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팀이 경제 정책을 둘러싸고 주도권을 경쟁한다고 말이 많다. 팩트인지 경제 관료의 바람 잡기인지, 또는 언론의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예상 못 한 놀라운 소식은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시나리오가 아닌가?
(실체가 모호한 점이 많지만) 소득주도 성장이 이른바 주류 경제정책을 완전히 뒤집은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시장이고 경제고 간에 소득이 있어야 구매력도 생기고, 그래야 산업이든 기업이든 성장할 발판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소득주도 성장론의 효과는 딱 한 가지, 완강한 주류 경제모델에 소박한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를 넘지 않는다.
한편, 오래된 주류 경제 권력은 이 정부에서 ‘혁신 성장’이라는 외양을 하고 나타났고, 정부의 경제부처, 그리고 그 관료 권력이 중심이다. 여기서 혁신 성장을 자세하게 살펴볼 여유는 없으나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몇십 년을 줄기차게 외쳐온 경제정책, 산업정책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공식적으로 말하는 내용을 봐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제4차 산업혁명, 과학기술 혁신에 마치 획기적인 아이디어인 양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 ‘기업가 정신’을 보태지만 우리 눈에는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익숙하다. 미래 산업과 신성장동력, 녹색 성장, 창조 경제가 겉치레만 바꾼 것으로 보인다. 신조어를 만드는 능력을 과시한 외에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가?
사정이 이런데도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 사이에 갈등이 있는 듯 보이는 것은 ‘경제 권력’의 정치가 작동하는 결과다. 기업과 경제부처, 정치권, 언론, 학계가 연합한 그 경제 권력은 소득주도 성장론의 뿌리를 뽑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더 나은 경제 정책의 내용과 기술을 주장하고 경쟁하기보다는, (작은) 도전조차 싹을 자르려는 전쟁의 자세를 숨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 정권이 경제 관료 엘리트의 상징인 경제 부총리를 ‘패싱’한다는 총공격.
보수 언론과 경제지가 한꺼번에 공세에 나선 계기는 소득 불평등이 더 나빠졌다는 통계청 발표다. 이를 둘러싼 몇 가지 논점은 지난주 「서리풀 논평」을 참고하기 바란다. 통계는 5분위로 나눈 가계소득의 격차가 사상 최대로 커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40%(1∼2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이 역대 최대로 급감했다. 반면에 소득 상위 20%(5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1분기 기준 역대 최대로 급증해 분기 소득이 사상 처음 월평균 1천만 원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소득분배지표는 2003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악으로 나빠졌다.
불평등이 심해진 것을 두고 바로 최저임금 인상 이야기가 나왔고, 논란은 연이어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으로 번졌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라고 할까. 자세한 분석과 원인 진단은 어디 가고 본래 하고 싶었던 말, 소득주도 성장론과 최저임금 인상을 싸잡아 비판하는 중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의도를 가진 정치적 해석보다 실제 불평등 완화에 관심이 크다. 어떤 ‘성장론’이 왜 옹호와 비판 대상이 되는지는 중요하지만, 조금 미뤄놓자. 성장 자체에 대한 비판과 대안도 다음 과제로 미룬다. 일부 주장대로 최저임금을 묶고 규제를 철폐하며 혁신 성장을 추구하면 소득 불평등이 완화될까?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소득 하위계층의 낮은 소득이다. 지난번 발표 때도 소득 하위 40% 가계의 소득이 역대 최대로 줄어들었다고 했으니, 소득주도 성장이든 혁신 성장이든 (적어도 소득 불평등을 초점에 두면) 이들의 소득이 달라져야 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통계청 통계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소득 1분위는 가구주의 나이가 많고 여성·저학력자 비중이 커서 임시·일용직이나 영세 자영업자인 경우가 많다. 특히 올해 1분기의 경우, 소득 1분위의 가구주 평균 나이는 63.4살로 한 해 전보다 2살이나 상승했다. […]
소득 1분위 가구주(2015년 기준)의 임시·일용직 비율은 42.6%에 달한다. 2분위(26.3%)와 3분위(16.7%), 4분위(14.3%), 5분위(9.2%)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2016년부터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크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이 많은 데다 일자리가 있더라도 불안정하고 저임금인 고용. 5월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가계동향조사(지출부문) 결과’에서도 몇 가지 참고할 것이 있다. 소득 1분위 가구의 소비지출 수준은 5분위 가구의 26%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1분위 가구에서 항목별 소비지출 비중은 식료품·비주류음료(20.3%, 5분위 11.6%), 주거·수도·광열비(19.0%, 5분위 7.8%), 보건비(10.8%, 5분위 6.1%) 순으로 높다.
