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요즘 몇 시간 정도 주무십니까?
류경기(서울 중랑구청장 후보): 한 다섯 시간 정도?
리: 그래도 인생에서 지금보다 더 바빴던 시기가 있었나요?
류경기: 돌아보면 많이 있죠. 제가 32년 동안 공직생활을 했는데 기획조정실에서 일하고, 대변인 일을 할 때는 정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6시에 출근하고 저녁 11-12시까지 일하다 퇴근하는 생활을 2년 정도씩 했어요.
리: 그러면 뭐 딱히 힘들고 바쁘다는 느낌은 없으시겠어요.
류경기: 더 바쁘고, 덜 바쁜 것보다도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죠. 범위, 질, 내용 모든 게 다요. 공직생활할 때는 행정, 집행 관련 일만 했는데 지금은 다양한 주민들을 다양한 장소에서 만나죠.
리: 평생 서울시에서만 근무하셨잖아요? 이성 구로구청장도 그러셨는데 정말 야근한 기억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류경기: 저하고 경력이 비슷하신 분이죠. 기획과장으로 계실 때 제가 그 밑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그랬어요. 서울시가 바쁠 수밖에 없는 게 종합 행정을 하는 곳이에요. 중앙정부에서는 정책을 짜고 자치구는 집행을 하는데 서울시는 그 사이에서 두 일을 다 해야 하죠. 서울시에 외교, 국방 빼고 중앙부처에 있는 부서는 다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일이 많죠. 제가 1961년생 소띠인데 아침 8시에 태어났대요. 그런데 소가 8시면 이미 나가서 논밭 갈고 할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제 팔자가 바쁠 팔자라고들 하더라고요.
정치는 초단일지 몰라도 행정은 9단인 남자
리: 정치는 언제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류경기: 작년 하반기부터요. 부시장 임기 2년을 거의 마무리하는 시기였는데 중랑 지역 분들이 ‘경쟁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제가 출마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고사했어요. 경험도 없고, 정치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리: 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류경기: 워낙 치열하잖아요. 정글이라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공직자들은 그런 쪽으로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잖아요. 중랑에 정치적 기반이나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가족들도 탐탁잖아 했죠. 그렇게 고사했는데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느낀 게 중랑이 좀 특수한 지역이에요.
리: 좀 가난한 지역이죠?
류경기: 그렇죠. 그래도 인심과 자연환경이 좋은 지역이라 살기에는 쾌적하죠. 시쳇말로 가성비가 높은 지역입니다. 물가도 싸고, 땅값도 싸고, 전통시장도 많아서 시민들이 살기에는 참 좋은 곳이에요. 그런데 지역 개발 측면에서는 너무 정체되어 있어요. 여기가 개발될 때부터 주거지역으로만 개발되었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2-3층짜리 다세대 주택만 지었고, 신내동 택지개발 과정에서도 아파트만 지었어요. 그러다 보니 경제를 지탱할 상업·산업 기능이 발달하지 못하고 베드타운으로만 개발되었죠. 중랑이 서울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인구로는 4%입니다. 자치구가 25개니까 딱 평균 수준이죠. 그런데 지역 총생산은 1.1%밖에 안 돼요. 평균의 1/4 수준인 셈이죠.
그래서 중랑의 산업·상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도시화가 이루어졌는데 공장을 짓기는 힘들죠. 그래서 도시에 맞는 산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곳이 크게 세 군데 정도 있습니다. 우선은 6호선 신내 차량기지입니다. 이곳이 5만 평인데 차량기지를 시외로, 경기도 구리나 남양주로 이전하는 거죠. 그러면 구리와 남양주에서도 6호선을 이용할 수 있고, 중랑은 산업과 상업을 유치해서 일자리를 2만 8,000개 정도 만들 수 있죠.
리: 어떤 산업을 유치하려고 하시나요?
류경기: 흔히들 4차산업이라고 하죠. 의료, 실버 이런 산업들은 도시에 입지해도 주위에 환경이나 규모나 부담이 적거든요. 그래서 그런 산업들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리: 아직 확정은 안 된 사안이죠? 차량기지를 이전하는 게 쉽지는 않은데 협의가 잘 될까요?
류경기: 우선 지금으로는 남양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양주와 협조가 되어야 하는 사항이고, 또 서울교통공사와 국토교통부의 동의도 필요해요. 중앙정부의 협조도 필요하죠.
