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하루에 몇 시간 주무세요?
김진숙(서울특별시장 후보): 네다섯 시간쯤.
리: 일할 때랑 정치할 때랑 어떤 게 더 행복하세요? 다시 홈플러스로 돌아가고 싶진 않으세요?
김진숙: (웃음) 언젠간 다시 돌아갈 수도 있죠. 일할 때 생각도 많이 나긴 해요. 이제 저는 시작이잖아요. 정치를 시작한 지 정말 얼마 안 됐어요. 주로 노조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요.
내가 민중당을 선택한 이유
리: 왜 많은 진보정당 중에 민중당을 선택하셨어요?
김진숙: 먼저 민중당에 대한 소개를 좀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민중당은 작년 촛불 이후에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창당한 당이에요. 창당할 때부터 비정규, 청년, 여성의 당을 표방했어요. 노동 분야에선 마트노조와 학교비정규직노조, 건설노조에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었어요. 비정규직 투쟁을 그만큼 중시한 거죠. 노동 중심을 전면에 내건 당이 사실 민중당밖에 없어요.
리: 혹시 종북 논란 때문에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김진숙: 이제 종북 논란 자체가 없어지고 있잖아요. 종북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이제 국민들이 깨닫고 계신 것 같아요. 남북정상회담 다음날 제가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랑 인터뷰를 했거든요. 시민들이 그때 하신 얘기가 이걸 다시는 되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요새 종북이란 말 누가 쓰나요? 다 평화통일을 얘기하죠.
리: 그런데 어떻게 민중당 후보로 선출되게 되셨나요?
김진숙: 서울시장 후보는 당내 경선으로 선출했는데요, 그때 저와 이상규 전 국회의원이 출마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중당 당원 중엔 비정규직 노동자들, 생애 첫 진보정당에 가입한 분들이 많으세요. 촛불의 교훈이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거잖아요. 그런 열망이 비정규직 노동자 김진숙에 대한 지지로 표출된 거죠.
리: 그래서 어떻게 후보가 되신 건가요?
김진숙: 저희 당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정규, 청년, 여성의 당을 표방하고 있는데, 제가 바로 비정규, 청년, 여성의 열악한 삶을 모두 겪은 사람이잖아요.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진보정당답게 정치 주체를 교체하자는 열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리: 이전 통합진보당 활동도 하셨었죠?
김진숙: 10년 전부터 현장에만 있어서 사실 당 활동은 안 했어요. 제가 스물아홉에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했거든요. 아침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하는 날도 많았어요.
백화점 명품관에서 처음 맛본 비정규직의 설움
리: 백화점은 어떠셨어요?
김진숙: 장난 아니었죠. 제가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제가 취업했던 브랜드는 스위스 퍼펙션이라고 굉장히 명품 브랜드였어요. 세럼 크림 두 개에 99만 원 하는 곳.
리: 전혀 모르겠네요(…) 오는 사람들이 얼마 없으면 일하기 편하지 않으세요?
김진숙: 그렇지 않아요. 고객이 안 오면 계속 서 있어야 되거든요. 7cm 되는 구두를 신고 백화점에서 정해놓은 매대 사이에 서 있었어요. 그땐 정말 손님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앉으니까. 제가 6개월도 안 돼서 10kg이 빠졌어요. 하루에 10시간씩 일을 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규제도 심해요. 머리 자르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고, 립스틱이나 화장 상태도 체크하고… 그러다 마트 쪽 화장품이 괜찮단 얘기에 시세이도로 갔다가, 스킨푸드 사장님이 절 잘 봐 줘서 거기 매니저로 갔다가 했죠.
리: 이제 아는 브랜드가 나오네요.
김진숙: 마트에 입점한 협력업체들이 아웃소싱도 있고, 개인 사장도 있고, 본사 직영도 있고 그래요. 저희 매장은 사장님이 나가며 직영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아웃소싱으로 바뀌었어요. 그리되니 최소 인력만 쓰면서, 어떨 때는 아침 10시에 오픈해서 밤 12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리: 월급은 얼마씩 받으셨어요?
김진숙: 제 기억으로는 그때 백화점에서 150만 원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비슷할 거예요. 서비스업종은 거의 최저임금 언저리잖아요. 얼마 전에 저희 서비스연맹 중에 샤넬이 파업을 했어요. 거기도 진짜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이에요. 근속노동이나 숙련노동에 대한 인정이 안 되는 문제가 있죠.
리: 여러 계약 형태를 두루 겪으면서 일해오셨는데, 그에 따른 근로조건 변화도 있었나요?
김진숙: 그때는 제 월급을 주는 사람이 누군지 잘 몰랐어요. 워낙 고용관계가 복잡하니까. 홈플러스든 이마트든 거기 관리자들한테 업무 지시를 더 많이 받거든요. 제 근로조건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그 사람들이죠.
