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역선거 뒤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 김성태는 이 선거는 한국당이 탄핵당한 선거였다고 주장했다. 다른 여러 보수계열 정치인도 보수의 죽음과 재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한국 보수의 진짜 문제를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누군가 한국 보수가 뭔지 알았다면 적어도 벌써 보수의 재탄생 따위를 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부활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보수의 가장 큰 문제는 부활이 아니라 현실의 인식이고, 일단 빠르고 처절하게 죽는 것이다.
레슬리 스티븐슨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이라는 책에서 이데올로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첫째, 인간관과 세계관을 가진다. 즉 우리는 누구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실수나 문제다. 즉 앞에서 말한 그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셋째, 그 해결책이다. 즉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문제를 풀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들이란 이런 구조를 공유하면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수를 보면 한국에서 보수를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종북주의자들이다. 그 이유는 세계관에서 우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고의 모든 것의 핵심에는 북한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이것이다.
- 세계관·인간관: 우리는 북한과 싸우는 반공주의자들이다.
- 문제: 북한이 있는 게 문제다.
- 해결: 북한을 무찌른다.
박사모에 따르면 우리는 반인반신인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가졌다. 그런데 왜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보다 아직도 못살까? 바로 북한과 북한간첩과 북한을 추종하는 남한 빨갱이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더 부자가 못 되는 이유, 우리가 여러 사회문제를 가지는 배후에는 항상 빨갱이가 있고 종북주의자가 있다. 따라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종북을 무찌르고 나아가 북한을 무찌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지상낙원이 온다. 이것이 내가 한국 보수야말로 진정한 종북주의자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제까지 보수정당을 찍어온 국민, 특히 나라를 팔아먹어도 무조건 한나라당이라고 외치던 그 사람들, 한국인의 30%는 되며 보수정당의 선거를 땅 짚고 헤엄치기로 만들어왔던 그 사람들에게 위에서 쓴 것보다 더 복잡한 이데올로기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계급적 이익이고 뭐고 모든 것을 초월하고 투표했기 때문에 이것이 아니면 그들의 행태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들 덕분에 보수정당은 개인적 이익이나 지역 연고 같은 다른 이유로 보수를 지지하는 20%만 더 얻으면 선거를 무조건 이겼다. 보수 정치세력이란 오랫동안 이런 지지자들이 뽑은 사람들이다.
박근혜가 박정희 신화와 함께 몰락한 지금,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서 어차피 끌어도 너무 끈 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대는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금, 보수는 분명히 어떤 의미에서 이미 죽었다. 한국에서 보수라는 이름은 냉전 구도의 종식과 함께 이제 주술이나 음양오행 같은 말처럼 들리는 낡은 것이 되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악수하는 것을 본 사람들에게 다시 과거로 가자고? 설사 미국과 북한이 다시 싸워도 사람들은 이제 전과 같을 수 없다.
과거의 악령은 거의 사라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되돌릴 수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보수의 재탄생을 논하겠다면 보수는 죽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보수는 과거의 숙제를 해결해야 죽기라도 할 수 있다. 보수의 이념을 과거의 세력이 선점하기 때문에 그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사람들을 다 처리해야 보수 이데올로기의 재정립이 가능하다.
보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번 선거를 치르고도 한국의 국회는 보수성향의 국회의원으로 거의 절반이 차 있다. 경북지역도 살아있다. 이건 시대의 유산이다. 이건 마치 21세기 한국 대학의 교수 절반은 무당이나 사이비 교주들이 차지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들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정당의 해산도 얼마나 어려운데 보수의 해체가 쉽겠는가?
보수 정치인과 지지자 대다수는 아직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박사모들처럼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과거의 이데올로기로 더욱더 뭉쳐서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미신과 신화의 세계로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회에서 조원진이나 김진태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보수 정치인은 세상 바뀐 것을 모른다. 홍준표는 핵을 구걸하러 미국에 갔고, 자유한국당은 북한에서 김영철이 내려온다니까 그 길을 막겠다면서 무력 대치를 유도하지 않았던가?
보수가 사이비 종교화한다는 것은 은유가 아니다. 세상이 바뀌면 바뀔수록 보수 정치인들은 기행을 펼칠 것이다. 보수단체가 성조기도 모자라서 이스라엘 국기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라. 지금 그들의 사고는 폭주한다. 그들은 영향력이 줄어들수록 반성하기보다는 자신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진리를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며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는 망상에 젖어 들 것이다. 카톡을 통해 퍼지는 가짜 뉴스들을 복음으로 여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강제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러분도 스스로가 온 세상에 홀로 남은 정상인이며 지구인 모두 병에 걸린 좀비라고 생각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구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나라를 팔아먹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있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가톨릭 계열 비밀결사의 일원이라는 식의 음모론을 믿어가면서.
죽는 것도 쉽지 않다. 보수 정치세력 쪽에도 정신을 차리거나 우울해져서 물러서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런 사람들이 조용해지면 보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이비 종교적인 이상한 생각의 극렬파가 내가 답을 안다면서 보수를 더 순혈주의로 물들일 것이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었다.
김성태, 홍준표, 나경원, 김진태, 조원진, 하태경 같은 사람들은 과거의 이회창 같은 여유는 없다. 이제 그들이 물러나고 나면 보수는 더더욱 기괴해질 것이다. 홍준표가 퇴진을 발표하자 류여해가 복당을 선언하고 친박 정우택이 당권경쟁을 예고한다. 보수는 패배 속에서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더욱더 뒤로 질주한다.
그들은 아직 자기가 죽은 것을 모르는 좀비들이다. 과거의 망령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폭력적으로 되어 놀라운 끈질김을 가지고 보수라는 단어를 손에서 놔주지 않을 것이다. 마치 이미 죽었는데도 움직이는 좀비들처럼 보수 이데올로기를 선점하고 새로운 보수 개념의 정립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보수의 가장 큰 문제다. 애초에 이 때문에 바른정당이 생긴 것이 아니던가? 바른 정당의 실패는 보수의 해체와 재탄생이 쉽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래도 다시 말하지만 보수는 부활을 꿈꾸는 게 아니라 먼저 죽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부활은 어림없다. 그리고 이게 보수의 가장 큰 문제다. 지금도 보수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어림없다. 보수 정치가 키워온 환자들을 모두 다 정리해야 보수는 진짜로 죽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어영부영 나는 보수가 아니라면서 보수 쪽으로 다가가는 안철수는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서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쪽은 빠르게 피에 굶주린 좀비 군대처럼 변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프트 보수가 물러나면 더 순혈보수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안철수처럼 박근혜와 김진태도 정리 못 하면서 모든 대통령은 공과가 있다는 애매한 자세로 보수의 죽음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는 결국 좀비로 변하거나 좀비에게 물리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지자들과 정치인들은 서로를 바꾼다. 어떤 사람들은 보수의 몰락을 어떤 공백의 탄생으로 여기면서 기회로 여길지 모르지만 그 공백은 그냥 공백이 아니라 좀비가 날뛰고 사이비종교가 넘쳐나는 무서운 공간이 될 것이다. 그냥 먼저 들어간다고 차지할 수 있고 차지한다고 해서 행복할 공간이 아니다. 보수의 처리 문제는 상당 기간 한국에서 시대의 숙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숙제의 해결 전에 보수의 재탄생은 있을 수 없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