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팀이 뭘까. 우선 수평적인 조직, 자유로운 의사소통, 민주적인 의사결정, 능력에 따른 역할 분배, 직급에 따른 책임 부여, 성과에 따른 보상 등이 생각난다. 웃음이 넘치고, 모두가 정시에 퇴근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물론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회사마다, 팀마다 다르고, 직급마다, 직무마다 다르다. 당연히 나라마다, 세대마다도 다르다. 그러나 회사가 이익을 내는 집단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좋은 팀은 일 잘하는 팀, 즉 업무 생산성이 높은 팀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리더십 있는 팀장, 똑똑한 팀원, 명쾌한 업무 분담 등 많은 요건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팀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해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고, 그래서 생산성이 높은, 좋은 팀을 만들 수 있을까. 하이퍼 아일랜드 교육의 8할은 팀 빌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교육 철학 중 하나가 ‘팀이 전부다(Team is everything)’일 정도로 팀을 강조한다. 하이퍼 아일랜드에서 배운 팀 빌딩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팀이 전부다. 협력, 포괄, 투명성은 성장에 중요하다. 지속적인 피드백과 깊은 반성을 통해 개인들은 더 깊은 자각을 얻고, 더 효과적인 팀원과 리더가 된다.
Team is everything. Collaboration, inclusion and transparency are crucial to growth. Through constant feedback and deep reflection, individuals gain deeper self-awareness, enabling them to become more effective team members and leaders.
팀 빌딩이 뭘까. 단순히 팀을 만드는 일에서 더 나아가 팀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의사소통하고, 같이 일하는 방식과 규칙을 정하고, 어디로 나아갈지 정하는 일이다. 복잡성과 전문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팀 빌딩은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팀 빌딩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아침에는 팀 회의, 저녁에는 팀 회식, 때때로 워크숍도 가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 시간이 정말 팀 빌딩에 사용되었는지. 누군가의 일장 연설을 듣고, 모른 척하고, 쉬쉬하고, 끄덕이고, 취하는 데 사용되지는 않았는지.
모든 프로젝트는 팀으로 진행된다
국적, 언어, 문화, 배경, 능력, 기대 등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는 하이퍼 아일랜드의 사람들이 임의로 정한 팀에 모여 수평적으로 일한다. 시간관념, 언어 사용, 토론 문화, 회의 예절 등 정말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오는 트러블은 피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그 트러블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커뮤니케이션 오류를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팀을 만들 수 있을까.
출발 지점 Point of Departure
하이퍼 아일랜드에서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구성원 모두 한자리에 모여 POD(Point of Departure)라는 문서를 만든다. 팀이나 프로젝트 전체 구조와 방향을 잡고, 팀으로서 같이 일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된 POD는 서로가 프로젝트 및 상대에게 원하는 바와 기대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기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 함께 진행하는 게 좋다.
처음부터 완벽한 POD를 만들 생각은 버리자.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한다. 따라서 팀은 1주일마다 POD로 돌아와 문서에서 무엇이 잘 지켜지고, 무엇이 변했는지 살펴본 후 필요에 따라 업데이트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지금부터 POD에 나오는 질문 몇 가지를 살펴보자.
목적 Purpose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목적은 특히 의사결정 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팀의 목적이 될 수도, 프로젝트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팀의 목적과 프로젝트 목적을 분리해서 작성하면 좋다. 다른 질문보다도 목적을 정하는 게 중요한데, 이는 그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답을 제공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사례를 몇 개 살펴보자. 브랜딩 프로젝트에서 우리 팀 목적은 ‘포트폴리오에 자랑스럽게 넣을 수 있는 좋은 결과물 만들기’였다. 마감 1주일 전. 상태가 영 아니다. 포트폴리오는커녕 클라이언트에 보여주기도 쪽팔린다. 우리는 POD에 적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주말에도 나와 일했고, 결국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UX 프로젝트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이번 팀의 목적은 “각자 미지의 영역에 도전해서 새로운 것 배우기”였다. 우리는 각자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했다. 누구는 스케치로 UI 디자인에 도전했고, 누구는 프레이머로 인터랙티브 프로토타입 만들기에 도전했다. 마지막까지 처음 세운 목적을 지켜냈고, 결과물은 조금 부족해도 각자 새로운 것을 배웠다.
