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지지율이 높게 나오니까 기분이 어떠십니까?
송철호(울산광역시장 후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서 워낙 잘해줘서 덕 보는 거죠.
리: 문재인 대통령이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부르신다고요?
송철호: 오랜 세월 그래왔죠. 그러나 동지의 관계라는 것이 더 맞겠죠.
리: 노무현 대통령과는 서로 어떻게 부르셨어요?
송철호: 변호사 일로 만났을 때는 변호사님, 선배님이라고 하다가 소주 한잔하면 형님이라고 했죠. 역시 동지 관계이었습니다.
리: 노 대통령은 반말하고요?
송철호: 그렇죠. 제가 연배가 아래이니까요..
리: 진짜요? 사실 두 분이 호형호제하거나 말 놓거나 그런 걸 잘 안 하는 스타일이더라고요.
송철호: 노 대통령이 저한테는 되게 편하게 대하셨죠. “송변!” 이러시면서요. 물어보시니까 생각난 건데, 1988년에 현대중공업이 대규모 파업을 했었어요. 지금 선거사무실 있는 이 빌딩 1층이 그때도 제 사무실이었는데,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송변! 나 오늘 한 껀 하고 왔다! 구속될지 모른데이!” 이러시는 거예요. “아니, 뭡니까?” “아, 내 지금 현대중공업 파업현장에 가서 연설하고 왔데이!” 이러시는 거예요. 그때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 또 말로만 하지 말고 악법은 국민의 손으로 철폐시켜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제3자 개입 금지 조항 위반이라고 어용노조에서 고소하기도 했었죠.
리: 뭐 때문에 그렇게 친해진 거죠?
송철호: 결국 일 때문이죠. 시위하다 잡힌 학생들, 노동자들 변론하는 걸 변호사들이 별로 안 하려고 했어요. 좀 으스스하기도 하고, 돈도 안 됐죠.
리: 노 대통령은 그래도 스스로 세무 변호사로 돈 많이 벌고 이거 했다고 쿨하게 이야기했는데, 후보님은 어떠세요?
송철호: 저는 그냥 계속 떨어지면서 사무실 월급 메꾸느라 전전긍긍했죠. 그때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이셨어요. 되게 부럽더라고요. 국회의원도 하고, 해수부 장관도 하는데 나는 떨어지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이 들었죠.
선거에 8번 떨어졌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리: 그러면 1988년에 부산에서 국회의원 당선될 때 좀 같이 나가시지 그러셨어요.
송철호: 그때는 안 나갔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운이 좋게도 김영삼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서 나왔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 김영삼 대통령을 안 좋아했고, 김대중 대통령을 좀 더 좋아했어요. 그런데 DJ한테 붙으면 여기에서는 빨갱이 소리 들을 때였으니까요. 그러고 1992년에 총선 출마했을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꼬마민주당을 이끌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신민주연합당이랑 합당하면서 저도 거기에 합류하게 됐죠.
리: 이번에 대구 임대윤 시장 후보도 뵙고 왔는데, ‘참 노 대통령이 사람 여럿 망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험지에 사람 막 나가라고 하고…
송철호: 그러니까요. 그때 임대윤도 같이 1992년에 대구에서 출마했었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같이 출마하자고 한 사람들이 다 떨어졌어요. 미안하니까 ‘일요회’라는 걸 만들자고 하더라고요. 영남지역에서 계속 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어요.
리: 멤버는 누구누구 있었어요?
송철호: 지금 기억나는 게 노무현, 이강철, 송철호, 김진태, 임대윤. 아, 조경태도 있었어요.
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빠져나갔네요.
송철호: 그렇죠. 잘 빠져나갔죠. 사실 노무현 대통령 덕에 국회의원 됐었죠. 조경태, 배갑상 등등도 있었는데 하여튼 출세한 사람은 조경태밖에 없어요.
리: 뭐,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 됐잖아요.