리: 남편이 관두라는 얘기는 안 했나요?
김진숙: 했어요. 자기가 밤에 대리운전이라도 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밤 12시에 들어와서 너무 힘들어하니까. 당시만 해도 홈플러스든 이마트든 관리자들의 갑질이 너무 심했어요. 여성 판매원들에게 쌍욕도 하고 그랬으니까.
리: 무슨 잘못을 했길래 쌍욕을 해요?
김진숙: 뭘 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들 열 받으면. 그때의 모멸감이 너무 컸어요. 참을 수 없어서 동료들한테 우리가 저 사람한테 당했던 걸 글로 쓰자고 했어요. 솔직히 저는 그 사람들이 안 하면 저 혼자라도 쓰려고 했는데, 그 친구들이 다 써줬어요. 제가 스물아홉, 서른이었고, 20대 초반 친구들도 많았어요. 결국 그 사람은 다른 파트로 갔죠. 하지만 그 사람 대신 온 사람도 저희를 함부로 대하는 건 여전했죠.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협력업체 일이 너무 장시간 노동이고 휴일도 별로 없어요. 주5일 근무 하고 싶단 생각 많이 했어요. 홈플러스 직접고용으로 들어가면 주5일 된다 해서, 홈플로스 영등포점에 계산원으로 입사하게 됐어요. 그런데 6개월 계약 4번을 해야 무기계약이 돼요. 6개월째만 되면 재계약 안 될까 봐 불안하고 그랬죠. 무기계약이 되고 2013년 3월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돼요. 노동조합 설립부터 함께한 초기 멤버죠.
국내 최초로 대형마트 노동조합을 설립하다
리: 그건 누가 주도했어요?
김진숙: 제가 주도했죠. 저와 함께 영등포점에서 일하던 다른 동료들도 함께했고요.
리: 영화 〈카트〉의 주인공들을 보는 것 같네요.
김진숙: 〈송곳〉의 최규석 작가님도 작업하시기 전에 저와 인터뷰 하시고 그랬었어요. 원래 홈플러스가 삼성 테스코라 노조 만들기가 어려웠는데, 저희가 처음에 10명 모였거든요. 그때는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몰랐어요. 민주노총이나 서비스연맹에 상담하러 갔을 때도 유통 쪽은 쉽지 않다고 그랬거든요.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800명이 일하는데, 그중 500-600명은 협력업체고 직접고용은 200명이에요. 정규직은 30명이에요. 노조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죠. 이름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시작했던 건데, 다행히 잘 됐죠.
리: 어떤 과정을 거치셨던 거예요?
김진숙: 노조 만들 때 저희가 세 가지를 요구했어요. 먼저 연장 근무 시 연장근무수당을 달라는 거였어요. 맨날 연장근무하고, 빨간 날에도 일하는데 계약서에 명시된 날만큼만 돈을 줬어요. 두 번째는 감정노동 문제였어요. 갑질이 너무 심했는데 회사는 보호해주지 않았어요. 고객이 반성문 쓰라 그러면 반성문 쓰기도 하고, 주차장 가서 무릎 꿇은 동료도 있었어요. 세 번째는 관리자들의 갑질 문제였어요. 이 세 가지 요구를 가지고 노동조합 설립 선포를 했는데 첫날 100명 넘게 가입했어요.
리: 영등포점에서만요?
김진숙: 아니요, 전국적으로요. 저희가 문자를 다 뿌렸어요. 그런데 문자를 받는 순간 온라인으로 가입한 분들이 많았어요. 사흘 뒤 저희가 설립선포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땐 300명 넘게 가입을 했어요.
리: 사측에서 압박하진 않았나요?
김진숙: 회사에서 손은 못 댔어요. 초반부터 많이 들어와서 그랬던 거 같아요. 근데 문제가, 교섭을 시작하니 저희를 완전히 무시했죠.
파업 직전에야 겨우 체결된 단체협약
리: 회사의 교섭 태도는 어땠나요?
김진숙: 저희가 처음 교섭요구안에 100개가 넘는 안건을 넣었는데 회사가 다 안 된다고 그랬어요. 홈플러스가 원래 삼성 테스코였다가, 삼성이 빠지고 100% 영국 테스코 자본이 되었어요. 그래서 영국 핑계를 많이 댔죠. 대형마트가 어렵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그런데 전국에서 상경파업 준비하니까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단체협약을 통해 감정노동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고객이 진상을 부리고 폭언을 하면 그 자리를 피하고 거부할 수 있다는.
리: 어떻게 조직했어요?
