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ㅍㅍㅅㅅ 에디터, 이하 김): 기장 출신이 아니시더라고요.
이현만(기장군수 후보): 여기가 제 고향이 아니거든요. 군 의원 선거 나왔을 때 저를 원래 아셨던 분은 통틀어서 10명이 안 됐던 것 같아요.
김: 기초자치단체 의원은 로컬 네트워크가 엄청 중요하지 않나요.
이현만: 동문 파워도 상당히 중요하고, 하다못해 봉사활동을 하거나 아니면 정치적 골목 정치를 하든, 생활 정치를 하든 이렇게 사람들한테 많이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많이 하죠. 그동안 하는 거 보니까 일 좀 하겠네, 이런 기대가 표의 도식이죠.
김: 그럼에도 군 의원에 당선되셨습니다.
이현만: 보통 지방의 경우엔 토박이다, 살아왔다 이렇게 강조하시는데 거꾸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학연 지연에서 자유로운 점을 잘 봐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무게감이 많이 느껴졌던 게,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저를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 보냈어요.
김: 당선되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이 :꼭 은행 대출받은 느낌인 거예요. 잘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맨 먼저 들었습니다.
김: 원래부터 정치에 뜻이 있으셨나요? 이를테면 민주화 운동이라던가.
이현만: 대학 입학했을 때 한창이었죠. 막상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군대로 바로 도망쳤거든요. 지드래곤이 있는 백골부대로.
김: 아니 캠퍼스 라이프도 즐기시지 않고…
이현만: 왠지 모르게 제 삶이 제 것 같지 않고 부모님의 눈길대로 가는 삶 같아서 너무 싫었어요.
김: 부모님께서 기대가 많으셨나요?
이현만: 많았죠. 그 기대가 제겐 부담스러운 기대였어요. 예를 들면 달리기 못하는 사람한테 달리기 10초대를 달리기를 원하는 것처럼.
김: 그래도 공부에 싹수가 있었다거나…
이현만: 아뇨. 진짜 생각 없이 살았어요. 그냥 크면 농사짓거나 도회지로 가서 공장일 할 줄 알았죠. 그런데 기를 쓰고 부모님이 인문계 중학교에 보내시더라고요. 학교를 보냈으면 책을 사 주든지 교복을 사 주든지 도시락을 챙겨 주든지 차비를 주든지, 아무것도 없어요. 학비만 주신 거예요.
김: 아이고…
이현만: 그렇다 보니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학교에서의 제 이미지는 그냥 멍 때리는 학생,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어요. 거의 전교 꼴찌였는데,
김: 그런데 또 고등학교를 가셨습니다…?
이현만: 옛날에는 전수학교라는 게 있어요. 학교 정식 고등학교 인가가 안 난 학교인 거죠. 그런데 당시 이사장님이 노력하셔서 이듬해에 정식 고등학교 인가를 받고, 또 바로 인문계로 인가를 받았어요. 지금도 대구 사람들은 아 거기 괜찮은 학교라고 얘기할 정도가 되었어요. 졸지에 저도 그 학교의 일원이 돼서 무사히 졸업했고, 바로 군대로 도망갔어요.
김: 군대로 도망친 보람이 있으셨습니까?
이현만: 28개월 정도 군대 생활을 하고, 나올 무렵에 나름 타협점을 갖고 나온 게, 그래 모양은 부모님이 정하더라도 색깔은 내가 정하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비로소 운동에도 참여를 했죠. 그런데 그 방법에 회의가 생기는 거예요. 짱돌 던지고 화염병 던지는 것도 괜찮지만, 진짜 무찔러야 하는 대상이 경찰들이 아니잖아요. 저 사람들 물리치고 교문 앞 50m, 100m 진출하면 뭘까.
김: 그래도 뉴스가 되니까…
이현만: 근데 당시 언론은 그걸 언급을 안 해줬어요. 데모했다는 거는 이야기할지 몰라도 왜 데모했는가는 이야기 안 하잖아요. 그래서 갑자기 그 수많은 젊은이의 함성, 던지는 돌, 물리적 에너지 그런 게 아깝더라고요. 그때 든 생각이, 지금 모인 이 사람들이 벽돌 한 장씩 옮겨도 몇만 장을 옮기는데, 그걸로 뭘 해도 금방 하루에 몇 채씩 없는 사람들 집을 지어주고 그럴 텐데…
김: 그 에너지가 아까우셨던 거네요.
