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UTILUS의 「Can You Overdose on Happiness?」를 번역한 글입니다.
1.
너무 과한 행복이 가능할까요?
이는 충분히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의학 저널의 논문 제목으로는 꽤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2012년에 이 제목으로 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두 명의 독일인과 한 명의 미국인으로 이루어진 저자들은 우리가 뇌를 자극해 행복감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뇌의 보상 시스템에 직접 자극을 가해 행복감을 마음대로 높이고 낮출 수 있다면, 이를 조절할 권리는 누구에게 주어져야 할까요? 의사일까요? 아니면 그 뇌의 주인일까요?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은 한 환자 때문입니다. 33세의 독일인인 그 환자는 오랜 기간 강박 장애와 불안 장애로 고생했습니다. 의사는 몇 년 전 그의 측좌핵(nucleus accumbens), 곧 뇌의 보상시스템에 전극을 삽입했습니다. 그의 증상은 완화되었고, 이제 배터리를 갈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포 라이터만 한 크기의 그 장치는 쇄골 아래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수술로 가능했습니다.
튀빙겐의 한 응급실에서 뇌과학자 마티스 시노프직은 전기자극의 세기를 최적화히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시노프직은 자극의 세기를 1볼트에서 5볼트로 조심스레 올려가며 그의 기분과 불안감, 긴장감 등을 물었습니다. 그는 각각에 대해 1에서 10 사이의 값을 말했습니다.
1볼트에서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행복감’은 2였고, 불안감은 8이었습니다. 1볼트를 더 올리자, 행복감은 3으로 올랐고 불안감은 6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기자극이 4볼트일때 그는 갑자기 행복감을 최고치인 10이라 말했고 불안감 또한 완전히 사라졌다고 답했습니다.
꼭 약에 취한 것 같아요.
그는 시노프직에게 이렇게 말하며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풀이 죽어 있던 얼굴에 커다란 미소를 지었습니다. 시노프직이 실험을 위해 다이얼을 한 단계 더 높여 최대치인 5볼트로 올리자, 그는 “환상적인 기분이지만 웬지 좀 심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거의 통제불가능한 황홀경에 빠졌고, 이때문에 불안감을 7로 높게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전기자극의 세기를 3볼트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그에게 ‘적절한’ 수준의 행복감과 불안감을 주었고, 또한 500만 원에 달하는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지 않는 수치였습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그는 퇴원 전에 시노프직에게 전압을 조금 더 높여주면 안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기분은 괜찮지만, ‘조금 더 행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시노프직은 거절했습니다. 시노프직은 그에게 황홀감이 지속될 경우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또한 병원을 떠나는 환자는 즐거움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정상적인 상태여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습니다. 환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그는 시노프직의 말을 따라 처음 결정한 수치로 장치를 설정한 후 퇴원했습니다.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의사가 치료의 범위를 넘는 수준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 논문에서 시노프직과 두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심장병 환자도 ‘자신의 심박조율기를 스스로 조절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물론 그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두 상황이 정확히 같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심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의 기분을 바꿀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환자 역시 자신의 환경과 욕망에 따라 자신의 기분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 명의 저자는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에 의해 언젠가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이 기술을 사용할 미래가 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이 방법으로 자신의 행복감을 높이는 일에는 어떤 비윤리적인 문제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단지, 상당히 비싼 수술 비용에 비해 수술을 받는 이에게 이 수술이 실제로 이익이 된다는 근거가 부족할 뿐입니다. 3년에서 5년마다 갈아야 하는 배터리 비용을 제하고도, 장치의 가격만 약 2천만 원이고 수술 비용은 5억 원에서 10억 원에 이릅니다.
어쨌든 우리는 ‘적절한 행복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행복의 수준을 너무 높일 때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시간이 된 것입니다.
측좌핵에 전극을 설치한 그 33세의 독일인은 이런 논의를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어느 날 병원과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아마 그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았을지 모릅니다.
2.
인간의 쾌락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뇌의 특정한 부위를 자극해 쾌락을 얻는 시대가 올 경우,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바로 행복이란 무엇일지, 그리고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지와 같은 질문입니다.
