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정치생활은 오래하셨는데 출마는 왜 이렇게 늦어진거죠?
조광한(남양주시장 후보): 제일 큰 건, 정치를 너무 일찍 시작하면 온 가족이 정치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요. 아이들이 크기 전까지는 정치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두번째로 저는 열린 울타리를 지향해서, 정당 내 파벌에 불편함이 있었어요. 계파의 존재를 존중은 하지만, 사람 중심의 정치를 하고 싶지, 무리 중심의 정치를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리: 그런데 사실 계파에도 엮어야 선거에 나갈 수 있지 않나요?
조광한: 남양주도 외부인이 원주민 커뮤니티에 섞이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당파에 휩쓸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지역위원장 입장에서는 ‘내 사람’이라는 느낌이 안 들 수 있죠. 그래도 자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적이라고 볼 수 있죠.
기적의 시작, 그리고 기적의 아픔을 지켜본 남자
리: 기적이라고 하니, 사실 2002년 대선의 기적을 만든 주역 중 한명이라고 불리던데요. 사실인가요?
조광한: 그렇죠. 자갈치 아지매 찬조연설을 제가 기획했어요. 우리나라 선거의 기본적인 프레임을 바꾼 아이템이었죠. 대통령 후보 찬조연설은 유명한 사람 위주로 해요. 실패할까 봐. 다들 단일화의 주역이니 정몽준을 내세워야 한다고 하는 걸 제가 물리쳤어요. 첫 연설자를 유명인이 아닌 시민이 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어요.
사실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고, 외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정치현상이 국민들과 눈높이를 못 맞추고 있어요. 지금 유일하게 맞추고 있는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에요. 그래서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거죠.
제가 대통령들을 가까이 보면서 느낀 게, 대통령이 되는 순간 다들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게 아니라 역사와 대화를 하려고 해요. 자신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그렇지 않아요.
리: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 처음 만나셨어요?
조광한: 90년부터 알았어요. 3당합당 이후에 꼬마민주당이 만들어졌을 때 거기 당직자로 가게 되면서 알게 됐죠.
리: 그게 정치 생활의 시작이었나요?
조광한: 사실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는데 한겨레 신문에 ‘민주당에서 당직자를 공채합니다’는 광고가 올라와요. 그걸 보고 전화해서 ‘봉급 줍니까?’ 하니까 준대요. 그래서 원서를 넣었죠.
리: 그때 꼬마민주당은 상황이 별로 안 좋았잖아요? 당직자면 어떤 일을 주로 하셨어요?
조광한: 편집국 부국장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외대학보 기자였거든요. 그렇게 활동을 하다 1년 만에 DJ와 합당을 해요. 그때 이철, 노무현, 장기욱 이 세 분이 저를 밀어서 선전국장이 됐어요.
리: 그때부터 나름 예쁨을 받았나봐요?
조광한: 사실 그 당시 정치권에 계셨던 분들은 반독재투쟁에 익숙하셨어요. 그래서 데모는 많이 해봤어도, 문서작업에 익숙치 않았어요. 저는 무역회사 출신이고 해서 그게 됐거든요. 또 제가 성격이 좀 친화력이 있고 밝은 편이니까 인정을 받고 관심을 받았죠. 그러다 92년에 이기택 대표가 본인 비서관을 해달라고 해서 국회로 갔어요.
리: 의회 보좌관 생활은 어땠나요?
조광한: 정치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어요. 처음 정당에 들어갔을 때는 참 생소한 느낌이었어요. 정당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리: 생소한 느낌이요?
