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다시 한번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줬다
여행은 즐겁다. 지금 내가 있는 곳, 일하는 곳, 사는 곳에서 벗어나 짦은 기간이나마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또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음식들, 문화, 사람들을 접하면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어떤 것(Things)들이 주는 설레임, 즐거움들이 여행의 매력이다.
사람들마다 여행의 목적은 다양하다. 내가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음식 영향이 가장 크다. 다른 나라 음식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왠만하면 다 접할 수 있지만, 현지에 가서 먹는 것은 색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다른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그 나라에서 유행하는 혹은 거기서 밖에 구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을 쇼핑하는 것도 여행의 목적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이런 것만으로는 내가 여행하는 나라를 완전히 즐기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그래서 내가 갔다온 여행지가 항상 여운이 남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10년 전 유럽으로 한 달 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파리에 1주일 정도 머물렀었는데, 당연히도 내 목적은 파리의 다양한 음식 섭취 및 쇼핑이었다. 파리라는 나라의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루브르 박물관, 오르셰 미술관 같은 곳은 그저 ‘나 여기 왔었다’ 수준의 인증샷 목적으로 방문했던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접하게 된 경제 여행서 『잡학다식한 경제학자의 프랑스 탐방기』를 읽어보니, 파리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흥미진진한 곳이었다.
다시 한번 파리로 여행을 떠나, 이 책에서 언급된 장소들을 꼭 가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소감이다. 그렇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파리행 티켓을 끊으라고 뽐뿌질을 엄청나게 하는 책이다. 그만큼 훌륭한 프랑스 여행기다.
프랑스 음식에도, 파리 개선문 거리 로드샵의 쇼윈도를 닦는 청소부들에게도, 복잡한 파리의 시내 구조에도, 중세풍의 건물들에도, 파리의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흥미진진한 역사가 담겨있었다.
왜 이런 것들을 모르고, 아니 공부 안 하고 그저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서 파리 여행 갔었나 하는 후회가 뒤늦게 몰려왔다.
프랑스에는 왜 그렇게 맛집이 많을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을 하나 소개하자면, 맛집에 관한 내용이다.
프랑스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맛집이 그야말로 곳곳에 즐비하다. 맛집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산업혁명 영향이 크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보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부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응당 이해가 간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프랑스의 근로계층들은 노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의 절반 이상을 식비에 소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농업혁명 등을 거쳐 생산성 향상을 이루고 나니, 어느덧 많은 근로자들이 부유해지고 이제는 외식까지 할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다. 어느 정도 벌이가 나아지면, 집에서 해 먹기보다는 밖에 나가 근사한 외식을 즐기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인듯하다. 아무튼 이렇게 부유해진 프랑스인들은 자신을 차별하기 위해 처음엔 옷에 신경을 썼었다.
이렇게 명품을 걸치느냐 아니냐에 따라 상류사회 계급 편입의 초기 조건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람들은 ‘감식안’, 즉 좋은 상품이나 음식이 어디 제품인지, 어떤 면이 독창적인지 파악하는 것이 상류계급 사교의 핵심요인으로 부각됐다.
그래서 똑같은 ‘닭’이라고 하더라도, 요리의 종류에 따라 어느 품종의 닭을 쓰느냐까지도 프랑스인들에겐 하나의 능력으로 간주되었다. 이 같은 음식에 대한 감식안이 오늘날 닭 요리를 포함해 프랑스 요리가 발전하고, 나라 곳곳에 미슐랭 스타급 맛집이 많아진 이유였던 것이다.
프랑스 사람은 닭을 엄청 좋아합니다. 따라서 닭의 품종과 종류를 지역별로 상세하게 구분하는데 프랑스 소비자들은 그 차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물 낼 때 쓰는 닭, 프라이드치킨을 만들 때 쓰는 닭, 찜닭을 요리할 때 쓰는 닭을 구분해서 그에 적합한 닭을 쓰는 식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인 암탉은 고기로 먹지 않고, 치킨 육수를 내는 데 씁니다. 특정 요리를 할 때에는 특정 사이즈의 거세한 수탉을 써야 하는 등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상식을 프랑스 소비자는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 본문 188p
본문의 이 대목만 봐도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닭을 좋아하는지를 새삼스레 느낄 수가 있었고, 또 닭의 종류가 저렇게나 다양한지 처음 알게 됐다. 닭의 종류는 그냥 6호, 7호, 8호 이렇게 크기별로 존재하는 줄 알았건만.
그리고 프랑스인의 닭 사랑에 이어 나오는 내용들이 경제학자로서의 프랑스 탐방기가 지닌 장점을 잘 보여준다. 프랑스 사람들은 닭의 품종과 종류를 상세하게 구분하고 거기에 민감한 반면, 한국인들은 그저 생닭 시세에 민감한 이유를 경제학적인 설명을 곁들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대상을 경영학에서는 ‘고관여 제품’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관여도란 관심의 강도, 흥미의 정도, 개인의 중요도 정도를 뜻합니다. 대표적인 고관여 제품은 자동차입니다. 자동차는 자신의 지위나 관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처럼 취급되어 소비자의 관심이 아주 높습니다. 반면 저관여 제품은 오로지 가격이 제일 중요합니다.
소비자는 저관여 제품의 차이에는 관심이 없어 누군가가 값을 싸게 매기는 순간 순식간에 옮겨 갑니다. – 본문 191p
결국에 한국인들에게는 닭이 저관여 제품에 불과했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고관여 제품으로 인식된 셈이다. 따라서 그만큼 애정과 관심이 많아지게 되므로,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레 미식 문화가 발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학자이자 ‘덕후’가 쓰면 다릅니다
다른 프랑스 여행책, 수필에서도 파리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서적들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들과는 다르다. 경제학자이자 역사덕후, 전쟁사 덕후가 마음먹고 한 국가의 여행기를 쓰면 이런식으로 책이 나오는구나 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아빠와 아들의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만큼, 정말 어린 아이, 학생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나간다.
사실 오래전부터 저자의 팬이었던지라, 이코노미스트, 투자전략가로서의 저자 서적은 놓치지 않고 읽어왔다. 이제는 여행가로서의 저자가 쓴 책도 늘 필구 리스트에 담아놔야겠다.
그의 책이, 그의 여행기가,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내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켜줄 것이기 때문에.
원문: Got to Be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