김진숙: 억눌려 왔던 것의 반작용이었던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3월에 설립하고 12월에 쟁의파업을 했는데, 그때 조합원이 1,000명이었어요. 점포마다 지부를 세웠어요. 지부장님들은 서울에 올라오셔서 노동삼권에 대한 교육도 받으시고 그랬죠.
리: 회사 측에서 불이익을 준 건 없었나요?
김진숙: 강릉 같은 경우엔 지부장님이나 주요 간부 했던 분들이 사은품을 가져갔다고 해서 해고하기도 했어요. 부산에서도 계약해지가 있었고 북수원 지부장님에 대한 해고도 있었죠. 그런데 그 세 개 다 승소했어요. 저희 첫 단체협약이 파업준비 다 하고 서울 올라오려고 하는 날 새벽에 체결됐어요.
리: 단체협약으로 무엇을 얻었나요?
김진숙: 점오 계약을 폐지했어요. 30분이나 10분 단위로 쪼개서 임금을 착취하는 거였죠. 그리고 감정노동자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따냈어요. 고객이 진상을 부리면 그 자리를 거부할 수 있다는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연장수당도 쟁취했죠.
리: 연장 노동만 챙겨도 급여가 확 오를 거 같은데요.
김진숙: 현장 노동자들 입자에서 보면 연장 근무한 만큼 월급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워요. 사실 너무 당연한 건데.
리: 그렇죠. 2011년에 입사해서 2013년에 노조를 만드셨는데, 그동안 많이 참으셨겠어요.
김진숙: 고객 갑질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손으로 안 주고 카드 툭 던지는 거, 사소한 거지만 굉장히 기분 나빠요. 고객한테 맞은 동료들도 있어요. 등수 매기는 것도 있어요. 사무실 가면 패밀리카드 가입 받은 등수, 계산한 스캔 속도 등수, 계산 착오 건수를 붙여 놔요. 정말 이게 사람 미치게 하는 거거든요.
리: 단체협약 이후엔 사람들 실적, 등수 매기는 게 없어졌나요?
김진숙: 그럼요. 고착화된 저임금 문제 빼곤 많은 문제가 개선됐어요. 병가 쓰는 것도 그렇고 진상 고객들한테 대응하는 것도 그렇고. 고객이 막무가내로 하면 그냥 관리자를 부를 수도 있고, 부당할 경우엔 사과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됐죠. 사실 그동안 저희 같은 사람들은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았거든요.
리: 협약 후엔 어떤 활동을 이어갔나요?
김진숙: 단체협약은 2년에 한 번 하고 임금협상은 1년에 한 번 해요. 그런데 단체협약을 맺어도 시행까진 많은 싸움이 필요해요. 신고받고, 점포 다니면서 점장들이랑 계속 싸웠죠. 그러다가 2015년엔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죠. 그런 활동을 주로 하다 보니 당내 인지도는 낮지만, 제 지지자분들은 노동자가 직접 정치하는 진보정치의 미래라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직접정치야 말로 새로운 진보정치의 미래
리: 사실 엄밀히 말해 승리할 수 있는 선거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본인이 반드시 나가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요?
김진숙: 진보정치의 새로운 발전 동력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진보정치의 의제는 다 비슷해요. 이걸 누구의 힘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의 차이거든요. 김진숙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는 건 직접정치에 대한 가능성과 화두를 던지는 의미가 있는 거죠. 기업가 관료 출신, 소수 기득권을 대변하는 그들이 정치해서 잘했다고 생각하시냐 묻고 싶어요. 이제 특별한 사람들이 정치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봐요.
리: 근데 사실 평범한 사람이 노조 만들긴 힘들죠…
김진숙: 그렇죠. 그런 구조적 문제가 있어요. 노동조합 조직률만 높아져도 정치적으로 예민해지거든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자기 권리를 말하는 것도 두려워하죠. 이걸 바꾸지 않으면 정치의 주인으로 나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 일하는 사람들이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이번 서울 시장 후보로 나오면서 노조 조직을 지원하는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어요. 모든 시와 구에 노동조합설립지원과를 만들어 노동조합 설립을 돕는 거죠.
리: 또 그 밖의 정책으로 강하게 내세운 건 뭐가 있나요?
김진숙: 아까부터 제가 계속 직접정치를 말씀드렸는데, 이를 위해 노동자시민 1,000인 직접정치 회의를 설립하려고 해요. 최근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보면, 결국 몇 사람이 방망이 두드려서 결정해버렸잖아요. 몇몇 관료가 정책이나 인사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계급 계층 구성을 반영한 시민들이 모여서 서울시정의 주요 예산, 정책, 인사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직접정치를 시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을 위한 신고센터를 설립하는 거예요. 노동하며 사는 대다수의 시민이 자기 일터에서 주인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에요. 서울부터 그 모범을 보여가고 싶어요. 또 서울시에 있는 공공부문부터 차별 없이 정규직화하고, 생활임금조례를 통해 생활임금을 지급하려고 해요.