이현만: 그러면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을 가지거나 힘을 가지고 나서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려나?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근데 평생 공부를 해봤어야 하지. 고민하다가 일단은 일본어과니까, 일본 쪽으로 대학 진학을 결심했죠.
김: 아, 그래서 영미권 대학이 아니라 특이하게 일본으로 가셨네요.
이현만: 네. 단순해요. 영어는 애시당초 너무 어렵고, 중국어는 한자밖에 없으니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으로 가서 대학교를 다시 다녔고, 거기서 석박사까지 진학했죠. 참, 박사는 못 땄어요.
김: 중간에 포기하신 건가요?
이현만: 일본에 온 지 11년쯤 되니까 조급해지더라고요. 제가 27에 유학 가서 벌써 38이 됐는데, 더 오래 있으면 왠지 대한민국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박사 논문은 좀 더 연륜을 쌓아서 쓰자는 마음으로 귀국했습니다. 사실 논문 테마도 인기가 없었고…
김: 어떤 것을 쓰셨습니까.
이현만: 프롤레타리아 문학이요. 사회주의 문학이죠. 당연히 일본에서도 인기 없고. 그런데 저는 지금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가 맞다고 보거든요.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했어요. 힘이 없는 계층의 삶을 개선 또는 전달해서 하는 그런 작품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굴러온 돌, 기장의 새로운 바람을 이끌다
김: 그리고 대학 교단으로 가게 되셨네요.
이현만: 네. 여러 강의를 거치다가 부산외대 책임교수로 가게 됐어요. 연봉이 높아져서 너무 기뻤어요. 두 배나 뛰었거든요
김: 교수님 연봉이니 한 6,000~7,000쯤 될까요?
이현만: 아뇨? 2배가 뛰어서 겨우 3,000이었어요.
김: 첫 연봉이 얼마셨는데요?
이현만: 당시 첫 계약서에 적힌 연봉이 1,300 정도였어요.
김: 생활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이현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어요. 당시 총장이 연봉 2,500을 받는 학생들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기가 차서 ‘총장님, 선생인 내가 작년에 책을 한 권을 제대로 못 샀다, 이런 대우를 받는 학교에서 무엇을 하느냐’ 그렇게 얘기했죠.
김: 변화가 있었나요?
이현만: 아뇨. 찍혔죠.
김: 아… 그렇게 백수가…
이현만: 진짜 그럴 뻔했죠(웃음). 마침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L스쿨이라는 것을 하고 싶은데, 개념은 아직 안 잡혔대요. 그래서 책임교수로 세팅을 맡게 되었어요. 거기서 한 것이 모든 신입생은 전공에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3개 언어 중 하나를 택해서 듣고 어학시험 3급 자격증을 목표로 삼게 한 거예요.
김: 외국어대학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정책 같습니다.
이현만: 근데 거기서도 찍혔어요.
김: 아니 또다시 어째서…
이현만: 정치 싸움에서 졌죠. 어학 수업이 늘어나니 외래 강사 선발도 필요했는데, 인사권이라는 게 원래 가장 큰 권력이잖아요. 거기서 많은 충돌이 있었어요. 갈등이 심해져서 불필요한 오해들도 생겨났어요. 예를 들어 초보반 수업에서 발음을 크게 따라 하는 수업을 보고 유치원 수준의 수업을 만들어놓고 강사를 선발하려고 한다거나…
김: 본심은 그게 아닌데 말이죠.
이현만: 그런 식으로 공격을 몇 년간 당하다 보니 제가 만든 시스템이 어느덧 사라졌어요. 제 소속도 사라지고 그냥 자리 비는 학과에 흡수가 되었어요. 근데 거기서 제가 얼마나 성가시겠어요. 면전에서 ‘이제 나가실 때 안 됐냐’ 며 말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 때문에 불편하신 것 같으니까 알겠다고, 이번 학기 학생들 수업만 마무리하고 나가겠다고 했죠. 백수가 예정 된 거죠.
