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들의 기본 욕구다. 그 열정의 방향이 노는 것을 향하든, 하고 싶은 것을 향하든, 돈과 명예, 권력 등의 어떤 수단을 향하든 말이다. 그래서 교육 및 자기계발 장면에서 늘 ‘열정을 가져라’라는 슬로건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리라. 심리학자들은 그렇다면 이 열정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까?
열정 Passion
심리학의 세계에 ‘열정’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끌고 들어온 심리학자는 로버트 J. 밸러란드(Robert J. Vallerand)와 그의 동료들이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열정이라는 개념 속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특정 활동(activity)에 대해…
- 그 활동을 좋아하는가? (liking or love)
- 그 활동을 중요하게/가치 있게 여기는가? (importance or valuing)
- 그 활동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가? (investment of time and energy)
밸러란드 등에 따르면 특정 활동에 대해 상기 세 가지 요소가 고루 충족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가 그 활동에 대해 ‘열정’을 가졌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열정이라는 개념은 심리학/동기 분야/발달 분야에서 매우 유명한 이론인 자기 결정(성) 이론에 바탕을 둔다.
자기 결정(성)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존재이며, 이 세 가지 욕구가 고루 충족되는 상황에서 발동되는 것이 바로 ‘내적 동기’라고 설명한다. 열정이란 이 내적 동기가 작동하는 활동에 개인의 정체성을 내면화시키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한편 열정을 두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열정에 몰두하는가에 따라, 열정이 긍정적/부정적으로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달라진다.
- 조화 열정(Harmonious Passion): 특정 활동에 열정을 가졌으면서도, 거기에만 집착하지 않는 상태
- 강박 열정(Obsessive Passion): 오로지 특정 활동에의 열정을 통해 쾌락, 자아존중감, 삶의 의미 등을 추구하려는 상태
쉽게 이야기하여 열정을 느끼는 활동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열정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두 차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한 개인이 가진 열정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활용되는 문항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는 2016년, 원작자인 밸러란드의 허가를 받은 연세대학교 손영우 교수 연구팀이 원문 척도를 번안, 타당화 과정을 거쳐 학계에 소개한 바 있다. 몇몇 문항들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조화 열정
- ‘이 활동은 내 삶의 다른 활동들과 조화를 이룬다.’,
- ‘이 활동은 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 ‘이 활동은 내 삶 속에 잘 융화되어 있다.’ 등.
강박 열정
- ‘이 활동이 나를 지배한다는 느낌이 든다’,
- ‘오직 이 활동만이 나를 신나게 한다.’
- ‘나는 이 활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자제하기 힘들다.’ 등.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강박 열정을 보유한 이들의 전망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강박 열정은 조화 열정과는 달리, 자율성/유능성/관계성 불충족, 불안정한 자아존중감, 부정정서, 낮은 삶의 질 등 다양한 부정적 심리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쉽게 표현하자면 ‘올인성 투자’와 ‘분산 투자’의 차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열정적인 활동은 분명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삶의 의미를 더해주고, 잘할 수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특정 활동에 대해 내가 언제나 열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상황적 이유로 열정이 식어버리거나 현실적인 제약 등으로 인해 더 이상 해당 활동을 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때, 조화 열정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미 ‘분산 투자’를 해 두었기 때문에 그러한 리스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열정을 느끼는 그 활동을 곧 인생의 전부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열정적인 한 가지 활동이 막히더라도, 곧 방향을 바꾸어 다른 활동들로부터 열정과 그에 따른 긍정적 이점들을 얻으면 된다.
그러나 강박 열정을 가진 이들은 단 한 가지 활동에만 모든 열정을 바쳐왔고 살아가는 의미와 이유를 찾아왔기에, 그 한 가지 활동이 무너져 내렸을 때의 상실감과 좌절, 절망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열정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열정을 가지라’고 조언하고, 그 조언을 듣는다. 그러나 부모/선생님/상사의 지시와 통제, 바람 등으로는 아이/학생/부하직원이 특정 활동을 ‘매우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아낌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도록’ 만들기 어렵다. 설령 열정을 갖게 된다 한들, 그때의 열정은 조화 열정이라기보다는 강박 열정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열정 개념이 자기 결정(성) 이론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기 결정(성) 이론에서 강조되는 것은 자율성과 내적 동기다. 스스로 알아서 목표를 발견하고 세팅하며,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들을 궁리/실천해나가는 과정이 담보되어야만 비로소 ‘안 시켜도 알아서 잘하는 상태’인 내적 동기를 발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열정 또한 마찬가지다.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특정 일에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어렵고, 그 효과성도 그리 높지 못하다. 그러므로 열정, 열정적 활동이라는 것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발견하고 스스로 가꾸어가야 하는 성질의 힘(power)으로 보는 것이 더 낫다. 그러므로 열정 가지라고 닦달하지 말자. 그보다는 스스로 발견하도록 응원해주자.
원문: 허용회 님의 브런치
참고 자료
- 홍민성, 정예슬, 손영우 (2016). 「한국판 열정 척도의 타당화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30, 1-26.
- Vallerand, R. J., Blanchard, C., Mageau, G. A., Koestner, R., Ratelle, C., Léonard, M., … & Marsolais, J. (2003). Les passions de l’ame: on obsessive and harmonious pass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5, 756-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