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우리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빗자루질입니다. 사실 이 스위핑(sweeping)이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컬링의 진짜 묘미는 따로 있습니다. 겨울 스포츠 강국에서는 컬링을 ‘빙판 위의 체스’라고 표현하고는 합니다. 체스나 바둑 같은 보드 게임처럼 두뇌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승리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컬링은 4명이 하는 운동
배구는 (교과서적으로는) 6명, 농구는 5명이 뛰는 종목입니다. 그러면 컬링은 몇 명일까요? 내림차순에 따라(?) 4명이 정답입니다. 여기에 후보 선수 1명을 더해 5명이 보통 한 팀을 이룹니다. 이 4명을 스톤을 던지는 순서에 따라 리드(lead) 세컨드(second) 서드(third) 스킵(skip)이라고 부릅니다. 나머지 한 명은 후보 선수입니다.
컬링에서는 경기 막판에 승부를 결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팀 내에서 가장 기량이 좋은 선수가 스킵을 맡습니다. 스킵은 팀 주장이기도 합니다. 스킵은 자기 투구 차례가 오기 전에 선수들 투구를 지켜보면서 작전 지시를 내리는 구실도 맡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기량이 좋은 선수가 서드입니다. 그래서 서드를 ‘바이스(vice) 스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컬링에서도 돌을 굴리는 걸 두고 야구처럼 딜리버리·delivery라는 표현을 씁니다.)
대신 리드와 세컨드는 빗자루질을 책임집니다. 얼핏 보면 빗자루질이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지만, 이들이 한 경기에 빗자루질을 하면서 움직이는 거리는 보통 30㎞가 넘습니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투구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 연습도 게을리할 수 없고 말입니다.
지면 무조건 빵점!
어릴 때 땅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동전을 던져 중심에 가까운 사람이 따먹는 놀이 해본 적 있으시죠? 컬링도 기본 원리는 이와 똑같습니다. 동전 대신 화강암 돌을 얼음판 위에다 굴린다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목표는 반지름이 1.83m인 원형인데 이를 하우스라고 부릅니다.
야구는 보통 9이닝 동안 승부를 겨뤄 승리 팀을 결정합니다. 컬링은 어떻게 승부를 볼까요? 이번에는 오름차순에 따라(?) 10이닝을 겨룹니다. 대신 컬링에서는 이닝이라는 말 대신 ‘엔드(end)’라는 표현을 씁니다. 프로 레벨 국제 대회에서는 10엔드가 한 게임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리드 세컨드 서드 바이스가 모두 돌을 던지면 한 엔드가 끝이 납니다. 각 팀 선수들은 상대 팀과 번갈아 가며 2개씩 투구에 참여합니다. 그러니까 한 팀에서 8개, 총 16개를 던지고 나면 한 엔드가 끝나는 셈입니다.
한 엔드가 모두 끝나면 점수를 계산합니다. 이때 하우스 한가운데 있는 버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돌을 남긴 팀만 점수를 따게 됩니다. 그래서 컬링에서 엔드를 내준 팀 득점은 늘 0점입니다. 거꾸로 승리 팀은 최대 8점까지 딸 수 있습니다. (한 팀에서 던진 돌을 다 합치면 8개니까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8-0 엔드는 야구에서 퍼펙트게임보다 적게 나옵니다.
얼핏 생각하면 엔드 초반부터 버튼에 돌을 가까이 두는 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식으로 투구하는 건 프로 레벨 선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공격하는 팀은 엔드 초반에는 상대 팀 투구를 막으려는 각종 수비 전술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를 가드(guard)라고 합니다.
나중에 공격하는 팀 역시 상대 팀 전술에 따라 다양한 작전을 구사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가드를 쳐낼 수도 있고, 가드를 피해 돌을 굴릴 수도 있습니다. 한 번에 상대 돌 두 개를 쳐낼 수도 있고, 상대 돌을 치면서 우리 편 돌을 버튼 가까이 보내는 전략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작전이 등장하기 때문에 ‘체스’라는 표현을 쓰는 겁니다.
그런데 컬링은 나중에 공격하는 팀이 무조건 유리한 종목입니다. 선공 팀이 버튼에 돌을 붙인 채 공격을 끝냈다고 하면 후공 팀은 그냥 그 돌을 밀어내면 그만이니까요. 그래서 컬링은 직전 엔드에서 점수를 딴 팀이 다음 엔드에서는 먼저 공격하도록 규칙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맨 마지막 투구는 해머(hammer)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빗자루질하는 이유
시트(sheet)라고 불리는 컬링 경기장은 매끈한 얼음판이 아닙니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물을 흩뿌려 얼리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얼음판 표면에 미세하게 올록볼록한 흔적이 남게 됩니다. 이를 페블(pebble·자갈)이라고 합니다. 컬링이 중세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강바닥에서 돌을 굴리며 놀았던 데서 유래한 종목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당시하고 비슷한 환경을 구축하는 거겠죠.
그래서 돌은 하우스를 향해 곧바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계속 마찰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이 도움될 때도 있겠지만 아닐 때가 더 많을 겁니다. 그래서 빗자루질을 해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빗자루질하면 페블이 녹기 때문에 돌이 더 멀리 또 더 곧게 나아가게 됩니다. 어느 쪽으로 빗자루질하냐에 따라 진행방향도 살짝 비틀어 줄 수 있고요. (돌을 오른쪽으로 휘게 하고 싶으면 왼쪽을 빗자루질하면 됩니다.) 원하는 위치에 돌이 멈추게 하려면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빗자루질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스킵이 지시하는 일입니다.
소치올림픽 한국 컬링 대표팀 주장(스킵) 김지선(27·경기도청)은 “내가 실패하더라도 동료들의 스위핑으로 그걸 성공 샷으로 바꾼다. 팀원들의 호흡으로 성공 샷을 만들어냈을 때 더 짜릿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경기를 진행하려면 조직력이 중요한 게 당연한 일. 컬링은 겨울 올림픽 중에서는 유일하게 선수가 아니라 팀을 국가대표로 뽑는 종목입니다. 이번 소치 올림픽 때는 당연히 경기시청 팀이 국가대표로 출전합니다. (아래 사진 왼쪽부터 김은지 신미성 이슬비 김지선 엄민지)
올림픽 첫 경기는 한일전
올해는 한국에 컬링이 들어온 지 20년 되는 해입니다. 한국 컬링은 어느덧 세계랭킹 10위 팀으로 성장했습니다. 올림픽 출전권도 처음으로 따냈습니다. 최근 성적도 좋습니다. 세계랭킹 1, 2위인 스웨덴과 캐나다가 출전한 지난해 9월 중국오픈에서 한국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어 11월 열린 태평양아시아선수권에서도 우승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단 올림픽에 출전하는 나라가 10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세계랭킹 10위는 사실 올림픽 꼴찌인 셈이죠. 우리에게 고무적인 건 2012년 세계선수권 때도 세계랭킹 12위로 참가국 중 꼴찌였지만 4강에 들었다는 점입니다.
김지선은 “이번 올림픽이 중요한 건 메달보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컬링이 어엿한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라면서도 “선수라면 누구나 욕심이 있다. 전년도 우승팀이 단숨에 하위권으로 처질 수 있는 게 컬링이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올림픽 한국 컬링팀 첫 경기는 2월 11일 오후 2시, 상대 팀은 일본입니다. 어떤 종목이든 일단 일본을 꺾고 나면 순항하는 게 우리 대표팀 특징. 대표팀 선수들 선전을 기원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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