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 선 민주당
나도 더불어민주당의 승리가 기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져 온 일당 독점체제가 경남에서 깨진 것이 무엇보다 신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 임채민 기자가 일찍이 투표일 한 달 전에 썼듯이 경남의 민주당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 섰다. 자유한국당 또한 역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선 것은 마찬가지다. 선거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다. 가장 불안한 건 길 앞에 서 있는 주자들의 면면이다.
그동안 지역 시민사회 속에서 검증된 분들도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공천 과정에서 과거 행적이 드러나 걸러진 서교민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당선자 중에도 서 씨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다. 과거 한나라-새누리-자유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옷만 갈아입은 사람, 세력 내 주류에 끼지 못했거나 밀려난 삼류 토호들도 눈에 띈다.
나는 해방 이후 지역사회를 지배해온 ‘토호세력의 뿌리’를 추적해본 적이 있다. 같은 제목의 책도 썼다. 결론은 이랬다. 그들의 속성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기회주의자’더란 것이었다. 그들에겐 이념조차 출세나 사익추구의 수단일 뿐이다. 한국당이든 민주당이든 유리한 쪽으로 붙는 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 그들이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행정이나 의정활동을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두 번째로 불안한 건 민주당 경남도당과 시·군 지역위원회에 시장·군수와 의원들의 정책을 보좌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위원회는 정당법상 지구당 폐지로 인해 여러 한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경남도당 차원에서 지역의 여러 이슈와 현안을 분석해 당론을 내놓는 과정을 본 적이 없다. 중앙당 역시 선거 때나 지역에 잠시 관심을 보이는 척할 뿐 당이 배출한 단체장과 도·시·군의원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그나마 도당 산하에 정책위원회를 구성해 당 소속 지방의원의 정책보좌 역할과 함께 지역 현안에 대해 꾸준히 입장표명을 했던 적이 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주당 도당 단디정책연구소가 선거 이후에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도지사 재임 시절 경남을 회를 쳐놓고, 이번엔 당대표를 맡아 자유한국당을 몰락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홍준표가 마지막 막말이라며 모처럼 옳은 소리를 남겼다.
이념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치열한 문제의식도 없는 […] 정당의 미래는 없습니다. 국회의원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념과 동지적 결속이 없는 집단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 가장 본질적인 혁신은 인적 청산입니다.
이 말은 승리한 민주당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대승한 열린우리당이 갑자기 불어난 몸집으로 ‘잡탕’ 소리를 듣다가, 불과 2년 만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완전히 몰락했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문: 지역에서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