김: 그런데 이직이 매우 빠르셨습니다. 군의원이 되셨거든요. 어떠셨습니까?
이현만: 학생들이 저한테 붙여 준 별명 중에 ‘다라이’라는 별명이 있어요. 고무대야의 일본어 말이죠. 제가 잘 빨개지거든요. 맨날 강의 때 실수하면 얼굴 벌게지고, 학생들이 우우우 놀리고 그랬어요. 근데 당선되고 하루 종일 얼굴이 벌겠어요. 너무 쑥스럽고 부끄러워서요.
김: 하지만 부끄럼을 타시는 것 치고는 상당히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전국 최초로 정책 주민투표를 진행하셨잖아요.
이현만: 이거는 꼭 적어주세요. 저와 같이 일했던 분들이 ‘니만 자랑하냐!’ 그럴 수도 있어서 말하기 좀 그런데, 진짜 저 혼자 한 거 아닙니다,
김: 해수담수화 이슈와 관련되신 분들 말이죠.
이현만: 네. 원전 인근 11km 지점에서 취수를 하겠다는 거고, 그것을 막기 위해 뭉친 고마운 분들이 많았습니다.
김: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도 있던데요?
이현만: 3중수소가 어떻고 라돈이 어떻고 이런 얘기를 하는데, 과학적인 이야기는 저는 과학자가 아니라 모르겠고, 과학자에 따라서는 괜찮다는 분도 계시고 안 된다는 분도 계셔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논리는 그분들의 몫이고, 선택권은 주민한테 있는 거죠.
김: 찬성한 주민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 너무 일방적인 입장만 고려하신 건 아닌가요.
이현만: 이걸 알기 위해서는 기장 군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요, 하나는 기장에서 태어나서 기장에서 쭉 살아오신 또는 조상님 대부터. 고향이 기장이고 이 땅이 나의 땅이라고 생각하시는 그런 분들이 있고요. 나머지는 신도시와 함께 기장으로 새롭게 이사 오신 분들. 주로 부산/울산으로 출퇴근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김: 성향이 많이 다른가요?
이현만: 새로운 분들은 기장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정치/사업 현안에 대해서 별로 말씀들을 안 하세요. 이미 전입하기 이전부터 뽑힌 군수와 군의원이고,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항이니까요. 그런데 해수담수화 문제는 달랐어요. 당장 먹는 물이었잖아요.
김: 큰 항의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이현만: 근데 이미 끝난 이야기니까. 관련된 주민들이 보상받을 거 받고, 설명회도 끝났으니 더 이상 뭔갈 더할 수가 없는 거예요. 더군다나 군의회 내 구도도 좋지 않았어요.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숫자가 압도적이었죠. 우리 당 의원이 저를 포함해서 두 명이고요.
김: 너무 일방적인 싸움인데요?
이현만: 근데 나중에 또 그분이 다른 당으로 가시는 바람에 심지어 민주당은 저 혼자고요. 심지어 상대방 의원님들이 괜히 관심 기울이지 말라고, 되려 의원님이 힘드실 거라고 걱정을 해주더라고요.
김: 또 찍히시는 건가요…
이현만: 그래서 큰 반대를 하지 않았어요. 대신 숫자 싸움을 시작했죠. 주민투표 준비요.
김: 숫자?
이현만: 2015년 12월쯤에 이슈가 본격화되었어요. 마침 그다음 해 3월이 총선이었거든요. 총선 직전에 화두로 만들면 단순하게 군 의회를 넘어 부산시까지 긴장시킬 수 있고, 타이밍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삭발을 했어요.
김: 아니 분명히 아까 운동에 회의를 가지셨다고 했는데 이렇게 전형적인…
이현만: 아 단식은 못 해요. 배가 고파서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죠. 삭발하고, 천막 치고 군청 로비에 앉고… 나중에 헤아려보니까 107일을 했더라고요.
김: 생각대로 화제가 되었나요.
이현만: 저를 포함해서, 해당 이슈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여러 가지 합법적인 절차를 찾아주신 덕분에 국내 최초로 정책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28.9%가 실제로 투표에도 참여해 주셨어요. 1만 명이 넘는 숫자에요.