조광한: 정말 독특한 분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 같았어요. 저도 정치를 하다 보면 정치스러운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부담이 늘 있어요. 제가 당선되면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하나의 모범 케이스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리: 사실 사람들이 정치한다고 하면 그것만으로 색안경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조광한: 정성을 다하면 돼요. 바쁘다고 사람 안 만나고, 부재중 전화 떴는데 다시 전화 안 하고, 민원 이야기하는데 건성으로 듣고 대충 아랫사람 시키고, 그러고나서는 책임 다했다고 넘기고, 그러지 않으면 돼요. 사실 기초의원은 몰라도 단체장, 국회의원은 할 일이 너무 많긴 해요. 시간이 잘 안 나죠. 그래도 최대한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정치인 개인은 다 좋아요. 그런데 당의 영역으로 가면 묘하게 달라져요. 지금도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에 대해서 토론다운 토론 한 번 못했잖아요?
리: 그건 야당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조광한: 아뇨, 여야 둘 다 아쉬워요. 물론 야당에 책임소재가 훨씬 더 클 수는 있어요. 사실 수준 이하다 보니까. 하지만 여당이 얼마나 더 노력했는가, 청와대의 정무적 기능을 활용해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할 방법이 없었겠는가… 그런 안타까움이 있어요.
이야기가 자꾸 번지는데, 저는 정무장관을 부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와대 정무수석이 야당하고 대화를 하는 건 청와대의 정치개입이라는 식으로 몰고가요. 정무장관이 국회와 이야기해야 돼요. 그래서 국회와 행정부, 청와대가 같이 유기체적으로 돌아가야 돼요. 저는 정무 1,2 장관이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사실 예산도 별로 많이 안 들어요. 정무 1장관은 여당 담당하고, 정무 2장관은 야당 담당하면 돼요. 그렇게 정부 차원에서 국회에 협조를 요청하는 거예요.
리: 정부에서도 일해보시고, 정당에서도 일해보셨어요. 실제로 이런 갈등을 많이 겪어보셨나요?
조광한: 너무 많이 겪었어요.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 원인 중 하나가 국회 외의 협력 미흡이었다고 봐요.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가 본인의 들러리였죠. 중앙정보부 통해서 약점 잡아서 협박하고, 완전 국회의원을 주물렀어요. 그게 전두환, 노태우 때까지 이어졌고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때는 당신들이 공천 준 분들이었거든요. 그해서 국회에 협력만 당부했지, 진정으로 대화해서 합의를 도출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리: 노무현 대통령은 어떠셨어요?
조광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당신의 진정성을 안 알아주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하셨죠. 그래서 대화가 꼬이게 되고 점점 어긋나기 시작한 거죠.
리: 문재인 대통령은요?
조광한: 문재인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데, 야당이 워낙 수준이 떨어지는 거죠.
리: 원래는 총선에도 한 번 나오려고 하셨었죠?
조광한: 그건,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을 새로운 나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게 기대에 미흡했어요. 엄청난 상처였어요.
리: 노 대통령을 엄청 좋아하셨나봐요.
조광한: 어휴, 우리나라를 구원해 줄 메시아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열심히 했죠. 그런데 언론정책에서 대통령과 저의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났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쪽이었죠. 저는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조중동을 적절하게 관리하면서 가야 한다는 쪽이었어요. 권력이 언론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면 안 돼요. 국민들이 속속들이 알고, 국민들이 스스로 할 때까지 권력은 참아야해요. 그래서 저는 반대했던 거고요.
리: 그런데 지금은 시민들이 알아서 조중동 배격하는 걸 보면 신기하시겠어요.
조광한: 그렇죠. 그래서 지금 많이 바뀌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 참았으면 아마 그때 정리됐을 거에요. 이번 정부도,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에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그룹이 정말 잘해야 합니다
리: 굉장히 비주류 쪽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어떻게 경선을 통과하고 후보가 되신 거죠(…)
조광한: 저는 주류에 저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는 반드시 다양성을 갖춰야 해요. 다양하지 않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획일주의, 전체주의에요. 제가 갖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충성도는 누구 못잖아요. 다만 방법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리: 그런데 사실 소통 파트는 결국 대통령의 의중을 따를 수밖에 없잖아요?
