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창립 29주년을 맞이한 국내 최대 교원노조 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현재 법외노조 상태에 있다. 1999년 합법화 이후 법 테두리 안에서 활동했던 조직이 2010년 이명박 정권 시기에 시작해 박근혜 정권에서 정점을 찍은 일련의 정부 조치에 따라 법외로 밀려났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합법의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는 전교조에 대한 이명박근혜 정권의 합법적인 법외노조화 조치가 더러운 공작정치와 비겁한 ‘교육의 사법화’ 행태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 불법보다 더 위험한, 탈법이나 초법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일사불란한 ‘군사작전’처럼 진행되었다. 노동조합과 교육자단체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와 교육부가 선봉에 서고, 국내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과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뒤를 봐주는 방식이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은 이명박 정권 시기인 2010년부터 구체화하였다. 이명박 정권 노동부는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전교조 내부 규약 시정 명령을 내렸다. 해직 등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교사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전교조 내부 규약이 법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은 전교조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2011년 2월 18일 열린 국정원 부서장회의에서 “전교조, 확실하게 대처 좀 해야 되겠다”면서 “전교조 자체가 불법적인 노조로 우리가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직후였던 2013년 2월부터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위한 공작을 착착 진행하였다. 전교조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전국대의원대회와 조합원 총투표 등 일련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압도적인 ‘규약 시정 명령 거부’ 결정을 내렸다.
조합원의 자격 규정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의 2010년 9월 30일 자 권고, 학계 일반의 견해, 국외 사례 등을 종합할 때 정부의 규약 시정 명령은 부당한 조치였다. 교원노조의 조합원 자격에 관한 교원노조법상 관련 규정이 해고당한 교원을 일반교원 및 다른 산별노조의 노동자와 차별함으로써 헌법상의 포괄적인 평등 원칙에 위배되는 점, 규약 개정 거부를 이유로 노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하는 것이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2013년 10월 24일 오후 2시, 박근혜 정권의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알리는 팩스 한 장을 보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이날 정부 합동 브리핑 자리에 선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전교조 조합원은 노동자이기 이전에 선생님이기 때문에 먼저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한 기사에 이렇게 썼다.
교사는 선생님이기 이전에 헌법상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 평등한 국민의 하나이다.
제29주년 전교조 창립대회 상경 준비로 아침을 이르게 시작한 지난 5월 26일, 내 눈을 놀라게 하는 기사 하나가 보였다. 제목이 “박근혜 청와대와 ‘전교조·통진당 재판’ 사전 교감한 사법부”였다. 본문을 보았다. 첫 눈에 실린 배경 사진이 눈을 사로잡았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 제103조가 새겨진 대법원 법원 전시관의 창문이었다. 기사를 읽으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법관들 ‘양심’이 대통령과의 교감에 흔들릴 만큼 얄팍한 것이었나.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기 위해 펼친 비상식적이고 초법적인 행보를 보면 대법원의 행태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 자료’(아래 ‘자료’) 주요 내용을 보면, 교육개혁과 관련한 대법원판결의 사례 2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2012년 4월 “민주주의 후퇴 반대” 관련 시국 선언을 한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벌금 판결과 2015년 6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기각 판결 들이었다.
대법원 행정처는 2015년 6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기각 판결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되돌려 놓은 판결이므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협력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았다.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한 고용노동부의 처분을 존중한다는 멘트도 달았다. 그 통보가 모법 위임 없는 시행령상의 규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에 따른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대법원의 2015년 6월 판결은 전교조의 숨통을 끊는 결정타가 되었다.
자료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는 자리를 앞두고 상고법원 도입 실현을 위해 대통령을 설득하려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노조 아님 통보’ 이후 전교조를 고사시킨 일련의 사법적 판결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부 독립을 사법부 스스로 내팽개친 농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로마의 위대한 법률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변론 중 기회가 있을 때마다 “쿠이 보노(Cui Bono)?”를 외쳤다고 한다. 배심원들과 군중들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쿠이 보노’는 “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한다. 재판 당사자들 중 실질적으로 이득을 보는 자를 잘 따져야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판결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까.
나는 이번에 드러난 대법원 행정처의 작태가 사법 적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쿠이 보노’의 정신에 딱 들어맞게 행동했다. 그들에게는 조직의 명운이 올바른 재판을 통한 사법 정의 실현이나 국민 기본권 신장보다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
적실한 해법은 간단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와 관련된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여 관련 책임자들을 엄히 처벌해야 한다. 전교조에 내려진 부당한 ‘노조 아님 통보’를 즉각 무효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