김: 하지만 인정받을 수 있는 33%에는 미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현만: 그건 좀 아쉬워요.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직전에 보궐선거 투표율이 22%였어요. 형식적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초기에 목표했던 숫자 싸움으로는 충분히 유의미했죠. 일단 기장군의 태도가 달라졌고, 총선에 나온 후보들의 태도도 달라졌으니까요.
기장에 진짜 필요한 내일을 위하여
김: 기장이 군이라고 하기엔 약간 좀 크지 않냐는 느낌이 있어요. 부산 강서구보다 인구가 많고, 신도시 개발도 활발하고요.
이현만: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고 쉬운 질문이기도 한데요, 쉽게 할게요. 구하고 군은 교부금이 달라요. 그래서 군은 좀 촌스러울지 몰라도 실리는 있어요. 돈이 더 많이 들어와요. 그래서 행정이나 군민의 입장에서는 군이 나아요. 예산 규모가 달라요.
김: 세상에…
이현만: 그리고 군수가 구청장보다 좀 더 자율권이 세요. 그냥 아무것 없이 사시는 일반 주민들은 군 이거 촌스러운데 싶겠죠. 근데, 딱 그 차이밖에 없어요. 기장구가 된다고 특별히 좋아질 건 없고 오히려 재정적으로 나빠져요.
김: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왜 구보다 군이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더 좋은 게 많을까요.
이현만: 우리나라는 농사 관련해서 상당히 지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군은 농촌 반, 도시 반이라고 보기 때문에 관련된 예산 확보가 가능하죠. 가령 우리보다 훨씬 인구가 적은 합천군 예산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아요. 근데 구는 그런 경우가 아예 없어요. 같은 농사꾼이라도 해운대구에 있는 농사 짓는 분에게 국가에서 내려오는 세제 혜택이나 사업 지원이 달라요.
김: 그럼 기장군이 ‘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거죠?
이현만: 안 하는 거예요. 할 이유가 없잖아요. 부산 강서구가 후회하는 게 그거예요. 강서군으로 할 걸 괜히 강서구로 해가지고 지금 재정적으로 힘들죠.
김: 그렇군요… 그렇게 실속 있는 ‘군’에서 지난 군수 임기 동안 진행된 사업들이 꽤 많습니다. 장안읍 쪽 도예촌 조성이라든지.
이현만: 도예촌은 도예가 없어요.
김: 네?
이현만: 예를 들어 음향박물관이라 해놓고 음향이 없으면 이상하잖아요. 커피박물관에 커피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도예촌인데, 도예촌에 도예가 없다? 상상되세요? 그런데 도예촌 가시면 안데르센어린이극장이랑 야구장밖에 없어요. 그것도 정식 야구장은 아니고 빈 공터가 있으니까 빌려주는 것밖에 없어요.
김: 도예는 어디로 간 걸까요. 지난 군수님이 재선하셨으니 벌써 10년짜리 사업인데.
이현만: 그러게요. 이쪽 단체장은 매번 청사진만 제시하고 실제로 되는 건 참 없더라고요. 해결은 둘 중 하나에요, 정말 도예촌을 살릴 것인지, 도예촌이란 이름을 뗄 수 있으면 떼든지. 말이 안 되는 짓은 이제 그만해야죠.
김: 하지만 10년 된 사업을 철수하면 반발도 상당하지 않을까요.
이현만: 재설계 과정에는 당연히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담아야 하겠죠. 해수담수화 문제랑 똑같아요. 행정적으로 필요하다고 얘기를 할 수는 있어도 그걸 주민한테 강요할 순 없어요. 그래서 충분히 설명해드리고 같이 고민을 해야죠.
김: 기장이 많이 뭐 한다, 한다 했는데 또 말씀 들어보니까 된 게 없는 것 같네요.
이현만: 군의원 4년 간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가 “우리, 함부로 생각하지 말고 함부로 결정하지 말고 함부로 그만두지 마세요”에요. 너무 쉽게 생각해가지고 아 이거 합시다 하고 함부로 집행해요. 그리고 함부로 그만둬요. 말이 안 되죠.
김: 도시철도 기장선 문제는 도심계획에 포함됐었는데, 이건 큰 문제가 없는 거죠?
