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대형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6개월이 지났다. 29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한 참사 발생 직후 소방청은 13개항의 참사재발방지대책을 내놓았다. 1월 26일에는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46명이 사망하고 109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부여당은 당정청 회의를 열어 전국 29만 곳에 안전대진단 등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2월 4일에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 상가에서 불이나 4명이 숨지고 54명이 다쳤다. 정부가 화재 예방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시행한다는데도 왜 대책이 무색하게 화재 참사가 잇따르는 걸까? 《단비뉴스》가 원인과 문제점을 찾아 제천 시내 화재 현장을 점검했다.
참사 재발 가능성 높은 다중이용시설
제천 참사 6개월이 다 되어 가던 지난 18일 오후, 제천 시내 다중이용시설물 중 큰 편에 속하는 ㄱ빌딩을 찾아갔다. 8층 건물 안에는 병·의원 등 의료시설이 몰려 있어 환자와 가족 등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일부 병원에는 입원 환자도 있어 야간 상주인구도 적지 않아 보였다.
대형참사가 발생했던 하소동 스포츠센터와 같은 대형 다중이용시설이라 참사 후 소방 점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제천시청 건축과에 전화를 걸었다. 건축과 담당자는 “하소동 참사 이후 제천 시내 다중이용시설물들을 점검해 문제가 된 복도의 물품 적재나 무단 증축과 관련한 사항을 점검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단비뉴스》 취재팀이 둘러본 ㄱ건물도 제천시청 건축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불법 증축 건물이었다. 불법증축이 문제가 되는 것은 평상시에도 붕괴위험 등 대형사고 가능성이 있는 데다 화재가 발생하면 열로 약해진 골조가 불법증축으로 늘어난 하중을 견디지 못해 붕괴하는 대형참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방시설 등을 규정대로 설치하지 않으면 화재 때 대피가 어려워 피해를 키울 수 있다. 46명의 사망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의 경우, 수년간 불법 증·개축하면서 가림막을 무단으로 설치해 유독가스가 병실로 유입돼 피해를 키웠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제천시청 건축과가 시정명령을 했는데도 ㄱ건물은 불법증축한 8층 전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영업했다.
시청건축과에서도 시정명령만 내렸을 뿐 이행 여부는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듯, 8층 전체를 둘러보아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시청 건축과에서는 시정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지금 당장 불이 난다면 지난번 스포츠센터 참사가 되풀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잠긴 소화전, 야간에 굳게 잠긴 출입문
8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오면서 점검해 보니 소방시설이나 긴급 피난시설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서에서 출동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불을 끌 수 있도록 소화전이 층마다 설치돼 있는데, 2층에 있는 소화전은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건물 7층의 비상구는 닫힌 채로 잠겨 있었고, 불이 났을 때 비상 탈출구나 소방관 진입로로 사용되는 창문도 물건 등이 쌓여 막혀 있는 곳이 있었다. 그나마 병·의원 등이 있는 곳의 비상구는 다 열려 있었지만 야간에는 노숙자 등의 출입을 막기 위해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리사무소 측 설명이었다.
야간이 화재에 취약한 시간이란 점을 고려, 《단비뉴스》 취재팀이 23일 밤 11시쯤 이 빌딩을 다시 찾아가 보니 2층 정형외과에 10명 이상의 입원환자가 있는데도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건물 오른쪽의 비상구만 하나 열려 비상구 쪽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입원환자들이 출입문으로 몰려와 탈출을 시도해도 문이 잠겨 꼼짝없이 건물 안에 갇힌다.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 때도 2층 여성 사우나에 있던 여성들이 출입문을 제대로 찾지 못해 피해자가 많이 생겼던 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소방당국 점검에서 시설물 부분에서 시정명령을 받은 것들이 있어 전문업체에 의뢰를 해 놓았다”며 “대형건물의 소화전 등의 설치와 교체 비용이 1,000만 원 정도 들어가 소방시설 설치나 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천소방서 예방 안전과 관계자는 “소방당국이 직접 점검하는 장소는 소방청이 지정하는 ‘소방특정대상물’뿐”이라고 말했다. ‘소방특정대상물’은 일반 주택이나 건물이 아닌 공장이나 폐기물 시설 등 복합건축물법에 의해 지정된 곳이다.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아파트·기숙사 제외)에 설치된 소방시설물은 2012년 개정된 ‘소방시설법 제 8조’에 따라 소유자가 직접 설치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화재 참사 이후 소방당국이 일반 주택 등에 대해서도 소화 시설물 설치현황조사를 했으나 제천 시내 가구 중 40%만 점검을 했다고 한다. 제천소방서 측은 “2명의 담당자가 3천 곳이 넘는 건물의 소방시설물을 점검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인력 증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소방차 진입 가로막는, 여전한 불법 주정차
대형화재 참사 때마다 화재진압의 장애요소로 제기되는 불법 주정차 문제는 하나도 개선된 것 없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취재팀이 지난 19일 낮 찾아가 본 제천시 풍양로 농협 건물 근처 골목에는 승용차가 줄지어 주차해 있었다.
평균 너비 6m 정도 되는 골목이 승용차 주차로 남은 폭이 2.5m 정도로 줄어 있었다. 불이 났을 때 출동하는 소방차(5t 기준)의 폭은 3m 정도 된다.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가 출동해도 진입할 수 없는 상태다. 반대편에는 건물 공사까지 진행되어 가뜩이나 좁아진 골목을 더 좁혀 놓았다.
