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뒷담화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기사가 보도되었다. ‘뒷담화는 좋지 않다’는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사실 뒷담화 행위가 가지는 긍정적인 심리적 이점이 다수 존재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보도에서 인용하는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뒷담화는 정보 습득, 사회적 결속 강화, 스트레스 감소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1. 정보 습득
근묵자흑(近墨者黑). 모름지기 사람은 가려가며 사귀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있는 반면, 착한 사람도 있다. 나에게 해를 가할 사람도 있고 도움이 되어줄 사람도 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으며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누가 착하고, 도움이 되어주고, 잘 맞는 사람인지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부단히 다른 사람의 정보를 수집하기 바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 SNS, 인터넷, 신문 등 각종 경로를 통해 나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뒷담화 또한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훌륭한 창구다. 특히, 명칭에서 드러나듯 뒷담화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나와 비교적 가까운 특정 대상에 대한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인 내용들이다. 쉽게 떠도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영양가 있는’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뒷담화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2. 사회적 결속 강화
뒷담화를 하려거든 타인들이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장소와 맥락에서, ‘우리들끼리’ 조용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만 알고, 우리들만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와 상황이 만들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뒷담화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 결속력과 유대감은 강화된다.
대개 우리는 뒷담화 과정을 통해 상대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과 사람 간 사귐에 있어 ‘공통점’만큼 효율성 좋은 접착제도 없다. 뒷담화를 통해 확인하는 공통적인 생각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받고 공감받는다는 느낌을 심어준다.
한편 뒷담화에는 대개 특정 대상에 대한 ‘평가’에 관한 내용이 자주 포함된다. 그의 어떤 면이 부족하거나 과한지, 혹은 과거에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었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리고 이 ‘평가’들 속에는 암묵적으로 그와 우리를 포함한, 이 사회적 조직 속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와 기준 등이 담긴다.
뒷담화에 참여하는 우리들은 입을 모아 특정 대상을 품평하는 한편,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의 언행을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그렇게 조직의 가치와 기준에 스스로를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집단으로의 애착과 결속을 강화한다.
3. 스트레스 감소
뒷담화는 사회생활의 활력소다. 우선 뒷담화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은밀한 결점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있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보니, 그 희귀하다는 인식이 더욱더 나로 하여금 뒷담화로 빠져들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뒷담화는 일상에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카타르시스(catharsis) 경험 중 하나다.
평소 어찌 감히, 직급상 내 윗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비판을 가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 같아서야 계급장 떼고 속 시원하게 일갈해보고 싶지만 그런 ‘판타지’를 현실로 옮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도 나고 슬픈데,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그 사람에게는 그걸 토로할 수가 없으니 점차 골병 들어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뒷담화에 의존한다. 그가 듣지 못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에게 ‘당한’ 경험이 있는 여러 사람과 연대해 뒷담화를 시작한다. 마치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을 모시는 신하가 된 듯,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그에 대해 평소 있었던 불만들을 서슴없이 끄집어낸다. 그렇게 한참 뒷담화에 열을 올리다 보면 이제야 비로소 조금은 후련하고 속이 뚫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기적적인 계기가 있어 내 상사인 그가 변하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대개 어제 내게 모욕을 주던 그 상사는 다음날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을 확률이 100%에 가깝다. 그래서 뒷담화는 멈출 줄을 모른다. 왜? 풀어내고 풀어내도 또 토로할 일들은 얼마든지 다시 쌓일 테니까.
끝으로
상기 언급한 바와 같이, 뒷담화에는 여러 긍정적인 기능이 존재하며 무려 약 3세 무렵부터 인간이 타인에 대한 평가를 시작한다는 발달심리학 연구 등을 미뤄볼 때, 웬만한 의지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매우 본능적인 행위에 가깝다고 여겨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잖은 인문학 서적, 자기계발 서적 등을 보면 늘 나오는 지침들은 그와 같지 않다.
대개 볼 수 있는 내용이 ‘남의 험담을 하지 말라’, ‘뒷담화를 하지 말라’ 등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정보 습득, 사회적 결속 강화, 스트레스 감소 등의 이점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뒷담화가 가져다주는 단기적이고 자극적인 이점들 덕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부작용을 염려해 경계하라고 조언하는 것이리라.
우선 뒷담화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즐겁지만, 사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뒷담화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즐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소외감을 느끼기 좋고, 혹시라도 내 얘기를 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무엇보다 ‘뒷담화 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명칭은 사회생활을 하는 그 누구에게도 그다지 유쾌한 수식어는 아닐 것이다. 뒷담화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타인들에게 ‘음험한 사람’, ‘진실되지 않은 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 ‘기만적인 사람’ 등의 이미지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뒷담화를 하면서도 그것을 경계하려는 여느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당연하다. 뒷담화 속에 여러 긍정적인 심리적 이득이 잠재한들 상황이나 맥락은 언제나 고려되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뒷담화 전력이 언젠가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도록 만들지 않을 절대적인 자신이 없다면, 뒷담화는 여전히 경계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