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의 이야기 디톡스(D.Talks)’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미국에서 4년 차 UX 디자이너이고, 트럼프 때문에 취업비자 발급이 거의 불가능함에도 텍사스의 IT 회사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하다 최근 아메리칸 에어라인(American Airline) UX팀으로 성공적으로 이직한 능력자 곽문희 디자이너의 이야기입니다.
Q. 현 회사에는 UX 디자이너의 일의 범위가 넓고 일도 많은 것으로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통 회사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되나요?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대기업 프로젝트와 스몰 비즈니스 프로젝트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요. 큰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UX 디자이너만 20명 투입되는 경우도 있어요. 스몰 프로젝트는 디자이너 1~2명 리서쳐 1명 등 적은 인력이 투입되는 편이고요.
출근을 9시 정도에 하면 베이스캠프에서 어사인된 태스크를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세워 하루 계획을 짜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요. 10시에는 싱크 미팅이 있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과 클라이언트가 함께 컨퍼런스 콜을 진행하는데, 주로 전날 했던 일을 공유하고 클라이언트와 질의 응답시간을 가져요. 오후 1시간~1시간 반 정도는 프로젝트에 적용할 UI에 대해서 개발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개발 리소스와 UI 구현 가능 정도 등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져요. 개발자와는 아주 가깝게 구현과정을 중간중간 계속 확인하면서 저의 디자인과 구현된 결과물을 맞추는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Q. 미국에서의 UX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되나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저희 회사의 경우 보통 PO나 PM이 프로젝트 브리프를 하면 리서처와 함께 어떤 리서치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결정해요. 리서치 종류와 계획은 리서처가 짜오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리서치는 직접 디자이너가 합니다. 그래야 리서치에서 나온 결과가 디자인에 녹아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 고객 회사를 방문해서 유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핸드 스케치를 들고 가서 간단한 유저 테스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유저 스토리, 시나리오,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도 UX 디자이너의 몫입니다.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에는 이 모든 프로세스를 제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그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디자인 결과물까지 작업할 수 있어서 큰 프로젝트보다 훨씬 선호하는 편이에요. 배움의 범위도 넓고 결정 권한도 크니 당연히 프로젝트에 대한 애착도 크고요. 대기업 프로젝트의 경우는 오히려 몇 년간에 걸쳐서 수천억짜리 딜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 경우 단순히 부분적인 플로우를 업데이트하거나 비주얼 리바이즈 같은 일을 해서 생각보다 많이 애착이 가지 않는 것 같아요.
리서치 과정이 끝나면 디자인 프로세스가 시작됩니다. 와이어 프레임 단계에서는 해당 프로덕트의 콘텐츠, 스트럭쳐, 로직, 애니메이션, 패턴, 양식(behavior) 등을 모두 정의하기에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리서치 결과가 잘 녹아들어야 하고 유저 중심의 디자인이 나올 수 있어야 해요. 와이어 프레임이 컨펌이 되면 컴스단계로 넘어갑니다. 컴스는 와이어 프레임에 컬러를 입히고 픽셀 퍼펙트하게 최종 디자인을 완성하는 단계입니다. 보통 이단계부터 개발자가 투입됩니다. 디자인이 완성되면 개발자가 디자인을 제품화하도록 가이드를 만드는데, 이 단계를 우리 회사에서는 ‘레드라인’이라고 부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디자인한 것과 결과물이 최대한 같도록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UX 디자이너가 스콥이 리서치부터 디자인까지 범위가 아주 넓고 일도 많지만 이렇게 나온 결과물이 클라이언트의 비즈니스 지표를 높여주고, 유저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 굉장히 뿌듯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애착도 많이 가서 이렇게 전 범위에 걸쳐서 참여한 프로젝트들은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아요. 3년간 일하면서 부동산, 헬스케어, 교육, 석유회사, 통신, 유통회사 등 여러 다른 산업군에 있는 다양한 프로덕트들을 작업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이 배울 수 있었죠.
Q. 자, 이제 모두가 궁금해하는 미국 취업과 이직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트럼프의 반외국인 정책 때문에 요즘처럼 외국인의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이직을 준비했나요?