쾌락주의(Hedonia). 이 단어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이 단어를 말할 때 혀는 레드카펫위를 굴러가는 것 같으며 유쾌한 기분을 남깁니다. 쾌락주의는 뱀이 지혜를 주겠다고 이브를 꼬시기 전의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쾌락주의는 오늘날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한편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쾌락불감증(anhedonia)은 우울증의 증가와 함께 사회문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들은 평생동안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겪는 이의 비율이 네 명 중 한 명에 이른다고 말하며, 선진국에서 그 비율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뇌심부자극술은 바로 이런 우울증의 치료를 위해 개발되었고 또 이 치료의 과정에서 이런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뇌심부자극술을 정신의학에 적용한 것은 미국의 뇌과학자 헬렌 메이버그와 캐나다의 의사 안드레스 로자노입니다. 2005년 이들은 우울증의 한 종류로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증상을 말하는 만성 우울증 환자 일곱 명에게, 최초로 약물이나 약과 심리요법의 조합, 전기충격이 아닌 뇌심부자극술을 시행했고,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되지 않았던 그 일곱 명 중 여섯 명이 이 수술로 증상이 호전되었습니다.
헬렌 메이버그는 스타 과학자가 되었고 학회에서는 ‘정신외과를 되살린 여성’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더 많은 학자들이 이 연구에 뛰어들었고, 이제 이들은 뇌의 정확히 어느 부위를 자극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우울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묵은 논쟁의 연장입니다. 우울증은 정신적 고통의 일종일까요? 아니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일까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뇌과학자인 나의 일이 아닙니다.
헬렌 메이버그는 먼저 이를 분명히 했습니다.
나는 환자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질병의 진행을 막습니다. 기분을 -10에서 0으로 만들어 고통에서 그들을 꺼내줄 수 있지만 그 지점부터는 그들의 책임입니다. 이제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헬렌 메이버그의 사무실은 에모리 대학의 유리로 장식된 건물에 있습니다. 커다란 안경을 쓰고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어딘가 장난스러운 소년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몸집은 놀랄 정도로 작았지만, 입을 열자 그 공간은 그녀의 존재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깊고 강력했고, 자유자재로 다양한 표현들을 구사했습니다.
우리는 가설을 설정한 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제 수많은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잠깐 숨을 들이킨 후 목소리를 좀 더 낮췄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이 문제는 우울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메이버그는 1980년대, 모두가 우울증을 생화학과 신경전달물질의 문제로 생각하던 시절 우울증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뇌는 화학물질에 잠겨 있고 심리학적 문제는 이 ‘화학물질의 불균형’때문이라 간주되었습니다. 조현병은 도파민 시스템의 이상 때문이며 우울증은 세로토닌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로토닌 양을 높이는 약이 우울증에 효과를 보이자 이 가설은 더욱 힘을 얻었지만, 그 이상의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자 사람들의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뇌를 촬영하는 기술이 크게 발전했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90년대, 메이버그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뇌 신경회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그룹이 여기에 도전했고, 우울증과 변연계, 전두엽의 관계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감정과 인지에 관련된 부위입니다. 우울증 환자들에 대한 MRI 촬영 결과는 이들의 뇌 중 특정 부위는 우울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뇌에 비해 크게 활성화되는 반면 다른 부위는 반응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메이버그는 서브제뉴알리스(subgenualis) 혹은 ‘브로드만 영역 25’라는 이름의 대뇌피질 영역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검지 끝마디만 한 크기로 안구 바로 뒤에 위치한 영역입니다. 이 영역은 피질외에도 뇌의 모든 영역, 곧 보상 시스템과 변연계에 모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영역은 편도와 해마, 그리고 ‘감정의 뇌’라 종종 불리는 영역을 아우르는 시상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영역은 우리의 동기, 공포, 학습과 기억, 자아, 수면 제어, 식욕 등 우울증 환자가 보이는 모든 증상과 관계를 가집니다.
우울증 환자의 영역 25는 보통 이들보다 더 작았습니다.
메이버그는 우울증 환자의 이 영역이 과활성화(overactivation)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모든 치료가 이 영역 25의 활성도를 낮추었습니다.