차별 없는 서울을 꿈꾸며
리: 현재 홈플러스 외 다른 마트에도 노조가 있나요?
김진숙: 네. 이마트랑 롯데마트도 있어요. 전에는 협력업체들은 노조 가입을 못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산별로 전환을 했어요. 이제 중소형 마트에서도 노동조합이 생기고 있어요. 전국 마트 노동자가 50만이거든요. 이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운동이 시작되고 있는 겁니다.
리: 산별노조까지 시작했으니 뿌듯하시겠어요.
김진숙: 제일 좋은 게 협력업체 직원들이 기댈 우산이 생겼다는 거예요. 제가 그 생활을 해봤으니까 그 맘을 잘 알죠. 얼마 전에 토론회 나가느라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갔는데, 제가 명함을 드리니까 그분께서 한참을 하소연하시더라고요. 아직 바꿔나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거죠.
리: 선거운동 하시면서 시민들은 많이 만나보셨어요?
김진숙: 네, 제가 광화문 광장이나 공원에 시민들 만나러 가면 명함만 뿌리는 게 아니라 정책제안 운동을 하거든요. 며칠 전에는 공교롭게도 여성 네 분께서 모두 연이어 같은 말씀을 하는 걸 들었어요. 아직까지 면접 볼 때 결혼 할 거냐, 결혼하면 출산계획은 있냐 하는 걸 묻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동료들을 봐도 육아휴직 못 쓰는 걸 너무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요. 한 분은 자긴 아직 미혼인데, 주변에 동료들이 육아휴직 못 쓰고 갓난아이 두고 일하러 나오는 걸 보니까 너무 무섭다고도 하고.
리: 문제가 참 심각하네요.
김진숙: 저도 깜짝 놀랐어요. 성차별 문제가 조금 나아진 줄 알았는데 전혀 나아진 게 없는 상황인 거죠. 저는 육아휴직 6개월 하고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그때도 마음이 너무 안 좋았거든요. 그런데 어린이집에 가보니까 백일부터 온 애들도 있더라고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이 아직까지 유의미한 것 같아요.
리: 정말 쉽지 않은 문제네요.
김진숙: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이 그런 거죠. 기업들에 대한 교육도 시급해요. 저는 모든 기업하는 사람들이 근로기준법과 노동인권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로기준법을 어겨도 처벌도 미약하고, 판결이 나오는 것도 너무 오래 걸려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죠.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를 정부가 전면적으로 내걸어야 한다고 봐요.
사회적 약자일수록 정치가 필요하다
리: 몇 프로 정도 득표 예상하세요?
김진숙: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웃음).
리: 그럼 몇 프로 받으면 만족하실 것 같아요?
김진숙: 제가 숫자 개념이 약해서… 저는 이번에 김진숙에게 던지는 표는 저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 서민이 제일 귀한 사람이라 내세워주는 정치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는 늘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이었잖아요. 어쩌면 정치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에요. 그 사람들이 정치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니까요.
리: 〈송곳〉은 보셨죠? 실제로 비교해보면 어떠세요?
김진숙: 〈송곳〉도 있지만 〈카트〉도 있잖아요. 그때 기자분들하고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기자들이 실제로도 그 정도냐고 물어봐요.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거죠. 근데 저희는 그게 너무 약하다고 느끼거든요. 조합원 언니들은 평균 연령이 50대 중반이고, 관리자들은 주로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자들이에요. 어느 지점에 있는 수산 매장에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수산 매장이니까 물기가 많잖아요. 젊은 관리자가 근처 테이블에 앉더니 자기 발밑에 있는 물을 닦으라고 시킨 거예요. 그럼 그 밑에 기어들어 가서 닦아야 되는데 얼마나 이게 모욕적이에요. 남자 같은 경우는 관리자들한테 조인트 까이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면서 또 손님들한테는 활짝 웃으면서 맞이하길 강요하고.
저희 조합원들이 노조 만들어서 너무 좋다고 하는 게 뭐냐면 그동안엔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니까 내가 힘이 있는 존재구나, 하는 걸 깨달아서 좋대요.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거죠. 내가 목소리를 내면 바뀔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도 갖게 되고요. 목소리를 내고 바꾸겠다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정치를 시작하는 거잖아요. 저는 저희 조합원들이 그런 마음을 느끼게 되었듯이 모든 서울 시민들도 그런 삶의 변화를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바로 제가 만들고 싶은 서울의 모습이에요.
데이터 시각화로 알아보는 ‘서울시’
“해당 기사에 사용된 데이터 시각화는 뉴스젤리의 시각화 솔루션 DAISY를 이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