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정치 해보니까 재미있나요?
염태영: 재밌다고 하기는 어렵고요. 소명의식으로 하는 거죠. 사실 어떤 정책에도 반대하는 그룹은 있으니까요. 선의를 베풀어도 이해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보니, 자치단체장의 생활이 나한테 행복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죠.
리: 그래도 재임하시면서 인구도 많이 늘고, 시도 빠르게 발전했어요. 꽤 뿌듯한 일일 것 같은데요?
염태영: 그런 보람을 느끼니까 또 3선에 도전하게 된 거죠. 우리 도시가 기초자치단체 중에 가장 큰 도시에요. 그래서 롤모델이 되어야 할 부분이 많죠. 문재인 정부에서 지향하는 지방분권에 대해서도 제가 할 일이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리: 롤모델으로서 선도적으로 했던 정책 몇 가지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염태영: 우선 2013년에 전 세계 최초로 생태교통 페스티벌을 열었어요. 한 달 동안 한 동네에서 차량 없이 생활하기에 도전하는 거죠.
리: 그러면 그 동네는 불만이 꽤 컸을 것 같은데요.
염태영: 그래서 결정하고 개최하기까지 2년 동안 몸살을 많이 앓았죠. ‘악덕 시장은 물러나라’ 이런 피켓을 들고 시청과 동네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았어요.
리: 어느 동네에서 하신 거죠?
염태영: 팔달구 행궁동이요. 수원 시내 중심이죠. 그런데 점차 외곽지역이 개발되면서 이제 원도심이 점점 낙후되었어요. 그런데 또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자리잡은 곳이라 고도제한 때문에 재개발을 못해요. 그래서 여길 살려보고자 시도해 본 거죠. 보행환경과 가로환경을 개선하고 사람과 문화를 채웠죠. 차가 빠진 거리를 자유롭게 걷게 하고, 거리에서 여러가지 이벤트를 했어요. 한 달 동안 100만명이 찾아오는 축제가 됐어요.
리: 박원순 시장하고 굉장히 잘 맞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시네요.
염태영: 박원순 시장이 저의 후배 격입니다.
리: 네??
염태영: 아뇨, 나이가 후배라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순간적으로 최강 동안이신줄… 염태영 시장은 1960년생이고 박원순 시장은 1956년생…
리: 깜짝이야… 얼굴이…
염태영: 아니, 연세는 물론 그 분이 위이신데, 제가 1년 4개월 먼저 시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제 사무실에 가장 많이 왔던 분 중 한 분이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상임이사였어요. 저도 시민운동을 많이 거쳤으니까요. 2012년에는 수원평생학습관 안에 시민사회자료관, 일명 ‘도요새 책방’을 박원순 시장이 위탁한 5만여 건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기도 했어요.
10년간의 부채의식으로 한국의 환경을 바꿔온 10년
리: 시민운동을 하시게 된 계기도 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시다가 시민운동을 하셨잖아요?
염태영: 제가 80학번인데, 그러니까 80년의 봄을 경험했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도 경험했죠. 또 87년 6월 항쟁 때는 수원에서 청년운동그룹의 대표격이었고요. 그런데 제가 소년가장이라 동생들의 생계, 학업비용을 책임져야 했어요. 주위 친구들이 잡혀갈 때 저는 소년가장이라고 친구들이 안 잡히게 안쪽으로 보내고 그랬죠.
리: 좋은 친구들이네요.
염태영: 친구들 중에 대학을 제대로 졸업한 친구가 별로 없어요. 민주화 운동하다가 투옥되거나, 학교를 관두고 노동현장에 가거나… 그 친구들이 계속 노동운동, 농민운동 할 때 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던 거고요. 막내동생이 대학을 졸업하며 이제 어느 정도 집안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때쯤, 이제 미루어왔던 나의 역할을 할 때라고 생각했던 거죠.
리: 87년 당시 수원에서 청년운동의 리더 격이셨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셨나요?
염태영: 초, 중, 고 다 수원에서 나왔고, 수원 캠퍼스에 있었기 때문에 현장이 자연스레 수원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또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그래서 기독청년 운동도 했죠. 제가 다닌 교회가 마침 또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이에요. 한신대학교를 운영하는 교단이죠.
리: 한신대라고 하니 이해가 되네요. 회사는 어떤 회사를 다니셨던 거에요?