희망 결과 Desired Outcome
이 프로젝트의 산출물은 무엇인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 혹은 무엇을 이룰 것인가. 브랜드 북, 프로토타입, 와이어프레임 같이 구체적이어도 좋고 UX 프로세스 습득, 명쾌하고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즐겁게 일하기 등 추상적인 것도 상관없다. 목적과 마찬가지로 팀과 프로젝트 산출물을 분리해서 작성하면 보다 명쾌한 POD를 만들 수 있다. 더 많아도 상관은 없지만 2개에서 4개 내외로 추리고, 그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놓으면 팀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으기 용이하다.
직무 Roles
이 프로젝트에 어떤 직무가 필요하고, 그 직무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클라이언트의 브랜딩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라고 치자. 기본적으로 프로젝트 매니저, 브랜드 전략가, 카피라이터,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그런데 프로젝트 매니저는 무슨 일을 할까. 클라이언트 연락은 누가 하는 걸까. 브랜드 전략가가 말하는 전략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카피라이터는 매니페스토를 쓰는 걸까, 아니면 어떤 카피를 쓰는 걸까. 아트 디렉터는 어디까지 디렉팅하는 걸까. 그래픽 디자이너는 무엇을 디자인하는 걸까. 아트 디렉터가 시키는 일을 받아서 하는 걸까.
모두 머리 속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직무 이름이 같다고 하는 일도 같은 건 아니다. 광고 회사 아트 디렉터와 패션 회사 아트 디렉터는 이름만 같지 하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프로젝트 매니저도 마찬가지다. 어느 회사에 있었는지, 어떤 부서에 있었는지에 따라 중요한 부분이 다르다.
어떤 프로젝트 매니저는 클라이언트 연락도 자기 범위에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했겠지만, 클라이언트를 전담하는 어카운트 매니저와 함께 일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질문은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 How
어떻게 의사소통하고, 의사결정 내릴 것인가. 어떻게 일을 나누고, 협업할 것인가. 이제 거의 다 왔다. 같이 일하는 방법을 정할 차례다. 너무 많아지면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5가지로 줄이자.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각자 일하면서 타협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정해질 수도 있다. 아마도 팀 빌딩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 9시부터 5시까지 학교에서 일하고, 주말에 일하지 말기
- 토론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투표는 마지막까지 미루기
- 하이퍼 아일랜드에서 배운 워크숍 툴 사용하기
- 잘 듣고, 모르면 묻고, 서로 피드백 주기
성공과 실패 Success & Fiasco
이 프로젝트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또 실패 기준은 무엇인가. 클라이언트 만족시키기, 우리끼리 만족하기, 좋은 팀으로 남기, 도전하기, 새로운 툴 배우기 등 답이 꽤 명쾌한 질문이다. 실패 기준은 성공 기준을 반대로 만들면 되지만, 목적과 더불어 팀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조금 더 세세해도 좋다. 다만, 이미 위에서 많은 부분에 대해 논의했기 때문에 여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
POD에는 이 외에도 누구를 위해 프로젝트를 하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지에 대해 답하는 타깃 그룹&가치(Target Group & Value), 진행하면서 달성해야 할 작은 목표들과 예산에 관해 이야기하는 마일스톤&예산(Milestone & Budget), 다른 어떤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는지, 혹은 어떤 데이터나 문서를 참고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커넥션(Connections)에 대한 질문이 있다. 프로젝트에 따라 써도 되고, 안 써도 상관없다.
마치며
하나하나 예시를 들며 설명하다 보니 글이 조금 길어졌다. 실제로 해보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데다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팀 빌딩의 기초로 아주 유용하다. ‘Project Point of Departure’에 들어가보면 질문 외에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있으니 참고하시길.
원문: 이진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