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심심치 않게 ‘노오력’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말이 노력과는 다른 부류로, 풍자를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인지했다. SBS 스페셜 ‘취준진담’이라는 방송을 보는 내내 그 풍자가 사실은 기업의 관계자와 구직자 둘 다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왜 그런지 생각해보았다.
구직자 입장에서: 노력한다고 될까?
취준생들이 취업을 여러 차례 실패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과연 언제쯤 ‘취업’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지금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할까. 그래서 ‘노오력’이라는 말이 나왔다. 결국 노력해도 안 되니까 될 대로 살든가,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자는 심경으로 계속 하든가…
사실 커리어 상의 선택 가능한 경로가 그리 많지 않다.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비슷한 나이에 회사를 들어가야 하고, 그때부터는 꿈보다는 수치화 또는 명문화된 목표를 가지기를 안팎으로 압박받는다. 스스로도 왜 그런지 모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나름 잘 나갔는데 말이다. 피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피할 수 없어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들 길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마주하는 세상은 학교 안과는 사뭇 다르다.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함을 요구하고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런 것들을 취하면서 우리가 하는 여러 활동은 노력에서 노오력으로 격하되고 점차 가치를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가치도 함께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노오력을 노력으로 바꾸는 힘, 과연 있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왜? 일반적인 ‘노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각자 집에서 귀한 자식들이고, 따라서 밖에서도 그러한 귀한 대접을 받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의 인정을 받는 건 몇 가지 눈에 띄는 조건만 갖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이 부분만 서로가 충분히 공감했다면, 기업 관계자와 취준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부터 확인했다면 프로그램에서 다른 모습을 비쳤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노오력→노력)에 대해 프로그램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다큐 속에 오가다의 최승윤 대표가 눈물을 흘려 프로그램 종료 이후 동정 여론이 간 것도, 오히려 출연했던 취준생들의 취업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저 직장을 갖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온갖 스펙을 갖추려고 했고, 수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지 못했기에 갖게 된 자연스러운 불만 성토 자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얼마나 영리하게 노력했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고 거기에 운까지 더해져야 하는 것을 취준생 그들은 잘 몰랐다.
그리고 면접관으로 나온 이들도 취준 시절이 있었음에도 이를 빌어 그들과의 공감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기보다는 되레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들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나타난 모습이겠지만, 연대한다는 모습보다는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는지의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결론은 모두가 피해자였다. 대표들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지원자를 얻지 못했고, 지원자들은 정말 가고 싶은 회사를 발견하는 것 또는 발견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한 듯했다.
‘노오력’하지 마세요, 노력하세요
굳이 누가 더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노력의 주체자가 더욱 잘 되기만을 바라는 노력이라면 노오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곡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쉽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이른바 ‘역지사지’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이 바랄 수 있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기업도 기업만 잘되기를 노력하기보다 지원자 및 직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한 조건만을 채워주기 위한 노오력은 의미가 없다. 최소한의 해줘야 할 것을 해준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채용에서부터 목표 및 성과를 통해 직원들의 성장과 조직의 번영을 함께 도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 진심은 결과로써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근속연수와 함께 양적·질적으로 직원과 조직이 함께 얼마나 성장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지원자도 마찬가지다. 지원 기업에 대충해서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려는 모습은 최대한 비추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는 내 회사를 뽑는다는 심정으로 최소한 면접관에게 물어볼 질문 리스트라도 가져가서 들이밀고 답변을 들어야만 입사가 가능하다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모르면 질문할 수 없다. 그만큼 공부를 해왔기에 질문할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고, 기꺼이 이어갈 수 있는 명분도 있어야 한다. 당연한 것이다. 무언가를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하다가 멈추면 그걸로 끝이다. 계속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 형성’으로부터 언제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력은 그렇다. 억지스럽지 않다.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한 것이다. 그걸 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것이다. 그 반대의 모습이 나타날 때 ‘노오력’이 된다. 기왕 노력할 거면 가장 나다운 모습을 통해 기업은 구직자를, 구직자는 기업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까.
이직스쿨을 만들고 실력 중심의 세상을 부르짖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는 분명 함께 사는데 실제로는 나만 살겠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점이 안타깝다. 기왕이면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누군가를 짓밟고 나만 살기보다는 조금만 배려하면 될 것을…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지금도 그런 세상을 꿈꾼다. 막연해도 세상은 조금씩 그렇게 변해간다.
원문: 김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