송철호: 그건 그렇죠. 한번은 노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고 나서, 해수부 사무실 근처에서 소주 산다고 일요회를 불렀어요. 맨날 떨어지는 촌놈들이 서울 고깃집에 모인 거죠. 그 날 제가 물었어요. “선배님, 아니 형, 형은 우째 버텨내는교? 나는 선거 떨어지면 막 술 먹고 취해서 곯아떨어졌다가 그다음 날 되면 변호사 가방에 먼지 톡톡 털고, 이게 내 살길이다… 이러면서 바로 법원 가서, 그래서 법정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저 사람 엊그제 떨어졌는데 금방 나타났네?’ 이러는데”.
리: 회복이 빠르신 건가요, 돈이 없으셨던 건가요…
송철호: 돈이 없는 거죠. 안 그러면 먹고살 길이 없으니까… “내는 그렇게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떨어지는 걸 보면 형이나, 나나 비슷한데, 신기한 거는 형은 막 지방자치연구소 이런 것도 만들고, 전국단위로 활동을 하잖아요? 그 재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이렇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딱 그러는 거예요 “송변은 부산고등학교 나왔고, 나는 부산상고 아이가? 내는 돈을 벌 줄 알고, 송철호는 그걸 모른다 아이가!” 그러면서 “내는 내가 이게 다 돈될끼다 하면 땅도 좀 사노코!” 막 이렇게 자랑을 하는 거예요. (웃음)
리: 사람들을 자리에 앉혀주고 이런 건 전혀 없었나 봐요?
송철호: 그럴 처지는 아니었죠. 그래도 노 대통령이 굉장히 의리가 있어요. 2002년에 대통령 당선되고 얼마 뒤에, 문재인이 함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만나니까 “대통령 당선자께서 형을 꼭 서울에 일자리를 하나 마련해주라고 하십니다.” 한 여덟 명 이름 적어주면서 이 사람들을 꼭 서울에 데려오라고 했다는 거예요.
리: 진짜 고마웠겠네요.
송철호: 고마웠죠. 고마웠는데 또 한편으로는 걱정됐죠. 괜히 잡음 만드는 거고 누가 될 것 같아서 싫다고 했죠. 그러니까 문재인 변호사가 그러니까 집에 가서 생각 좀 해보고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고 하고, 3일 후에 만났는데…
리: 그렇게 해서 서울에…
송철호: 안 갔어요. 못 가겠다고 했어요. 사실 그때 대통령 당선자께서 신당을 만들고 싶어 하시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죠. 나는 지금 서울 가면 말썽난다. 대통령께 누만 된다. 내가 오히려 대통령을 위해서 더 지역에서 해야 될 일이 있다. 내가 영남지역에서 다니면서 신당 체계 잡고, 인재 발굴하고 그런 역할을 우선 좀 하는 게 좋겠다고 했죠. 그래서 이강철하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강길부 의원 발굴하고, 울산시당 위원장으로 활동했죠. 초기에는 열린우리당 인기가 정말 좋았는데, 이후에 민심을 얻는 데 실패했어요. 그렇게 2004년 국회의원 선거까지 치르고 난 후에야 2005년 초에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 서울에 올라가게 됐죠.
친구들의 뒤처리분과위원장에서 국민들의 고충처리위원장으로
리: 상당히 늦게 올라가셨네요? 청와대 가보니까 어떠셨어요?
송철호: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장 주시고는 “송 위원장, 미안해.” 이러시더라고요.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골치 아픈 곳이야. 맨날 남의 민원이나 들어줘야 되고. 기관도 작년 정부업무평가에서 19개 다군 기관 중 꼴등이야.”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원래 제 별명이 ‘뒤처리분과 위원장’이라고, 제 적성에 딱 맞는 자리입니다”. 그래도 위원장 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힘을 많이 실어주시고 도와주셨죠.