이현만: 참 본의 아니게 제가 의원이 되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요, 안중근 선생님이 했던 말씀 중에 “하루에 글 한 줄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있죠. 사람들마다 해석방법이 좀 다른데 그래도 대부분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게 입안에서 가시가 돋는다는 말은, 독설을 한다는 뜻이에요. 책을 안 읽은 만큼 교양이 없으니까요.
김: 갑자기 그런 말씀을…
이현만: 제가 그 이야기를 왜 드리냐고 하면, 지금부터 하는 기장선 이야기가 어쩌면 독설에 가깝기 때문이에요. 확실하게 말할게요. 기장선 또는 정관선 이 부분은 기장군의 쇼에 가깝습니다.
김: 이거 나가도 되나요…
이현만: 네. 저는 쇼라고 생각해요. 한 번은 제가 관련 출장 품의서를 봤는데, 뭐 내역이 없어요. 도대체 왜 간 건지, 누굴 만난 건지, 그래서 어떤 진척이 있었는지를 알 수가 없어요. 횟수는 150차례가 넘는데 말이죠. 황당해서 알아보니까, 형식적인 1인 시위만 하고 오신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누구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야지, 애먼 동네에서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김: 그래도 경제 타당성에서 통과된 걸로 아는데… 쇼는 과격한 표현이 아닐까요.
이현만: 그것도 새로운 개념을 넣어서 점수를 맞춘 거예요. 기장군 옆에 원전이 밀집해 있잖아요. 일어나서는 안 될 사태지만, 만약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 신규 철도역들을 대피로로 활용하는 안을 넣었어요. 저는 이런 것들은 그래도 찬성해요. 일하기 위해서 머리를 맞댄 거잖아요.
김: 원전 얘기 나온 김에, 노후화 문제도 있고 몇 번 꺼지거나 이런 이슈도 많았는데.
이현만: 저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까도 말씀드렸고, 이 원전이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은 못 가지고 있어요. 단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포 중에 가장 큰 공포가 어쩌면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잖아요. 움직일 리가 없는 게 움직인다거나, 안전하다고 말한 것들이 폭발한다거나.
김: 그렇죠. 그리고 후폭풍이 너무 크고…
이현만: 원전 긍정론자들은 앞으로 과학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하기 때문에 해결이 될 거라는 전망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걸 못 믿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를 확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현재의 원전으로 유지하고, 수명이 다하면 해체하자는 거죠.
김: 그렇다고 또 원전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이현만: 네. 대신해서 신재생 에너지든 다른 그린에너지든 어떤 에너지든 찾아내야 되는데. 저는 이 찾아내는 노력이야말로 기술의 발전이고 또 다른 먹거리의 발명이라고 봐요. 별도의 이상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요. 중앙정부가 마침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더라고요.
김: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현만: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요. 조금 더 우리가 숙의하자. 좀 더 걸리더라도요. 신고리 5호기 건설 구획에 대해서 숙의를 6개월 동안 했잖아요. 결과적으로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지마는 그런 숙의를 한다는 것은 저는 정말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빨리 빨리만 능사가 아니다, 이제는 질적인 어떤 걸 확보를 하고.
김: 여러 가지 말씀을 듣다 보니 주로 정상화에 포커스가 있는데요, 후보님이 별도로 꿈꾸는 개발 플랜은 없으신가요?
이현만: 개발이라고 말하면 안 되고, 복원이죠. 저는 개량한복이라는 말도 별로 안 좋아해요. 개량은 그 전의 것이 나빴다는 뜻이니까. 단지 복원을 하면서 좀 더 현대적 해석을 할 수는 있겠죠. 구조물들은 이미 너무 많잖아요. 화려한 조명이 있는 게 아니라 기장 자제의 매력을 조금 정비만 해서, 많은 사람이 와서 아 공기 좋다, 기분 좋으니까 오늘 고기 20만 원치 먹자, 기장이 이런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유권자들의 꿈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요”
김: 3선 군수님을 상대하셔야 합니다. 현장 여론이 어떤지.