리: 협조라는 건 결국 설득을 해야 하는 건데,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류경기: 서로 윈-윈을 통한 상생을 하자고 하는 거죠. 구리, 남양주가 성장했고 다산 신도시도 만들어졌잖아요. 여기도 인구가 8만~9만 됩니다. 이쪽까지 6호선이 연장되면 이 지역 주민들도 지하철로 바로 서울로 진입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잖아요. 그 대신 차량기지를 받아달라는 거죠. 그러면 우리도 부지를 개발할 수 있으니 좋고, 이 지역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으니 좋은 거죠. 차량기지 이전이라는 게 상당히 부담되기는 하지만 주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리: 첫 번째는 그렇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어디인가요?
류경기: 두 번째로는 망우역과 상봉역 간 거리가 700m 정도 되는데 여기로 경춘선, 중앙선 등이 지나가서 선로가 많아요. 그게 한 3만 평 됩니다. 이 위를 덮어서 한 20층 정도의 건물을 지어서 복합개발을 하는 거죠. 철로 위라 소음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저렴한 임대료라면 들어올 기업들이 있거든요. 또 바로 옆 500m에 상봉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요. 이 버스터미널도 여기에 짓는 복합시설 2-3층 정도로 이전하는 겁니다. 그러면 버스와 철도가 한 건물에서 연결이 되죠. 외국에서도 외곽에서 들어오는 버스 터미널을 철도와 연계합니다. 이용자 편의성을 확대하는 거죠. 이게 두 번째 포인트고, 세 번째 포인트는 면목4동 주민센터와 중랑구민회관이 있는 곳에 5,000평 정도 부지가 있는데 여기를 복합 개발하는 거죠.
리: 여긴 이미 사용하고 있는 공간 아닌가요?
류경기: 그런데 건물들이 다 조각나서 떨어져 있어요. 이걸 다 붙여서 새롭게 짓는 거죠. 공공기능도 유지하면서 동시에 주민이 필요한 문화기능, 업무기능도 넣는 겁니다. 건물을 위로 올리게 되니까 공간이 남잖아요? 여기에는 작은 공연장, 커뮤니티 센터, 복합노인회관 같은 문화와 복지 시설을 넣는 겁니다. 그리고 업무공간에는 근처의 봉제패션산업체를 유치하고요. 지금 중랑에 빈 땅이 없으니 기존 부지를 활용해서 산업·상업 시설을 만드는 거죠. 이렇게 하면 신내에서 3만 명, 상봉에서 1만 명, 면복에서 5,000명 정도씩을 고용 창출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 복합 개발하는 게 지역 개발의 한 축이고요. 또 다른 축은 지역에 대한 관리입니다. 지금 중랑에 상업지역이 1.9%밖에 안 됩니다. 너무 적죠. 지금 대부분이 주거지역이에요. 상업지역이 되어야 고층건물을 올리고 복합적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거지역이면 용적률, 건폐율 제한등이 있어서 낮게 지을 수밖에 없죠. 그러면 다른 게 들어올 공간이 없고, 사람 살 공간만 지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도시계획관리를 통해 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을 확대하는 걸 두 번째 축으로 생각합니다. 6호선과 7호선이 중랑구를 지나잖아요? 그런 지역은 상업지역을 더 늘릴 여지가 있거든요. 그러면 민간이 자율적으로 개발하는 거죠. 시간은 걸리지만 이렇게 해야 지역이 살아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리: 서울시예 계시는 동안 온갖 재개발 문제를 다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사실 중랑은 재개발이 아직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류경기: 우리가 뉴타운의 광풍을 경험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다 지금은 중단되거나 사업 진행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뉴타운이라는 게 전면 철거하고 다시 전면 신축해서 분양 후 남은 수익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거예요. 주민들은 재산도 늘어나는데 새집도 얻으니까 좋아했죠. 그런데 이것도 결국 사업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주택시장이 과포화 상태여서 사업성 확보가 어렵죠. 뉴타운 방식은 더 이상 그렇게 전면적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리: 중랑구 주택이 낙후된 곳이 많기는 하지 않나요?
류경기: 그렇지만, 사업성이 안 나오면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측면에서 새집을 얻을 수는 있지만 비용은 본인이 대는 도심재생사업 위주로 하려고 해요.
