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이 되도록
A 학점을 받지 못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A 학점을 받아보겠다며
두문불출 공부에만 매달렸지만
학기 말 그 선배의 성적표에서는
A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B B B, C C C
B B B, C C C
나는 해도 안 되나 봐
나는 왜 이럴까
나는 해도 안 되나 봐
나는 왜 이럴까
- 인생시망, 〈패배자의 노래〉
운동권 선배 중 한 분이 학생들이 자주 가던 주점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것을 기억합니다. 가사가 재미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조적으로 불렀는지는 모르겠네요. 당시에는 누가 불렀고 가사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몰랐지만 핵심 가사인 “BBB, CCC, 나는 왜 이럴까”와 음은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인생시망’이라는 가수의 이름도 노래 제목도 범상치 않았네요. “패배자의 노래”라니… 이 노래에서 말하듯이 오늘은 “나는 해도 안 된다”거나 “나는 왜 이럴까”라며 자책하고 후회하는 심리를 다룹니다.
1. 자책하고 후회하는 사람들
자존감이 낮은 사람 중 많은 사람이 자책과 후회를 합니다. 주로 어떤 과제의 결과 앞에서, 혹은 진행하는 과제가 어려울 때, 벽에 막혔을 때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취업 준비과정에서 몇 번의 고배를 맛보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넌 도대체 뭐가 문제냐? 지금까지 취업 준비 안 하고 뭐 했냐? 다른 사람들은 대학 다니면서 어학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땄는데… 도대체 뭘…
또한 위의 가사처럼 학점이 생각보다 좋지 않으면,
에휴… 학점이 왜 그 모양이냐? 도대체 학기 동안 뭐 했냐? 네가 그렇지 뭐…
어떤 행위에 앞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별로 준비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는 곧 필수적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난 가치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2.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할 때 과거 경험의 가치가 한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낍니다. 현재의 그 선택, 그 결과 앞에서 과거는 관련이 없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과거를 이해하지 않아서입니다. 결과 앞에서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과거를 생각해보면 그 결과만 바라보고 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취업준비 안 하고 뭘 했냐?
여러분 정말 뭘 했을까요? 중요한 걸 했겠지요. 천천히 생각해보면 사소하고 쓸데없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도 다 이유가 있어서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SNS만 하고 게임만 했다고요? 그것도 중요한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에 시간을 쓴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자체로 SNS를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해서 한 거라면 유희가 부족한 지루한 삶을 산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고,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해 또는 우울한 기분 때문에 SNS와 게임을 했다면 인생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어떤 것이건 이유가 있지요.
각각의 삶의 시기에서 어떤 선택을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보통 취준생 나이 때는 학점 관리, 금전 문제, 연애, 인간관계, 부모님과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스스로에 대한 불명확함 등과도 싸웁니다. 그런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건 분명 아닙니다. 저 문제에 직면하고 때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썼을 것입니다.
저 중 중요하지 않은 게 하나라도 있나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금전 문제, 연애, 인간관계, 부모님과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스스로에 대한 불명확함 등을 모두 도외시하고 학점 관리를 포함한 취업준비만 하는 것도 삶을 제대로 산다고 볼 수도 없겠지요.
우리는 매 순간 일정 이상 중요한 문제에 에너지와 시간을 씁니다. 그것이 특정 결과와 과정 앞에서 관련이 없어 보일 뿐이죠. 그러므로 특정 결과 앞에서 나를 탓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나는 중요한 영역에 시간을 썼기에 ‘취준에만’ 시간을 쓰지 못한 것이지, 인생을 잘못 산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과거를 연민으로 바라보자
과거의 내가 잘못된, 의미 없는 것들을 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 과거의 나를 이해해주기로 합시다. 그리고 응원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선택들을 한 ‘나’로 규정하면, 지금의 ‘나’ 역시 앞으로도 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후회와 자책으로 힘들어하시나요? 그런 부정적 감정 때문에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시나요?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 과거를 이해해주세요. 당신은 의미 없는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수건, 사소한 것이건 그 선택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렇기에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나의 선택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건 나일 테니, 이제 나를 편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엇이건 간에 내 행동에는 내가 이해해줄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