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금 길다. 바쁘신 분은 아래 1번 섹션 두 번째 문단과 2번 섹션만 읽어도 된다.
입학이나 취업을 위해서는 대개 자기소개서(약어로 자소서, 학업계획서, 에세이 등등으로 불리는)를 작성해야 한다. 어떤 조직은 다른 서류 없이 자기소개서만 요구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자기를 소개하는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내 맘대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 글에는 ‘예시’가 없다. 왜 예시가 없느냐고? 자기소개서는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하니 모범 답안이 있을 수 없다. 구글에 찾아보면 잘 쓴 자기소개서가 100만 개는 나온다. 자기소개서를 유료로 파는 사이트도 있다. 그 가운데 99만9천개875개 정도는 쓰레기이다. 왜? 나랑 그 사람은 다르니까. 자서전이 아니므로, 아주 잘 쓴 다른 사람의 자기소개서에서 얻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그 자기소개서가 어떻게 읽는 사람을 몰입시키는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이 글을 비판적으로 읽으시는 분들을 위한 사족: 난 글쓰기 선수가 아니다. 따라서 이글은 자기소개서를 수려하게 쓰는 법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맞게 쓰는 방식을 제시하는 글이다. 아래 내용 가운데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틀렸다 하지 마시고, 이 방법이 더 좋다고 댓글도 다시고, 기가 막힌 방법이 나열된 링크도 붙여주시고 하시면 좋겠다. 감사하다.
1. 자기소개서를 쓰는 이유와 기본 초식
자기소개서를 쓰는 이유, 다시 말해 상대 조직이 내게 자기소개서를 원하는 이유는 나를 잘 파악하기 위함이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이익을 위해 잘 일할 수 있거나, 학교라면 그 조직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잘 부합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통해 그 조직의 선발 인재상과 맞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인재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주제’가 주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입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가끔 ‘자유롭게’ 쓰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과 맞게 아주 잘’ 이라고 읽어야 한다. 자기소개서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당연히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도 없다. 조직 입장에서는 다른 포트폴리오를 통해 지원자의 기술적인 역량을 드라이하게 같이 평가하며, 인터뷰를 통해 자기소개서에서 확인이 안 된 부분,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검증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자신을 소개하는, 그것도 잘 소개하는 글이어야 한다. 자기를 ‘잘’ 드러내는 방법은 자기소개서를 읽는 사람이 ‘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읽는 사람이 반드시 끝까지 읽고, 내 경험을 같이 느끼고 감동을 해야 하는 글이다. 즉, 자기소개서를 읽는 평가자가, 나로 ‘빙의해서’ 읽고 난 뒤, 마치 자기가 내 문제를 고민하고, 자신이 해결한 것과 같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빙의’ 과정이 없다면,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남의 소개서’가 된다. 그 많은 소설 중에 성공적인 작품이 몇 개나 있는지 생각을 해보시라. 내 이야기면 몰라도 남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정말 기가 막히게 써야 한다. 재미없는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는 것은 큰 고통이다.
대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이전의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역량을 기술하게 된다. 평가자가 그 글을 읽는 과정에서 나로 ‘빙의’가 되려면 그 경험이 사건의 흐름이 아니라 사고(思考)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어야 한다. 자기소개서는 ‘나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글’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건의 흐름에 따라 글이 적히면, 읽는 사람은 다분히 관찰자 입장이 된다.
위에 이야기한 ‘빙의’ 모드의 글은 글을 원래 잘 못 쓰는 사람에게는 정말 어려운 것이다. 나를 잘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내 자기소개서의 평을 받아보면 바로 ‘빙의’ 모드가 동작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필 그 다른 사람이 약간의 재능이 있다면, 내 글이 ‘빙의’ 모드가 아닌 ‘관찰자’ 모드가 된 이유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리뷰가 중요하다.
2. 자기소개서에 경험을 기술하는 방법
어떤 활동을 자기소개서에 기술할 때는 다음의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대개 자기소개서는 글자 수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다음 내용을 짧고 강하게 써야 하는데 그건 각자 알아서 하시라. 선천적인 글쓰기 재능이 있으면 좋겠지만, 대개는 여러 차례의 리뷰로 다음 내용이 잘 기술되는 짧고 강한 글로 훌륭하게 개선된다.
