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계열에 있다 보면 찍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듣기 싫고 화나기까지 하는 질문인데, 질문하는 사람은 그게 찍는 사람들에게 짜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하는 몇 가지가 있더라고요. 오늘은 간만에 가볍게, 그런 질문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하니 가급적 유념해주시면 너 좋고 나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모두모두 해피할 겁니다. (…)
1. 어디서 찍었어요? 포인트 좀 가르쳐주세요!
가장 흔한 경우 1일 겁니다. 사실 인물사진이건 풍경사진이건 포인트를 찾아내고 검증하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어요. 그런데 그걸 정말 말 한마디로 내놓으라고 하는 건… 질문자가 그런 걸 잘 모르고 무지했다 하더라도 질문받는 입장에선 매우 스트레스예요. 그거 안 가르쳐주면?
에이 별것도 아닌데 알아보면 금방 나오는데 쪼잔하게스리…
이러면서 단숨에 답변자를 좀생이 만들어버립니다. 미치고 환장하죠. 그렇다 해서 가르쳐주면? 삽시간에 그 포인트의 소식이 퍼져나가고 이윽고 몰상식한 무리들에 의해 짓밟히고 손상되고 출입금지 되기 일쑤입니다. 이제까지 그런 경우는 정말 너무나 많아서 셀 수조차 없어요.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 가급적 찍은 사람한테 묻지 마세요. 자기 포인트는 스스로 찾으세요.
2. 역시 카메라가 좋으니 사진도 잘 나오네요? 뭐로 찍었어요? 그거 사면 저도 저렇게 찍을 수 있겠죠?
아뇨. 당연히 못 찍죠. 프라이팬 좋으면 요리도사 되나요? 만년필 좋은 거 사면 내일 박사학위 딸 수 있어요? 카메라는 도구예요. 사진은 실력이고요. 사진 관련 질문 중 가장 무식한 질문이 뭐냐 묻는다면 전 이 질문 꼽습니다. 사진학과에서 4년씩 열공하는 학생들은 바보게요? 걍 카메라 비싸고 좋은 거 사면 될 걸?
3. 보정은 뭐로 했어요? 원본도 같이 까보심 안 될까요?
보정은 센스와 안목으로 하는 거고 내가 원본이라 내놓는 사진이 원본입니다. 애초에 21세기 DSLR이나 미러리스에 있어 원본의 개념은 필름 시절이랑 달라요. 카메라라는 도구로 만든 재료를 가지고 제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요리하는 개념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사진가에게 이게 얼마나 무례한 질문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의외로들 몰라요.
4. 픽쳐스타일/프리셋 뭐 썼나요? 액션은? 플러그인은?
세상이 하도 편해지다 보니 타인의 사진을 볼 때 의례 자기가 아는 범주 내에서 뭔가 했으리라 가정하고 자기랑 같은 레벨에서 질문 던지는 케이스죠. 딱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오히려 이렇게 질문하면 답하기 난감합니다. 그런 거 안 쓰는 분이 많거든요.
근데 안 쓴다고 하면 ‘왜 안 쓰냐’부터 시작해 ‘그럼 뭐 쓰냐’ ‘밑천 좀 내놔라’… 거의 식당마다 다니면서 레시피 내놓으라 강탈을 시도하는 격입니다. 식당마다 이러고 다니세요? 근데 온라인에서는 서슴없어요. 신기하리만큼요.
5. 우와 모델 얼굴이랑 몸매 끝내주네요 연락처 좀 ㅋㅋ
대체 얼마나 낯짝이 두꺼워야 이런 거 막 물어보고 다닐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가사의하리만치 많이 보이는 케이스입니다. 100이면 99는 들이대고 껄떡대려는 케이스고, 나머지 1 정도는 타인의 페르소나를 훔치려는 경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락처가 그렇게 궁금하면 스스로 알아내든가… 요즘 카메라계에도 미투 운동, 성추행 추방이 한창인데 연락처 알아내서 이들이 보내는 메세지 보면 정말 ‘가 to the 관’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딴 질문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안 된 거라고 봅니다.
6. 사진 진짜 좋은데 제가 제 페이지/블로그/광고에 좀 써도 될까요?
네. 돈 내고 쓰세요. (…) 공짜로 콘텐츠 소스 얻어보고자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쑤시고 다니는 게 요즘 트렌드더군요. 얼핏 윈윈인 듯 결국 사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게 이런 케이스예요. 왜냐면 이 질문 던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절대 돈 낼 생각이 없거든요.
사진이 좀 허접해도 일단 공짜라면 가져다 쓰는 족속들입니다. 기왕이면 더 좋은 사진 공으로 쓰려고 깔딱대는 것뿐이에요. 알량한 속셈 훤히 들여다보이니 가급적 이러지 말고 삽시다.
7. 렌즈 화각이랑 조리개 몇이에요? 감도랑 셔속은? EXIF도 공개해야죠
아 물론 촬영자가 숨기지 않고 공개하는 경우 많습니다. 저도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의 태반은 EXIF 공개하고 올려요. 그러나 그건 올리는 사람의 자유의사입니다. 어디서 생판 남에게 공개해라 마라 갑질인가요? 가만 보면 이런 경우는 부탁도 아니라 거의 명령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초보고 공부해야 하니 고수인 니네들이 정보를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
이런 논리를 들고나와요. 초보=벼슬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적지 않게 존재합니다. 학구열이 뜨거울 수도 있고 아직 지식이 얕은 단계에선 별것 아닌 촬영정보도 대단하게 느껴지는 건 이해하는데… 명심하세요. 그걸 공개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너님한테는 없다는 사실을(…)
8. 근데 이런 거 찍어서 어디다 써요? ㅋ
글쎄요? 근데 이런 거 물어서 어디다 써요? ㅋ 대체 남이사 뭘 찍건 어디다 쓰건 뭔 상관입니까. 심지어 안 쓰기도 해요. 취미는 결과보다도 과정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용도와 목적이 있을 거고요. 생각 없이 내뱉는 질문은 오히려 상호 간에 독이고 이런 질문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예요.
9. 제 사진도 좀 찍어주세요 / 제 사진도 좀 대신 보정해주세요
아 물론이죠. 돈 내시면 뭔들 못 해드리겠습니까? 셔터만 누르면 사진이 찍힌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이런 질문을 가장한 요구 정말 쉽게 하시죠. 당연한 말이지만 사진 촬영도 내가 나를 위해 하면 취미지만 타인을 위해서 할 때는 노동이에요. 노동에는 댓가가 따라야 합니다. 내 노동만 노동이고 남들 노동은 봉사예요?
10. 장비 그거 다 해서 얼마에요?
듣고 돈지랄이라고 하든가 장비병이라고 하려는 거 다 알아요(…)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은 그냥 속에 담아두세요. 돈지랄이고 장비병처럼 보일지라도 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는 겁니다. 단순히 금액만 물어보고 금액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어쩜 그리 사고가 단편적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질문은 제발 그만
질문할 권리가 자기한테 당연히 있는 듯 답을 요구하고 또 명령하듯 던져놓고는 거절하거나 답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사람을 속 좁은 좀생이 취급하는 거… 그런 거 솔직히 바람직하지 않은데 정말 많이 보여요. 문제는 그런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듯 보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나는 초보니까 모두가 나한테 친절해야 하고 너네는 고수니까 나를 지도편달 무료로 해줄 의무가 있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경우엔… 혈압 오르죠 솔직히. 무조건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사진 찍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고 정말 속 많이 상해요.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