이현만: 분위기 나쁘지 않아요. 옛날에는 민주당 간판 달고 나오면 뭐 이런 빨갱이 같은 새끼, 나라 팔아먹을 놈들 그런 거 많죠. 지난 대통령 선거만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근데 요번에는 오히려 ‘문재이니 당 아니가?’라는 할머니들도 있고. 이런 긍정적인 리액션은 살다가 처음이에요.
김: 현장에서는 어떤 것을 제일 원하시던가요.
이현만: 대부분이 군수상에 대해서 얘기하세요. 말이 통하는, 또는 어떤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는 사람. 행사장에만 나타나서 악수만 하고 큰절만 하는 군수 말고요. 저는 현직 군수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개별 단체별로 숙원 사업들도 있어요. 가령 보훈회관이 너무 높이 지어져 있으니 평지로 내려달라든지.
김: 보훈회관이라면 편견일 수도 있겠으나 다소 강성한 분들…
이현만: 네, 저를 찍어주지 않을 분들이죠(웃음). 그런데 그걸 떠나서 저는 보훈회관은 새로 지을 거예요. 지금 너무 가파른 언덕길 위에 회관이 있어요. 보훈가족 분들 연세가 무척 많으신데, 평지로 좀 모실 필요가 있어요.
김: 단순한 선심성 ‘개발’이, 필요한 걸 보완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네요.
이현만: 네. 제가 비록 작년에 그분들하고 크게 싸웠지만, 이건 분명히 필요한 작업이니까.
김: 싸우셨다고요?
이현만: 보훈수당 때문에 좀 크게 갈등이 있었어요. 원래 월 20만 원인데 그걸 월 25만 원으로 올리는 걸 제가 강력하게 반대해가지고 못 올렸어요.
김: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인데, 예산이 있다면 올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이현만: 저는 그게 비겁하다고 생각했어요. 보훈가족 모두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하신 영웅들이잖아요. 그런데 강원도에 살면 영웅 대우를 덜 받고, 기장군에 살면 영웅 대우를 더 받고. 재정 능력이 떨어지는 지자체에 사시는 게 죄입니까?
김: 그렇지는 않죠.
이현만: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금액적인 부분이 아닌 다른 복지 차원의 일은 지자체의 능력에 맞춰서 도와드리겠다. 그런데 돈을 얼마 더 주고 그런 거는 정말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조건을 내거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화를 내셔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김: 어떤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이제 뻔한 질문들만 남았습니다. 어떤 군수가 되고 싶으신가요.
이현만: 표를 받는 행위는, 표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꿈을 파는 행위이고 꿈을 위탁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4년 뒤에 누군가 저를 떠올리면 ‘아 참 이현만 군수랑 같이 좋은 꿈 꿨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그런 맥락에서 제일 싫은 말은 ‘꿈을 욕망으로 바꾼 사람’ 그런 말은 안 듣고 싶어요. 그 주민들과, 유권자의 소중한 꿈을 잘 관리하고 잘 키워서 잘 돌려드리는, 꿈을 잘 위탁받은 군수로 남고 싶어요.
김: 제가 진행하는 인터뷰에서는 꼭 드리는 질문인데요, 혹시 안 되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현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생각하면 안 되죠. 근데 확률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죠?
김: 그렇죠(웃음).
이현만: 저도 인간인지라 충격이 크겠죠. 버벅거릴 거예요.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비인간적일 것 같아요. 그런데 어쨌거나 기장군을 위해서 저요 하고 손든 사람이잖아요. 손들고 나온 사람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해요. 떨어졌다고 기장을 위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그럼 그 사람은 안 뽑히길 잘한 거죠. 그러니까 안 뽑힌 거예요.
김: 긴 시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현만: 민주주의는 숫자입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를 않습니다. 제가 강단에 있을 때 선거만 되면 항상 말했어요. 투표하러 가라. 여당 야당 상관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요, 20대의 투표율이 70% 이렇게 나오면요, 모든 정치인이 20대 앞에서 알랑방귀를 뀝니다. 왜? 거기가 투표율이 제일 높기 때문이죠.
김: 본인 어필을 하시라고 만든 질문인데(말잇못).
이현만: 아, 그런가요(웃음). 군민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지역을 좀 더 발전시키고, 우리 사회에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또는 우리 군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를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발품을 좀 파셔서 꼭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라도 좋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