리: 거기에서 제일 뿌듯했던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송철호: 안 풀리던 민원들을 시원하게 해결한 일들이 제법 많았는데, 한번은 여권 관련 민원을 해결했어요. 국방부와 외교부가 가장 민원 처리가 어려운 부서 중 하나였거든요. 말레이시아에서 사업하는 한 교포가 넣은 민원이었는데, 외국인에게는 여권이 곧 신분증이잖아요? 그러면 여권으로 은행 거래를 하니, 여권 번호로 그 사람의 신용이 쌓이거든요. 그런데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면 출입국 도장, 비자 찍는 칸이 금방 꽉 차요. 그러면 여권을 재발급받아야 되는데, 그러면 여권 번호가 바뀌는 거예요.
리: 어이구, 세상에. 그럼 다 처음부터 해야 되는 거잖아요.
송철호: 그렇죠. 완전히 처음 거래하는 것처럼 되는 거예요. 여권을 새로 발급받으면서 여권 번호를 안 바꾸는 건 국제 협약상 어려워서, 새로운 여권에 구 여권 번호를 인쇄해 같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제도를 도입했어요. 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 거예요.
리: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까 신나게 일하신 것 같네요.
송철호: 굉장히 신나게 일했어요. 업무평가에서 꼴등이던 게 2년 뒤에는 1등이 됐어요. 사기도 엄청나게 올라갔죠. 직원들이 생전 처음으로 공무원 할 맛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리: 직접 KTX를 유치하셨다고 주장하시던데요.
송철호: 1990년 6월에 노태우 대통령이 고속철도를 만들어서 1시간 58분 만에 서울에서 부산을 주파하겠다고 발표했어요. 그런데 그때 계획노선도에 울산역이 없었어요. 그래서 1995년부터 제가 같이 시민운동을 벌여서 울산역을 만들어야 된다고 항의하고 서명받고 청원서 내고 그랬죠. 김영삼, 김대중 모두 안 받아줬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광역시인데 고속철도역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거들어주시면서 생긴 거죠.
리: 시장선거 나가셨을 때 써먹지 그러셨어요.
송철호: 이거 다 썼어요. 그런데 별로 안 먹히더라고요(웃음). 아직 구색은 많이 안 갖춰져 있는데, 울산 발전을 위한 디딤돌 하나를 놓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복합환승센터 같은 역세권 개발도 진행되고 있고요.
리: 청와대 생활 상당히 재미나게 하셨을 것 같은데, 마무리는 좀 씁쓸했죠?
송철호: 2007년 대선 전에, 국무회의를 마치고 다들 나가는데 대통령이 뒤를 쓱 보더니 저보고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독대를 하게 됐죠. 거기서 하신 말씀이 “어이, 송 위원장. 정동영이 저거 어떻게 해?” 하시는 거예요.
리: 그 정도로 싫어하셨어요…?
송철호: 그래서 “끌어안으셔야죠” 했죠. “나는 저 친구 싫어. 우리 당도 깨버리고 말이야. 아주 싫어. 가시가 많아, 내가 안기에는 너무 가시가 많아.” 그러세요. “가시 툭툭 털어버리고 그냥 못 이기는 척 안아버리십쇼” 하니까, “당신은 속도 좋아. 내가 무슨 재주로 저 친구 도와주겠어?” 하시는 거예요. 그때 싹 머리를 스친 게, ‘대통령이 뭔가 도와주고 싶은데 생색낼 방법이 없으시구나’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보냈다고 하면서 도와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했죠. 그러니까 딱 보시면서 “당신은 맨날 그렇게 속 좋은 소리나 해!”
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굴에는 화색이 좀 도셨겠네요.
송철호: 네, 그렇죠. 참 좋아하셨어요. 말씀은 그러시면서도 얼굴은 좀 피셨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제가 11월 초에 업무로 국제옴부즈만회의가 있는데, 그거 마치고 돌아오는 사표를 내겠습니다. 그러고 정동영에게 연락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나를 보내서라도 좀 돕고자 하신다. 영남권에 사람 필요할 텐데 내가 가서 돕겠다.” 그렇게 울산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이 됐죠.
리: 캠프는 어땠어요?
송철호: 아주 고생했어요. 청와대 나와서 막판에 한 달 정도 뛰었는데, 막 사람들이 욕을 하는 거예요. 지지연설하는 중에 “야, 이 새끼야!” 이러고… 그때는 진짜 모래밭에 처박히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어려웠죠.
