음악을 하잖아. 듣는 사람의 만족을 위해서 듣는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걸 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보통 홍대에서 밴드를 한다라고 하면 틀 안에서 음악을 한다라는 느낌을 사실을 나는 가지고 있었거든. 뮤지션으로서 고집이 있는 건 좋은데 아집이 있는 친구들 있잖아. 남을 인정 안하는 그런. 그런데 딕펑스는 그런 게 밖으로 보이지 않더라고.”
사실 인디에 대해 이런 발언을 하는 일반적인 음악팬들은 가끔 봤다. 하지만, 자기가 직접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인 싸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놀라움과 분노를 넘어, 안타까움마저 드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인디’란 말이, 마치 ‘좌파’라는 말처럼 정확한 의미 규정 없이 아무때나 여기저기 쓰이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위 음악인마저 이런 식으로 자의적으로 인디라는 말을 규정해버리고 그 편견을 일반 음악팬들에게 널리 전파하고 있다니 말이다.
인디의 의미는 두 가지 ‘독립’
‘인디 (indie)’는 ‘인디펜던트 (independent)’의 준말로, 영미권 음악계에서 쓰이던 용어가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이다. 그 이전에는 ‘오버그라운드’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언더그라운드 (혹은 언더)’ 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이 두 가지 용어가 사실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 인디 음악, 혹은 음악인은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음악과 그런 음악을 부르는 음악인을 의미한다. 여기서 ‘독립적’이라는 말의 개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겠는데, 하나는 산업적인 독립, 즉 주류 (메인스트림 [mainstream])의 생산/유통 시스템에서 독립적인 경우고 둘째로는 음악적인 독립, 즉 주류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음악 장르와는 독립된 음악이라는 의미이다.
이 두 경우 모두 음악은 전문 작곡가의 손을 빌리기 보다는 자신들 스스로 만들게 된다(물론 프로듀싱이나 작곡에서 전문가와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는 많다). 이 두 가지는 결합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가령, 현재 주류 생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형 기획사 제작 방식을 벗어나서 제작된 음악은 인디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인디 음악이 상당히 대중적인 록음악이나 전자음악, 혹은 발라드 음악일 수도 있고 실험적인 성격의 비대중적 음악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제작은 인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나 유통 및 배급 (즉 판매) 과정에서는 주류 음반사/기획사의 손을 빌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도 분명 ‘인디 음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인디는 비대중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서도 인디=비대중적인 음악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되다 보니 주류 시스템을 따르는 음악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고, 이 자유를 통해서 실험적이고 비대중적인 (혹은 덜 대중적인) 음악이 나오는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러나, 그런 음악은 인디의 ‘일부’지 전부가 아니다. 예를 들면, 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밴드였던 들국화, 봄여름가을겨울, 90년대의 015B (공일오비), Deli Spice (델리 스파이스) 정도 되면 충분히 인디 밴드라고 부를만 한데, 이들의 음악이 대중과 척을 진, 듣는 사람 생각 안하는 음악인가?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 쯤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개인적으로는 ‘성공한 인디 밴드 중 하나’로 보는) 자우림은 어떤가? 또다른 인기 인디 뮤지션이었던 롤러 코스터는?
이들만큼의 인기는 없는지 모르지만, 최근의 인디 뮤지션들인 에피톤 프로젝트나 10cm (십센치), 국카스텐, 페퍼톤스의 음악 역시 주류 댄스 음악이 아닐뿐 음악 자체가 그렇게 비대중적인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유명한 음반/음악 리뷰 전문 사이트인 allmusic guide (올뮤직 가이드, http://allmusic.com)에서는 전 세계 최고의 인기 밴드이자 3-4만명 들어가는 스타디움 정도는 너끈히 채울 수 있는, 게다가 주류 대형 음반사에 속해 있는 Coldplay나 Radiohead 같은 밴드들도 모두 인디 록 뮤지션으로 분류할 정도로 인디와 대중성, 인기는 큰 연관성이 없다.
음악적 기준에서의 인디는 ‘직접 제작’ 여부
주류 시스템에 영합하지 않으면 무조건 대중과 척을 지는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주류 시스템은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전문 작곡가가 만든 곡을 받아 부르며, 그 속에서 춤과 연기를 비롯한 각종 기술들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이 시스템에서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나가서 인지도를 알리고 행사를 통해 돈을 벌게 되어 있다.