리: 비용을 본인이 댄다고 하면 구하고는 무관한 일이 되지 않나요?
류경기: 구에서 그걸 제도적으로 만들어주는 거죠. 재개발이건 재건축이건 수반되는 공원, 도로 같은 공공시설이 있거든요. 이거는 또 관에서 협력해줘야 가능하죠.
리: 제가 만나본 후보 중 이성 구로구청장님, 이춘희 세종시장님도 그러셨는데 행시 출신들은 왜 이렇게 정책을 완벽에 가깝게 설명할까요(…) 무슨 트레이닝이라도 받나요? 정치인 출신과는 완전히 사고방식이 다르거든요.
류경기: 정치인분들은 방향과 철학을 조금 더 크게 생각하는 분들이고 저희는 계속 현장 집행을 해온 사람들이잖아요. 구체적인 현장에 대해서는 저희가 더 전문적인 면이 있죠. 하지만 정치 철학이나 정치 이념 부분에는 부족한 게 많고요.
리: 출마를 결심한 게 오래되시지는 않았는데. 중랑에 이렇게 자세히 파악하고 계신 건 서울시에 계실 때부터 이미 다 공부하신 건가요?
류경기: 출마는 작년부터 고민했지만, 정책이나 업무는 제가 수십 년 간 해온 일이니까요. 중랑을 수십 번씩 일하러 왔죠. 망우리 공원 활성화, 상봉역 개발 등이 다 제가 수십 년 간 고민하고 참여해온 일이거든요.
리: 서울시에 오래 계셨으면 역대 시장들과 다 같이 일하셨나요?
류경기: 제가 역대 시장을 거의 다 모셨죠. 1986년에 사무관으로 임관해서 1996년에 임관 10년 만에 서기관이 됐는데, 서기관이면 과장급인데 그때부터는 시장에게 직접 보고할 기회가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까지 모든 민선 시장님들은 다 제가 직접 보고하고 그랬죠.
리: 본인은 어떤 시장과 잘 맞으셨어요?
류경기: 일단 모두 초인적으로 부지런한 분들이었어요. 다만 스타일이 조금씩 다를 뿐이었죠. 박원순 시장님은 ‘과로사하는 게 꿈’이라고 농담하실 정도죠.
리: 그럼 지금껏 모셨던 시장들에 대해 간단한 한 줄 평 감상을 남긴다면요?
류경기: 다 우리나라의 큰 지도자셨는데 제가 그렇게 일일이 평가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고요. 다만 장점만 말하자면 우선 조순 시장님은 철학이 있는 학자셨어요. 또 지금 사람들이 많이 잊는 사실인데 여의도공원, 천호공원을 만드신 분이세요. 공원과 녹지를 늘 강조하셨죠. 학문에도 조예가 깊고 인품도 훌륭하신 학자셨어요. 고건 시장님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시장님 두 분 중 한 분이에요. 한 분은 박원순 시장님이고. 고건 시장님은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하셨고 늘 자기 성장을 위해 노력하셨어요. 총리 두 번, 장관 세 번, 서울시장을 두 번 하신 정말 행정의 달인이셨죠. 그리고 이명박 시장님은 경제·산업 쪽에 계시다가 오셨는데 청계천과 교통개선사업 이런 큰 것들을 많이 하셨죠. 그런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는 분이셨죠. 오세훈 시장님도 훌륭하시고, 정말 부지런하고 성실하셨어요.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같은 큰 프로젝트도 많이 하셨고요. 박원순 시장님은 가장 최근에 제가 모셨던 분인데 우리나라에서 제가 보기에 박원순 시장님이 가장 희소가치가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해요. 시민운동가를 하다가 서울시장이 되면서 제도권에 들어오신 분이잖아요.
리: 그만큼 더 걱정하시지 않으셨어요? 저 사람이 행정을 어떻게 할까?
