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온갖 분야의 이런 저런 정책들이 발표되고, 평소에 정치에 그닥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도 내게 맞는 정책이 있긴 한가 기웃거리는 시기. 사실 중요하지 않은 정책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이 꽉 들어찬 노처녀 미혼여성에겐 결혼보다 더 살펴보게 되는게 대선 후보들의 보육정책이 아닐까.
결혼은 어찌됐든 할 수 있지만 뭣보다 애 낳고 어떻게 살 수 있을지가 참 막막하거든. 내 몸 하나는 어떻게 건사한다 쳐도, 애는 어떻게 키우냐고. 우리 엄마도 애 맡길 생각하지 말라시고, 매일 언론에선 아이 키우기 힘든 한국이라고 광고를 해대는데.
올해 11월에 발표된 유엔인구기금(UNFPA)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은 1.4명.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출산율이 바닥인 국가. 그런데 정작 우리 대선후보님들, 보육정책에 대해서는 너무 간략하게 줄여버리신다. 나처럼 나이 꽉 찬 노처녀 미혼여성이 과연 결혼 후에 애를 한국에서 낳고, 한국에서 키울만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사실 나는 모르겠거든.
그래서 우리 대선후보님들, 대한민국을 아이를 낳고 키울만한 나라로 만들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번뜩. 여기에 준비했다. 대선 후보 가상 좌담회, 보육정책 속에 숨겨진 그들의 머릿속을 한 번 탐구해보자.
기호 1번, 박근혜
안녕하십니까. 박근혜입니다. 추운 날씨에… 엄… 추운 날씨에 다들 안녕하신지요.
에… 제가 이제 나이 육십에 들어섰습니다. 참여정부 때에는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할머니라 몰아붙이시다니, 매우 적당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애를 키운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어디까지나 미혼, 처녀입니다. 마드므와젤 박이라고요, 마담 박이 아니라. 제가 프랑스 유학도 다녀오고, 외국어 잘 하는 것, 국민 여러분들도 아시죠? 제가 좀 곱게 자랐거든요.
어쨌든, 저를 지원해주시는 수많은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나이를 먹으면 다 그만큼 깨달음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미혼 할매라고 아이 키우는 고통을 모르지 않습니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치를 향해가고 있어도,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논의하면 안 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고들 많이 호소들 합니다. 아이를 낳기가 겁이 난다고들 합니다. 제가 곰곰이 이 문제를 생각해보니, 참여정부 때에 출산율이 최저치를 기록한 것 아니었습니까? 참여정부 때의 출산율 최저치는 참여정부 실패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참여정부의 실패된 아이키우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젊은 부부들에게 돈으로 출산장려를 해야합니다. 돈이 있으면 아이가 몇이든 상관없이, 아무 걱정 없이 키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결혼하고 아이가 있었으면 아주 잘 키웠을 거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가난함이라는걸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제 아이에게도 똑같이 배부른 삶만 보여줄 생각이었거든요.
참여정부 때와는 다르게, 저는 부모 소득에 관련없이 0~2세 보육료를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수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 이상은 조금 힘들겠고, 어찌됐든 제일 힘들 때가 아이가 어릴 때이니 2년 정도는 정부에서 보장해드리겠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도, 돈이 많아도 보조해드리겠습니다. 원래 5년까지 보장해드리려고 했는데 참여정부의 실패에서 보셨듯이… 에… 제 수첩을 보니 너무 많은 세수낭비는 국가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저는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제 세금은 소중하니까요. 제가 6억세금을 내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고는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아, 세금이 너무 많이 털릴 거란 걱정은 마세요. 어차피 아이 낳고 바로 들어가는 돈보다는 중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나가는 사교육비가 제대로인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 아니겠어요. 가장 돈이 안 들어가는 애기 때 보조해주고 빠지는 비용대비 아주 좋은 밀당정책으로 출산을 장려하겠습니다.
또한 참여정부에서 실패했던 직장 내 보육시설 의무설치도 강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장님들께서 마음 놓고 직원들 야근을 시키겠지요. 대한민국 산업의 근간은 역시, 야근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월급 주는 것 이상으로 뽑아먹어야지요. 뭐, 이 의무설치가 눈 가리고 아웅되는 경우가 참여정부에는 많이 보여졌지요. 저는 참여정부와는 다르게 여야합의 하에 잘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제가 히든카드를 하나 준비했는데요. 역시 돈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우리 새누리당에서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제 아이패드에 써주셨어요. 그게 무어냐 하면, 셋째 아이를 낳으시면 이 아이가 대학에 진학시 모든 대학등록금을 정부에서 보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부모님께서도 셋째 아이까지 두시지 않으셨겠어요. 둘째 아이까지는 알아서 야근한 돈 모아 보내시고요, 셋째까지 낳는 부부가 별로 없는 것이 확실하니 세수도 그닥 많이 빠져나가지 않을 테고, 어차피 셋째까지 낳는 부부는 돈 좀 있는 집일 테니 저의 든든한 지지층이 저에게 등돌릴 일도 없는 공약이지요. 제가 봐도 아주 좋은 공약이에요.
