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구글에서 주최한 구글 글로벌 전문가 위크(Google Global Expert Program) 행사에 운이 좋게도 선발이 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구글 디자이너들과 함께 2주간 프로젝트를 하며 조언도 받고 구글 캠퍼스에서 열리는 다양한 세미나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그 중 특히 행동 과학에 관한 주제를 다룬 샤론(Sharon)의 세미나가 특히 인상 깊었다. 행동 경제학의 대가 댄 애리얼리(Dan Ariely)와 행동 과학을 주제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애리얼리와 함께 일했다니! 조금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애리얼리는 『상식 밖의 경제학』이란 책으로 아마존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Ted 강의도 수차례 한, 행동경제학 분야에서는 아주 유명한 전문가다. 『상식 밖의 경제학』은 인간이 환경에 의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으로 유도되기 쉬운지 예시를 들어 아주 쉽게 설명했으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샤론의 강의 내용과 더불어 에리얼리의 책과 강의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내용 중, 구매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과학 원리 3가지를 예시와 함께 공유한다.
1. Choice Overload
사람은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에너지를 사용하고 이 에너지의 양은 한정되어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 많은 선택사항이 있을 때 의사결정 시 더 큰 스트레스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페이스북의 수장 마크 주커버그도 한 강연에서 자신은 더 많은 에너지를 페이스북에 쏟기 위해 삶을 최대한 단순화하는 방법으로 회색 셔츠만 입는다고 밝힌 바 있다.
아래의 예시를 보자. 예를 들어 잼의 종류가 6개인 가게와 24개인 가게가 있다고 할 때 사람들은 어떤 가게에서 더 많은 구매를 할까?
잼이 24개일 때, 즉 선택사항이 많을 때 다가온 손님은 많았지만 실제로 구매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구매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잼이 6개일 때 더 적은 에너지로 쉬운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잼이 6개인 가게가 더 많은 잼을 팔 수 있었다.
이 원리를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웹사이트에 옮겨보자. 회원 가입 시 몇 개의 입력 필드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그래프를 보면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
허브스팟(Hubspot)의 댄 자렐라(Dan Zarrella)의 조사에 따르면 약 4만 개의 랜딩 페이지 전환률을 분석한 결과 3~5개의 입력 필드가 가장 높은 전환률을 보였다고 한다. 익스피디아(Expedia)는 회원 가입 항목 중 회사(Company) 항목을 없앤 것만으로 120억 원 이상의 연간 수익을 추가로 올릴 수 있었다고 하니 회원가입 시 입력 필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영향을 유저에게 미치는 듯하다.
사용자에게 서비스의 가입을 권하거나 구매를 유도 할 때 사용자가 선택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명확히 해 결정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최소화해야만, 더 높은 구매율과 전환률을 달성 수 있을 것이다.
2. Social Proof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한 편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나왔던 가방, 연예인이 썼던 모자, 연예인들이 다니는 미용실 등. 유행하는 상품들은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소셜 프루프(Social Proof)라고 한다.
한 호텔에서 시행한 실험의 결과를 예측해보자. 이 실험은 호텔에 머무른 고객들의 수건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문구를 사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호텔에 가면 수건을 마구 쓰는 편이라 찔리면서도 호기심이 가는 실험이었다.
답은 [C]다. 안타깝게도 환경을 수호하자는 윤리성이 돋보이는 멘트는 고객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B]와 [C]의 경우 수건의 재사용률이 높았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도 수건을 재사용했다는 소셜 프루프를 통해서 행동이 바뀐 것이다.
특히 수건 재사용률이 가장 높았던 [C]의 경우 [B]와 다르게 같은 230호를 이용했다는 동질감을 유발했는데,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특정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이런 소셜 프루프의 적용은 이커머스 사이트나 여행 사이트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먼저 아마존에서 앨런 쿠퍼의 책 『어바웃 페이스(About Face)』을 구매할 때의 화면이다. 함께 판매되는 다른 책이나, 이 상품을 구매한 고객들이 산 다른 책을 보여주며 추가 구매를 유도한다. 꽤 괜찮은 책을 보여주기 때문에 상술인 걸 알면서도 함께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Hotel.com 이다. 서울에 있는 호텔을 찾으려고 보니 아래에 212명의 사람들이 서울에서 호텔을 찾고 있다고 말해준다. 여기서 특정 호텔을 선택하면 지난 24시간 동안 몇 명의 사람들이 이 호텔을 예약했는지 바로 보여 줌으로써 신뢰도를 더하고 구매를 유도한다.
이처럼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구매 또는 특정 행동을 했다는 것을 적절한 숫자와 보여주면 사용자들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행동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3. Relativity
행동과학 세 번째 원리는 상대성(Relativity)이다. 비교는 상대성의 다른 말이다. 우리는 비교를 통해서 지위의 고하, 물건의 좋고 나쁨 등을 판단한다. 비교를 통해서 사람은 기쁨을 느끼기도 고통을 느끼기도 하는데, 의사결정 또는 선택을 할 때도 비교가 예외 없이 적용된다.
한 실험에 따르면 평균 연 소득이 4,000만 원인 동네에 사는 연봉 5,000만 원인 사람의 행복도가 평균 연 소득 8,000만 원인 동네에 사는 연봉 7,000만 원인 사람의 행복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의 예시는 애리얼리의 책에서도 가장 앞에 나온 내용이고, 신기해서 소름?이 돋았던 예시이다.
그림과 같이 이코노미스트의 구독 옵션은 두 가지였다. 가격이 저렴한 온라인 구독(A)과 가격이 더 비싼 온라인 + 활자 구독 패키지(B). 이 두 가지를 사용자들이 비교했을 때 저렴한 온라인 구독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현명한 소비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가격이 비싼 패키지 B를 더 많이 팔고 싶었고 더 많은 고객이 이 패키지 B를 선택하도록 한 그들의 해결책은 아래와 같다. 패키지 B만큼 가격이 비싸면서도 온라인 옵션은 포함되지 않은 선택지인 B-가 등장한다.
이 B-의 역할은 어마어마하다. A와 B를 비교했던 사람들은 이제 B와 B-를 비교하게 된다. A와 B를 비교하는 것보다 B와 B-를 비교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구매자는 B와 B-중 온라인 옵션이 추가로 들어있는 B를 선택하고는 합리적인 구매를 했다며 기뻐한다.
구매율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각 그림의 통계치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코노미스트는 어떤 새로운 상품을 만들거나 가격을 낮추지도 않고 비싼 패키지 B를 더 많이 파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마치며
이런 원리는 가장 많이 팔고 싶은 음식 메뉴, 회사에서 밀고 싶은 여행 상품, 콘서트 티켓, 패키지 등을 디자인 할 때도 유용하게 사용되리라 생각한다. ‘약간 사기적인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도 생각될 만큼 강력한 기법이라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앞으로 구매 결정을 내릴 때 혹시 행동과학 기법이 사용된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보고 현명한 소비를 하기를.
바쁜 개발 일정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사용자의 심리까지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의 VOC, 미려한 디자인 등이 눈앞에 아른거리겠으나 사용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 행동의 디자인 원리를 배우는 것은 UX 디자이너에게는 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원문: 킹홍의 브런치
행동 과학을 더 깊이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Ted 강연
책
- 상식 밖의 경제학(Predictably Irrational)
- The Upside of Irrationality
- Willpower: Rediscovering the Greatest Human Strength
- Why Smart People Make Big Money Mistakes And How To Correct Them: Lessons From The New Science Of Behavioral Econom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