성장이 바람직하고 혁신 성장이 그 성장을 촉진한다고 가정할 때, 그 성장은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한편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인 일자리가 줄고 노인 빈곤이 더 심해진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도 그렇다 치자. 지금도 노인 고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 고용이 노인 빈곤과 소득 불평등에 무슨 근본 해결책이 되었는가?
다른 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이 1분위 사람들이 노인 빈곤의 당사자이고 피해자다. 혁신 성장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일자리나 최저임금으로 이들의 문제를 줄일 수 있을까? 노인 빈곤을 노인 자신의 일자리와 노동, 근로소득 중심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에게 노동과 고용은 궁여지책, 아무리 높게 잡아도 소득 일부를 보조하는 수단을 벗어나지 못한다.
노인 빈곤이 생애 전체의 결과라면, 현재 시점에서는 차원이 다른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지금 노인이 겪는 빈곤을 줄이기 위해 직접 지원이 필요하다. 다른 수가 있으면 모를까, 국민연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을 포함하여 노인 소득보장체계를 완전히 새로 설계해야 한다. 지출에서는 주거와 보건의료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도록 공공체계를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1년, 5년, 10년 뒤 노인이 될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청장년 세대의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줄여야 그만큼 미래 노인의 빈곤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이른바 ‘생애과정(라이프코스)’ 전체를 본다면 노인 빈곤 대책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특히 첫째 과제를 강조한다. 당장 노인 빈곤을 줄이고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는 정부가 직접 나서는 방법을 빼고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다시 물적 토대(재정)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겠지만,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이 바른길이다. 새 출발의 바탕이 될 토대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 쪽이 더 부실하다.
소득 최상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월평균 1천15만1천700원으로 9.3% 증가해 1분기 기준으로 지금껏 최대폭으로 늘었다. 소득 최상위 가계의 명목소득이 1천만 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7년] 지난해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려 순이익 합계가 120조 원에 육박했다. 이전까지 구조조정이나 비용절감에 의지해 이익을 내던 ‘불황형 흑자 기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외형과 이익 동반 성장’ 흐름을 굳혔다.
- 「상장사 순이익 120조 원 육박…외형·이익 동반 ‘점프’」, 연합뉴스
토지 소유는 상위 1%가 전체 개인 소유의 26%를, 상위 10%가 65%(이상 2013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소수에 집중돼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 전체 토지가격은 409조 원이나 올랐다.
- 「‘토지공개념’ 명문화로 ‘부동산 공화국’ 벗어나야」, 한겨레
어떤 토대가 얼마나 더 굳어져야 하나? 기초연금을 확대하거나 의료급여 대상자를 늘리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 예를 들어 증세는 정치적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노인 빈곤을 둘러싼 새로운 정치가 그 정치적 의지의 강도를 결정할 것이다.
노인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문제 삼는 까닭은 그것의 근원적 현실, 즉 그 삶과 사회가 위험해져서다. 낮은 소득과 가난이,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불평등이 실제 삶과 사회를 위협하면, 공동체가 무너지고 소멸하는 것은 순식간이 아닌가. 문제가 근본적인 그만큼 대안은 급진적이어야 한다.
원문: 시민건강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