저는 인터뷰를 정말 정말 많이 봤는데, 이직을 결심하고서부터는 하루에 4개의 회사는 꾸준히 지원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큰 회사들만 지원했죠, 구글, 맥킨지 등… 그중에서 저는 맥킨지(McKinsey)를 어릴 때부터 정말 가고 싶었거든요. 긴 프로세스 끝에 최종 합격하고 연봉 협상까지 진행했는데 비자 문제로 결국 못 가게 되었죠ㅜㅜ 아파트까지 빼기로 신청해놓았는데… 요즘은 미국 내 외국인의 취업이나 이직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미국은 회사에 직접 가서 하는 온사이트 인터뷰를 거의 종일 진행해서 전화 인터뷰를 그 전에 여러 번 봅니다. 평균 6번에서 많게는 8번까지도? 전화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사이트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마지막으로 전화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전화 인터뷰는 보통 처음에는 리쿠르터가 이력 및 제너럴한 사항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음 전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 등 다양한 사람이 포트폴리오와 회사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5~6번째 전화 인터뷰는 디자인팀의 VP나 디렉터와 전화를 하고 회사에 따라서 CEO 또는 COO랑도 인터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포트폴리오나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도 있지만, 퀴즈를 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유즈 케이스가 있는데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 자신의 프로젝트 경험을 기반으로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아요.
전화인터뷰가 통과되면 마침내 온사이트 인터뷰를 하는데 종일 하니까 정말 진이 빠지고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쉴 정도였어요. 처음 두 시간은 리더십 인터뷰였는데 각종 상황을 주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경험에 기반 두고 답하라고 질문합니다. 예를 들면 클라이언트랑 일할 때 겪었던 문제점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 문제해결 능력, 리더십 능력 등을 평가합니다.
리더십 인터뷰가 끝나면 회사에서 내주는 디자인 챌린지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합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같은 경우는 함께 일할 20명의 팀원이 모두 면접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가운데 앉고, 긴 테이블에 함께 둘러앉아서 저의 결과물에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몇 시간에 걸쳐서 아주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디자인 팀 전체가 다 들어왔기에, 그 사람들이 하는 질문을 들으면서 이 팀은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디자인 챌린지는 목요일 밤에 보내서 월요일까지 기한을 줍니다. 보통 하나의 시나리오를 주고 디자인 솔루션을 도출해내는 것을 요구해요. 어떤 툴을 사용해서 어떤 식으로 결과물을 낼지에 대한 가이드를 다 주는 편이고, 면접을 보는 회사의 웹사이트 또는 네이티브 앱을 직접 조사하고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파악해서 디자인을 진행합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에서는 액슈어(Axure)를 사용하지만 픽셀까지 완벽(Pixel perfect)한 모크업 파일까지 제출하는 게 필요조건(requirement)이었고 목요일 저녁에 과제를 전달받아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꽤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현재 미국의 많은 UX 팀이 디자인 툴로 액슈어냐 스케치(Sketch)냐를 결정하는 과도기에 있고, 아메리칸 에어라인에서도 한 부서는 액슈어를, 다른 한 부서는 스케치를 사용하고에 과제 발표 중 어떤 툴을 선호하냐는 질문에 스케치를 선호한다고 했을 때 그 부서에서 환호하기도 했어요.
긴 인터뷰 프로세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저녁에 바로 합격통보를 받았어요. 미국에는 함께 일하게 될 부서 팀원 모두에게 찬성과 반대를 물어보고 보통 찬성이 나오거나 만장일치로 찬성이 나와야 합격이 결정되는데, 다행히도 전원 만장일치로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기뻤죠. 🙂 지금은 현재 회사를 마무리하고 비자 프로세스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여행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항공사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너무 기대되고 항공사에서 일하면 매주 여행도 갈 수 있고 너무 좋을 것 같아요.
Q. 미국 취업을 준비하는 디자이너들에게 꿀팁 좀 주세요!
첫 번째로 포트폴리오는 큰 회사와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주도적으로 많은 프로세스에 참여한 프로젝트’를 올려야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AT&T, 버라이즌(Verizon) 등 큰 회사와의 프로젝트를 먼저 포트폴리오 첫 부분에 배치했는데, 큰 프로젝트는 인터뷰를 보는 회사에서도 당연히 혼자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아예 인터뷰 시 질문도 자주 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시에는 얼마나 지원자가 해당 프로젝트에 오너십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여러 가지로 시도했는지 봐요. 오히려 작은 프로젝트를 자신이 주도해서 모든 프로세스를 이끌었다면 훨씬 많은 질문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도 여러 번의 지원과 탈락의 반복과정 끝에 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했죠.