돈 없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요? 그래서 제가 또 준비한 게, 만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집에, 연 4천 만원 소득 이하인 가난한 부부들에게는 세금공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한명당 최대 50만원으로요. 이게 새아기 장려금이라고 해서 법으로 개정하려고 하고 있는데, 모든 부부에게 50만원 세액공제가 되는 건 아니고, 최대금이라는 거죠. 아, 여기 제 수첩에 적힌 걸 보니 근로장려금과 중복되는 집에는 급여의 50%만 감액지급 하도록 했네요. 그렇죠.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은 소중하니까요. 어쨌든 50만원이나 깎아준다는데 돈 없는 부부들도 이제 마음놓고 출산을 생각해보지 않겠습니까?
이만하면 제가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다고 논박할 수 없겠지요? 저 박근혜가 당선이 된다면, 이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서, 아기 키우시는 부모님들께서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호 2번, 문재인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문재인입니다.
요즘 엄마들 둘째 낳기가 겁난답니다. 하나 기르기도 벅차다구요. 세계 최저의 저출산은 국가적 재앙 수준입니다. 아이들이 없으면 대한민국의 내일도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저는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리고 이제는 손주녀석까지 두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아왔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결혼을 시키고, 손주를 보면서 그동안 딸바보 별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제 딸이 제 잘생긴 얼굴을 빼다 닮아서 참 이쁘잖아요. 제 눈엔 이쁩니다. 아줌마가 되어도 이쁘고, 선거유세 같이 안 해줘도 이뻐요. 대통령하지 말라고 뜯어말려도 이쁩니다. 이쁜걸 이쁘다고 하는거지요.
그런 제 딸과 달리 다른 분들께서는 아이 낳기를 아주 꺼려하는 것이 요즘 젊은 부부들의 실태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초저출산국가는 초고령화 사회를 더 앞당기고 있습니다. 2009년 국민여론조사를 보면,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대한민국 남성들의 절반정도가 양육비에 커다란 부담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것 뿐이겠습니까. 아이를 낳은 산모가 요즘 많이 이용하는 산후조리원의 이용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은 너무도 부족합니다. 아이들을 맡길 곳은 없고, 맡아줄 사람도 없고, 휴직을 하겠다 하면 그냥 회사에서 나가라 합니다. 네, 문제는 아주 시리어스합니다.
그래서 저 문재인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가지 의견을 모아봤습니다. 예전에도 논의를 많이 했는데, 실현가능성이 충분치 않아도 어쨌든 말은 해보겠습니다. 또 못할 건 뭐 있겠습니까. 지방재정이 축날망정 무상급식도 해냈는데.
제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면, 매월 12세 미만의 아동들에게 10만원씩을 지급하겠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 대폭 확충하여 2017년까지 이용 아동 수 기준으로 전체 40%까지 확충하고, 추가보육료 부담 없는 공공보육 실현을 위해 특별활동비까지 보육비에 포함하고, 육아휴직 급여인상을 추진, 남성육아휴직 1개월 통상임금 100% 지급하겠습니다. 제가 이쪽분야 전문도 아니고 이 문제가 일자리 늘리기와 경제민주화보다 시급한 문제는 아니잖아요. 국민 여러분들도 동의하시죠?
대충 몇 가지 공약만 내걸었지만 변화를 한 번에 이루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국민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기호 3번, 이정희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기호 3번, 통합진보당의 이정희입니다.
오늘도 철탑에서 고생하시는 쌍용차 노조 여러분, 삼성에게 쥐어뜯긴 노조 여러분들,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저희 통합진보당은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뒤집어 엎기 위해 재벌을 때려부수고, 박근혜 당선을 막겠습니다. 정권교체, 이루어내겠습니다. 제가 당선 안 될건 알지만 어쨌든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다시 집권하는건 눈뜨고 볼 일이 아닙니다. 남쪽 정부가 그럼 안 되죠.
거기다 박근혜 후보는 대표적인 유신집권의 귀족출신 공주님 아닙니까? 생식기만 여성이고, 노동자의 고통이란 평생 겪어보지 못하신 박근혜가 어떻게 출산을 논하고, 보육정책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결혼도 하고, 아들도 둘이나 있는 사람이지만, 제 가족사항에 관련된 정보는 사생활침범이 되니 입다물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까지 한 사람입니다. 대통령감은 대통령 후보 한 사람을 두고 봐야지, 가족관계까지 다 들추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건 개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게 아니라 그 사람의 배경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굉장한 사생활침범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박근혜 후보의 가족관계는 이미 모두 알려진 사항이 많이니 어쩔 수 없는거지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이 분의 가족관계를 파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투쟁의 과정입니다.
