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서적 『보랏빛 소가 온다(Purple Cow)』로 유명한 세스 고딘은 콘텐츠 마케팅을 ‘가장 마지막까지 남을 유일한 마케팅(Content marketing is only marketing left)’으로 정의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산업에서 소비자의 구매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콘텐츠 마케팅, 누가 최초로 시작했을까요?
현재와 비슷한 방식의 콘텐츠 마케팅은 120년 전(정확히는 123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버몬트주의 대장장이 존 디어(John Deere)는 1895년 농업 잡지 《더 퍼로우(The Furrow)》를 창간합니다. 마케팅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 《더 퍼로우》는 유일한 농업 큐레이션 매거진으로써 1912년 구독자 수가 400만 명에 이릅니다.
사실 존 디어가 《더 퍼로우》를 만든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트랙터를 팔기 위해서’였죠. 19세기의 흙을 갈아엎는 기계인 경작기는 주로 나무나 철로 만들어졌는데요. 쓸 때마다 관리를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장장이였던 존 디어는 철과 탄소의 합금인 강철 경작기로 대박을 친 뒤, 기계를 결합한 산업 장비 트랙터를 개발했습니다. 이를 팔기 위해 잡지라는 플랫폼을 만든 거죠.
그러나 《더 퍼로우》는 창간호부터 존 디어의 제품인 트랙터을 대놓고 홍보하지 않았습니다. 농부가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 최신 농업 기술과 농부가 사업가로서 성장하는 방법 등의 주제를 다루었죠. 《더 퍼로우》의 목표는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농부들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었기 때문입니다.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존 디어의 트랙터는 해가 갈수록 더 많이 팔립니다. 이미 소비자인 농부에게 존 디어는 최고의 농업 기계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이는 오늘날의 콘텐츠 마케팅 방식과 동일합니다. 소비자에게 재미 혹은 정보성 콘텐츠를 모으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노출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 존 디어는 자기 제품인 트랙터를 구입할만한 농업 종사자 고객을 모으는 방법으로 콘텐츠 플랫폼 《더 퍼로우》을 만든 것이죠.
물론 존 디어의 트랙터가 작동이 쉽고 튼튼했던 것이 가장 큰 성공 비결이었죠. 그러나 좋은 제품을 홍보하는 방법으로 오늘날의 콘텐츠 마케팅 방식을 1895년에 썼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123년이 넘은 지금도 《더 퍼로우》는 존재합니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서 57만 명, 전 세계에서는 40여 개국, 12개의 언어로 번역되며 200만 명 이상이 구독하는 세계 최고 최대의 농업 잡지입니다.
트랙터 브랜드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세계 최대의 농기계 생산업체 ‘디어 앤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매일 50억 개 이상의 디지털 광고가 노출되는 요즘, 120년 전의 콘텐츠 마케팅이 아직도 알려졌다는 것. 일단 저부터 하루 정도라도 따로 시간을 내서 콘텐츠 마케터로서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원문: 윤용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