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0개월. 척수공동증이 발병하고 내 등 한복판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고 한다. 움푹 파인 걸 보며 의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20대 신혼부부, 나의 부모는 조금은 이상하지만 애들 피부가 약해서 그렇겠거니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멍이 커지면서 아이, 그러니까 나의 좌측 상·하반신이 마비되어 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자, 그제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아 이거 엄청 잘못되었구나.
그리고 갓난애를 비행기 태워 서울대학병원으로 이송했고, 긴급 수술을 통해 좌측 하반신을 제외한 부분의 마비 증상을 해소했다고 한다. 뭐 그러나 하반신만 잃은 것은 아니고, 척추도 기형화되었으며, 기형적인 척추의 흐름에 따라 각종 장기도 온전하지 못하게 된 몸의 상태가 탄생 직후 지금까지의 나의 상황을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는 원인 미상의 척수공동증을 제주도의 대형병원 의사의 처방 과정에서의 잘못된 강행 과정 중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고소를 진행했다. 문제는 이것이 ‘추론’이라는 것이며, 많은 이가 알겠지만 피해 사실의 입증책임은 의사가 아닌 부모에게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까지 민간인이 대형병원을 상대로 의료사고 케이스를 승소한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누가 ‘의료과실’의 가능성과 책임을 입증해줄 것이냐’였다. 우리 부모는 지방대 출신이었고, 20대의 신혼부부였으며, 당연히 의료 사실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다. 당시에는 sylingomyelia라는 병명이 한국말로 척수공동증인지 검색해볼 수 있는 인터넷도 없을 시절이었다.
동료 의사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승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도 않았을뿐더러, 대형병원에 칼을 겨누겠다는 의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의사사회에서 낙오되길 자진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승소했다. 부모는 의료과실을 입증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당시 ○○병원이 신생아의 의료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원심판결은 제주일보 등에 크게 나올 정도로 제주 지역의 세간의 뉴스였다. 물론 이 과정에는 생략되었지만 많은 이의 도움이 있었다. 당장 변호사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의료과실의 입증을 마땅한 의사가 도와주지 않는데 어떻게 해낸 것일까.
도와주었다. 단 한 사람이 말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수료생이었던 아버지의 고교 동창 친구가 진단서와 발병 과정을 해석 및 기술해주었고, 재판부에 올릴 전문가 소견서를 작성해주었다. 지방법원의 판사가 아버지께 묻기를,
누가 이걸 작성해준 겁니까.
아버지가 말하기를,
서울대 의대 출신이 작성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이 소견을 어느 정도 신뢰했고, 이를 근거로 대형병원인 ○○병원의 책임이 있음을 선고했다. 그것이 1심이었다. 승소를 통해 우리 가족은 적은 금액, 아반떼 한 대값 정도를 받았다. 수억을 보상받아도 이 아이를 키우는데 부족한 금액이겠지만 우리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부모는 그 길로 싸움을 포기했다. 최소한의 자존심이랄까, 내가 나쁜 부모여서 우리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 정도를 증명한 사실에 만족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였다면 그 수준으로 만족하지 못했겠지만.
그 의사는 어떻게 되었냐고? 이 소견서를 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직을 그만두었다. 정확히는 서울대 의대를 수료로 마치고 의사가 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고, 중국경제를 전공해, 서울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취득해 진보정당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누구의 얘기냐고? 지난 총선 대전 유성구갑으로 출마해, 3.5%의 저조한 지지율로 낙마한 정의당 강영삼 후보의 얘기다.
사실 나에게 정의당은 그러한 맥락에서 특별하다. 강영삼 후보의 존재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마 내가 아니더라도, 당신의 자녀나 당신이 죽음에 달했을 때 연대해준 이가 어떤 정당의 소속이라면, 그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정당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그가 서울대 의대를 중퇴하고, 노동운동에 헌신하면서 지금 이 정의당의 소속으로 활동하는 것이 그가 걸어온 길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가정하며, 정의당이라서 정의당을 지지한다기보다 나를 구해준 이가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지지한다. 내게 있어, 내 목숨에 비한다면, 연대의 사실에 비한다면, 이념과 정당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얘기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세간에 정의당이 낡고 도태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현실성이 없고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급진적이지도 않고, 보수적이지도 않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그런데 나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강영삼 전 후보에게 꽃 한 송이 보내고 감사함을 표하는 것 정도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면, 그가 서울대 의대를 중퇴하고 만들고자 하는 이상적 사회를 나는 한 번 죽었던 목숨으로써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그의 정의로움이 빛을 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사실 그의 이름을 6월 말에서야 알았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무얼 했는지는 그날에서야 알았다. 그의 이름이 검색된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강영삼 후보를 알지 못하기에 그가 속한 정의당으로 뭉뚱그려 글을 쓴다. 후보와 정당을 갈라놓지 못하는 이런 글이 저급한 정치 차원의 ‘오류’에 빠져 있음을 알면서도,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서 생각이 그다지 냉정해지지 않더라.
그를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기에, 그가 몸담아온 조직을 대신해서 응원할 수밖에 없는 실수를 용서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