조광한: 대통령이 잘못될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따라요.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무너졌잖아요. 참여정부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들 다 못 이뤘고, 대통령 지지율이 결국에는 10%대로 떨어졌어요.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는 참 아쉬웠어요. 아들한테 “왜 공부를 안 하냐, 내가 너한테 밥을 안 주냐, 다 해주잖아” 이러면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애가 공부를 해요? 옳은 말과, 그게 현실에서 어떻게 운영되느냐는 다른 거에요.
리: 오히려 충성심이 너무 높았던 셈이네요.
조광한: 그럼요. 대통령을 사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른거에요. 제가 남양주시장 후보를 지금 하고 있잖아요,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저를 사랑하는 방식도 다 달라요. 그걸 조화롭게 만드는 게 리더의 일입니다.
리: 참 서거하셨을 때… 힘드셨겠네요. 그 후에 다시 정치로 복귀하신 건가요?
조광한: 정치 안 하고 싶었어요. 2006년에 조지타운대학교에 객원연구원으로 초청받아 갔는데 그냥 아예 이민처럼 눌러앉을 생각이 좀 있었어요. 대한민국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뻔히 보이는데, 국민적 공감대 만드는 게 어려우니까 저항이 거셌고, 내부적으로도 방법에 대한 이견이 너무 컸어요.
리: 그러다가 다시 돌아와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조광한: 2012년에 정세균 국회의장께서 대선후보로 나가셨는데 사람이 좀 부족했어요. 그래서 좀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있고 싶어요. 그 후론 2014년 지방선거 때 김진표 경기도지사 후보 도와드렸고, 최재성 의원이 남양주에서 정치 한 번 해보시라고 권해서 남양주로 오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후보까지 하게 됐네요.
리: 2003년에 청와대 들어가셨을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아셨나요?
조광한: 정확히 따지면 2002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알았죠. 정말 훌륭하신 분이에요. 성품이 탁월하신 분이고요.
리: 2012년 대선하고 2017년 대선까지 쭉 지켜봤잖아요? 어떤 변화가 느껴졌나요?
조광한: 본질은 변하지 않았어요. 정치 환경이 좋아졌죠. 2012년의 정치환경은 어려웠고, 2017년의 정치환경은 굉장히 좋았죠.
리: 사람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조광한: 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워낙 자신의 프레임이 잘 짜여지신 분이고, 지금까지 대통령 중에 가장 성품이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편적 사고를 가지고 계세요. 그게 국민의 보편적 사고와 합치되기 때문에 지금 계속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거죠. 사실 보편적 사고를 갖는 게 중요한데, 또 보편적 사고를 고수하다보면 정치적인 생존이 어려운 아이러니가 있죠.
리: 그 사이에 당도 많은 평지풍파를 겪었는데, 지금의 당은 잘 돌아가잖아요? 어떻게 보시나요?
조광한: 잡음이 덜 날 뿐이죠. 정당의 구조 자체는 별반 다르지 않아요. 다만 지지율이 계속 높고, 북핵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희망이 있으니까 블랙홀처럼 다 빠져있는 거죠. 가장 중요한 개헌 문제는 손도 못 대봤잖아요.
리: 그건 야당이 안 도와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요? 여당에서는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잖아요?
조광한: 글쎄요. 여당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노력했겠죠. 하지만 여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정말로 해야겠다고 몸부림 쳤다는 느낌까지는 안왔어요.
리: 후보님에게는 개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광한: 분권과 완전한 지방 자치. 그러니까 국가구조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에요. 국방개혁 문제, 수사권 조정 문제,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협력관계 내지는 견제관계, 이런 것들이 다 국가구조의 문제에요. 국가구조라는 틀에 지방자치도 들어가죠. 예를 들면 지금은 행정자치만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그러면 교육자치와 경찰자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이야기가 있어야죠.