A. 왜 그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아마도 자기 주도적인) 그 활동을 유발한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가 중요하다. 내적 동기의 최고봉은 ‘재미’, ‘지적호기심’이다. 외적 동기에서 시작된 일이 어느 순간 내적 동기로 바뀐 경우도 자기소개서의 좋은 활동 아이템이 된다. 끝까지 ‘억지로’ 했던 활동은 보통 자기소개서 주제가 아니다. 나도 동의가 안된 일로 남을 ‘빙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내적동기는 가슴뛰는 ‘열정’을 낳고, 곧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B. ‘왜 그 활동을 하게 됐나?’ 에 대한 답을 채워나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어떤 배움(깨달음)을 얻었는지가 드러나야 한다. 이 과정을 우리는 ‘몰입’이라고 한다. 모든 과정이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었다면 그 활동은 아마 기억에도 잘 없을 것이다. ‘그냥 하다 보니 노벨상을 탔어요’ 이런 건 없다. 중간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장애물을 넘는 과정이 항상 따른다. 그저 열심히 해서 해결되는 것은 우리가 ‘문제’, ‘장애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문제 해결에는 반드시 뭔가를 배우고 생각하고 결정을 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C. 대개의 활동은 뭔가 결과물이 있고, 당연히 그 결과물을 기술한다. 그것이 ‘올림픽 금메달’이나 ‘노벨상’이라면,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너무나 명확하다.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뭔가 ‘상’자가 붙은 결과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 활동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어떤 평가를 받고, 또 나 스스로 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그 결과를 개선한 내용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우리는 ‘진정성’이라고 부른다.
D.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활동이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적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착하게 살고 싶으므로 커뮤니티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인식은 모든 읽는 사람들에게 ‘나도 그래, 그렇게 해야 돼’ 라는 동질감을 준다.
3. 자기소개서에 쓸만한 경험이 우리에게 있는가?
자기소개서를 처음 쓰는 사람이 가지는 첫 번째 질문은 ‘그런 경험이 내게 있나?’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첫 번째 자기소개서를 쓰는 시점에 ‘난 그냥 살아왔어’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분들은 자기소개서 쓰기 전에 지나온 날들을 차근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했던 알바, 근로학생, 학교에서 억지로 따라가서 했던 봉사 활동, 남들도 다들 간다기에 나도 해보자고 갔던 여행, 운이 좋아 당첨된 회사의 이벤트성 단체 활동, 얼떨결에 맡게 된 동아리 총무, 혹시나 해서 넣어봤는데 합격한 인턴, 집안에 갑자기 생긴 불행한 사건 등등이 다 그 재료이다.
하나씩 꺼내서, 위 억지로라도 적어보고 생각하고 수정하고 생각하자. 자고 일어나 다시 보고 생각하고 수정하고 생각하자. 이 과정을 해보면, 신기하게도 인간이 그냥 막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자기소개서는 나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글이라고. 거꾸로 자기소개서를 핑계로 나를 돌아보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입학, 취업 시점이 아니라도 자기소개서를 쓰면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여기서 참조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A. 중대한 동기와 계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대개는 사소하거나 (예, 그냥 친구 따라) 우연한 계기로 (예, 인터넷 서핑 중에 광고를 보고) 생긴 순간적인 강한 동기가 있다. 그 사소하지만 나를 움직인 강한 동기라는 것은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호기심을 동반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별다른 자기 주도적 선택권이 없는 청소년들의 경우, 최소한 이 활동이 앞으로 더 심화된 배움을 위한 잘 알려진 준비 과정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정도의 설명도 ‘동기’로서 꽤 의미가 있다.
