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일이다. 빨간 날이라 집에서 내내 TV 채널을 돌려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부처님 오신 날로 기억하는데 마침 TV에서 스님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비록 비종교인이지만 불교 신자인 부모님께서 어렸을 적 종종 절로 데려가곤 하셨던 것이 생각나 절로 관심이 갔고, 이내 그 프로그램에 온통 푹 빠졌다.
승가대학도 나오고 절과 스님, 불교의 교리 등 많은 내용이 등장했는데 그 당시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방송에 출연해 나직이 당신 자신께서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민을 토로하시던 어느 스님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불도에 밝은 스님으로 속세로부터 찾아오는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며 지혜를 나눠주는 분이셨다. 하지만 그분께도 사실은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그런 번민과 설움이 있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당시 한창 흥미가 있어 상담심리학을 공부했는데,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상담하는 자로서 어떤 사명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만 생각했지 정작 그가 스스로 남몰래 겪어야만 했고, 겪어야 할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동정심 피로 Compassion Fatigue
‘동정심 피로’란 심리학의 용어 중 하나로, 상담가나 임상가가 만성적인 정신 문제를 가진 내담자(환자)를 만날 때 겪기 쉬운 일종의 부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일명 돌보미 번아웃(Caregiver burnout)이라고도 하는데, 전문가가 경험하는 스트레스, 불안, 분노, 무기력, 피로, 트라우마 등의 증상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
심리학자 찰스 피글리(Charles Figley)는 그의 논문을 통해 동정심 피로에 이르게 되는 과정 및 관련 변인들을 정리한 모델을 소개했다. 몇 가지 주요 포인트를 짚어보자. 우선 흥미로운 점은,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응당 갖추어야 할 자질의 하나로 평가받는 ‘공감 능력’이 투철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동정심 피로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내담자(환자)의 마음 상태에 십분 공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당연히 공감 능력이 뛰어난 전문가일수록 더 나은 공감을 하되 그 대가로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지불하고, 이는 동정심 피로에 다다르기 쉬운 ‘취약한 정신상태’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누군가 타인의 마음에 ‘공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릇 내담자(환자)의 마음에 공감해 그의 느낌과 생각, 행동의 원인을 읽어낼 수 있으려면 전문가는 기꺼이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내담자(환자)의 관점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분석학 시절부터 전해져 오는 역전이, 투사 등은 바로 이런 전문가들의 공감 능력 및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전문가는 상대의 관점을 스스로에게 투영하는 과정을 통해, 분노, 상처, 공포, 슬픔 등 내담자(환자)가 가진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들 또한 고스란히 전달받는 위치에 처한다.
내담자(환자)를 향한 전문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효과를 보게 될 때, 전문가가 경험하는 성취감은 동정심 피로에 이르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거나, 개선을 위해 막대한 시간과 노력, 비용을 소모해야만 하는 만성 정신 질환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데 도통 그럴 수 없으니 지치고, 통제감을 잃으며, 무기력감을 경험하기 쉬워진다.
이는 전문가가 경험하는 동정심 피로를 유발하는 중대 원인의 하나가 된다. 한편, Figley는 내담자(환자)와 자신을 성공적으로 분리(disengagement)시킬 수 있는, 그에 대한 충분한 훈련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가는 동정심 피로를 경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지적했다.
끝으로, 전문가를 더욱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트라우마 경험의 회상(Traumatic Recollections)이다.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내담자(환자)를 오래 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과거 다른 내담자(환자)를 대할 당시 경험했던 여러 고통, 불안의 경험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특히 과거 내담자(환자)와 심각한 갈등 및 상처를 경험한 전문가라면 과거 경험 회상으로 인해 겪는 고통은 더욱 심각해진다. 또한 장기화된 상담/치료나 내담자(환자)의 돌발행동, 전문가의 쇠약 등으로 인해 불규칙적으로 변해버린 일상 패턴 역시 동정심 피로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사실 동정심 피로 등 전문가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각종 위험한 부작용에 대해 잘 알며, 이미 그와 관련된 연구들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 전문가는 내담자(환자)의 자율성을 중시하면서도 그가 의존해야 할 때는 충분히 버팀목,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도록 건실한 마음 상태를 가꿔 나갈 필요가 있다.
전문가가 무너져 버리면 당연히 그가 도움을 주려 했던 내담자(환자)도 같이 무너져 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한편, 그들 자신의 마음 상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한편 동정심 피로 현상은 비단 전문가-내담자(환자) 영역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대중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교적 흔한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둘러보면 대중의 공감과 관심, 연민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불우한 국가적 규모의 재난 피해자들이나 빈곤·질병·노쇠화·장애·편견·가정환경 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우리 사회 이웃, 국내를 넘어 시선을 확대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기아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지구상 많은 어린이가 있다.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공감한다. 슬퍼하고 연민하며 직·간접적으로 그들을 도울 방법을 궁리한다. 그러나 우리의 공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고, 그에 비해 우리들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공감의 총량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왜? 우리들도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 돕고 싶어도, 더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나에게도 절박한 생계가 있고, 가족이나 연인 등 나와 더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대중적 공감과 연민을 창출하고 공급하는 것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공감합시다. 관심을 가집시다. 도웁시다. 외면하지 맙시다.
좋은 구호다. 그러나 동정심 피로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반대 방향으로의 공감과 연민, 관심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바라건대 한 번이 아닌 두 번의 연민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공감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 한 번. 그리고 공감과 관심을 주어야 하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 또 한 번.
왜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갖지 않느냐고? 동정심 피로의 위험성을 믿는다면, 이는 단지 일방의 문제로 접근할 것은 아니다. 오로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다소 개운치 않은 면이 있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참고
- Figley, C. R. (2002). Compassion fatigue: Psychotherapists’ chronic lack of self care. Journal of Clnical Psychology, 58(11), 1433-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