또, 사실 저는 재난대응군이 필요하다고 봐요. 3만명 정도의 재난대응군이 큰 사고가 발생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서 현장을 봉쇄하고 장악해야 돼요. 모든 지휘체계를 일원화시켜줘야 희생을 줄이고 복구를 빨리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소방방재청이나 해경으로 잘 안 되어왔잖아요. 또 환경관리도 제대로 안 되잖아요? 여기에도 환경보전군 같은 걸 만들어서 환경관리를 일상적으로 하는 거죠.
리: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은 하는데, 군대가 그걸 왜 해야 하죠?
조광한: 국토방위의 하나잖아요. 국토가 건강해야 국민이 건강해지고, 국민이 건강해야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이 늘어나지 않겠어요? 전투하는 국방도 중요하지만, 국민 다수가 우리 공동체를 지켜야한다는 열망을 심어줘야죠. 국방의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는 거죠.
리: 보통 개헌 이야기하면 재정자립도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조광한: 국가구조개편 과정에 국세와 지방세의 세목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다 들어가는 거죠. 그러다보면 행정구조 개편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고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리: 남양주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키워드 몇 개만 꼽아주시겠어요?
조광한: 가장 중요한 건 교통 문제 해결이에요. 철도 교통이요. 남양주는 서울과 경계를 접해있는 도시 중에 도시철도가 없는 유일한 도시에요. 경의중앙선과 경춘선은 국철이지 도시철도가 아니에요. 그래서 7호선이나 분당선을 끌어와서 경춘선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2021년 국가 철도망 계획에 집어넣어야 해요.
리: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을 것 같은데, 진행이 안 된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
조광한: 중앙에 네트워킹이 약했기 때문이에요. 현 시장은 여당이기는 했지만 중앙과 그리 인연이 없어요. 저는 문재인 정부에 참여한 많은 분들과 소통을 해왔잖아요. 그런 걸 토대로 노력을 해야죠.
리: 다른 키워드는 뭐가 있을까요?
조광한: 남양주의 도시 정체성이 부족해요. 도시가 다 나뉘어져 있고 진접, 별내, 마석, 화도 등 다핵 도시라서 통합성이 부족해요. 남양주의 중심축을 만들어줘야 해요.
리: 어디가 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조광한: 진건에서 오남까지가 남양주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죠. 여기에 테크노밸리 같은, 첨단산업 위주의 신산업단지 같은 것을 추진해봐야 해요.
리: 사실 다들 4차 산업 생산단지를 유치하려고 하는데, 남양주가 다른 지역에 비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조광한: 서울에 제일 인접해 있죠. 사실 용인, 성남 같은 남부권은 이미 발달할 대로 발달했잖아요. 그런데 남양주는 거의 그런 변화가 없어요. 수도권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남양주에 그런 투자를 해줘야 할 필요가 있죠.
리: 부지는 좀 많이 비나요?
조광한: 그린벨트가 많아서 그렇지, 땅은 넓잖아요. 그린벨트를 좀 해제하면 충분히 부지를 확보할 수 있죠.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해요. 제가 모델로 삼는 게 라스베가스에요. 네바다 주 사막 한 가운데에 플라멩고 호텔을 짓지 않았으면 지금의 라스베가스는 없어요. 정주영 회장도 마찬가지죠. 조선소 하나 없는 나라지만, 우리가 500년 전에는 위대한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500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수주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잖아요? 지금까지 못했는데 될까 하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해요.
리: 교통과 생산 외에 또 다른 키워드를 꼽는다면요?
조광한: 문화예술, 교육이죠. 특히 교육 문제는 당장 시급해요. 남양주 전체의 교육 수준을 높이고, 건강한 공동체 교육도 해야 해요. 경력 단절 이후에 새로운 취업을 위한 교육, 정신적인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하는 인문학적 소양 교육같은 것이 병행되어야 해요. 전 연령층 교육, 연령대별 분화된 교육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리: 사실 학부모들에게는 학군이 중요하잖아요. 그런 쪽으로는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게세요?