제천시청 교통과 교통지도팀 김영한 주무관은 “화재 참사 이후 불법주차 문제에 관한 논의가 있었으나 화재 발생 시 제천소방서와 협력관계에 있는 렉카 차량으로 주차된 차량을 옮겨주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소방청은 지난 1월 ‘소방차 출동 장애를 유발하는 차량 등에 대해 파괴이동 등 강제처분을 하고 현장 대원이 적극 집행할 수 있도록 손실보상에 대한 전담 대응체제를 마련해 나간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천시청과 중앙정부가 이와 관련한 구체적 협의를 한 것은 없다는 것이 제천시청 측 설명이다.
제천소방서 대응구조구급팀 구조업무 관계자는 ‘화재 발생 시 렉카 차량 출동이 어떻게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119에 화재신고를 하면 제천소방서가 아닌 청주 119 소방종합상황실에서 전화를 받는다”며 “상황실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제천 관할지역 업무 협약 레커차를 알아봐서 출동요청을 할 수도 있고, 연락이 안 되면 현지 소방서가 요청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불이 나면 촌각을 다투어 달려가 바로 화재 진압을 하고 인명구조를 해야 하는데 언제 레커차를 부르고 출동할 때까지 기다리느냐는 지적이다.
거주자 차량이 점거한 ‘소방차주차 전용구역’
제천시 측은 이와 함께 지난 1월 주·정차 질서 확립을 위해 ‘주택가 골목 및 이면도로 길모퉁이’ ‘아파트 단지 내 소방차 전용주차선(황색 선)’ 등 주·정차 금지구역을 알리는 광고지를 동사무소마다 배포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계도나 협조요청 수준이어서 실효성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취재팀이 지난 19일 저녁 7시쯤 방문한 제천시 장락동 ㄴ아파트 주차장의 ‘소방차주차전용구역’에는 거주자들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 두 대가 나란히 주차해 있었다. 이곳뿐 아니라 다른 아파트 단지도 사정은 비슷했다.
‘소방차 주차전용구역’은 아파트단지에서 자체적으로 불이 났을 때 고가 사다리차가 출동해 고층 거주 주민의 구조나 화재 진압을 위해 소방차가 주차할 공간으로 설정해 둔 곳이다. 이런 비상시 용도로 설정해 놓은 구역에 거주자 차량이 다 점유해 화재 발생 시 초동진압이나 인명구조에 큰 차질을 빚는 것이다.
참사 키운 ‘필로티 공법’ ‘드라이비트 마감재’ 대책도 감감
제천 화재 참사를 키운 ‘드라이비트 마감재’ 사용과 ‘필로티 공법’에 관한 개선방안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충북도청은 지난 1월 ”제천 화재 사고를 계기로 필로티 및 드라이비트 마감 건축물과 같은 화재 취약 건축물의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여 건축물 화재 방재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충북도청 건축문화과 서재성 주무관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필로티 구조와 단열성 마감재 현황에 대해 건설교통부로부터 정보를 받아 현황을 조사했고, 기초 자료가 수집되면 개선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하는 상황이지만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마감재 교체 등에 따른 비용 문제 등은 논의한 게 없다”고 밝혔다.
제천소방서 예방 안전과 직원도 “사고 이후 드라이비트(dryvit) 공법으로 된 건물을 점검했으나 공법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 따로 취할 수 있는 조처는 없었다”고 밝혔다. 건축법 등이 개정되지 않고는 ‘드라이비트’ 공법에서 발생하는 대형참사를 막을 방안은 없다는 것이다.
김원철 한국화재보험협회 예방안전본부장은 “전문기관의 점검 등을 통해 가연성 외장재가 불티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부분에 한해서라도 불연성 재료로 보강하게 하는 것이 위험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필로티’ 구조 건물에 관한 대책도 마땅하지 않다. ‘필로티’ 구조의 건물은 1층에 주차장이 설치되어있고 출입문이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재 참사 당시 1층 주차장 천장에서 불이 번지기 시작했고 공기가 중앙 출입구로 유입돼 9분 만에 불길이 건물 내부로 퍼졌다.
불길이 주차장에서 번졌고 1층에 방화문이 설치돼 있지 않아 피해자들은 1층을 통해 건물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건물 자체를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축해야 하지만 개별적으로 비용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라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소방기본법 개정안 법사위 상정도 안 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2016년 11월 발의된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제천참사가 일어난 뒤인 지난 1월에야 통과시켰다. 그 내용은 소방차 전용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일반 차량이 주차하거나 진입을 가로막으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 물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도 안 돼 있어 언제 본회의를 통과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차 공간 문제도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주차공간이 확보돼야 차를 구입할 수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무런 제약 없이 차를 구입할 수 있다. 골목 주차를 줄이려면 지자체가 관공서나 학교 등과 협약을 맺어 주차공간을 대거 확보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정부는 온갖 중-장기 대책을 다 모아 발표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실천하는 게 별로 없어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실효성이 담보된 대책의 수립과 실천이 시급하다.
제천시의 화재 예방 대책과 실천 여부를 점검해보니 여전히 매우 미흡한 수준이었다. 대참사를 겪은 제천조차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했으니 전국의 다른 도시는 어떤 수준일까? 그저 요행만 바라는 걸까?
원문: 단비뉴스 / 필자: 황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