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늦게 들어오는 날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돌봐주는 어른 없이 빈 집을 지킬 때 부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요즘에야 도둑도 별로 없고 치안도 좋아져서 큰 위험요소는 없다 치더라도, 아이들끼리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래도 예측하기 어렵기에 부모로서 불안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외로움, 무서움, 공포, 불안, 슬픔, 원망… 이런 감정들이 떠오르시나요? 답은 의외로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부모 걱정‘입니다. 제가 어릴 때의 일기를 공개해드릴게요. 12살 초등학생 5학년 때 쓴 일기입니다.
1992. 3. 24. 화. 비.
어머니께서는 4시에 친척 60세 되시는 잔치 ‘회갑’에 참석하시러 가셔서 10시인 아직까지 들어오시지 않는다. 저녁이랑 설거지, 집안 정리는 다 해놨는데…
어머니는 왜 아직 안 오시는 걸까? 걱정이 된다.
만약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어머니가 직장 일 때문은 아니지만 저녁 10시가 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헌데 늦게 들어오는 엄마에 대한 원망 대신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냐며 걱정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제 친구에게 이 일기 이야기를 해주니, 실제로도 정말 많은 맞벌이 자녀 아이들이 일기에 부모님 걱정을 적어놓는다고 합니다. 부모가 늦게 들어오면 혹시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그 걱정들을 일기에 고스란히 적어 놓는다고 하네요.
엄마가 된 제가 다시 읽어본 어린 저의 일기. 사실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저 일기 속 어린아이를 한번 크게 안아주고,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걱정은 부모가 너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휴대폰이 있어서 언제나 부모자식 간에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대신 요즘에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는 아이들 때문에 직장 일에 방해를 받는 경우가 늘어난다고 하네요.
나를 방어하기 위한 아이의 ‘역투사’
맞벌이 가정 자녀의 이런 심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바로 ‘역투사’ 혹은 ‘내적 투사’라고 합니다. 가정 내에서 자녀로서의 역할을 가짐과 동시에 부모의 책임을 나눠가질 수밖에 없는 아동은 자신의 역할에 부모의 심리를 투사하기도 하는데요. 역투사란 다른 사람의 태도, 가치, 혹은 행동을 마치 자기 자신의 것처럼 동화시키는 무의식적 과정을 말합니다.
투사
개인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이다.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이러한 투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감정을 돌림으로써 부정할 수 있는 방어기제라고 본다.
투사란 소위 남 탓하는 경향을 말한다고 보면 쉽습니다. 반면 역투사, 내적 투사는 내 탓으로 돌리는 경향입니다. 자녀인 아동이 부모의 역할에 빙의되어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밖에서 힘들게 고생하는 부모님의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안 해도 될 걱정과 행동합니다. 이러한 아동의 모습은 부모 혹은 선생님과 주위 어른으로부터 ‘어른스럽다, 다 컸다’는 식의 칭찬으로 더 강화가 되어 굳어집니다.
저도 역투사의 과정을 십수 년간 거쳐 성장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저 심리상태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아이가 어른스럽고 성숙한 사고를 하는 것이 충분한 정신적 성숙으로부터 나온 것이면 모르겠지만 역투사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역투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심리적 ‘방어기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정신적 사고과정에 불과합니다.
역투사는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역투사를 통해 가지게 된 부모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중받고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마땅할 존재인 아동이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자아를 세팅합니다.
개인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저에게는 ‘나도 우리 집 귀한 딸’이란 표현이 매우 낯설고 어색합니다. 흔히 시댁 간의 갈등과 고부갈등을 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죠. 귀한 딸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귀하게 키웠다는 것은 어떻게 키웠다는 뜻일까? 항상 부모님에게 잘 보이고 칭찬받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아무런 조건 없이도 사랑을 받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것이 솔직한 의문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저는 시댁에 가서도 늘 부엌을 서성이고,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합니다. 뭔가를 해야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저의 오랜 사고방식 덕분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자신에 비해 한참 부족한 사람을 ‘내 주제에 이만하면 됐지’ 하며 받아들입니다.
연애할 때도 누군가 자기를 좋아해 주기만 하면 홀랑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상대방을 선택한다는 가치관보다, 나를 선택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에게 이용당하기 쉬우며, 사람들 무리에서도 뭔가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에게
자존감 높이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이미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글에서는 워킹맘의 아이 중 역투사를 통해 ‘일찍 철이 든 아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거릴 말들을 전해드립니다.
넌 귀한 내 자식이야. 나는 너를 최고로 귀하게 여기고 최고로 대접해주며 키울 거야. 넌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받아야 될 존재야. 너는 성인이 될 때까지 너 자신 외에 다른 그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넌 나에게 가장 소중해.
이미 아이가 많이 커서 말로 꺼내기 어려우시다면 편지로라도 마음을 전해보세요. 넌 내게 가장 귀하다는 말… 제가 가장 들어보고 싶었던 말입니다.
원문: 스윗제니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