한편 사람이 어떤 슬픈 생각을 할 때 영역 25가 활성화되며, 이 영역이 일종의 ‘우울감의 중심’이라는 증거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메이버그는 이 가설이 우울증의 이해를 위해서 뿐 아니라 어떤 치료법도 통하지 않는 만성 우울증을 가진 이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답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환자들은 어두운 굴속에 빠져 있으며 스스로 탈출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만성 우울증에 빠진 이들에게는 어떠한 치료법도 듣지 않았고, 이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50년 전에는 이런 환자들은 정신병원에 감금되었습니다.
메이버그는 영역 25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한 외과의사의 도움으로 그녀는 영역 25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되던 해, 그녀는 토론토 대학을 방문해 이미 대가 중의 한 명이었던 안드레스 로자노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미 수백 명의 파킨슨 환자에게 뇌심부자극술을 시술한 경험이 있었으며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즐기는 연구자였습니다. 메이버그의 제안은 그를 자극할 정도로 충분히 대담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 수술에 자원할 환자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다음 몇 달 동안 이들은 환자를 수소문했고, 회의적인 정신과 의사들에게 이 수술의 가능성을 설득하는 강연을 여러 차례 가졌습니다. 마침내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들에게 이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한 간호사 출신의 우울증 환자가 처음으로 이 수술에 동의했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모든 방법을 사용했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 새로운 방법 또한 별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지만, 그렇다고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술은 2003년 5월 13일이었고, 메이버그의 가설과 그녀의 과학적 확신을 테스트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호기심과 환자의 입장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두 손을 맞잡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면, 그건 내가 의사에게 잘못된 가설에 기반한 수술을 주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로자노는 메이버그에게 당신은 우울증에 대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이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로자노는 자신이 전극을 매우 안전하게 정확한 위치에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여동생이라면, 이 수술을 권할 건가요?”
메이버그는 그렇다고 답했고, 그들은 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술은 정해진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환자는 그들에게 자신은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환자에게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말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의미가 있건 없건 말이지요.”
그들은 가장 아래 지점에 9볼트를 흘렸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압을 올렸지만 역시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극을 0.5 밀리미터 위로 올렸습니다. 전압이 6볼트 일때 환자는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했냐고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어떤 느낌이 있나요?”
“아주, 엄청나게 고요한 느낌이에요.”
“고요하다는 게 어떤 뜻이죠?”
“설명하기 어려워요. 마치 미소와 웃음의 차이를 묘사하는 것처럼요. 내가 느낀 건 어떤 상승감이에요. 내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아요. 어느 추운 겨울날, 바깥에 나가 처음으로 돋아난 새싹을 보고 드디어 봄이 왔다고 생각할 때 받는 그런 느낌이에요.”
전원을 끄자, 그녀는 봄의 느낌이 사라졌다고 답했습니다.
메이버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팔뚝을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처음 남들에게 할 때도 그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팔에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수술실에서 그녀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묻자 그녀는 자신이 거의 눈물을 터뜨릴 뻔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진정 순수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후속 실험에서 다른 환자들 역시 그녀가 말한 ‘고양감’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이 느낌을 자신을 둘러싼 먼지구름이 사라졌다고 표현했고, 다른 이는 갑자기 방의 색깔이 화려해지고 더 밝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이러한 감각을 느낀 이들은 수술 후 한 달 이내에 상당히 높은 확률로 우울증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고, 이는 행복감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환자들은 내가 그들에게 특별한 새로운 것을 주었다기보다 그들을 괴롭히던 무언가를 없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메이버그는 이런 비유를 좋아했습니다.
그건 마치 한쪽 발을 악셀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다른 발로 브레이크를 누르고 있다가, 브레이크를 누른 발을 떼게 만들어준 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그들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지요.
에머리 연구팀은 우울증을 바로 이런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곧, 즐거움이나 쾌락의 부족이 아니라, 어떤 부정적 감정이 적극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긍정적인 감정’을 억지로 주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항상 존재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메이버그의 기념비적인 논문은 2005년 뉴런(Neuron)지에 발표되었고, 그녀는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으며 또한 많은 이들이 그녀를 비판했습니다. 의사들이 선을 넘었다고 주장하거나 뇌엽절제술(lobotomy)의 악몽이 반복될 것이라 우려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과학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때마다 이러한 반응이 나타납니다. 뇌와 관련된 모든 연구는, 혹시나 이 연구가 인간의 강화와 관련되지 않을까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듭니다.
