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는 은근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성(안정적인 현금흐름 혹은 이익)’이 있으면 그걸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적군(경쟁자)’이 있고, 그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물을 채운 게 ‘해자’다. 번역하자면 경쟁력, 독점력 등이 있겠지만 미묘하게 그 가운데에 있는 의미이다.
특정 기업이 자본비용 이상의 이윤을 취하면 이를 평균으로 수렴시키려는 힘이 반드시 작동한다. 그걸 막아주는 어떤 힘을 해자라고 칭한다. 단순히 타사 대비 경쟁 우위 혹은 이익이 잘 나는 사업부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초과이윤이 초과이윤으로 유지되게 하는 요인이다.
예를 들어 A사의 특정 자동차 연비가 14km/l인데 경쟁사 평균은 13km/l라면 이건 경쟁우위다. 근데 지금까지 쭉 타사보다 연비가 10%가량 높았고, 앞으로 출시되는 신차의 연비도 그 정도로 우위를 보이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면 그게 경제적 해자다. 굳이 정의하자면 ‘상업적으로 유의미하며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창출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CNBC의 「Moats and candy: Here’s what Elon Musk and Warren Buffett are clashing over」를 보자. 일단 질문한 애널리스트가 해자 개념을 잘못 이해했다. 슈퍼차저를 오픈함으로써 경제적 해자를 상실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슈퍼차저 사업 자체는 경제적 해자가 아니다. 전기차 인프라를 담당하는 하나의 사업부일 뿐이다. 이걸 타사에 오픈하느냐는 표준을 선점하느냐의 문제다.
고속충전에서 표준 경쟁이 세게 벌어질 건데 이걸 표준화시키는 건 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요하고, 테슬라는 이걸 오픈함으로써 시장 확대와 선발주자로서의 우위 두 가지를 다 획득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하여 전기차 관련 특허도 오픈해버린 테슬라의 과거를 보면, 슈퍼차저를 오픈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멍청한 질문이라서 멍청하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이후 버핏을 끌고 들어온 건데, 머스크 또한 해자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고루한(lame) 경제적 해자 따위보다는 혁신의 속도(pace of innovation)가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혁신의 속도가 중요한 이유는 혁신을 남들 혹은 구 내연기관 산업보다 빠르게 이루어서 경쟁우위(타사 대비든 내연기관 대비든)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신의 속도가 경제적 해자의 하위 범주가 되는 거지, 경제적 해자의 개념 자체가 고루하다고 비판할 일이 아니다. 혹은, 경제적 해자를 ‘혁신 없이도 가만히 앉아서 현금흐름이나 쪽쪽 빨아댈 수 있게 하는 요소’로 정의했을 수도 있는데, 그 정의에서 그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정의의 차이이기 때문에 애초에 버핏을 깔 필요도 없게 된다. 투자자 관점에서 성장을 중시하느냐 현금흐름을 중시하느냐는 그저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버핏은 상품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salute) 했다. 나도 그렇다. 머스크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재의 ‘테슬라’는 어디까지 왔나? (머스크가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산업이 존속 가능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자동차 산업에서 돈을 벌게 해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브랜드? 기술력? 판매 채널? 다 부수적이다. 자동차 산업의 해자는 생산성이다.
수십만 개의 부품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고객 앞에 가져다 놓되, 품질이 균일해야 하고, 이 과정을 최대한 낮은 비용으로 수행해야 한다. 테슬라는 그 지점에서 전혀 성공적이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규모의 경제와 혁신을 외치는 거다. 자동차 산업 자체가 고루한 산업인데, 머스크는 이 산업을 혁신산업으로 잘 포장했다. 탁월한 마케터인 건 인정하지만, (최소한 ‘테슬라’는) 아직은 거기까지다.
버핏이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모를까? ‘투자자의 관점’에서 기술의 중요성과 한계를 둘 다 본다. 그가 먼저 테슬라를 깐 게 아니라, 버핏의 해자 개념을 잘못 이해한 애널리스트가 멍청한 질문을 했을 뿐인데, 이걸 굳이 버핏을 끌고 들어오면서 시비를 거는 게 머스크다. 그가 자신이 추구하는 혁신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면 이렇게 유치하게 굴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 테슬라의 비즈니스가 그만큼 위태롭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테슬라는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블랙베리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은 개척하였으되, 시장의 과실을 누리는 건 다른 경쟁자와 소비자에게 넘겨주는 사업자. 자동차의 경쟁요소는 내연기관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테슬라가 전기모터를 활용해 여러 부수적인 장점을 끌어내더라도 다른 경쟁자들이 모조리 복제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복제 가능한 상품을 만드는 시장에서 100년 가까이 살아남은 회사들이 그의 경쟁자다(해당 주식에 대한 매수/매도 의견은 절대로 아닙니다!).
일론 머스크 입장에서도 테슬라가 굳이 돈을 벌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혁신에 성공한 과거의 레코드가 있고, 테슬라 외에도 진행하는 사업이 있기 때문에, ‘고루한’ 전기차 사업 따위는 남들에게 넘겨주고 시장 개척자라는 타이틀만 달고 엑싯해도 그에게는 성공사례+1로 포장할 수 있다. 근데 그렇게 엑싯하기 위해서는 판을 최대한 벌려야 한다. 판을 벌리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으니까.
그러니 그의 꿈을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초조하고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그냥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닥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줘야 하니까.
원문: 홍진채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