염태영: 처음에는 미원이었고, 중간에 한 번 옮겨서 삼성종합건설 환경사업부에서 일했어요. 하수처리장, 소각장 같은 대규모 공해처리 플랜트를 만드는 일을 주로 했어요. 그러면서 많이 배웠죠.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수질, 폐기물, 소음 대기 같은 환경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리: 그렇게 좋은 회사를 그만두셨는데 집에서 안 말렸나요?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염태영: 그때 아내가 졸업하고 교사가 됐거든요. 생계가 유지될 수 있으니까 가능했죠. 사실 아내는 제가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대요.
리: 그렇게 한 10년 하셨나요?
염태영: 그렇죠. 여러 일을 했죠. 우선 1994년에 환경운동센터라는 걸 만들었어요. 지역 환경 이슈에 집중하기 위해 YMCA, YWCA, 경실련 같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뭉쳐서 만든 곳인데, 초대 사무처장을 했어요. 팔달산 관통 도로 건설, 수원천 복개문제, 노송지대 살리기 운동, 영통소각장 운동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죠.
리: 사실 당시에는 정부랑 싸우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치열했던, 해냈던 운동이 어떤 게 있을까요?
염태영: 사실 환경운동도 정부랑 대립각을 세우면 마치 반정부운동처럼 비춰지는 경향이 있었죠. 선배들이나 최열 같은 친구들은 실제로 구속되기도 했었고요. 수원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수원천 살리기 운동이었죠. 수원천이 1단계 복개가 되어 있었는데, 2단계 복개를 저지했어요. 제가 시장이 된 후에는 1단계 복개구간도 다시 뜯어내서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죠.
리: 참 좋은 이야기인데요. 이런 문제는 시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논리를 만들어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염태영: ‘냄새나는 하천, 시민들 두통만 심각해진다’ 면서 덮어서 도로, 주차장을 만든다고 하니까 90%가 찬성하죠. 하지만 이제 ‘이건 하천을 죽이는 일이다. 다시 뜯어내서 하천으로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로 완전히 역전됐어요.
리: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정치로 이어지신 건가요?
염태영: 1992년 UN에서 새롭게 ‘의제21’을 제시했어요. 처음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이념적 좌표를 담아냈죠. 그래서 제가 1998년에 수원에서 수원의제21을 만들었고, 또 1999년에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를 만들었죠. 이게 더 커져서 2000년에는 지방의제21 전국협의회까지 만들었고요. 이 과정에서 제가 사무국장, 사무처장, 사무총장 같은 일을 했죠.
리: 그러다가 참여정부 인수위에 참여하게 되신 건가요?
염태영: 사실 후보이실 때도 부르셨는데 그때는 시민운동을 하고 싶었으니까 들어가지 않았어요. 인수위는 ‘두 달이니까’하는 생각으로 들어가서 일했죠. 이제 환경 문제에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니 저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각 부처에서 보고를 받고, 제 평소 소신을 반영해 정책 제안을 하고 그랬죠. 새만금 문제, 천성산 KTX 터널 문제, 경인운하, 골프장 허가… 첨예한 사안이 많았어요.
리: 그런데 정말 두 달만 하고 나오신 거에요?
염태영: 그렇죠. 욕심냈으면 정부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애초에 두 달만 도움을 주려고 한 거니까요. 돌아와서는 새만금, 천성산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환경단체 7인 중 한 명으로 광화문에서 농성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2005년에 인수위 때 했던 역할도 있다 보니, 청와대에서 지속가능발전 비서관을 맡아달란 제안이 왔어요. 단식농성하던 분들이랑 상의를 했는데, ‘결국은 우리가 주장한 바를 해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청와대에 들어가게 돼요.
리: 중앙정치에서 현실적 업무를 보다보면, 시민단체에서의 논리와 충돌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염태영: 물론 그렇죠. 그걸 잘 조화시키는 게 정무적으로 해야하는 일이죠. 3개월 동안 터널 공사를 중지하고 민·관 공동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에 따르는 식으로 천성산 단식 문제를 해결했어요.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근본 틀을 만드는 국가지속가능발전비전을 선포하는 일을 했죠. 그리고 국토, 에너지, 수자원, 철도 등을 지속가능한 발전의 차원에서 마스터플랜을 만들었죠. 그 때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기획운영실장도 했고요.
그러다, 2006년에 지방선거를 치뤄야 하는데 수원시장 후보가 없다는 거에요.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인데… 그래서 결국 나오게 됐죠.
수원시장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다
리: 사실 그땐 모두가 질 거라고 예상했을텐데요. 나간 이유가 있다면요?
염태영: 소명처럼 나갔어요. 제가 나고 자라면서 떠나지 않았던 곳이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했지만, 정말 처절했어요. 제가 정치를 해본 사람도 아니고, 정당 일을 해본 사람도 아니고, 박원순, 최열처럼 중앙 매스컴을 탄 것도 아니니까, 제 이름을 알리는 것부터 쉽지 않았죠.