내가 메이버그를 찾아간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즐거움이나 쾌락주의에 대해 듣고 싶었습니다. 나는 몇몇 연구팀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함으로써 ‘긍정적인 감정을 주입’하고 있으며 그녀가 이에 다소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본 대학의 정신과 의사 토마스 쉴래퍼와 외과의사 볼커 쾨넨의 인상적인 연구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방에는 어떤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메이버그는 쉴래퍼가 그녀의 ‘친구이자 동료’라는 사실을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또한 그가 그녀와 묘한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곧, 그녀가 먼저 도달한 결론을 그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쾌락불감증으로 고생하며 뇌의 보상 시스템에 전극을 심어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지 않다면, 나는 그들이 우울증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이 충분히 즐겁지 않은 것은 영역 25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메이버그는 한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알콜 중독 문제가 있었고, 뇌에 전극을 삽입 후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녀는 전극이 자신에게 줄 행복을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그 행복에 대한 기대에 편집적으로 매달렸고, 메이버그는 그녀에게 그 전극이 어떤 행복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수술은 그녀가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도록 그녀를 깨웠을 뿐입니다. 알콜 중독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그 대신 무언가를 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경계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구두를 한 켤레만 원하는 사람은 없지요. 사람들의 뇌 안에서 잘못된 무언가를 고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하는 것은 아주 안일한 생각입니다. 모든 중독 전문가들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끝없이 더 높은 전류를 요구할겁니다.
나는 쉴래퍼에게도 우울증의 본질을 물었습니다. 그와 쾨넨은 심리적 고통은 없애야 하지만 쾌락 불감증을 치료해서는 안 된다는 헬렌 메이버그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거구의 그는 한숨을 내쉰 뒤, 그가 존스홉킨스에서 아직 학생이던 시절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평소와 같은 회진에서 정신의학과 과징은 그를 지명해 우울증의 증상을 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성실한 학생이었던 그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아홉 가지 증상을 말하기 시작했고, 노의사는 그의 말을 멈추었습니다.
아니야, 쉴래퍼군. 우울증의 증상은 하나일세. 바로 즐거움이 없다는 거야. 환자에게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물어보게. 그는 이렇게 말할 거야. 아무것도 즐겁지 않아요.
그때부터 쉴래퍼는 스승의 말을 기억해 환자들에게 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쾌락불감증이야말로 우울증의 핵심이며 심리적 고통을 포함한 다른 모든 증상은 쾌락불감증에 따라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진 우울증이 호전되어야만 그들의 쾌락불감증 또한 완화됩니다. 이는 욕망과 즐거움이 우리의 수많은 인지 과정의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곧 욕망은 다른 모든 시스템을 가동시키며, 심지어 목표를 향해 행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나는 보상 시스템에 대해 헬렌이 가지는 조심스러움을 이해합니다.
쉴래퍼는 특유의 느린 말씨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뇌를 자극하는 환자 중에 쾌락중독자(hypomania)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전류를 너무 높게 설정할 때 보게 되는 최악의 반응은 사람들이 마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을 때처럼 얼얼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나는 메이버그가 말한 보상 시스템과 중독의 관계가 궁금했습니다. 나는 관련 문서를 뒤졌고, 뇌심부자극술에 의존하게 된 한 환자의 일화를 발견했습니다. 논문지 「고통(Pain)」에 실린 이 연구는 중년의 한 미국 여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만성 고통에 시달리던 그녀는 오른쪽 시상에 전극을 삽입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고통이 너무 심할 때 누르도록 자극기 또한 받았습니다. 그 장치에는 전류의 양을 조절하는 노브까지 달려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자극에 성적인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고 마침내 거의 최고 전류로 끝없이 그 버튼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곧 그녀는 모든 불편함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자극이 너무 심해 몇 번이나 심방세동에 걸렸고, 이후 2년 동안 그녀의 삶은 망가져 갔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종종 며칠이나 먹지도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전기자극기만을 눌렀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가족이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자 의사들은 전류를 조절하던 그녀의 손가락에 큰 상처가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뇌심부자극술이 실험실의 기술이 아니라 표준적인 치료가 될 경우 누구나 자신의 자극기를 지니고 의사들을 방문해 자신이 원하는 세기로 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쾌락중독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 『쾌락 충격(The Pleassure Shock)』(론 프랭크 저)에서 발췌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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