그런데, 주류 기획사에 들어 있지 않으며 자신들이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면 일단 이것은 주류 시스템과는 다른 ‘인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뮤지션들이 모두 대중과 척을 지려고 하는 것인가?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나가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으면 모두 인디인가? 거꾸로,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나가면 그때부터는 인디가 아닌 것인가?
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인디라는 명칭이 붙게 되는 것은 산업적인 기준이 일단 먼저이며, 음악적인 기준에서 인디를 논한다면 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직접 만드느냐’이지 ‘대중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반복하면, 인디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포함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모두 그런 것은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가 주류 시스템과는 다른 길을 가는 인디 음악인이라고 해서 내가 만든 인디 음악이 모두 ‘대중과 척을 지는 음악, 듣는 사람의 만족을 배제한 음악’이라는 편견은, 그리고 내가 인디 음악인이라고 해서 방송에 나오면 그게 더 이상 인디가 아니라는 오만한 판단은, 적어도 자기가 음악을 만들고 직접 부르는 (그리고 경력이 10년도 훨씬 넘은) 싸이 같은 뮤지션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대중성이 없다고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인디 음악인들 중에서는 비타협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또한 자기 음악 및 태도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주류 음악인들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고 그것을 무대에서 부르는 사람들이 인디 음악인들 및 인디 팬들에게 무시받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대중성에 대한 고려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 역시 존중받을 이유가 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듣는 사람이 만족하는 음악’이라는 기준 자체가 그 ‘듣는 사람’을 어디까지로 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호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싸이가 ‘음악을 만드는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불러야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전혀 불만이 없다. 그것은 싸이라는 뮤지션이 가진 음악에 대한 철학일 수 있으며, 그는 그 철학에 충실하게 음악을 만들고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이 유입되면 인디가 아니지 않느냐’는 발언은 ‘예술하는 사람은 배가 고파야 한다’라는 말이나 다름 없이 느껴져셔 불쾌하고, ‘인디 뮤지션인데 왜 티비에 나오나?’라는 말은 시스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웃는 오만한 말로 들리고, ‘인디 뮤지션은 왜 남을 인정하지 않는 아집으로 가득차 있나?’라는 말은 인디 음악 및 뮤지션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져서 한심하게 들린다.
또한, 그게 음악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 팬이 아니라 싸이 같은 중견급 싱어-송라이터가 한 말이라는 것에는 실망을 넘어 좌절감마저 느껴진다.
인디음악의 문제: 대중과의 연결고리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 인디 음악계의 문제는 ‘대중과 담을 쌓고 자기 하고 싶은 음악만 하는 아집’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인디 음악/음악인들과 (잠재적으로 그들의 수용자가 될 수 있는) 많은 대중들과의 연결 고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공연을 통해서 수용자와 인디 음악이 만나게 되고 차츰 팬층을 넓히며 큰 레코드사의 배급망을 타는 계약을 맺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클럽에서의 공연은 만날 수 있는 팬의 범위도 너무 좁고 수익성도 거의 없다.
돈이 되는, 그리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공연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 축제’와 ‘행사’인데, 이 두 개 모두 대형기획사 소속의 주류 뮤지션들의 차지가 되어 버리니 인디 뮤지션들은 대중과 만날 창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또한 외국에서 인디 뮤지션들의 다른 중요한 접근 창구인 ‘라디오 방송’ 역시 한국의 경우는 FM 조차 토크쇼와 만담으로 모두 채워져 있는 형편이다. 이러니 인디 음악이 점점 더 음악팬들과 괴리되어 가는 것이다.
인디와 메이저는 보완이자 대안의 관계
사실, 편견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잘못된 믿음 및 아집에 대한 문제는 인디를 보는 메이저 음악팬 (혹은 음악인)의 태도 뿐만이 아니라 메이저 음악을 바라보는 인디 쪽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지 전자의 경우가 아무래도 숫자가 더 많고 주류다 보니 더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인디와 메이저는 공존의 대상이자 상호보완의 관계이며, 또한 인디의 존재는 메이저 음악에 만족하지 못하는 음악팬들을 위한 대안(代案, alternative)으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어떤 음악이 더 우월하네 아니네를 따지는 건 가치 판단의 영역이니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이렇게 저렇게 가지게 된 편견들을 마치 진실인양 믿어 버리고 그것을 남에게 설파하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더구나 B급/쌈마이를 자처하는 싱어-송라이터인 싸이가 저런 식의 발언을 했다는 것은, (다분히 쇼的인 측면이 강한 의도적인 발언이었겠지만) 답답하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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