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수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가족부터 친구, 선생님, 직장 상사까지 대상은 다양하다. 내가 요청한 적도 있지만 상대가 일방적으로 준 적도 있다. 모두 다른 내용이었지만, 좋은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주로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등. 덕분에 피드백은 내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무언가로 자리 잡았고, 피하고 싶은 무언가가 되었다.
그런데 하이퍼 아일랜드에서 피드백하는 방법을 배운단다. 그것도 이틀씩이나. 상대 면전에서 공손하게 나쁜 말 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가. 아니면 피드백 받고 상처 안 받는 방법을 배우는 건가. 계속 듣다 보니 그 방법이 조금 달랐다. 내가 아는 피드백이 아니었다. 피드백은 조심스럽고 섬세한 기술이었다. 방법론도 있었고, 피드백 잘하기 위한 실습도 진행했다. 오늘은 하이퍼 아일랜드에서 말하는 피드백 제대로 하는 방법을 이야기해보자.
피드백할 때 고려할 점
우선 피드백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피드백은 개선을 위한 정보나 의견을 주는 건설적인 행위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시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피드백을 위해 고려할 점이 있다. 먼저 상대에게 피드백을 줘도 되는지 물어보자. 원하지 않는 피드백만큼 불쾌한 게 없다.
좋은 의도에서 하는 건데 괜찮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들을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들을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주는 피드백은 고속도로에서 깜빡이도 안 켜고 무작정 끼어드는 꼴이나 다름없다. JTBC 〈속사정쌀롱〉에서 진중권은 멘토와 꼰대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멘토와 꼰대 모두 충고를 한다. 다만 멘토는 남이 요청했을 때 하고, 꼰대는 남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한다.
여기서 말하는 충고가 바로 피드백이다. 묻는 이에게 피드백을 준다면 멘토라 불릴 수 있지만, 그냥 준다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이어서 피드백은 인간성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가령 9시에 보기로 했는데 연락 하나 없이 9시 반에 나타난 팀원이 있다고 치자. 보통은 이렇다. 팀장님이 말한다.
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 몇 시야? 〇〇씨는 사람이 왜 그렇게 게을러?
〇〇씨가 말한다.
죄송합니다. 지하철역에서 사고가 나서 버스로 갈아타느라 늦었습니다.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뛰어내리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려 고장이 났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 그러게 일찍 다니라고 내가 몇 번 말해! 가서 일 봐.
〇〇씨 사정을 듣고 나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정신 어쩌고는 물론이고, 게으르다는 이야기를 운운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〇〇씨는 늦고, 핸드폰 깨진 것도 억울한데 팀장이 사정도 모르고 깨기까지 하니 아침부터 기분이 엉망진창이다. 그냥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〇〇씨, 왜 늦었어? 회의 진행을 못 하고 있네. 약간 화도 나고. 다음부터는 이런 일 있으면 연락이라도 주게.
〇〇씨는 미안함을 표현하고 사정을 설명한다.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하러 들어가자고 말한다. 팀장님, 〇〇씨 모두 당황할 일이 없다. 타인의 행동을 묘사하고 그 행동에 대해 자신의 느낀 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일이 적고,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대책 없는 비판도 아니게 된다. 이는 실제 업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기도 유용하다.
세 번째, 피드백을 줄 때 상대의 행동을 옳다/그르다, 좋다/나쁘다고 쉽게 평가하지 말자.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차이를 인정할 필요는 있다.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어났던 일을 살펴보자.
브라질 사람과 스웨덴 사람이 있다. 브라질 사람은 항상 늦는다. 9시에 모이기로 하면, 한 시간 반 지각은 기본이다. 늦어도 오기는 오고, 늦게까지 일하는 것도 문제없다. 스웨덴 사람은 절대 안 늦는다. 9시는 9시다. 대신 조금만 아파도 안 나타난다. 하루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안 오고, 하루는 편두통이 와서 안 온다. 일이 아무리 많아도 5시가 되면 칼 같이 사라진다.
이들을 데리고 프로젝트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브라질 사람은 일에 늦게 오고 늦게까지 일하는 게 당연한 사람이다. 늦는 건 나쁘기 때문에 늦지 말라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그에게 늦는 건 나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웨덴 사람은 정시출근 정시퇴근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일이 남았는데 집에 가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기 때문에 마무리하고 퇴근하라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그는 이게 왜 잘못되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책은 단순하다. 피드백을 주되, 행동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고 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브라질 사람에게는 이렇게 피드백을 줘보자.
