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연봉도 아니고 직업 안정성도 아닌 금융 접근성에 있다고 본다.
은행의 입장에서 대출 대상은 지급능력으로 분류된다. 대기업 정규직은 지급능력이 좋기에 많은 신용이 저금리로 손쉽게 제공된다. 요구 서류도 복잡하지 않아서 진행 또한 굉장히 수월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비정규직은 이 부분에서 적용 한도가 매우 낮다. 자영업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안정적으로 매출을 내는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제공되는 신용 한도도 극히 적다.
이 부분을 주요 기업 정규직에만 종사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정규직이 가진 금융 접근의 용이함은 정규직이 가진 특권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것을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특권이란 것은 누리는 사람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딱히 새로울 것도 없긴 하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중금리 대출은 바로 이 부분을 잘 파고들었다 볼 수 있다. 은행의 여신부분은 무척이나 보수적이다. 은행은 손해 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충분히 지급 능력이 있다고 판단됨에도 한도 자체를 낮게 설정한다. 대기업 정규직은 전체 노동자 중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여신이 필요한 사람 중 다수는 은행을 이용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저축은행을 찾아가고 대부업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풍족한 은행여신과 한도를 누리는 정규직들은 여기에서 화살을 대부업체와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돌린다.
왜 그런 비싼 곳을 이용하느냐?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그곳뿐인데 어쩌랴. 중금리 여신업이 필요한건 바로 이 간극을 매워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과소비를 하다가 결국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좀 더 일반적인 노동자들에게선 임금 체불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자영업자에겐 매출이 곤두박질치는 시기도 존재한다. 이들에겐 이것이 곧 충격이며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신업과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대부업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거다.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 위상으로 본인이 얻고 있는 특권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없으니 소위 로열 패밀리가 ‘자신은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다’라고 하는 헛소리를 할 수 있는 거고 소득 상위 3%의 사람이 ‘나는 서민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부자들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도 모르는 새에 그런 얘기를 뱉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집을 산 사람들이 축하를 받을 때면 “이거 다 빚이야”, “난 빚쟁이야”라고 손사례를 친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은행에선 빚은 곧 지불능력과 동일하다. 당신의 지불능력(정확히는 소속 회사의 지불능력)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면 그 빚이라도 질 수 있었을까? 어림없는 얘기다.
원문: 김영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