리: 2008년 선거도 나가셨나요?
송철호: 엄두가 안 났어요. 그때 울산시당이 유지가 안 될 정도였어요. 제가 밥값을 다 대야 할 형편이었고. 정동영 후보 쪽에서 비례대표로 한 번 밀어보겠다고 연락이 와서 신청은 했는데 그것도 안 됐죠.
포기했던 정치, 하지만 다시 해야만 했던 이유
리: 그러다 2009년이 왔죠…
송철호: 2009년… 그때는 정말 이제 완전히 정치를 마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통령과의 의리 때문에 2007년에 사표 내고 나와서 선거운동하고 그랬는데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니까 내가 정치를 계속해야 되나… 노무현 대통령은 계속 싸우자고 하시긴 했는데 돌아가시니까 같이 손잡고 갈 사람도 없고…
리: 억울하지 않았어요?
송철호: 억울하지만 저도 가족이 있잖아요. 이미 시장 2번, 국회의원 3번, 5번이나 떨어졌고 대선도 떨어졌으니까 가족들의 저항이 아주 심했죠. 집사람이 송철호가 다시 정치할 마음이 없다는 걸 보여달라고, 그래서 부산 정관읍으로 이사를 했어요.
리: 그래도 평생을 건 싸움이었는데, 싸움에서 진 것 같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송철호: 물론 그렇죠. 그런데 더 이상 할 엄두가 안 나고 형편도 안 됐어요.
리: 그러다 어떻게 복귀하게 된 건가요? 문 대통령과 함께 호출된 건가요?
송철호: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호철한테 전화가 왔어요. 문재인 변호사가 조용히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어요. 그게 2011년이었어요. “형, 운명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저와 형하고 김두관 도지사가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셋이서 낙동강 전선을 펼치는 기자회견을 합시다” 이러는 거예요. 과거 낙동강에서 우리 민주주의를 사수했듯이, 또 한 번 민주주의를 위한 전선을 펼치자는 뜻이었죠.
리: 문 대통령이 어쩌다 그렇게 뜻을 굳혔던 거예요?
송철호: 야권 원로들이 누가 박근혜하고 대선에서 맞붙을 수 있을까, 결론 내린 게 문재인이었던 거죠. 그분들이 내려와서 진짜 주리를 틀었어요. 어쩔 수 없이 정치로 나서도록 물고 늘어진 거예요. 그때가 제가 정치 그만두겠다고 울산 떠난 지 이제 넉 달 됐을 때였죠.
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송철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 집에 또 선언을 했어야겠네요.
송철호: 그래도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다시 울산으로 복귀해서 2012년 총선을 치렀죠. 그 후로도 3번 연속으로 떨어졌어요. 2014년 재보궐선거, 2016년 총선 다 떨어졌죠.
리: 사실 본인은 많이 떨어져 보셨으니 괜찮았을 것 같은데, 2012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떨어졌을 때는 어떠셨어요?
송철호: 뭐… 형언할 수가 없죠.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요. 사실은 그때 다들 이길 줄 알았어요. 바람도 불고 있었고, 사실 댓글 사건 같은 것들만 아니었으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해요.
리: 그런데 사실 그나마 문재인이니까 그만큼 따라잡은 거지, 원래 차이가 엄청 심했잖아요. 왜 다들 이길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송철호: 문재인이니까 이길 거라고 본 거죠. 문재인의 이미지가 워낙 좋았으니까요. 저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아주 깊어요. 나이로는 제가 선배지만 성숙한 면, 진지한 면, 또 늘 성의를 다하는 자세 같은 건 늘 제가 배웠어요.
리: 노무현 대통령이랑 셋이 거의 트로이카로 뛰셨는데, 다들 스타일이 어떤가요?
