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강원도지사 나가기 전에는 정치와 연이 멀지 않았습니까? 그때 누가 나가라고 꼬드긴 건가요?
최문순(강원도지사): 그렇죠. 누가 나가라고 한 건 아니고, 엄기영이라는 아주 강력한 후보가 먼저 공천이 됐죠. 제가 엄기영 후보하고 MBC에서 같이 근무하고, 같이 사장까지 됐고, 같은 춘천 출신이고 하니까, 언론에서 자꾸만 둘이 한번 붙어보라고 바람을 넣었죠. 저는 부담스러웠고 싫었어요. 한 사무실에서 평생 같이 근무한 선배님이고 또 인지도가 워낙 차이가 나니까 이기지 못할 것 같았어요.
리: 사실 그런데도 엄기영 후보 삽질 덕에(?) 승리했잖아요. 본인이 더 잘나서 이겼다 생각하십니까?
최문순: 잘났다고 생각하면 조금… 혼날 일이죠. 최장수 앵커를 하신 분이니까요. 그렇게 오랜 시간 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만큼 잘하고, 정치적 중립성도 잘 지켰던 분이에요. 그런데 정권에서 망가뜨린 거죠. MBC 사장을 하다가 쫓겨나다시피 나왔잖아요. 방송인으로서 중립을 잘 지키게 놔뒀으면 MBC 사장 잘 끝내고 은퇴해서 존경받으면서 사실 분인데 정치권에서 망가뜨렸죠.
리: 원래 엄기영 앵커랑 회사 다닐 때부터 친하셨어요?
최문순: 방송사 안에 강원도 출신이 얼마 안 되는데 바로 또 고등학교 선후배니까요. 그때 동향 사람이 3명인가 밖에 없었어요.
리: 정말 강원도 출신이 없었네요. 사실 그렇게 끈이 없는데, 어떻게 사장이 됐죠?
최문순: 이게 좀 히스토리가 있죠. 예전 방송사들은 정권의 소유물, 나팔수였습니다. 여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저항을 하게 됐어요. MBC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제가 노조위원장을 했는데 1996년에 파업을 이유로 해고됐죠. 그때만 해도 위에 저항하면 잘리거나 교도소 가거나 둘 중 하나였죠. 징역 2년에 집행유예형을 받기도 했고요.
리: 1996년이면 김영삼 정권… 민주정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최문순: 그렇죠. 이명박, 박근혜 정권, 최근까지도 있는 일이죠. 어느 정권이건 정권을 잡으면 언론을 장악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어요.
리: DJ 정부나 참여정부는 어땠나요?
최문순: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이 있었어요. 제가 사장으로 재임한 2005년 2월부터 2008년까지 전화 한 통화도 없었어요. DJ 정부도 대통령께서 직접 하신 건 없지만, 그래도 여러 정치인이 항의는 많이 했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조차도 없었어요. KBS 정연주 사장도 전화 한 통 받은 적이 없을 겁니다.
리: 문재인 대통령의 언론관은 어떻게 보세요?
최문순: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봅니다. 압력을 넣거나 보도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리: MBC 정도면 다니실 때는 어마어마한 권력이었을 텐데 사장이 됐어요. 어떤 요인이 있었을까요? 사실 학연, 지연 같은 거에서 많이 밀리니까 사장이 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최문순: 제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MBC도 그렇고, 정치, 행정 다 우리 사회가 학연, 지연으로 엘리트 자리를 다 차지하는 사회였어요. 어찌 보면 저도 거기 끼지 못하니까 자연스럽게 저항하게 된 거고… MBC도 처음 노조는 40명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탄압받아 온 사람들이 이제는 리더가 됐죠. 손석희 사장, 최승호 사장, 양승동 사장, 그리고 우리보다 앞 세대인 정연주 사장 같은 사람들이요.
강원도의 고등학생, 저항의 기자까지
리: 저항정신이 굉장히 몸에 밴 것 같은데요. 처음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최문순: 1972년 10월, 고등학교 2학년 때 박정희 정부가 유신을 선언했어요. 평생 자기가 대통령을 할 거고 국회의원 1/3도 자기가 임명하겠다. 총통이 되겠다는 선언이었죠. 그때만 해도 시위대에 고등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저항의 늪으로 빠진 거죠(웃음). 물론 당시는 탱크를 배치하고 군인들이 시가지에 나와 있고 해서 시위를 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다 박정희 대통령이 총에 맞아 돌아가면서 이게 폭발하게 된 거죠.
리: 강원도는 저항 문화 이야기가 좀 드뭅니다. 광주는 5·18, 경상도는 부마항쟁 등이 있고, 서울은 1987년 화이트칼라 혁명 이렇게 얘기되는데 말이죠?
