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PUBLY에서 발행한 「인터랙션 18, 디자인으로 연결하라」 리포트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PUBLY 멤버십에 가입하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프로토파이(ProtoPie)는 코딩 없이 빠르고 정교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는 프로토타이핑 툴로 한국의 스타트업 스튜디오 XID가 만들었다. 파이라는 이름처럼 간단한 사용법과 강력한 기능으로 네이버, 구글, 알리바바, 페이스북, 카카오 등 전 세계 인터랙션 디자이너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Interaction 18에는 다양한 회사에서 참여해 부스를 차리고 홍보와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스튜디오 XID도 그중 하나였다.
페이스북에서 참가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인사나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마침 부스에 계시던 디자이너분이 먼저 글 잘 읽고 있다며 인사를 해주셨고, 덕분에 틈날 때마다 부스에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네이버, 구글에서 인터랙션 디자이너를 거쳐,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디자인 툴을 만들고 있는 김수 대표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본 인터뷰는 퍼블리와 진행하고 있는 「인터랙션 18, 디자인으로 연결하다」 리포트의 일부로 아직 한참 편집 중이지만,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재미있는 부분만 발췌해서 가져왔다. 전문은 리포트에서 읽어볼 수 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수입니다. 카이스트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카이스트 산업 디자인과는 전통적으로 제품 디자인에 맞춰져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웹에 있어서 사용성이 무엇이고, 웹 사이트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제이콥 닐슨이 쓴 『웹 유저빌리티』라는 책과 이른바 ‘폴라베어 북’이라고 불리는 루이스 로젠펠트의 『인포메이션 아키텍처』라는 책을 읽으면서 손으로 만드는 제품도 좋지만, 무형의 정보를 눈에 보이게 설계하는 작업도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금세 푹 빠졌어요.
그래서 웹 사이트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내비게이션 시스템, 정보 구조 등을 혼자 책 봐가면서 공부했어요. 그러다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병역특례를 찾아보다가 웹디자이너로 취직을 했어요. 학교에서 맨날 공부만 하다가, 사회에 나와서 내 손으로 돈도 벌고, 내가 만든 제품을 사람들이 쓰고, 거기서 피드백이랑 로그 데이터 얻는 과정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나온 김에 조금 더 놀자 싶어서 친구들이랑 2000년 닷컴 버블 꺼질 때 미쳤다고 스타트업 한 번 해서 말아먹고 학교로 돌아왔죠. 졸업하고는 네이버에 들어갔어요.
구글은 어떻게 들어가게 되셨나요?
회사 그만두고 저는 제 인건비가 싸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중국 회사를 여기저기 지원했는데, 제 인건비가 너무 싸더라고요. 전략을 바꿔서 중국에 있는 외국 회사를 알아봤어요. 그러면 조금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IDEO, 마이크로소프트 상하이, 베이징, 구글 차이나 등 여기저기 면접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러다 구글 베이징에 입사했어요. 입사는 베이징으로 했는데, 일은 미국 일을 더 많이 했어요. 구글은 하겠다는 애들 안 말리고 인력풀 베이스로 일하다 보니까, 한국에 있다고 한국 서비스만 하는 건 아니고, 중국에 있다고 중국 서비스만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주로 검색, 커머스, 지도 이런 서비스 많이 했었고, 맨날 왔다 갔다 하면서 1년의 3분의 1은 비행기, 3분의 1은 미국, 3분의 1은 중국에 있었어요.
구글 차이나는 채용이 길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선입견이 있는데, 구글은 지원을 받잖아요? 그러면 본사에서 관리해요. 그래서 커트라인이 똑같아요. 제가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최종 승인은 래리 페이지가 다 해요. 나도 래리 페이지 승인받고 들어갔다고! 구글 차이나 쉽지 않아요 (웃음)
프로토파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구글 다니면서 제대로 된 프로토타이핑 툴에 목말랐어요. 카이스트 산업 디자인과는 코딩을 시켜요. 전산 수업을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코드를 짜는 건 아니어도 남의 코드 읽을 수 있을 수준은 되는데, 코딩을 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시간 싸움이에요. 구글 디자이너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두세 개 정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2013년부터 괜찮은 툴이 없나 찾기 시작했는데, 쓸만한 게 없더라고요.
저는 인터랙션 자체를 어떻게 기술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있었어요. 네이버에 있을 때 인터랙션을 화면 설계에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었는데 우연히 그 논문을 다시 읽게 된 거예요.