송철호: 노무현 대통령은 저돌적이고, 창의력이 강하셨죠. 그래서 가끔은 난감한 일도 있었어요. 이부영, 김근태 이런 분들과 함께했던 민주개혁정치모임이라고 있었는데, 회의를 하다가 수틀리면 혼자 가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이강철하고 전 “화난다고 가버리면 우리는 우짜노…” 하고 벙쪄있고… 그런 불같은 사람이었죠. 문변은 정말 냉정해요. 화낸 적이 없어요. 화가 안 나는 건 아닌데, 화가 나도 혼자 삭히는 거죠.
리: 노 대통령은 강속구를 막 뿌리는 투수였고, 문 대통령은 포수고, 본인은 외야수라고 쓰신 글이 있던데 그건 대체 무슨 의미죠?
송철호: 외야수라는 게 그렇잖아요? 늘 투수가 공 제대로 던지나 걱정하고… 폭투는 안 하나 걱정하고… 포수가 지시하면 따르고, 저한테 공이 날아오면 급히 달려가서 잡고.
리: 문 대통령이 1선 수습이고, 본인은 2선 수습 그런 거군요?
송철호: 그런 셈이죠. 투수가 막 폭투를 해요. 그러면 포수가 난감하잖아요. 그런데 문변은 그걸 다 참았어요. 그래서 다들 “아니, 비서실장님. 신부나 하시지 왜 이런 고생을 하십니까?” 이랬죠.
지금도 그렇죠. 북미대화 조율도 그렇고, 예전에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광화문에서 단식할 때 문 대통령이 같이 단식한 적이 있었잖아요. 저는 반대했어요. 단식이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끝내는 건 더 어렵거든요. 제가 그거 잘못하면 큰일 난다고 말렸더니, “가서 깊게 생각해보고 내일 행동하겠습니다” 이랬는데… 다음날 딱 단식에 들어가 버렸어요.
리: 독한 사람이네요…
송철호: 그런데 얼마나 그때 언론에서 문 대통령을 욕했어요.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선동하고 있다고… 정말 사람 목숨 살리려는 생각만으로 가신 거였어요. 김영오 씨가 설득 안 당하면 같이 붙들릴 수도 있다고 말렸는데도 각오하고 가신 거예요. 그런데 언론에서 욕하니까 정말 저도 힘들었죠.
리: 그래도 문재인 의원은 결국 대통령이 됐는데… 후보님은 아직까지 당선 못 되고 지내고 계시네요. 이번에 떨어지면 정말 은퇴하시나요?
송철호: 뭘 했어야 은퇴하죠.
리: 그건 그렇네요(…)
송철호: 사실 예전에 한 번 은퇴 선언을 생각했는데 뭐, 쥐뿔이나 한 게 있어야 은퇴선언을 하죠. 이번에 떨어지면 그냥 조용히 사라지게 될 거예요.
리: 이번 선거 나오는 걸 가장 많이 밀었던 사람은 누구예요?
송철호: 저는 문 대통령이, 저와 이야기는 안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제일 바라고 있는 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리: 언제부터 반말 안 쓰고 존댓말 쓰세요?
송철호: 아, 저는 늘 존댓말 썼어요. 저한테 형이라고 하긴 했지만 늘 제가 존중하고 존댓말 썼어요. 대통령 후보 나갈 때는 “제가 대통령 하려고 하지 마세요. 지도자 하려고 하세요”라고 조언했죠.
리: 본인도 시장이 아니라 지도자가 되셔야 할텐데…
송철호: (웃음)
촛불 혁명의 완수를 위한 선택, 울산시장 송철호
리: 왜 또 나오신 거예요?
송철호: 제가 되는 게 문 대통령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은 게 마음에서 가장 큰 거죠.
리: 어떤 도움이 될까요? 2012년에 말했던 낙동강 전선을 만드는 건가요?
송철호: 그런 거죠. 촛불혁명에 의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했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지역에서는 아직 촛불혁명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봐요. 여전히 여기는 구태의연한 지역 정서에 기대는 민주주의가 지배하고 있죠. 사실 여기서 민주당 시의원이나 구의원이 나온 적이 없어요. 비례는 있어도, 지역구는 없죠.
리: 그 정도면 거의 TK급 아닌가요?
