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들어도 뭔가가 탁 깨달아지는 책을 읽었다
한때 나도 ‘열심히’를 미덕으로 생각하며 버닝하던 때가 있었다. 절차탁마를 생각하며 열심히 갈고 닦았다. 열심히 ‘노오력’ 하다보면 뭐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열심히 안 하는 것보단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 열심에 안정감을 두고 살았다.
책은 태평양 한가운데 한 남자가 튜브를 붙잡고 표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한 장면이다. 저 멀리서 똑같이 튜브를 붙잡은 한 여자가 헤엄쳐온다. 그들은 나란히 바다 위에 떠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후 여자는 어딘가 있을지 모를 섬을 찾아 헤엄쳐가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맥주를 마신다. 여자는 이틀 낮밤을 헤엄쳐 어딘가의 섬에 도착해 구조되었다.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술에 취한 채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된 여자는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자신은 죽기 살기로 헤엄쳐 어딘가의 섬에 도착해 구조되었는데, 남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술만 마시다 자신과 같이 구조되다니. 남자가 지독하게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여자도 운이 좋았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섬을 향해 헤엄쳐가다 결국은 섬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 또한 럭키 아닌가?
이야기를 듣다 보면 So what?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하든 하지 않든 어차피 인생은 운이니 대충 막 살라는 그런 얘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잠시 워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심히 안 했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렇다는 것이다. 허무주의도 염세주의도 아니다. 지금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고 저자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과연 ‘열심’과 ‘노력’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과 노력은 본인의 선택으로 남겨둬야 한다. 누군가 억지로 강요하거나 권유할 문제가 아니다.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본인의 인생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부모 자식 사이일지라도) 그리고 그 결과도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열심히 살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그래봤자 다 소용없다고 말해선 안 된다. 또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한 사람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지지해 주며 지켜봐주자. 최고의 충고는 충고하지 않는 것이다란 말을 기억하며…
인생은 결과만이 가치 있는 레이스가 아니다. 과정을 잃어버리면 결과는 의미를 잃는다. 가는 길이 즐거웠다면 도착지가 서울이 아니어도 어떠하단 말인가?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즐겁게 서울로 가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원문: Peter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