최문순: 사실 강원도에서 1980년대 최초의 항쟁이 시작됐습니다. 바로 사북 항쟁이에요. 정선 사북에서 광부들이 당시 표현으로는 ‘폭동’ 일으켰죠. 지금은 ‘사북 민주 항쟁’이라고 이름을 고쳐 부르고 있지만요. 1980년 4월, 열악한 근무조건, 어용노조에 의한 탄압, 경찰과 군인들을 동원한 봉쇄. 이런 것들 때문에 항쟁을 시작한 거죠.
리: 군인이 투입됐다고요?
최문순: 5·18의 전초전이 사북에서 벌어졌던 겁니다. 사실은 군인들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건데 기무사를 비롯한 군, 경찰, 도지사까지 함께 사북을 완전히 봉쇄하고 진압했죠. 온갖 고문과 폭행도 일어났고요. 공수부대도 투입될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조기에 진압·봉쇄되어서 다행히 학살이 일어나지는 않았죠.
리: 아버지께서 군인이셨는데 아들이 좌빨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안 하시던가요?
최문순: 제대하셨을 때이기도 하고, 저도 컸을 때니까 별 얘기는 없으셨어요. 특별히 정치적 신념이 있으신 분도 아니셨고요. 그래도 부모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걸 하길 원하지는 않죠.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시위 한 번 했다고 교도소에 가고 해고당하고 했으니까요. 아까 1972년에 시위를 시도했던 고3 선배들은 다 잡혀갔었어요. 저는 고2였는데 운 좋게 고2까지는 봐주더라고요.
리: 그렇게 학창시절에 현장을 겪다 보면 보통은 운동의 길로 투신하던데, 어쩌다 언론으로 가시게 된 거죠?
최문순: 그냥 시험 봐서 붙은 거예요(웃음). 지금은 언론사 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들잖아요? 그때라고 막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또 방송은 딴따라라고 신문에 비해 낮게 치기도 했고… 1984년에 입사했는데 88 올림픽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한 기수에 300명씩 뽑고 그랬어요. 그래서 들어가게 됐죠.
리: 노조 활동 전부터 실제 현장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엄청 두각을 드러내셨잖아요?
최문순: 사실 그때는 유능하고 대우를 받는 사람은 출입처 기자가 됐어요. 청와대, 국무총리실, 장관실, 삼성, 현대… 대충 이런 순서였는데 저는 계속 대드니까 출입처를 안 내보냈어요. 그래서 ‘2580’이나 ‘카메라 출동’ 이런 데만 떠돌이처럼 돌아다녔죠. 그러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정의로운 기자가 됐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같은 SNS가 없으니까 억울한 데 알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 소식들을 많이 알리게 된 거죠.
리: 어떻게 보면 그때 언론들은 민생현장을 담지 못했다고 봐도 될까요?
최문순: 그렇죠. 우리나라 언론의 구조가 국가 통치구조하고 1:1로 딱 철저하게 대응이 되어 있습니다. 출입기자는 그냥 출입처가 만들어내는 말들을 그냥 전달하는 앵무새에요. 억울한 일은 많은데 그걸 들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고발 프로그램 같은 걸 만들어서 하게 된 거죠. 그런 걸 하다 보니까 노동조합으로 내려오라고 하더라고요. 노조 활동을 쫄병부터 하다 보니까 노조위원장이 됐는데 낙하산 사장이 와서 파업하고, 또 잘리고 그랬죠.
리: 이명박, 박근혜 시절이랑 똑같네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언론들의 정부 비판이 중요한데 요새는 시민들이 ‘왜 이렇게 문재인 까는 거에 미쳐 있냐?’ 이렇게 언론을 비판하거든요.
최문순: 그게 아까 말씀드린 문제에요.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본인들이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지만, 그게 자기 권력을 유지·확대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 언론들은 직접 권력투쟁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리: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언론들 너무 힘들다고 언론에 세금 좀 주자는 안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문순: 저는 찬성입니다. 언론이 잘못되는 건 돈과 권력이 부족할 때, 이걸 획득하기 위해서 왜곡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안정적으로 보장해줘야 된다는 게 제 철학입니다. 그리고 언론은 굉장히 중요한 정신적 정보 인프라입니다. 다리 깔고 철도 놓는 것만큼요.
리: 국가에서 언론을 감시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만.
최문순: 동시에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형태로 만들어주기 위한 또 다른 제도가 있어야 하는 거죠. 정치적 독립성을 갖는 방송위원회, 신문위원회 같은 걸 만들고, 여기에 돈을 주고 위원회가 배분하는 거죠. 돈과 권력에 넘어가지 않는 정통 언론들이, 계란 노른자처럼 가운데 자리 잡고 사회를 감시해야 하는 것이죠.
리: 언론과 정치 둘 다 높은 자리를 경험하셨는데 어떤 게 더 맞는 것 같으세요?
