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난의 서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고난을 딛고 성공했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거야 나쁘지 않은데 더 나아가 고난을 장려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인생에 고난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각자 나름대로 고난을 겪고 산다.
20대 군필남들은 흔히 자기 군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곤 하는데 따지고 보면 가장 편하게 군 생활한 사람도 나름대로 고난이 있기 마련이다. 각각의 인생을 살펴보면 각자 나름대로 고난이 있고 그것을 견디며 살아간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딱히 특별한 고난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니고 실패한 사람이라 해서 고난 없이 사는 것도 아니다.
감당 가능한 수준의 고난을 상대적으로 짧게 겪은 사람만이 고난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겪는 고난의 수준이 감당 불가능이거나 그 기간이 너무나도 긴 경우에는 결국 고난은 한 인간을 무너뜨린다. 인간은 철저하게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라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술로 그 상황을 겨우 견뎌 나간다. 어떤 사람은 도박으로 견뎌 나간다. 대부분 중독성 있는 무언가로 잠깐 그 상황에서 눈을 돌린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순간이 온다. 술 같은 경우에도 나이가 들면서 몸이 술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때가 온다. 보통 그때 종교를 찾게 된다. 너무나도 나약한 자신을 신의 의지와 계획, 섭리의 일부로 인정함으로 위안을 얻는다.
상식적으로 상류층이 겪은 고난이 크고 험하겠는가, 하류층이 겪은 고난이 크고 험하겠는가? 이것을 감안하면 고난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말하는 고난이야말로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
운 좋게 감당 가능한 수준을 견딜 수 있는 정도 만큼만 견딘 사람들이 극심한 고난이 일상인 사람들에게 고난을 예찬하는 것을 보면 세상에 이런 부조리극이 따로 없다. 고난을 예찬하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고난을 겪고 나서도 고난을 예찬할지는 의문이다.
원래 뭐든 장식이 과하면 지저분하거나 난잡해 보인다. 성공은 성공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진대, 거기에 그 성공을 돋보이게 하려고 고난이니 뭐니 온갖 과도한 장식을 붙이니 그 성공이 오히려 퇴색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난 권하는 사회가 안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당한 고난 뒤에 사람이 더 강해지는 건 맞지만 그렇다 해서 불필요하게 과도한 고난을 겪을 필요는 없다. 고난은 그렇게 쉽게 권할 것이 아니다.
원문: 김영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