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 좋은 게 아니었다
여느 동양 문화권 나라의 자녀가 다 그렇듯, 말을 배울 무렵부터 ‘배려’, ‘인내’, ‘겸손’에 대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여기에 칭찬받는 기쁨이란 의외로 맛이 좋아서, 나는 짜증이 많은 아이였음에도 가급적 착한 아이가 되고자 나를 다스렸다.
문제는 지나친 배려, 인내, 겸손 속에서 나의 자존감까지 박박 깎아내리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넘겼던 나는, 어느 순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호구가 되어 있었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친구이고 싶었던 내 꿈은 사라지고, 원망으로 새까맣게 타들어 간 마음만 남았다.
호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의 저자 무옌거에 따르면 선량함에도 질이 있다고 한다. 좋은 선량함이 있다면 질이 낮은 선량함, 즉 나쁜 선량함도 있다. ‘이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하고 시작하는 대부분의 오지랖이 여기에 해당한다.
본인은 선한 의도랍시고 충고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지하게 기분만 나쁜, 불필요한 선량함 말이다. 무옌거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자란 동양인들이 거절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타인의 도 넘는 무례함도 일단 참고 보는 자충수를 둔다고 진단한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는 관성이 생겨서 타인에게 지나치게 신경 쓰는 자신이 싫으면서도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 19쪽
결국 호구란 타고나기보다 학습된 ‘관성’에 가깝다. 어린 시절 한가한 어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애쓰던 버릇이 친구 관계까지 망쳐버렸던 나의 경험처럼 말이다. 내가 ‘참지 않아도 되는’ 순간마다 꾸준히 참지 않고 선택을 달리했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이유
물리 법칙은 사람의 감정에도 똑같이 적용되기에, 무턱대고 꾹꾹 눌러 담다가는 기필코 반작용의 힘을 받아 튀어 오르게 된다. 문제는, 대다수의 경우에 그 복수심의 불씨가 매우 엉뚱한 곳을 향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제때 적절한 방식으로 해소되지 못한 분노는 이렇게 그것의 원인과는 상관없는 곳으로 흘러가 일상을 망친다. 하지만 망가진 하루보다 훨씬 비참하게 느껴야 할 사실은, 그 분풀이를 위해 내가 동원하는 대상들과 나의 관계 또한 상사와 나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나는 피해자’라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면 당신은 인생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무조건 희생하겠다는 태도로 세상을 대하면, 정말로 세상에 의해 희생되고 만다.
- 55쪽
연인이나 친구, 가족들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기꺼이 나에게 약자가 되어주기도 하는 존재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그들은 종종 나에게 무례함을 감당하라고 강요한다.
회사에서 한없이 을이 되는 내가 집에만 오면 안하무인에 신경질 대마왕이 되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럽다면, 더는 미루지 말고 내 친절함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웃으며 침 뱉을 줄 아는 어른이 되자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밖에서 얻은 화를 집안까지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친구, 학교, 직장 등에서 무수히 맞닥뜨리는 타인의 ‘악의 없는’ 공격에서 그때그때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호구가 되지 않으면서 상처 주거나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무옌거는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상대방의 무례함에 맞서라고 조언한다. 대다수의 관계에서 우리가 솔직해지기를 망설이게 하는 건 발화 이후의 상황, 즉 나의 ‘안위’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직장을 잃을까 봐, 친구를 잃을까 봐, 사회적 평판을 잃을까 봐 걱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세련된’ 갈등을 고민하는 대신 손쉽게 이를 회피하는 방식, 즉 자세를 낮추는 걸 택한다. 당장의 편안함을 추구한 대가로 자존감을 파는 것이다.
표현 방식만 우아하다면, 내가 느낀 불쾌함을 상사에게, 동료에게, 친구에게 혹은 어른에게 말한다고 한들 천지가 뒤바뀌거나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 거지가 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사적이든 직장에서든 뒤탈 없는 인간관계를 만들려면 처음에는 소인처럼 깐깐하게 굴고 나중에는 군자처럼 대범하게 행동해야 한다.
- 29쪽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는 게 아니라 내가 상처 입었음을 인지시키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생계를 걸지 않아도,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세련되게 화낼 수 있다. 대단한 재능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취직하기 위해 면접에 임했던 당시의 담력, 딱 그 정도의 담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상사의 직급이 나보다 더 높다고 해서 그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니고, 서운함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친구라면 애초부터 함께하기 어려운 관계인 것이다.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밖에 없다’는 말이 진부하지만 빛나는 이유는 정말로 그렇기 때문이다.
친절하되, 필요할 땐 단호한 것.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를 스스로 세울 줄 아는 사람은 ‘아니요’란 말 한마디에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오늘날 나는 혹시 한 번의 ‘아니요’를 하지 못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이라도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면 무옌거의 ‘똑 부러지게 친절해지는 방법’을 참고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