조광한: 운동선수가 되려면 운동장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야 노력도 할 수가 있죠. 그런데 지금 여기는 운동장이 거의 없는 수준이에요. 운동장을 제대로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죠. 다만 보습이 더 중요한지, 학부모들의 다른 요구가 더 있는지, 방과후학교를 통해서 아이들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지는 수요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게 다 옳진 않을 수 있잖아요.
리: 일단 무조건 공약을 내놓기보다는 취임한 후에 다시 조사하는 방법을 택하시겠다는 건가요? 최근 소통이 하나의 주요 키워드가 된 것 같은데요. 본인은 어떤 소통 방법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조광한: 주민과의 대화채널을 강화하면 돼요. 주민자치위원회, 각종 단체와의 대화채널을 활성화해야죠. 시의원들이 주민들과 먼저 대화를 많이 나누고, 저도 시의원들과 대화를 더 해야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주민 협의체를 구성해서 대화하고요. 체계적, 구체적, 정기적으로 만들어 가는 거죠.
리: 교육 문제에 있어서 경력 단절자 교육을 이야기하신 분은 처음이에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조광한: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거죠. 고도의 직업교육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분야의 직업교육이 가능하도록 공적 지원을 해주는 거죠. 이게 자기가 돈을 다 내야 되면 여러가지 체험을 할 수가 없거든요.
리: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인데, 사실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서 시민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어떻게 시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조광한: 홍보를 강화해야죠. 이를테면 주민자치위원회를 통해서 연락처를 받고, 문자, 이메일, 온라인 홍보를 강화하는 거죠. 시청에서 보내는 소식지에 그런 게 있다고 하면 다들 계속 관심을 갖고 보지 않을까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박수받고 싶다
리: 나중에 물러나실 때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조광한: 겁나게 박수 쳐주면 최고죠. 남양주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면, 솔직하고 정직한 정부를 만들어내면 박수를 치겠죠. 사람들은 정직한 걸 좋아해요. 가식적이고, 정직하지 않으면 아부는 하지만 진정으로 박수는 안 치죠. 마음에서 치는 박수를 받고 싶은 거에요.
리: 자서전을 쓴다면 본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쓰실 것 같나요?
조광한: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던 사람 정도로 기억해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은 다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이 있잖아요. 저는 모든 분을 존중해요. 어느 누구도 무시하거나 폄훼하지 않아요.
리: 살면서 본인이 존경한다거나 롤모델로 삼을만한 그런 사람은 누가 있나요?
조광한: 여기 지금 같이 있는 기업하는 제 친구요. 정말 훌륭한 기업인이에요. 돈 많이 벌었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사치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저는 이 친구 말고 ‘저 사람 참 대단해’ 이런 사람 못봤어요.
리: 본인은 어떤 사람에 속한다고 생각하세요?
조광한: 전형적이지 않았던 정치인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선거에서 성공하고 계속 이 길을 지켜나가면 ‘와, 이런 정치인도 있구나’하고 기록되겠죠. 그러면 박수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요. 선거 과정도 기존 방식을 안 따랐어요. 인지도 없으니까 관변단체 행사 다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제가 작년 연말까지 거의 안 갔어요. 미움받을 거라고들 했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고 계세요.
리: 당선되신 다음에도 안 나가실 생각이세요?
조광한: 최소화할 거예요. 일해야 되잖아요. 괜히 가서 공치사하고 폼이나 잡고 그러면 되겠어요?
리: 스타일이 정말 확고하시네요.
조광한: 출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제 의지대로 끌고 왔어요. 시장이 되고자 했던 건 남양주가 처해져 있는 심각한 문제를 극복해보고자 했던 것이죠. 대한민국 모든 기초단체가 부러워하고 벤치마킹하는 그런 도시로 만드는 게 목표에요. 재선만 바라보고 노심초사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에요.
리: 그래도 재선을 하셔야죠.
조광한: 그건 시민들이 선택하겠죠. 제가 주목받고 싶은 게 아니라, 제가 하는 행태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대한민국의 다른 조직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시장 출마한 이유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