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제 주변엔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대학원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아요. 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요. 저 또한 과외와 대학원 조교 일로 돈을 벌며 공부를 병행하고 있고요. (2년) 등록금 2천만원은 현실적으로 크게 와 닿는 금액이었어요.
기대 컸던 예술경영대학원, 들어가 보니 ‘본전’ 생각
학부 시절 경영학을 전공한 이지현(26)씨는 3학년 때 회화를 부전공하면서 ‘예술경영’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경희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여러 대학의 예술경영 석사과정을 조사한 뒤 홍익대대학원으로 진학했다. 홍익대의 자유로운 이미지와 예술 분야에서의 명성, 현장 네트워킹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실제 교육여건은 실망스러웠다. 문화예술경영대학원은 협동과정이 아닌 정규과정인데도 전임교원이 한 명도 없었고 다른 단과대 교수의 강의로만 수업이 이루어졌다. 현재는 전임교원 1명이 있다.
또 지도교수와 활발한 소통을 할 수 있게 소규모로 학생을 뽑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기 30명, 후기 50명 등 갈수록 인원이 늘었다. 그에 비해 학교 지원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원 수업 듣고 논문만 쓰고 졸업한다면 등록금 낭비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일’을 내기로 했다. 지난 4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예술경영 대학원생이 등록금 아까워서 만든 페이지>를 만들었다. 예술경영 분야에서 의미 있는 논문을 시각화한 카드뉴스나 가 볼 만한 행사 안내 등을 갈무리해서 올렸다. ‘고객의 니즈(needs)와 원츠(wants)알기’ ‘예술경영 도서 추천’ ‘문화예술 스타트업 목록’ 등의 정보도 담았다.
구독자 수는 빠르게 늘어, 2018년 8월 현재 약 7,300명이 예술경영 관련 콘텐츠를 받아본다.
페이스북으로 논문·도서·행사정보 등 제공
지현 씨는 이 페이지를 열기 전인 지난 3월, 대학원 동기 두 명과 함께 문화예술기획팀도 만들었다. ‘믹스도미토리(혼성 숙소)’라는 팀 이름은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여행지 숙소처럼 지친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는 예술을 기획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믹스도미토리는 지난 5월 서울 한남동 나인로드 게스트하우스에서 첫 기획전을 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특성을 살려 ‘여정’을 주제로 한 이 전시에는 박수현, 수하, 이유치 등 젊은 작가 5인의 회화 작품이 선보였다.
관객들이 흔쾌히 지용을 지불하고 작은 전시를 관람한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믹스도미토리는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의 관객을 유치하는 것과 전시에 참여하는 창작자들을 배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소규모 미술 전시는 무료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적게라도 관람료를 받아 ‘작은 전시는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깨고 싶었다. ‘친근한 전시’를 표방하면서, SNS의 하나인 인스타그램에서 ‘얼리버드 티켓(조기예매)’을 판매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클럽마테와 브룩클린 브루어리 등에서 음료를 후원받아 관객에게 제공하고 청바지브랜드 더 스트라이프의 협찬으로 경품 행사도 가졌다. 전시 첫날은 8000원, 나머지 이틀은 2000원의 관람료를 받았는데 3일간 약 140명이 찾았다. 관객들은 돌아가서 온라인에 감상평을 올렸다. “전시를 본 것이 처음이다. 흥미롭고 새로웠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는 한 블로거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지현 씨는 회고했다.
‘열정 페이’ 아닌 합당한 대가 받을 수 있도록
청년들이 이른바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는 현실은 예술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현 씨는 최근 많이 생겨난 복합문화공간에서 “전시를 기획할 기회를 줄 테니 와서 (공짜로) 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전시 경험을 쌓아야 하는 독립큐레이터나 신진 작가들은 이런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믹스도미토리는 악습을 거부하기로 했다. 자신들이 초청한 작가들에게도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기 위해 ‘여정’ 전시회에서 ‘패브릭 아트워크’를 추진했다. 패브릭 아트워크는 전시 작품의 이미지를 원단에 옮겨 제작한 2차 예술품이다. 기획자 세 명이 직접 제작했다. 원작을 구매할 경제력은 없지만 작품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 아트워크를 살 수 있도록 했다. 판매 수익은 제작비를 제외하고 전액 작가에게 지급했다.
작가의 원작 판매에 대해서는 기획자가 일체 개입하지 않았다. 작가와 관객이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맡겨 놓았다. 그리고 전시장인 게스트하우스 대관료도 정식으로 지불했다. 알음알음 지인의 공간을 빌려 무료로 진행하는 소규모 전시의 관행을 깨고 싶었다고 한다.
지현 씨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예술을 물질적·정신적으로 보장받으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지속가능한 예술’이라는 표어를 정했다고 했다. 지난 6월 3일 서울 상수동 그문화다방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지현 씨는 또박또박한 말투와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예술가, 기획자, 공간 운영자, 관객 등 전시 과정에 참여하는 모두가 합리적인 가치와 비용을 제공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착취당하기 쉬운 사회구조지만, 최대한 우리들의 권리를 지키며 책임도 다하는 예술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조은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