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 때문에 고등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전혀 알 수 없던 그 세계에 발을 들인 후, 그들을 찬찬히 지켜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누군가는 취업으로, 또 누군가는 대학으로 하루라도 빨리 교복을 벗고 고등학교라는 울타리 벗어날 날을 손꼽던 모습은 그 시절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미성년자라는 타이틀을 벗어나는 20대가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른들도 말했다. “대학 가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태생이 쫄보라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은 꿈도 못 꾸고 교복만 벗었지 학교-집-알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미안하게도) 지금의 20대들처럼 치열하게 살지도 않았고, 그저 졸업하고 취업할 날을 기다리며 허무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지금에 비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운 좋게 취업했고 사회인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엄청난 인생의 파도에 휩싸이지도 않았으면서 혼자 상처받고 혼자 슬퍼했고 혼자만의 굴을 파고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대단한 사람들 사이 한없이 초라한 나 자신이 밉고, 부끄러웠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없었던 나는 나를 향한 불만을 세상 탓으로 돌렸다. 남들은 엘리베이터 탄 것처럼 쉽고 빠르게 고지에 올랐는데 나는 에스컬레이터는커녕 맨다리로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다지 재능도, 끼도 없으면 이 바닥에서 버틸 힘은 오직 ‘성실’이라고 믿었다.
‘성실’을 위해서는 나의 욕구를 포기하는 게 가장 쉽다. 자는 시간도 줄이고, 하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한다. 누군가를 만나 놀고 싶은 마음도 줄여야 한다. 그렇게 세이브한 시간과 에너지는 오직 일을 위해 썼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 희생과 노력들이 보상받을 거라 믿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늘 보상받았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다. 내가 극 속의 여주인공처럼 상큼하거나 캔디 발랄하지도 않고, 신분 상승시켜줄 백마 탄 왕자님 st 실장님이나 재벌 3세를 만날 일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가진 거라고는 사포만큼 까칠한 성격과,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팀장 혹은 내 목에 빨대 꽃는 선배뿐이었다. 그래서 더 일에 매달렸고, 일이 나를 구원해주리라 믿었다.
일은 내 인생의 1순위였다. 늘 일을 위해선 24시간 올스텐바이했다. 개인 사정 때문에 일을 미뤄야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3~4일 밤을 새우고, 출퇴근 시간에 잠을 보충했고, 집은 그저 씻고 나오는 곳일 뿐이었다. 내가 ‘열심’과 ‘성실’이라 믿었던 날들은 사실 나를 함부로 대했던 시간들이었다. 내 안의 목소리 대신 남들의 목소리만 듣고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하루하루 나를 갈아 결과물을 냈다.
스스로를 버티게 하는 힘인 자존감이 없는 사람에게 타인의 인정은 그 어떤 것보다 달콤한 채찍이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낸 후 내게 남은 건 묵직한 나이와 목 디스크, 손목 터널 증후군이었다. 번 돈은 병원비로 새나 갔고, 나의 ‘열심’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씁쓸한 깨달음이 밀려왔다.
20세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난 직업이란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끊임없이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직업을 갖고 보니 21세기엔 직업에 생계 이외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만나는 고등학생들 또래로 돌아간다면, 아마 지금의 직업이나 인생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눈부터 바꿀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기보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안의 목소리에 조금 더 애쓸 것이다. 누군가의 무심코 내뱉은 영양가 없는 한마디에 휩쓸리지 않게 조금 더 나를 단단히 중심을 잡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스스로를 함부로 대했던 나를 반성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20대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무슨 일이든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천덕꾸러기인 20대의 나.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넌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등 토닥이며 말해주고 싶다.
진짜 세워야 하는 건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라는 걸 과거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렇게 장황한 글을 썼다. 나와 같은 혼돈의 20대를 보낼 자존감 없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큰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꼭 이 한마디 해주고 싶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