류경기: 경험이 없으셨으니까 어떻게 하실까 귀추가 주목됐었는데 굉장히 연착륙하셨죠. 일단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하세요. 권위적이지 않으시고 소탈하고 똑같은 입장에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게 몸에 배어계시죠. 제가 보기에는 희생과 헌신의 인생이에요. 지금 재산이 마이너스 6억일 정도로 돈이 없으시죠. 사실 돈을 못 버시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걸 계속 다 기부해오신 거죠. 집이 생겼는데 집도 기부해서 집이 없으세요. 또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같은 시민사회단체를 만들어서 성장을 시키셨잖아요. 그런데 또 그 후에 미련 없이 떠나셨어요. 그렇게 명예도 계속 버리셨고. 그리고 원래 검사셨는데 생리에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인권변호사가 되셨죠. 그렇게 권력도 버리셨어요. 돈, 명예, 권력을 다 가질 수 있는데 버리면서 살아온 인생이시죠. 그런 리더가 한국에 또 있을까 싶어요.
리: 박원순 시장님은 왜 이렇게 시장이 세세하게 챙기느냐는 이야기도 좀 있잖아요?
류경기: 시민운동가로 평생 살아온 분이잖아요? 계속 현장에서 사회 혁신을 고민하다 보니 시민들이 생활에서 겪는 작은 것들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신 거죠. 작은 디테일이 중요하다. ‘큰 사업을 해라. 그래야 주민들이 좋게 본다’ 이러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삶에서 작은 것들을 바꾸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삶이 개선되는 걸 추구한다’고 하세요.
리: 반대로 이명박이나 오세훈은 좀 큰 걸 좋아했잖아요? 본인은 어떤 스타일이세요?
류경기: 둘 다 중요하죠. 그런데 구청장은 주민들 삶 바로 옆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차량기지 이전처럼 10년 넘게 걸리는 일들에 대해 방향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생활 속의 작은 불편들이라는 거죠. 거리 청소, 학교 환경 개선 그런 것들이 우선시 되어야죠.
‘악마의 디테일’이 아닌 ‘천사의 디테일’로 바꿔 가는 중랑
리: 그런 본인이 바꾸려는 생활의 작은 것들을 몇 개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류경기: 우선은 교육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려고 합니다. 지금 중랑구 교육만족도가 25개 구 중에 꼴찌에요. 소득 수준도 낮은데 관에서 투자도 부족하니까 계속해서 교육환경 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떠나죠. 보육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중랑구에서 교육에 대한 지원을 연 40억 원 정도 하거든요.
리: 아주 적진 않네요?
류경기: 그런데 서울 자치구별 평균이 70~80억 원 정도 됩니다. 급식비 지원을 합치면 100억 원 수준이고요. 그런데 여기는 급식비를 합쳐야 70~80억 수준이 됩니다. 최소한 평균은 맞춰야죠. 그래서 지원 규모를 80억으로, 2배 정도로 늘려야 합니다. 이걸로 창틀 고치고, 울타리도 새로 하고, 도색도 하고, 도서관에 책도 살 수 있거든요.
리: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교육이 많이 낙후되어 있네요.
류경기: 인프라나 시설이 많이 낙후된 편이죠. 또 교육이라는 게 1~2년 한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태어났을 때부터 초중고 거치면서 단계별로 맞는 교육시스템이 있어야 해요. 그런 걸 위해서 종합교육지원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가칭 방정환 센터로 생각하는데, 소파 방정환 선생이 여기 망우리 묘지에 잠들어 계시거든요. 그렇게 학교에서 지원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구에서 지원해주려고 합니다. 온라인 강의, 1:1 멘토 상담, 취업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한 진로 상담 등을 할 수 있죠. 또 사실 부모님들이 깨어 있지 않으면 아이들이 더 어려워져요. 중랑이 유독 맞벌이, 한부모 가정이 많거든요. 그래서 부모 교육 프로그램도 할 계획이에요. 그렇게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면 차례차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 정말 이렇게 빈틈없이 이야기하는 분은 처음 봤네요. 그런데 서울시에 계셨으면 다른 구에 출마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중랑을 선택하신 건가요?
류경기: 제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강남, 서초 이런 곳은 이미 도시 정비도 다 되어 있고 구청이 별로 할 일이 없어요. 그런데 중랑은 애들 교육 문제부터 시작해서 도시 정비 문제, 재개발 문제, 새로운 경제 성장 문제 등등 너무 쌓여있는 거예요. 제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정도예요. 그래서 일할 보람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리: 아무래도 3선 하셔야겠네요(웃음).