리: 그렇게 쓰라린 패배를 하면서 느끼거나 배운 점이 있었나요?
염태영: 나오기 전에 수원에 대한 정책, 비전을 정말 많이 준비했어요. 그런데 2006년 선거 땐 아무런 도움이 안 됐어요. 정책, 비전을 보는 게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심판하는 선거였으니까요. 서울, 경기, 인천 지역구 도의원 100%가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어요. 지방자치의 흑역사에요. 아무리 그래도 정권에 대한 보복, 반발로 지방자치단체 의석 100%를 몰아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리: 이번에는 반대가 될 것 같은데요.
염태영: 그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해요. 보수든 진보든 100%를 하면 안 돼요.
리: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셨어요. 2010년까지는 개발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큰 시기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당선됐다고 보세요?
염태영: 2009년도에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신 게 국민들에게 상당히 울림을 줬던 거죠.
리: 수원에 추모비도 세우셨죠?
염태영: 그건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서 한 거고, 저는 허가만 내줬을 뿐이죠.
리: 그 허가 때문에 사찰도 당하셨잖아요.
염태영: (웃음) 박원순 시장과 이것저것 했고, 김두관, 안희정과 친하다는 것도 사찰 내용에 있었죠. 그게 얼마나 웃긴 거에요.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사람들하고 가깝다는 게 사찰 내용에 들어가 있다는 게…
리: 사실 사찰의 내용이 별 게 없네요.
염태영: 허접하죠. 대체 그런 걸 왜 조사해서 기록을 남기나 싶을 정도죠. 보수단체에 대한 지원규모도 줄였다고 하는데 그것도 팩트도 아니에요. 그런 치졸한 짓은 한 적이 없어요.
리: 요즘에야 다들 환경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일찍부터 하신 편이잖아요. 수원시의 패러다임 전환 같은 것도 생각하셨나요?
염태영: 친환경적으로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공원녹지사업소 같은 여러 기구를 만들었어요. 탄소저감을 위한 목표치를 과감하게 잡고, 국제 환경 기구에 적극 가입하기도 했고요. 생태교통 수원 2013 등을 통해 생태교통의 세계적 효시 도시가 됐고요. 기후변화 참가, 아토피 치유 센터 같은 환경 인프라들을 제일 먼저 선도적으로 놓고, 그리고 시민안전기구도 해 나가고 있죠.
리: 롤 모델이라면, 다른 시들도 이런 움직임을 따라가게 될 거라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처럼, 부러움을 살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염태영: 청계천은 길게 놓은 어항일 뿐이에요. 제가 수원천을 복원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전임 시장 때 복원의 롤모델이 청계천이었어요. 하천이 대리석 박스가 되면 물고기가 못 살아요. 모래와 자갈로 바닥을 깔고 자연석, 수초를 조성하면 물은 좀 탁할지 몰라도 곤충이 살고, 이끼가 끼고, 물고기들이 살수 있죠. 그래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오히려 비용도 덜 들고요. 그래서 수원천은 지금 전 구간에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도심 하천을 생태하천, 자연하천으로 만드는 롤모델이 됐죠.
리: 또 어떤 사례가 있을까요?
염태영: 생태교통도 우리 수원시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했죠. 대회가 2년마다 열리는데, 2015년에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2017년 대만 카오슝에서 열렸어요. 그때마다 제가 가서 기조연설을 했어요. 다 우리 수원의 모델을 벤치마킹한 거죠.
리: 생태교통이 단순히 차 없는 거리는 아닐 텐데,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염태영: 차를 없애면서 그 도시의 앞으로의 비전도 그 공간에 부여하는 거죠. 저는 보행환경을 개선시켜서 원도심을 살리려고 했어요. 도시 재생, 마을 재생의 전국적 모델이 되도록 하려고 했죠. 실제로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때 가장 처음 현장실사를 나온 게 여기에요.
시민과 함께 그려가는 수원시를 위한 열쇠, 특례시
리: 앞으로 3선까지 성공하시면, 마지막으로 그리는 수원시의 상이 있나요?
염태영: 저는 우리 도시가 자치분권의 선도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주민 거버넌스를 확대하는 거죠. 제가 시민참여의 여러 유형을 만들었어요. 그 중 한 예가 시민 배심원제인데,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이고 양식있는 시민들의 중재로 해결하는 거예요. 그게 벤치마킹되어서 정부의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가 됐던 거고요.