네, 다시 논점으로 돌아와서 보육정책이요. 요즘 젊은 부부들, 정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많이 힘들지요. 특히나 여성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시간제, 비정규직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생식기만 여자라고 여성대통령이라 칭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여성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여성대통령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 통합진보당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남성노동자들과 똑같이, 차별없는 임금을 받도록 할 것입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의,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치개혁’ 같은 식의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여성정책 토론의 길이지요. 현재 노조 조직률은 10%,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1.7%에 불과합니다.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확립시키고 조직률을 올리는 것이 시급합니다.
아, 네. 다시 논점으로 돌아와서 보육정책이요. 저희 통합진보당에서는 전격적인 무상보육체제를 확립시키고 공공보육시설을 50%로 끌어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동수당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보육정책, 아주 중요하지요.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나는 시발점을 먼저 짚어봐야 되는 것이겠지요. 그럼 왜 출산율이 떨어질까요.
우선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낙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먹을거리를 살 돈이 없어 걱정인데, 재벌들은 어떻습니까. 자기 배부르니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궁핍한 삶을 생각하지 않고, 인권이 무너진 자리에 노동자를 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무상보육과 공공보육시설 확충을 위해 이런 재벌들에게 더욱 높은 세율을 적용시키고 그 세수를 활용하여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이상적으로 보여도 어떻게든 돈 많은 재벌들에게 세금 걷어서 뿌려야지요. 박근혜 후보도 세금 내시고요.
제가 대통령될 가능성이 적더라도 이런 제도가 있을 수 있다라고, 그렇게라도 알려둬야 다음 정부가 진보를 얕보지 않지요. 제가 제 자식과 가족에 관한 건 사생활이라 알려드리지 못해도 제 자신은 투명하게 보여드리지 않습니까. 제가 변호사 출신이고 머리가 좋아서 말은 아주 잘 하거든요. 너무 이상적이고 세금 쏟아 붓는 제도들을 늘어놔서 그렇지.
그럼 그 이상적인 제도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여성에게 안정되고 좋은 일자리 제공하기 위해서 저희 통합진보당에서는 출퇴근 시간 앞뒤 30분 조정을 조정해서 7시간을 일하더라도 8시간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를 맡긴 어린이집에 언제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지 연락하는 일 초조하고 힘드시지요. 보건소를 연계시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 구마다 어린이집 하나씩을 정부에서 짓도록 하겠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의료비에는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돈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나라가,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고, 육아 걱정을 하지 않도록 박근혜 빼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맺으며
대선후보 삼인방의 속마음을 곁들인 보육에 관한 이야기 들어보았다. 사실 아이를 낳고 기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 없이 후보들이 보육 문제에 그리 신경쓰는 것 같지가 않다. 30대 워킹맘들의 투표율은 늘상 바닥을 치고 있거든. 어차피 이 제도에 가장 영향받을 엄마들이 투표 안 하거든. 제발 워킹맘 모두들, 바빠도 투표해서 여러분의 권리를 세상에 보이란 말이다. 그래야 누가 후보로 나서든, 그게 정말 실현이 되진 않더라도 ‘내가 이렇게 해줄 테니 나 좀 이쁘게 봐주셈!’ 하는 이야기 정돈 흘릴 지 않겠느냔 말이지. 20대 철부지 대학생들보다 더 낮은 투표율이라니. 그러니 후보들이 신경 안 쓰는게 당연지사.
그러다보니 흘러나오는 정책들도 사회적인 분위기고 뭐고 다 무시하고 그냥 돈으로 막으려는 생각, 또는 실현 가능성 없는 급조된 물건들로, ‘우리 이거 신경 안 쓰는건 아님’ 하고 생색내는 수준밖에 되질 않는다. 이 글 좀 쓰겠다고 여기저기 자료 뒤지다 보니 너무나 자료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정책이랍시고 올려놓은 것이 그냥 생색내기식이라 두 번 놀라고, 아무리 읽어도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는 점에 세 번 놀랐다. 이러니 대한민국이 아이 낳고 키우기 힘들 수밖에. 정권잡은 그 누구도 신경을 안 쓰니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어차피 부실한 내용으로 가득 찬 보육정책만으로 대통령감 골라내긴 글렀지만, 젊은 엄마들의 관심이 투표에 제대로 반영되기만 한다면, 이들 중 하나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정말 보육 쪽에 세금을 쏟아부을지도 모를 문제 아닌가. 젊은 여성 동지들이여, 무거운 엉덩이를 들라. 투표장으로 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