류경기: 그런데 중랑이 또 이상하게 매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구청장 선거에서 졌어요. 그런데 또 지역 국회의원들은 또 다 민주당이에요. 지난 지방선거 때 박원순 시장이 중랑에서 득표를 더 많이 했고, 대선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더 많이 득표했어요. 그런데 구청장만 계속 졌죠. 제가 말씀드리기는 좀 외람된 문제지만, 후보 경쟁력이 부족했다는 비판들이 많더라고요. 또 경선 과정에서 탈락하신 분들이 무소속으로 나오시면서 한 7,000~8,000표씩 얻으시면서 3000표 차이로 민주당 후보가 낙선하는 일이 일어났죠.
리: 이번에도 사실 경선 과정에서 조금 시끄러웠잖아요? 예비후보셨던 분이 자해소동을 일으키기도 했고…
류경기: 그렇게 4번이나 계속 지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제가 전략 공천됐는데, 평생 지역 정치를 해온 분들 입장에서는 ‘왜 기회도 주지 않느냐’고 반발을 하신 거죠. 그래서 계속 제가 찾아뵙고 ‘다섯 번이나 지면 우리가 그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제발 이번만 단합해주십쇼’ 하고 읍소했어요. 지역에 계신 분들도 다 열심히 설득했고요. 그래서 두 분이 대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셨죠. 그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할 거라는 이야기도 많으셨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반드시 민주당 후보가 구청장이 되어서 지역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양보를 해주셨죠.
리: 참.. 선거는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맘 상하고 힘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류경기: 그렇죠. 그래도 중랑이라는 지역 여건상으로는 사실 이번이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거든요. ‘네 박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요. 지금 중랑의 삼박자는 완벽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 중랑갑, 중랑을의 서영교, 박홍근 국회의원. 이렇게는 협력이 잘 돼요. 그런데 구청장이 당이 다르다 보니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제 마지막으로 구청장까지 민주당에서 하게 되면 완벽히 네 박자가 맞아떨어져 중앙정부부터 현장의 구청장까지 다 협력할 수 있죠. 중랑 일대의 지역개발을 이룰 확실한 전기를 마련할 기회인 거죠.
독서는 나의 힘, 늘 배웠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리: 초중고는 어디서 나오셨어요?
류경기: 저는 촌놈이에요. 전업농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죠. 1961년에 담양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1973년 13살 때 서울로 올라왔죠.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고 서울대학교까지 쭉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리: 정치학과 81학번이시죠? 왜 정치학과를 가셨어요?
류경기: 입학 때부터 정치학과는 아니었고, 그때는 학부제여서 사회과학대학으로 입학했죠. 사회과학대에 정치, 경제, 무역, 사회, 인류, 사회복지, 심리 등등 다양한 과가 10개 정도 있었어요. 그래서 사회과학대에 입학한 후에 고르자고 했죠. 그래서 2학년 때 전공을 골라야 하는데 정치학이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들었던 개론 수업 중에서도 제일 재미있었고요.
리: 대학생활은 어떠셨어요?
류경기: 전두환 정부 초기였으니까 지금이랑은 완전 달랐죠. 맨날 데모하고, 최루탄 마시고, 술 마시고 그랬죠. 그때는 밖으로까지 나가기는 힘드니까 주로 학교 안에서 데모를 했는데 그때는 전경이 교내에 들어왔어요. 그렇게 막 최루탄 쏘면서 진압하고… 수업도 거의 안 했어요. 맨날 휴강이었는데, 선생님들이 ‘어차피 너희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니까…’하면서 이해해주셔서 학점은 또 주시더라고요.
리: 괜찮네요, 데모만 하는데 학점도 받고…
류경기: 그때는 선생님들이 ‘어차피 너희가 공부를 안 하려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시대 상황이 이러니까’ 하면서 이해해주고 그러셨죠. 데모하고 최루탄 마시고 술 마시고 이런 기억이 많이 나고, 그래도 대학 생활에서 조금은 의미 있게 했던 거는 제가 독서 써클을 했어요.
리: 지하 써클인가요…?
류경기: 지하 써클은 아니었고요. 문자 그대로 평범한 독서 클럽이었어요. 그 시절에 많이 봤던 건 시대 상황을 고민하는 사회과학 서적들이 있었잖아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여러 가지 고등학교 대하고 다른 세계관을 다루는 책을 읽고… 이광수의 『사랑』 같은 순수문학도 읽고. 그렇게 4년 내내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읽고 토론했죠. 학교 수업은 우리가 거의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할 기회가 없었지만, 자체적인 독서회를 통해 책이라도 조금 읽으면서 지냈죠. 지금도 틈날 때마다 책을 읽죠. 제 정신적인 자양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리: 그 이후에 행시에 붙으셨고, 계속 승진을 해오셨잖아요? 성공 비결이라고 할 게 있을까요?