그리고 도시계획을 잡을 때, 20년 도시계획을 잡고, 5년마다 관리계획을 잡아요. 시가 전문 용역회사에 용역을 줘서 받은 걸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시는 도에, 도는 중앙에 올려서 결정되면 그게 그 도시의 밑그림이 되죠. 여기 주민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도시계획시민계획단을 만들었어요.
리: 아예 처음부터요?
염태영: 네, 그리고 청소년계획단도 만들었어요. 도시의 20년 후의 주인이 청소년이잖아요. 청소년들이 볼 때 우리 도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서 밑그림을 그려서 저한테 주는 거죠. 또 시민계획단에서도 밑그림을 그려서 주면 그 틀 안에서 용역을 내고, 그 결과가 나오면 다시 시민위원회에서 검토하고요. 지금 초등학교 4학년 사회교과서에 참여민주주의 사례로 나와요.
리: 시민들이 바빠서 하나하나 체크하기는 힘들지 않아요?
염태영: 우리 수원처럼 125만의 도시가 되면 열의를 갖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만큼 있죠.
리: 돈이 있어도 중앙정부 허가를 못 받아서 사업을 못한다는 경우도 있던데요.
염태영: 저희가 결정을 해도 사실 많은 부분이 이미 틀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또 거기에 끼워 맞출 수밖에 없죠. 또 중앙정부가 중심이 되어서 사업을 진행해 놓고는 실패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용인 경전철 같은 경우에도 모든 게 지방정부 탓으로 돌아갔죠. 지금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는 지방정부가 계획을 올려도 KDI 등에서 타당성 검증을 다 받아요. 하지만 문제가 되면 다 지자체의 욕심으로, 재정파탄을 만든 것처럼 되죠. 반대로 정작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을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리: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개헌을 하면 좀 변화가 생길까요?
염태영: 중앙정부, 중앙부처가 바뀌어야 할 게 많아요. 중앙정부는 늘 갑이에요. 대통령이 바뀌었어도 중앙정부의 실제 관료들이 바뀌지 않으면 바꿀 수 없는 문제죠.
리: 특례시를 주장하시는데, 그쪽으로 가면 좀 변할까요?
염태영: 제가 갖게 되는 권한이 좀 더 늘어나죠. 지금 수원시는 울산광역시보다 인구가 많아요. 그런데 공무원 수는 반이 안 돼요. 예산도 반이 안 돼요. 울산이 5조 8천억원인데, 수원이 2조 7천억원이에요. 어떤 지자체로 구분되어있느냐에 따라서 근본적인 규제의 수준이 달라요. 옛날에는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서면 광역시로 해줬는데, 지금 우리 수원시는 광역시 기준을 넘어선지 15년이 넘었어요. 광역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에 준하는 자율적 성장의 틀을 만들 기회를 제공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는 거에요.
마침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100만 이상 도시를 특례시로 하겠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제가 여당의 3선 시장으로서,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해서 수원을 특례시로 만들고자 해요. 우선 재정적 측면에서도 지금 우리가 도세를 6천억을 내면 다시 받아오는 게 2천억 정도밖에 안 돼요. 이게 더 늘어나죠. 또 중앙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 울산은 중앙정부와 직접 협상을 하는데 우리는 도를 거쳐서 해야 돼요. 그러면 도의 기준에 또 맞춰야 하니까 자생적 발전을 하는 데 너무 제약이 커요. 광역자치단체로 분리하겠다는 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이지만 행정적 권한을 좀 늘려달라는 거죠.
리: 특례시 문제가 모든 문제에 앞서서 선결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네요.
염태영: 이제 수원, 창원, 고양, 용인. 100만 도시가 4개가 됐어요. 새 정부에서 반드시 이끌어내야 하죠. 또 지방분권의 핵심 중 하나는 보충성의 원칙이에요. 광역지자체는 기초지자체가 못하는 일만 도와주면 되는 거에요. 그런데 모든 걸 다 지시해서 틀에 맞추려고 해요. 그러니까 자체적으로, 자생적으로, 자기 발전적으로 뭘 하기가 어렵죠.
리: 특례시 도입을 위해서 시장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염태영: 지방분권 개헌을 해야 해요. 개헌이 되어서 지방자치단체에게 더 자율적인 권한을 넘겨줘야죠.
리: 수원에 군공항 이전, 광교 도청도, 농촌진흥청 등 현안이 있잖아요. 앞으로 특례시가 된다거나 하면 이런 문제도 확실히 진전을 볼 수 있을까요?
