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than meets the eye”
여행은 눈으로만 즐겨도 좋지만 무엇을 아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 이상이 보이기도 한다. 지인들에게 “내가 스페인을 간다면 레콘키스타 루트를 밟을거야”라고 이야기하곤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도 역사를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스투리아스의 산악지방에 처박혀 있던 기독교 세력들이 레콘키스타를 통해 알 안달루스와 전쟁을 치르며 영토를 회복하고 그 과정에서 이슬람의 문화가 녹아들고 융화되어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였다.
『잡학다식한 경제학자의 프랑스 탐방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렇다. 블로그 이웃이자 페친이신 홍춘욱 박사님이 아들과 함께 한 프랑스 여행에서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을 엮은 책이 이것이다. 내 기억에서 아버지와의 여행은 등산지옥과 지독한 멀미가 전부였기에 이런 것들이 문화자산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가 멋진 도시란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한때 프랑스 뽕에 빠진 사람들은 멋진 도시 파리와 비교해 서울이 얼마나 형편없고 매력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파리는 어쩌다가 그런 멋진 도시가 되었는가?
책은 나폴레옹 3세를 소환한다. 이 양반, 프랑스의 7월 왕정이 무너졌을 때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등장하여 ‘프랑스의 영광스런 옛 시절을 재현하자!’라는 구호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어 잠깐 이거 누군가가 외친 ‘Make America Great Again’과 비슷한 거 같은데
아무튼 그러다 임기 말에 쿠데타 한방으로 황제에 취임하니 바로 나폴레옹 3세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쿠데타도 해본 놈이 잘 안다고 나폴레옹 3세는 늘 쿠데타를 두려워했고, 그에 따라 혁명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파리를 싹 갈아엎어야겠단 생각을 한다.
그것을 수행한 인물이 심복인 오스만 남작으로, 요즘 식으로 치면 ‘파리 뉴타운’계획으로 도로를 넓혀 함부로 바리케이드 치고 농성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여차하면 대포를 끌고 가서 박살 내기도 편하게 만드는 한편 도로를 직선으로 내서 움직임을 감시하기도 쉽게 만들었다. 파리 특유의 쭉쭉 뻗은 도로는 이런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멋진 유럽의 뉴타운에 많은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파리의 낭만을 더해서 지금의 낭만 도시 파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이 정도 역사만 알아도 참 재미있지만, 본업이 이코노미스트신 분답게 더 나아간다. 파리는 좀 거칠게 얘기하자면 10x10km의 도시에 19m의 고도제한을 걸어 도시 전체를 예쁜 미니어처처럼 꾸몄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2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 산다고 생각해보라. 상상만 해도 땅값이, 주거비가 치솟는다.
이 문제를 파리는 주변에 위성도시를 건설하고 철도교통을 촘촘하게 배치하는 것으로 해소했다. 농담으로 종종 이야기하지만, 이 건만 하더라도 토건이 이렇게나 위대하다… 그리고 이 뒤로도 더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더 이야기하는 것은 책에 대한 실례일 것 같고, 직접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사실 머리 식히려고 읽은 책이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여행의 재미는 역시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PS.
나도 언젠가 스페인을 다녀오면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으므로 내면의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문: 김영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