인터랙션 자체를 잘 분해할 수 있다면, 다시 재조립해서 무언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다른 분야들은 움직임을 어떻게 기술하는지 찾아봤어요.
프랑스에 뮤지컬, 오페라에는 무용수들이 무대 어느 공간에 있어야 하는지 표시하는 ‘무용 기록법’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일본에는 휴머노이드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모션 스코어’라는 게 있었고요. 저는 고등학교 때 화학을 좋아했는데, 분해하고, 재조립한다는 것에서 주기율표 생각이 났어요. 이 메타포를 콘셉트 모델로 잡았죠.
무작정 퇴사하면 리스크가 크니까, 아내에게 동의를 얻어서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를 만들었어요. 당시에는 콘셉트 모델을 테스트한 건 아니고, 모바일용 프로토타이핑에 대한 니즈가 있는지를 검증하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글로벌로 테스트를 돌렸는데 시장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사요. 중국, 독일, 미국에서 반응이 있었죠. 그래서 2014년 12월 구글을 그만두고, 지금 공동 창업자들과 의기투합해서 시작했죠.
스튜디오 XID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실험적인 거 좋아해요. 회사 이름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전상일 시각 공작단 아세요? 넥스트 앨범 표지 디자인으로 유명했어요. 저는 이게 뇌리에 박혀서, 나중에 창업하면 회사 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회사 이름을 ‘실험적상호작용설계공방’이라고 짓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공동 창업자들이 영감탱이들 일하는 곳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절대 안 된다고 해서 공방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인 스튜디오, 실험적 상호작용에 해당하는 eXperimental Interaction Design, 둘을 붙여서 ‘스튜디오 XID’가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희는 판매하는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기 때문에 너무 멀리 가면 안 되지만,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저희 툴 자체도 저희의 테스트베드라고 생각하고 있고, 실험하고 고쳐나가면서 앞으로 더 잘해야죠. 저는 저희 팀원들에게 디자인은 MAYA(Most advanced, yet acceptable), 실험적이지만 사용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해요.
달나라까지는 아니어도 천장 정도는 가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디자인 팀 멤버들에게 제대로 탐험하라고 이야기해요. 달나라는 목표로 해야 성층권까지는 갈 것 아니냐면서. 구글로 치면 Moonshot Thinking인 셈이죠.
후배 인터랙션 디자이너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디자이너는 사람의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에요. 제품을 만들고, 설계하는 게 아니라 제품을 쓰는 행위와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일을 잘하려면, 본인 스스로가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해요. 자동차의 클러스터를 디자인하려면 일단 많이 운전하면서 돌아다녀봐야 해요.
대학교 1학년 때 교수님이 조언을 해주셨어요. 아르바이트해서 소주 사 먹지 말고 1달만 모아서, 그 동네에서 가장 좋은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그 공간의 분위기와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그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고 이 사람들이 어떤 행동 양식을 갖고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라는 조언이었어요. 경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죠.
대학생, 뉴비 힘든 것 잘 알아요. 대기업에서 스펙을 바라니까 스펙 쌓는 데 치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런 이력서에 올리기 위한 스펙보다 내가 느끼고 배운 경험이 많은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한두 마디 해보면 알잖아요? 저는 앞으로 그런 사람들이 디자인 업계에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꼭 성공하고 싶고, 성공해야 돼요.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만든다고 말하면 잘 몰라요. 게임에는 투자하는데 소프트웨어는 안 하죠. 대한민국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어서 성공한 선례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다음에 누군가 제가 만든 선례를 보고 “저렇게 가면 되겠구나, 혹은 최소한 저런 거를 추구하면 세상이 인정해주겠구나” 생각하고 시작할 수 있겠죠.
저는 그 사례를 제 손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스타트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선례들이 나와줘야 돈이 풀리거든요. 한국에 자원은 사람밖에 없고, 그중에 가능성이 있는 건 소프트웨어라고 봐요. 저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좋은 선례가 되고 싶어요.
마치며
이번 컨퍼런스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는 본보기로 삼고 싶은 디자이너들을 만났다는 점이다. 김수 대표님(대표님이라는 칭호가 부담스럽다 하셨지만, 그렇다고 대표라고 쓰기에는 저도 부담스러워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런 대표, 이런 디자이너, 이런 어른(본인이랑 나이 차이 별로 안 난다고 좋아하셨지만…)이 근처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도 좋은 디자이너가 되어야지.
인터뷰 전문이 궁금하신 분은 이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 이진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