B. 활동 결과를 평가받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구체적인 문제의 사례를 들어, 어떤 방식으로 (교과 또는 교과 외 공부, 조사 분석, 멘토의 가르침, 많은 준비된 토론, 깊은 성찰, …) 배워나가 그 문제를 극복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사례가 중요하다. 사례가 동반되지 않는 몰입은 없다. 사례와 그에 따른 배움에는 팀 활동에서의 리더십도 포함된다. 팀의 리더가 되었다는 것 보다는,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역할과 책임(문제 인식과 결정)의 수행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인다. 팀장이 아니라도 팀원들 사이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하는 것도 리더십이다. 구체적인 사례는 글을 읽는 사람을 쉽게 ‘빙의’ 상태로 이끈다. 문제가 제시되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C. 평가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다. 권위 있고 의미 있는 대회에서의 수상도 좋지만, 동료에 의한 평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한 모든 활동에는 대상이 되는 사람 또는 관객이 존재한다. 그 대상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개인이거나, 커뮤니티 일 수 있다. 또 나 자신도 그 중 하나이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은 의미가 크다. 내 활동의 과정에서 또는 내가 보여준 결과물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평가를 기꺼이 수용하고, 결과물을 개선한 사례를 보인다.
D.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는 존재이고, 그 사람이 속한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해결한 문제는 나와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늘 좋은 영향을 준다. 또 몰입과 평가의 과정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활동은 그 활동 이후의 내 삶은 물론, 내가 속했던 조직, 커뮤니티에도 작게나마 영향을 줘서 내가 더 큰 일을 시작하게 하거나, 크든 작든 어떤 제도가 바뀌는 계기가 되거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활동으로 발전한다.
4. 자기소개서에서 하면 안 되는 것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Fact 중심으로 그것도 시간 순서로 단순 나열하면 절대 안 된다. 연대기는 읽는 사람을 철저하게 관찰자로 남게 한다. 연대기적인 자기소개서를 볼 때 평가자는 사고 중심이 아니라 사건 중심의 관점을 가지기 때문에 결론을 빨리 보고 싶게 된다. 그런데 그 결론이 ‘올림픽 금메달’, ‘노벨상’ 이 아니면 급히 실망한다.
슬라이드, 웹 페이지 형 자기소개서도 읽는 사람이 ‘빙의’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다. 통상적으로 이력서에 필요한 스킬셋의 나열 등과 달리, 말로 설명을 같이 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PPT 장표형 자기소개서는 정말로 잘 만들기 어렵다. 또 잘 만들었다 해도 ‘내가 설명할 테니 편하게 보세요’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잠시 동안 제가 되어 같이 이 경험을 공유해 봐요’ 같은 ‘빙의’ 모드와는 거리가 꽤 있다.
자기소개서를 요구한 조직의 인재상이 내 개인적인 상황(가족, 가정형편, 그 상황에서 형성된 내 성격 등)과 밀접한 관련이 없다면 ‘저는 유복한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또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니면 ‘아버지의 사업이 갑자기 부도가 나는 바람에’ 이런 류의 내용은 일말의 도움이 안 된다.
내 성격이 드러나야 하는 포인트는 다른 모든 자기소개서 내용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을 때, ‘저는 이렇게 놀기 때문에, 여기 계신 분들과 인간적으로도 잘 지낼 수 있어요’까지 설명하고 싶을 때이다. 내 인간성과 성격은 면접 때 단 몇 마디의 발언만으로도 드러나기 때문에 따로 쓸 필요가 없다. 다만, 내 개인적인 상황이 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어떤 큰 배움의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자기소개서 주제가 될 것이다.
고민과 걱정만 있고 행동과 선택이 없는 경험은 자기소개서의 아이템으로 적절하지 않다. 그 고민의 깊이가 조직의 인재상과 맞닿아 있는 경우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선택과 행동이 없으면 그 글을 읽은 사람은 지원자가 자기 주도성이 부족하고 책임감이 없다고 느낀다.
5. 마지막으로
자기소개서 쓰는 것은 어렵다. 원래 모두에게 어려운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반드시 서너 번 읽고, 자기소개서를 요구한 조직의 인재상에 맞게 기술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나 말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주면 훨씬 좋다. 대개 어딘가에 제출하기 위해서 쓰는 자기소개서이지만, 자기소개서는 나를 돌아보고 숨어있던 내 속의 자신감과 진정성을 발견하는 훌륭한 도구라는 것을 잊지 말자.
주: 이 글은 이민석 학장님의 허가 하 이승환이 편집했으며, NHN NEXT의 공식 입장과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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