염태영: 우선 군공항 문제는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전략 문제에요. 지금 수원-화성 비행장은 190만평이에요. 그런데 최신예 전투기들이 활동하려면 350만평이 넘어야 돼요. 게다가 지금 수원-화성 비행장은 아파트와 주거단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무기를 탑재한 훈련도 못해요.
리: 화성시민들을 설득하실 수 있나요?
염태영: 화성 지역도 찬성하는 시민들이 있어요. 찬성단체도 있고, 반대단체도 있는 거에요. 그리고 지금 만들려는 부지에는 매우 적은 인구가 살아요. 반면 지금 수원-화성 비행장으로 피해 받는 인구가 50만명이에요. 또 탄약고 같은 것들이 도심지 안에 있으면 위험하죠.
사실 지금 이게 우리가 결정한 부분이 아니에요. 국방부에서 이게 적절하다고 하는 거지. 지금 방향이 잘못 설계되어 있어요. 국가가 나서야지 지자체들끼리 합의하라고 하면 안 되죠. 이대로는 화성도, 수원도 모두 피해자에요. 중앙정부가 나서서 결정을 하고 사업하는 게 맞는 거죠.
리: 도청 이전은 어떤가요?
염태영: 자꾸 돈을 쓴다는 비판도 있는데, 지금 도청이 작아요. 옮기긴 해야 하는데,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땅의 일부를 교육청, 한국은행 등에 팔아서 사업비를 조달하고 세금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상당히 가치가 있는 땅이라서 결국 경기도 전체로 보면 남는 장사에요.
리: 그러면 더 남는 장사가 농촌진흥청 부지일 것 같은데요.
염태영: 그건 국가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그 부지를 활용하는 사업이라 우리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죠. 우리는 개발허가만 내주는 거니까요. 다만, 농촌진흥청 부지 내 3만평 정도는 수원이 농업 전통이 있는 도시라는 점을 살려서 국립농업전시문화체험관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어요.
해야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시장
리: 시장이 되시기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봐오셨잖아요.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염태영: 민선 시대가 되면서 수원이 많이 바뀌었어요. 수원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든 것도 민선 시장인 심재덕 시장이었고요. 월드컵을 수원에서 치뤄냈고, 화장실 운동도 지도했죠. 이게 다 지방자치제의 성과에요. 중앙에서 하지 못하던 일을 지방정부에서 나서서 바꿔낸 거죠.
리: 화장실은 확실히 좋죠.
염태영: 제가 지금 세계 화장실협회 회장이에요. 심재덕 시장과 같이 했던 일을 제가 이어서 하고 있는 거죠. 시민운동할 때 수원화장실문화협의회 회장을 했던 경험도 있고요.
리: 3선까지 하면 12년만에 떠나실 텐데, 떠날 때 시민들이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세요?
염태영: 보여주기식 행정을 하지 않았고, 당에만 치우쳐 시정을 이끌지도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지자체의 역할은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누리과정 때 중앙정부와 도 교육청, 도 의회가 서로 돈 못댄다 할 때, 저는 ‘우리 시 재정으로 먼저 하겠다. 대신 나중에 다 메꿔달라’고 했죠. 이렇게 저출산이 심각한 나라에서 누구 탓하고 서로 안하겠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게 제 소신이에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문제로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래서 대통령님이 직접 찾아가서 위로하실 때, 선수들이 ‘지금 실업팀이 하나도 없다. 국가대표팀이 해체되면 끝난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잖아요. 그걸 보자마자 제가 바로 수원시청 여자아이스하키팀을 창단했어요.
리: 반대는 없었나요? 예산 문제도 있을텐데요.
염태영: 야당이 반대를 했죠. 그래서 그건 지금 우리 시 체육 예산의 10% 정도다, 여력이 있다고 했어요. 또 문화체육관광부에 지원도 요청했고요.
리: 순발력이 좋으시네요.
염태영: 그래서 결국 남북단일팀에 선수들이 합류했고, 김여정 제1부부장이 왔고… 남북정상회담에 이르는 성과의 상당부분이 남북단일팀이 기여한 건데, 그 선수들의 어려움을 우리가 해결해준 거죠. 지자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리: 지자체 치고는 굉장히 큰 일을 했네요. 꼭 당선되셔서 더 큰 일을 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염태영: 제 당선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수원이 안 된다는 건 경기도가 안 된다는 것이고, 경기도가 안 된다는 것은 한국이 안 된다는 것이거든요. 특히 이번 같은 분위기에서는 더 그렇죠. 문재인 대통령이 있는 여당이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한다면, 그래서 홍준표 대표를 이번 선거로 교체하지 못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비웃음의 대상이 되겠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선거에 임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