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hn Siracusa의 「Road to Geekdom」을 번역한 글이다. 긱(Geek)이 무엇인지 정의부터 애매한 면이 없잖아 있는데, 너드와는 조금 다르고 덕후와도 느낌이 조금 다르다. 긱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뭉뚱그리고 보면 어떤 분야를 아주 잘 이해하는 사람을 긱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간혹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신이 꽤 오래전부터 긱이었다는 것을 자랑하며 갓 입문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내가 주로 보는 애플 커뮤니티에서 아이폰 이후에 애플 긱이 된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내가 그렇다. 아이폰을 쓰기 시작하면서 애플 긱이 됐다). 아마 다른 분야도 비슷할 것이다.
긱덤은 단어만 놓고 보면 ‘긱들의 모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에 정말 긱 중의 긱이라고 할 수 있는 John Siracusa가 글을 썼다.
한 방에 모인 컴퓨터 긱들에게 어쩌다가 긱이 됐냐고 물어보면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나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갖게 됐어요. 내가 10대였을 때 컴퓨터를 이용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려고 수천 시간 키보드를 붙잡고 있었죠. 게임, 프로그래밍, 네트워킹, 업그레이드, 일까지도요.”
이건 정확히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운 좋게 1984년에 매킨토시를 가질 수 있었고 그건 내 삶을 바꿔놨다. 매킨토시 앞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종종 내가 그렇게 어릴 때 컴퓨터로 정말 많은 걸 했다고 회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때는 인터넷이 연결되기 몇 년 전이었다. 아주 적은 수의 소프트웨어가 있었을 뿐이고, 더 많은 소프트웨어를 갖기 위한 편리한 방법도 없었다. 겨우 일주일에 몇 달러 정도 받는 용돈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맥을 쓰는 유일한 사람은 2시간 거리에 사는 내 할아버지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기분 좋게 몇 시간씩 투자했고, 오늘날 보다시피 전문적인 맥 긱이 됐다. 내 매킨토시의 첫 시작 이야기는 내가 누군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중 하나다. 매킨토시가 시작할 때부터, 심지어 암흑기에도 함께한 것은 나에게 플랫폼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이게 긱덤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사실 맥은 내가 긱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에서도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긱덤은 역사적인 진입 시점이나 함께한 경험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긱은 딱 2가지만 있으면 된다. 지식과 열정 말이다.
RC카를 만드는 남자
고등학교 때 친구가 뒷마당에서 무선 조종 자동차를 조종하는 걸 보고 흥미가 생겼다.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RC카를 직접 만들고 조종해왔다. 이 기계에 매혹당했지만 친구처럼 ‘진정한 RC카 긱’이 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돈을 모았고, 차를 산 후, 직접 (서투르게) 만들어봤다. 그리고 부셔 먹었다. 하지만 풀 죽지 않고 교체 부품을 사서 고쳐냈다. 덜 부딪치지 않게 조종하는 법을 배웠고, 결국엔 더 나은 차를 살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잡지 《Radio Control Car Action》를 구독했고, 그 잡지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읽었다는 것이다.
1년쯤 지나고 지역 모형 가게(Hobby shop)에서 다른 손님이 차에 관해 질문하는 걸 내가 답해주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때 RC카에 관해 일반적인 모형 가게 방문자들보다 더 많은 걸 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더 이상 문외한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회원제로 운영되는 저렴한 음악 서비스의 마케팅 계획에 몰두해있었고, 그건 내가 CD를 열정적으로 선택하게 만들었다. 나는 끝내 〈Achtung Baby〉(역주: U2의 앨범)를 갖게 됐고 그 앨범은 완전 충격이었다. 그전에도 U2를 알았고 〈The Joshua Tree〉에 들어 있는 히트곡을 라디오에서 수십 번 들어보았지만, 그 밴드에 대해 깊이 빠지진 않았다. 〈Achtung Baby〉는 그걸 완전히 바꿔버렸다.
U2의 앨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고 손에 넣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롱박스 형태의 CD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U2의 일대기를 구입하고 읽었다. 지역 도서관에서 《Rolling Stone》과 《Spin》에 나온 U2의 과거 앨범 리뷰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U2에 대한 커버 스토리가 있는 모든 잡지를 찾아냈다.
과거 잡지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있는 게 없어지자 도서관의 마이크로피시 콜렉션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학에서 마침내 싱글, B-사이드, 해적 음반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덕분에 콜렉션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빠르고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을 할 수 있었다. 인터넷은 지역 모형 가게를 넘어섰다. 전 세계에 있는 다른 U2 팬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난 (서투르게) 기타 치는 법을 배웠고 내가 좋아하는 U2의 노래 악보를 다운로드 받았다. 웹사이트에 올라온 가사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모든 U2 앨범과 싱글, B-사이드, 흔하지 않은 것들까지 가사를 받아적었고 내 첫 웹사이트인 ‘The U2 Lyrics Archive’에 올렸다. 이게 내가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때다.
지금은 사이트가 사라졌다. 하지만 내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몇 년 후 U2의 공식 웹사이트가 나왔을 때 보니 내 사이트에서 복사한 가사를 포함했다. 오타까지도 말이다.
일종의 홈커밍
무선 조종 자동차는 내가 첫 조립키트를 갖기 몇십 년 전부터 있었다. 《Achtung Baby》는 U2의 7번째 앨범이다. 하지만 나는 한때 진지한 RC카 긱이었고, 자타공인 U2 긱이기도 했다. 긱은 열정에서 시작한다. 주어진 기회를 갖고 끈질기게 지식을 추구하면서 에너지를 표출했다.
삶의 모든 것에 긱이 될 필요는 없다. 아예 긱이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긱덤이 당신의 목표라면,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그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해라. 긱덤을 위해서 (그게 어떤 의미이건 간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할 필요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긱덤을 위해 특정한 사회적 클래스나 인종, 성별, 성적 정체성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긱덤은 클럽이 아니다. 그건 목적지다. 시간을 투자하고 그곳을 여행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목적지다. 만약 누군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기회가 부족하다면, 우리들 긱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줘야 한다. 모임을 갖거나 대화할 친구를 만들어라. 당신이 가진 오래된 게임, 영화, 만화책, 장난감을 기부해라. 우호적이 되어라.
당신의 열정을 공유하는 것은 긱이 되는 방법 중의 하나다. 누구든 의도적으로 진입장벽을 높이거나 긱덤의 땅에 들어가는데 ID를 요구한다면, 그들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들을 무시하고 당신을 흥미롭게 하는 분야로 빠르게 다이빙해라. 거기서 모든 경험을 흡수해라. 지식을 추구하는 것에 몰두해라.
당신이 마침내 물 밖으로 나왔을땐, 긱덤을 향한 기나긴 길이 더 이상 당신 앞에 한없이 펼쳐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도 당신이 입장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그 분야에 정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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