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출간한 뒤 독자와의 만남을 몇 번 가졌다. 마지막 순서로 독자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제 부모님이 바로 무례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이면 안 보고 살겠는데, 부모님이 무례하면 어떻게 하죠?
그 질문을 하는 이들은 대개 20대였는데, 나 또한 부모와의 관계로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비슷한 고민을 먼저 했던 사람으로서 내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편과 함께 대구에 사는 나의 부모님 집에 간 적 있다. 그때 우리는 일본에서 사 온 고급 과자를 가져갔다. 아빠는 과자 한 봉지를 뜯어 맛본 후, 뜯지 않은 과자 한 봉지를 들고 동생 방으로 갔다. 방문을 열었을 때 방바닥에 누워 있는 동생을 보고 아빠는 동생 얼굴에 과자를 던지고 문을 쾅 닫았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놀라서 내게 귓속말로 아빠가 왜 갑자기 화를 내시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익숙했기에 그걸 보고 놀라는 남편에게 더 깜짝 놀랐다.
화내는 거 아닌데. 그냥 아빠가 동생 챙기려고 그러는 거잖아.
근데 얼굴에 던지셔? 처남이 상처받겠는데.
나의 부모님은 그런 사람들이다.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을 몰라 항상 오해를 사는 사람들.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 몫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해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한편으로 편안해하는 사람들. 피해의식이 많고 부정적인 성향이라 잘못될 것부터 걱정한다.
어릴 때 나는 글쓰기로 자주 상을 받았다. 처음 전국 단위에서 상을 받았을 때 아빠는 말했다.
소가 뒷걸음쳐서 쥐 잡은 격이네.
그들은 자주 싸웠고 그럴 때마다 자녀에게 분풀이를 했다. 언니나 남동생과 달리 내겐 무관심했다. 초중고를 다닐 동안 학교에 한 번도 온 적 없고 성적표를 본 일도 없다. 담임 선생님이 진로 상담 때문에 집에 전화했을 때 엄마가 너무 차갑게 끊어서 선생님이 나를 불러 친어머니가 아니냐고 물은 적도 있다.
부모에게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넌 알아서 잘하잖아.” 충격을 받게 하고 싶어서 사흘 동안 가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가출을 했는지도 모르기에 내가 충격을 받아 다시는 가출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야기를 자주 했다. 중학교 때부터 연애를 시작했는데 부모에게 못 받은 관심을 애인에게는 받을 수 있어 더욱 매달렸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 커질수록 부작용이 커져갔다. 못 받은 사랑을 대체하려고 하다 보니 연애를 할 땐 자꾸 집착하는 사람에게 끌렸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땐 합당한 이유를 찾다가 언제나 부모를 떠올렸다. 부모 때문에 나는 문제가 많고 그러니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부모에 대한 미움이 나에 대한 미움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이젠 부모님 탓을 그만하자고, 정서적으로 부모와 결별하자고 다짐했다. 마음의 결핍을 해결하고 싶어 심리학 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특히 사회학과에 입학해 가족사회학 공부를 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조직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학문이다. 가족 관계에 대한 다양한 케이스들과 함께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가족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아보았더니 가족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어린아이가 이토록 환대받는 문화는 채 백 년이 되지 않았다.
한국 문화에서는 부모의 헌신을 과도하게 추켜세운다. 이처럼 정상 가족의 이상향을 설정해놓고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자식을 낳는다고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라. 아이에게 정말 좋은 부모가 될 것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미숙한 보통의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다. 육아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기도 하며, 자식들을 차별하기도 한다.
대학 때 육아 잡지에서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건 맞아요. 그런데 분명히 더 아픈 손가락과 덜 아픈 손가락은 있죠”라고 말한 어떤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럴 수 있구나! 그날 이후 나를 붙잡고 있던 희뿌연 것들이 사라졌다. 부모는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부모를 보는 관점을 바꾸고 나자 상처를 덜 받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도 되었다. 같이 살 때는 더 많이 부딪히게 마련이다. 최대한 빨리 집을 나오는 걸 목표로 했다. 독립만 해도 다툼의 많은 부분이 해소된다.
취준생이거나 시험 준비를 하는 자녀에게 “그것밖에 못 하니? 네가 창피하다”고 말하는 부모를 많이 보았다. 자녀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부모에게 내세울 것 없는 자식은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왜 건물주가 되지 않는 거야?”라고 묻지 않는다. 그건 부모님을 배려해서라기보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영원히 포기하지 못한다. 부모 눈에 자식은 항상 어리고 가능성이 충만해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으니까, 충격 요법을 주어서라도 자녀가 바뀌었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자꾸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상처 주는 것이다.
어떤 말을 들으면 “저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부모에 대한 이상향을 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것.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둘 것. 반드시 따로 나가 살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 부모에 대한 원망이 나에 대한 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 이 네 가지를 마음에 두면서 나의 상태도, 부모와의 관계도 좋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미워하다가 그렇게 미워했던 사람의 모습을 닮아간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아이를 때리듯 말이다.
좋은 부모를 갖지 못한 것은 단지 불운이지만, 이를 나쁜 쪽에 집중하면 기필코 불행해진다. 불행의 대를 끊기 위해서 부모는 그들의 인생을 살게 하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자. 부모와의 오랜 투쟁에서 내가 깨달은 가장 확실한 답은 이것뿐이다.
원문: 정문정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