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광장’ – 최인훈
남과 북으로 분단된 조국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사퇴해야 했던 주인공의 삶을 다룬 현대문학.
안철수 후보의 좌절된 새정치(웃음)를 기리며 바칩니다.
“후보님, 앉으십시오.”
철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후보님, 단일화 방안을 정하시겠소?”
“여론조사.”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의원이,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후보님,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로 비민주적 과정이요. 결함이 많은 방식으로 가서 어쩌자는 거요?”
“국민의 뜻.”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경선을 왜 포기하는 거요?”
“구태쇄신.”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의원이 나앉는다.
“후보님, 지금 민주당에서는, 후보님을 위한 친노 2선 후퇴 및 최고의원 사퇴까지 했소. 후보는 누구보다도 먼저 당권을 가지게 될 것이며, 야권의 영웅으로 존경을 받을 것이오. 전체 야권은 후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중도층도 후보의 단일화를 반길 거요.”
“결정엔 존중하나 인적 쇄신은 본질이 아니다.”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의원이, 다시 입을 연다.
“후보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경영자 생활에서, 기성 정치 세력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민주당은 후보의 민주당 공격을 탓하기보다도, 후보가 중도층과 정치무관심층에게 갖는 매력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조직동원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후보는……”
“정치개혁.”
문재인 후보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협상팀은, 증오에 찬 눈초리로 철수를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아까부터 그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PK군.”
협상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중도층 이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핵심 지지층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무소속으로 선거해본 사람들이 맨날 하는 얘기지만, 밖에 나가 봐야 기반이 소중하다는 걸 안다고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정당정치가 제도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정당정치엔 힘이 있습니다. 대의정치는 무엇보다도 정당이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사퇴 협박과 다운계약서를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공론조사.”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야권의 한 사람이, 난데없이 새정치 한다고 나서서, 정통 야당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범 야권 2천만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정권교체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참가자 절반은 안철수 펀드 후원자.”
“당신은 지지율 1위까지 찍은 후보입니다. 야권은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민주세력을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가상대결.”
“민주적일수록 목소리가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 몸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종기가 났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무식한 의원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정당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야권의 품으로 돌아와서, 민주당을 재건하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무소속으로 고생하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민주당에 오는 경우에, 개인적인 조력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철수는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후보 사퇴.”
재인은,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여준을 돌아볼 것이다.
여준은, 어깨를 추스르며, 한숨을 쉬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식당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새정치. 아무도 정당을 아는 사람이 없는 정치. 하루 종일 전문가 사이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 번 치는 의원이 없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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