송철호: 여기가 TK 바로 옆에 붙어있잖아요. 그런 데다가 정치 지형은 또 야권이 분열되니까 민주당이 늘 3당인 거예요. 부산이나 경남보다 훨씬 더 어려워요.
리: TK 쪽에서도 바뀌어야 한다, 빨간 옷만 입고 나오면 다 찍어주니까 고인물 대잔치가 되어서 행정 쪽에서 발전이 없다, 그런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긴 시간 동안 바뀌지 않은 게 뭐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송철호: 지역 정서에 기댄 일당 독재가 수십 년간 그대로 이어져 왔죠. 여기가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원주민은 20%가 안 돼요. 그런데 그분들이 부와 정보, 자리를 전부 독점하고 있어요. 외지인들에게는 중요한 자리는 안 내줘요. 뜨내기 취급하며 철저히 낙마시키죠. 부산과는 다르죠. 부산은 허남식 시장도 의령 출신에 마산고 나왔고, 지금 서병수 시장도 울주군 출신이거든요.
리: 그래서 이번에 교체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요?
송철호: 교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대로 가는 거죠. 원주민을 포함해 외지에서 온 사람들도 함께하는 통합도시로 가는 단초가 열리는 거죠.
리: 그게 열리면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요?
송철호: 외지인들도 시민의식이 강화되고, 참여민주주의도 폭을 많이 넓힐 테고요. 노동자들의 시정 참여 기회가 늘어나며 노사관계도 나아질 거예요.
리: 사실 노동자라고 해도 계층이 다양하잖아요. 흔히 귀족노조라고 욕먹는 사람들도 있고, 또 협력업체, 하청도 많고, 마트 비정규직도 있고 그런데…
송철호: 노동계층의 분화가 제일 심각하죠. 그래서 계층별로 적절한 맞춤형 케어가 필요한 측면이 있어요. 대기업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생활 여건이 갖춰져 있어요. 이제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에서도 대기업 노조와 같이 협치할 방안을 생각하고 있어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한계 기업 노동자들을 위한 보장기금도 마련하고, 일자리도 함께 해결하는 거죠. 기업, 노동자, 시 모두 같이 가야 해요.
또 시에서는 기업도 잘 되고, 노동자들도 잘될 수 있도록 난제들을 해결해줘야 하고요. 실제로 예를 들면, 울산에 무림피앤피라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종이 펄프를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이 펄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바이오에너지원이 나와요. 이게 외국에서는 다 신재생 에너지로 인정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인정이 안 되고 있어요. 이런 걸 시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주는 역할도 해야죠.
리: 또 다른 개발 공약이라던가 하는 게 있을까요?
송철호: 지금 울산이 교통 문제가 심각해요. 그래서 트램 전철을 도입하려고 해요. 옛날식 중전철은 굉장히 공사비가 비싼데, 트램은 공사비가 1/6밖에 안 해요. 지금 버스의 교통 분담률이 17% 정도밖에 안 돼요. 버스를 더 늘리기에는 재원도 많이 들고, 지금도 시민들이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 형편이니까 트램 도입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리: 복지 측면에서는 생각하고 계신 게 있나요?
송철호: 사실 복지는 울산의 원래 예산 형편을 생각하면 별로 어렵지 않아요. 다만 지금은 지방분권, 균형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높은 국세 부담비율 때문에 어렵죠. 그래서 지방자치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리: 이번에 당선되셔서 임기를 마치실 때 시민들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송철호: 울산을 지극히 사랑하고, 끝까지 울산 사람으로 남아서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한 사람.
리: 참 네거티브를 많이 당하시더니 굉장히 모범적인 답변이…
송철호: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래요. 저는 지금 무슨 권력을 향유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시대적 사명이라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떨어져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죠. 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대단한 승리, 대단한 명예 이런 거에는 관심이 없어요. 최선을 다했으면 그냥 그걸로 된 거죠.
리: 하도 많이 떨어지신 분이라 진정성이 느껴지네요.
송철호: (웃음) 그럼요. 지금까지는 울산 민주세력의 맏형 노릇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울산시민의 맏형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