두 번째는 최대한 지원 많이 하기! 뻔한 조언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인터뷰프로세스는 아주 길고 진이 빠지는 프로세스입니다. 전화인터뷰와 온사이트 인터뷰에서 자신의 프로젝트와 과제물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실제 인터뷰를 보는 것보다 좋은 연습은 없는 듯해요. 회사마다 프로세스는 조금씩 다르지만 질문은 대부분 공통적이니 대답을 계속 다듬을 수도 있고, 회사와 내가 잘 맞는 점과 안 맞는 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회사에 지원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지금 미국 취업 시장에서 외국인이 이직하기가 너무 어려워졌어요…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로 H1b 비자의 프리미엄 프로세스도 없어지고, 거의 모든 회사가 외국인을 채용하려고 하지 않을뿐더러 해고하는 경우도 많아서 제 주변에도 많은 분이 한국으로 돌아가요. 결혼을 통해서 비자 상태를 변경하는 분들도 종종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유학생들도 예전보다 훨씬 직장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외국인을 만에 하나 고용한다고 해도 비자 프로세스가 워낙 늘어지다 보니 비용도 더 많이 들고 당장 일을 하러 올 수도 없는 외국인을 뽑을 이유가 없죠. 아메리칸 에어라인도 제가 외국인이어서 처음에 떨어졌다가 정말 정말 운이 좋게 제 포트폴리오를 디자인 디렉터분이 마음에 들어 하셔서 면접을 볼 수 있었어요.
Q. 연봉은 어때요? 미국에서 자리 잡기는 힘들지만 돈은 많이 벌지 않나요?
물론 한국보다 연봉 테이블은 좀 더 높은데 생활비나 월세, 세금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어렵게 취직해도, 취업비자의 경우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텍사스는 세금을 32%나 내야 해서… 월급의 많은 부분이 세금으로 빠져나가고 숨만 쉬어도 한 달 집세로 270만 원씩 나가기에(눈물) 한국에서 생각하는 환상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이직할 때도 주의하셔야 할 점이 무작정 연봉만 올린다고 좋은 게 아니라 소득이 일정 이상 되면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어서…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연봉을 협상해야 해요.
Q. 좋은 디자인 문화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디자인 문화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팀 멤버 간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팀 간의 소통이 점점 부족해져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3년간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에이전시는 결국 프로젝트의 규모와 개수가 회사의 이익을 결정하니 팀 간에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대한 경쟁, 진행하는 프로젝트 개수에 대한 경쟁 등 내부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UX 디자이너가 많은 고민과 리서치 과정을 통해서 내놓은 UI나 기능을 개발자가 빼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서로 감시하는 듯한 분위기로 점점 변해갔죠. 바로 옆에 앉은 사람에게 질문이 있어도 메일로 보내고… 실무자보다 매니저가 더 생기고… 회사의 겉모습과 인테리어만 멋있게 꾸민다고 쿨한 디자인 회사가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문제를 여러 명이 다른 관점으로 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 유저에게 도움이 되는 피처를 고민할 리소스를 기꺼이 투입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좋은 디자인 결과물도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Q. 요즘 괜찮게 읽은 책이나 팟캐스트가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요즘은 『디자인의 디자인(Designing Design)』이란 책을 읽어요. 하라 겐야라는 일본인이 쓴 책인데, UX 관련 책은 아니지만 작가가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 한 경험과 스토리를 풀어나가서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팟캐스트는 ‘99% 인비저블(99% Invisible)’이란 팟캐스트를 자주 듣고, 주변 다른 디자이너분들은 ‘데비 밀먼(Debi milman)’이란 뉴욕 디자이너 회사의 오너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추천하고 많이 듣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이제 곧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게 될 텐데 소감 한마디 해주세요 🙂
어메리칸 에어라인은 항공사는 항공비 지원이 돼서 앞으로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기대되고, 앞으로 에이전시가 아닌 인하우스 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좀 더 프로덕트에 애착을 가지고 여러 프로젝트를 할 것 같아서 많이 기대돼요. 빨리 비자 프로세스가 해결되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 가면 맛있는 거 사주세요!
원문: 킹홍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