류경기: 사무관 생활을 10년 했으니, 그렇게 빨리 승진한 건 아니죠. 뭐, 결과적으로 부시장이 됐으니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그냥 무슨 일이 됐든 제가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어요. 그렇게 공부하고, 들여다보고, 사람들 만나려고 노력을 했어요. 또 그렇게 전문성을 갖추는 건 기본적인 거고, 또 주변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계에서 내가 조금 손해 보자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만나왔어요.
리: 결혼생활 중에 와이프에게 손해를 보고 살아왔다고 생각하세요?
류경기: (웃음) 서로 손해 보고 살아왔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가정을 크게 돌보지는 못했죠. 아내가 약사인데, 자기 일하면서 애들을 다 키웠죠.
리: 나쁜 가장으로 살아왔군요.
류경기: 그런 시대였죠… 지금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지만 그때는 퇴근 시간이 되었어도 ‘집안일 때문에 가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기가 힘든 시절이었어요. 지금은 일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게 어느 정도 공감대가 생겼지만, 그때는 그냥 일이 먼저였죠.
리: 구청장이 되시면 또 일만 해야 되시겠어요.
류경기: 옛날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방금 말한 시대정신이 다르잖아요. 본인이 만족하고 행복해야 그게 흘러넘쳐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다는 생각들을 이제는 많이 하잖아요? 공무원도 개인 생활이 있고, 공무원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주민들을 만날 때도 더 웃고, 더 친절하게 대하면서 구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리: 그러면 후보자님 본인은 어떤 상황일 때 만족하고 행복하세요?
류경기: 저는 인생은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언가를 새로 배웠을 때, 새로 깨우쳤을 때 너무 기뻐요. 몰랐던 걸 알고, 몰랐던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기쁨을 느끼는 거죠.
리: 배움 하면, 공직생활 중간에 유학도 다녀오셨죠?
류경기: 1991년에 미국 위스콘신으로 유학을 갔어요. 제가 살아오면서 생활환경이 완전히 바뀐 적이 두 번 있는데, 하나는 13살 때 시골 농촌에서 서울로 올라온 거고, 또 하나는 미국 유학이죠. 가보니까 정말 사람, 문화, 모든 게 다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한국과 제일 달랐던 건 사람들의 삶에 여유가 있었어요. 정말 편안하게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늘 경쟁하고 부딪히면서 바글바글하게 살잖아요. 그런데 거기서는 남을 존중하고, 친절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다양한 걸 배울 수 있었죠.
리: 그런데 오자마자 야근을 계속하시고…
류경기: 그렇게 미국을 갔을 때 일종의 문화 충격을 느꼈는데, 미국 생활 2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까 더 큰 문화 충격이 느껴지더라고요. 평생 살아온 곳인데도 한국에 다시 적응하는 게 미국에 적응하는 것보다 힘들었어요.
리: 삶의 여유를 강조하셨는데, 중랑구는 사실 그런 게 느끼기 힘들잖아요? 어떻게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류경기: 저는 힘들 때마다 두 가지를 해요. 독서와 체육입니다. 책을 읽을 때 희열을 느낄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다가 인간을 통찰하는 구절을 보면 ‘맞아! 인간은 이런 거야!’ 이런 걸 느끼는 순간이 있는 거죠. 또 체육은 제가 살면서 꼭 주말마다 운동을 해왔어요. 등산도 가고, 테니스도 치고 했죠. 이 두 가지가 받쳐주면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중랑에 적용하려고요. 우선 독서는 어린이들부터 노인분들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해요. ‘책 읽는 중랑’이라는 이름의 계획입니다.
리: 도서관 사업인가요?
류경기: 두 가지에요. 우선은 사는 곳에서 10분 내에 작은 도서관 하나쯤은 있도록 만드는 거고, 두 번째는 책 읽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지원하는 거죠. 그래서 책을 읽고 싶다고 하면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읽는 중랑’을 만들고 싶어요.