페드로, 너 매일 1시간은 늦는 거 알지? 물론 브라질에서는 늦게까지 일하니까 늦게 출근하는 거 알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브라질 사람이 아니잖아. 늦게까지 일하고 싶지 않아. 네가 없는 시간 동안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 그럴 때마다 나는 기운도 없고, 힘도 빠지더라. 네가 일찍 와주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스웨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보자.
알렉스, 가끔 일이 남아도 집에 가잖아. 물론 스웨덴 사람은 시간 맞춰서 오고, 때 되면 가는 거 잘 알지. 그렇지만 우리 팀 모두가 스웨덴 사람은 아니잖아. 그러면 결국 남은 내가 그 일을 해야 해. 그럴 때마다 나는 팀에서 소외받는 기분이 들어. 남은 일이 있으면 마무리를 하거나, 내일 와서 처리할 테니 남겨두라고 알려주면 좋겠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믿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일을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드백을 줄 때는 자신의 렌즈로 상대의 행동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를 주어로 두자. 사실 피드백을 줄 때 3인칭으로 흐르기 쉽다. ‘누가’ 혹은 ‘우리가’ 따위의 주어를 쓰며 군중 속에 나를 녹여내고 의견을 뭉갠다. 이는 듣는 상대로 하여금 그게 누구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때때로 오해를 부르며, 피드백의 요점을 흐린다. 상대 행동에 대해 ‘내가’ 느낀 점과 ‘내가’ 생각하는 대안을 이야기했을 때 더 분명하고 강력한 피드백을 줄 수 있다.
효과적인 피드백을 위한 두 가지 방법
지금까지 피드백하며 고려할 점을 알아봤다. 피드백하기 전에 물어보기, 행동에 대해 피드백하기, 행동 평가하지 말기, 나를 주어로 두기. 물론 이 모든 걸 생각하면서 피드백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하이퍼 아일랜드에서는 기회가 될 때마다 다양한 툴을 이용해 피드백하는 연습을 시킨다. 효과적인 피드백을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알아보자.
BIFF 피드백
먼저 BIFF(Behavior, Impact, Feeling, Future) 피드백 모델. 행동, 결과, 느낌, 대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위에 예시들에서 사용한 모델이다. 상대의 행동, 그 행동이 이끌어낸 결과, 그로 인한 내 느낌, 앞으로 그 행동의 대안 순서로 피드백을 주는 방법이다. 이 모델에서는 상대 행동의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파운데이션 모듈에서 친구에게 이런 피드백을 받았다.
진재의 유머와 늘 평온을 유지하는 태도 덕분에 같은 팀을 하면서 힘든 와중에도 즐겁게 일할 수 있었어. 앞으로도 더 자주 이야기하면 좋겠고, 더 많은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면 좋겠어.
진재는 긍정적이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 그래서 우리 팀이 조금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았고, 재밌었어.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데 별로 이야기를 안 한 것 같아서, 다음에는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면 좋을 것 같아.
Start, Stop, Continue 피드백
두 번째. Start는 앞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 행동, Stop은 앞으로 그만 했으면 좋을 것 같은 행동, Continue는 앞으로도 계속하면 좋을 것 같은 행동을 말한다. BIFF 피드백 모델과 결합해서 사용하면 보다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하이퍼 아일랜드 첫 프로젝트가 끝나고 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받았다.
- Start: 불편한 감정을 팀원들과 공유하기, 생각을 조금 더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 Stop: 불편한 감정을 속으로 삼키기, 이해하는 척하기
- Continue: 공손하고 긍정적인 에너지 유지하기, 유용한 경험 공유하기
마치며
피드백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다. 나 역시 하이퍼 아일랜드에 다닌 두 달 반 동안 살면서 들은 긍정적인 피드백보다 더 많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었다. 덕분에 하는 일에 자신감도 붙고, 내가 뭘 잘하는지도 깨달았으며, 안 좋은 버릇도 하나씩 바로잡아나가고 있다. 성장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설명과 사례가 붙으니 정말 긴 글이 되었다. 그래도 좋은 피드백 주는 방법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듣는 방법은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 글은 여기서 마무리해볼까 한다.
원문: 이진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