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탄핵이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사망을 선언하는 느낌이라면, 김종필의 죽음은 박정희 시대의 생물학적 사망을 선언하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김종필의 죽음으로 ‘3김 시대’의 종언을 얘기하지만, 그 ‘3김 시대’ 마저도 박정희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김종필의 타계는 사실상의 박정희 시대의 종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정희 시대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잘살아 보세’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산업화를 통한 집중적인 경제개발과 국부의 창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부의 창출을 위해 개인의 권리는 제약되었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 역시 우선순위에서 배제되었다. 이른바 전체의 가치가 개인의 가치를 앞선 시대였고, 그래서 박정희 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곧 ‘전체의 시대’인 것이다. 그 그늘에서 지역주의, 권위주의, 보스정치, 정경유착 같은 요소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던가 시비 여하와는 별개로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한국 현대사의 큰 줄기를 차지한 ‘박정희 시대’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3김 시대’로 대표되는 민주화 시대는 바로 그 ‘박정희 시대’의 가치가 박정희의 죽음과 별개로 이어지는 상태를 끝내기 위한 긴 싸움의 연장이었기에, ‘3김 시대’ 역시도 어떻게 보면 ‘박정희 시대’의 끝자락에 놓인 그 시대의 일부이다.
이러한 ‘박정희 시대’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가 그 이후의 무엇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노무현의 당선 이후부터이다. 박정희 시대의 가장 큰 화두였던 ‘절차적 민주주의’의 도입은 어쨌건 간에 김영삼과 김대중의 당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연함’이야말로 바로 박정희 시대를 빠져나오게 되는 터널 끝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을 벗어나면서 우리 사회는 비로소 ‘국가’나 ‘전체’에 가려져 있던 ‘개인’의 가치를 얘기하기 시작했고, ‘형식 민주주의를 완성시켜야 한다’라는 시대적 과제에 가려져 있던 민주주의의의 보편성의 확장과 그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잘사는 것’에 이어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에 대한 화두가 대두되었고, ‘성장’에 가려져 있던 ‘분배’의 문제도 본격적으로 사회의 시대 정신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박정희 시대’의 정체성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또 다른 시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특권을 누리는 국가기관은 지금 없습니다. 권력이 합리화되었고 정경유착이 끊어졌습니다. 권위주의도 해소되었습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 불만을 가진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어떻든 이것은 이제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노무현의 발언은 이러한 시대 전환에 대한 환기이다. 이 ‘전환’에 대한 시대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정치인 노무현, 혹은 인간 노무현에 대한 평가 혹은 세간의 지지와는 별개로, ‘박정희 시대’의 종언과 함께 접어든 ‘박정희 이후’ 시대의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난 바로 ‘노무현 시대’라고 본다. ‘박정희 시대’가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낸 정체성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다툼이 만든 것이었던 것처럼, 이제 그것들에 대한 논쟁을 뒤로하고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다투는 많은 것들은 바로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함께 화두로 던져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함께 우리 사회에 던져진 화두들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새로운 시대로 우리 사회를 이끌면서 우리가 ‘박정희 시대’를 빠져나오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든 아니든 간에, 이제 우리 사회가 논의하고 다투는 화두들은 ‘박정희 시대’의 산물이 아닌 ‘노무현’의 산물들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바로 ‘노무현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김종필의 타계 소식에서 노무현을 떠올린다.
정재웅 님의 표현을 잠시 그대로 빌려 오자면, 박정희에서 시작된 한 시대가 저물고, 노무현에서 시작된 한 시대가 열렸다.
노 :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유 : 아, 오지요. 100% 오죠 그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
노 : 아,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
유 : 아니 뭐 그럴 수는 있죠.
유 : 후보님은 첫 물결이세요. 새로운 조류가 밀려오는데 그 첫 파도에 올라타신 분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근데 이 첫 파도가 가려고 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첫 파도가 못 가고, 그다음 파도가 오고, 그다음 파도가 와서, 계속 파도들이 밀려와서, 여러 차례 밀려와서 거기 갈 수는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정신과 새로운 변화, 새로운 문화를 체현하고 있으시기 때문에 첫 파도 머리와 같은 분이세요, 후보님은. 근데, 가시고 싶은 데까지 못 가실 수도 있죠. 근데, 언젠가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갈거예요. 그렇게 되기만 하면야 뭐 후보님이 거기 계시든 안 계시든 뭐 상관있나요?
노 : 하긴 그래요. 내가 뭐 그런 세상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내가 꼭 거기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 영화 <노무현입니다> 중
원문: 손원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