체육은 지금 우리나라 체육은 엘리트 체육 위주로 되어 있는데, 사실 더 중요한 건 사회 체육이거든요. 사회 체육이 활성화되어 있어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사실 중랑에 산이 많아서 체육시설들을 만들 수 있는 부지가 상당히 많거든요. 중랑천도 있고요. 그래서 체육시설을 확충해서 생활체육 최고의 구를 만들고, 책 읽는 중랑도 만들고 싶습니다.
리: 사실 서울시는 중앙하고도 상당히 많은 일을 같이할 텐데, 어느 대통령과 일할 때가 제일 편했나요?
류경기: 시장과 대통령이 같은 당일 때죠. 그때는 좀 원활하고 쉬워요. 그런데 당이 다르면 갈등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죠. 특히, 박근혜 정부 때가 박원순 시장님 임기인 건데,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맨날 지원은 안 해주고 뭐라고만 하고, 시장님에 대한 견제가 너무 심했어요. 특히 청년수당 같은 경우에는 정부에서 승인을 안 해주는 일까지 있었잖아요. 서울로 7017도 정부에서 태클을 많이 걸었고, 메르스 때도 서울시한테 무슨 권한으로 이러냐고 하고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러던 게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는 많이 원활해졌죠.
리: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떠세요?
류경기: 같이 일해본 사이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열렬한 지지자입니다. 인권변호사인 동시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행정 경험도 있으시고, 외유내강형으로 자기 철학이 확고한 동시에 이걸 과격하게 드러내지 않는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부를 잘 이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국민의 지지를 계속 받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상당히 기대됩니다.
리: 본인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시나요?
류경기: 저는 그냥 뭐… 평범한 공무원이죠. 부시장까지 하는 행운을 얻었지만 그건 박원순 시장님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분의 철학과 저의 철학이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 거죠. 사실 자기 윗사람을 선택할 수 없잖아요? 주어지는 것인데 박 시장님이 오신 게 저한테는 행운이었죠.
리: 박원순 시장님 말고 인생 살면서 신세 진 사람이 있다면 누굴까요?
류경기: 부모님이죠. 제가 13살 때 서울에 왔다고 했잖아요?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국민학교만 나오셨어요. 그런데 1970년대 초반 농촌에서 자기 아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내야겠다는 정말 이례적인 결정을 하신 거죠.
리: 네?????? 아니, 혼자 오신 거예요????
류경기: 혼자 온 건 아니고 할머니, 작은아버지, 저. 이렇게 셋이 올라왔어요.
리: 와… 그래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류경기: 작은아버지가 서울에 취직하셨어요. 혼자 보낼 수도 있었는데 그때 저희 아버지가 ‘어차피 동생이 서울에 가는데 아들을 같이 보내서 서울에서 공부시키자, 그리고 숙식해야 되니까 어머니도 같이 가시도록 하자’ 이렇게 판단하신 거죠. 그런 판단을 하신 게 정말 이례적이고 놀라운 일이죠.
리: 정말 놀랍네요… 자식도 많았을 텐데 왜 본인만 올라온 건가요?
류경기: 제가 삼남매 중 첫째여서 먼저 올라왔을 뿐이고, 동생들도 다 차례차례 올라왔어요. 그래서 다들 성공해서 잘살고 있죠. 아버지가 정말 놀라운 결정을 하신 거죠.
리: 구청장이 되시면 이제 정말로 출세하시는 거 보게 되시겠네요.
류경기: 아이고, 그런데 지금도 참 아쉬운 게 내리사랑이라고, 부모님이 자식사랑을 그렇게 하시지만 자식들은 그 사랑의 반의반도 못 갚는 것 같아요. 그 사랑을 위로 돌려드리는 게 아니라 또 저희 아이들한테 주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흘러 흘러 내려가지, 다시 사랑을 돌려드리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잘해준다는 게 자주 찾아뵙고 잘 보살펴드리는 건데 그걸 잘 못 하니까… 저 스스로 부족한 점이죠.
리: 마지막으로 구청장이 되셔서 임기를 마칠 때 구민들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나요?
류경기: 구청장이라는 게 가장 현장에 있는 행정가거든요. 구민의 삶에 가까이 있던 구청장, 항상 만나기 편했던 구청장, 만나면 따뜻했던 구청장. 이 정도로 생각해주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