최문순: 저는 거의 같다고 봐요. 한쪽은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자리고, 한쪽은 정치권력을 유지·확대하는 둘이 충돌되는 성격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인간을 존엄하게 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큰 틀에서는 같다고 봅니다. 정치만 해도 선거철이 되면 사람을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경제분야에서는 사람을 노동의 수단으로 보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노동생산성’인데 사람을 돈을 벌기 위한 생산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학생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 중 노동운동이 제일 힘들다
리: 도정을 보시면서 서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충돌되는데 해결할 수 없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최문순: 세상에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사회의 구조가, 특히 언론이 잘못되면서 사실에 접근하지 못한 채로 소통상의 오해, 의혹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접근하면 해결책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기자 시절에 몸에 밴 습관인데, 사건·사고가 생기면 반드시 현장에 가서 직접 제 눈으로 보려고 합니다.
리: 지사급이 그렇게 움직이면 오히려 시끄러워서 굉장히 짜증 날 것 같은데요.
최문순: 그러니까 의전을 다 줄여야죠.
리: 아까 오면서 보니까 되게 많이 따라다니시는 것 같던데…
최문순: 그건 제가 손님들 전송하러 나간 거예요. 직원들이 아니고 아까 우리 손님들(…)
리: 국회의원으로 정치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걸로 아는데, 지사로 일하는 것과 비교하면 어떠세요?
최문순: 국회의원이 심신이 더 편하죠. 여러 사람 중 하나라 조금은 무책임할 수 있어요(웃음).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 83명이었는데 정당 대 정당으로 정당정치를 하니까 책임이 1/83인 거죠. 물론 공적인 책임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도내의 행정수반으로서 도지사가 져야 할 책임과는 무게가 조금 다르다고 할까요.
리: TV토론이라는 게 2012년 대선에서 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로 박근혜 후보가 꼽혔던 것처럼, 보이는 모습만 좋으면 다 되는 성격이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끝판왕 엄기영 앵커를 이긴 거죠. 같이 있으면 본인이 선배로 보이실 것 같은데…
최문순: (웃음) 지금도 제가 선배인 줄 아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리: 박원순 시장님하고 동갑이신 거죠?
최문순: 손석희, 박원순, 이렇게 셋이 동갑입니다.
리: 손석희 앵커하고는 친하신가요?
최문순: 방송사 사장으로 가면서 서로 보기는 조금 힘들죠. 사실 제가 정치에 몸담은 후로는 언론계 후배나 지인들하고 연락을 잘 안 했어요. 오해받으면 탄압받게 되니까요. 한 회사에서 근무했고, 계속 노조 활동을 같이 했으니까 가깝게 지냈어요. 손석희 앵커도 노조 간부를 하다가 잡혀갔다 오기도 했고요.
리: 손석희 앵커는 젊을 때도 인기가 많았나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만 해도 운동권 시절에 인기 1위를 찍는 일이 있었잖아요.
최문순: 그런 거 없었죠. 제가 학생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 다 해봤는데 노동운동이 제일 힘들어요. 한 직장 내에서 자기 상관하고 바로 싸워야 하는 거예요. 취재해온 걸 보도를 못 하게 하고, 그러면 자기 직속 상관하고 싸우는 거예요. 자기 혼자는 힘드니까 노조와 같이 싸우는 거죠. 건물 안에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기도 힘들고, 비용 만들기도 힘들고 굉장히 힘들어요.
유일하게 분단된 땅 강원도, 이제는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어야
리: 어찌 지난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강원도는 여전히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여겨집니다.
최문순: 강원도가 유일하게 남북으로 분단된 도입니다. 한국전쟁 때 제일 먼저 전쟁이 시작됐고, 전투가 제일 많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백마고지 전투, 저격능선 전투… 하룻밤에 1만 명씩 죽었어요. 피해자가 제일 많으니 원한, 복수심도 제일 많죠.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어요.
리: 정전이 된 지 70년 가까이 됐는데 아직도 그런 정서가 남아있나요?
최문순: 당시 참전했던 분들이 생존해 계시니까요. 게다가 전쟁 전에는 38선에 철책도 없으니까 바로 부딪혀서 싸웠어요. 오늘 저녁에 저기 있는 사람이 넘어와서 여기 있는 사람을 죽이고, 그러면 죽은 사람 삼촌하고 동생들이 넘어가서 복수하는 살육전이 벌어졌어요. 전쟁의 땅이었던 거죠.
리: 영남의 자유한국당이나 호남의 민주당이나 똑같다, 다 지방 토호들이지 열심히 안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런 문제는 강원도는 상대적으로 없었나요?
최문순: 있긴 하지만, 그보다 중앙집권적 질서에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조선 시대부터 중앙집권적 사회이긴 했지만, 그게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지나면서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모든 걸 서울에 집중했어요. 권력, 돈, 언론 모두요. 분권화되어 있으면 독재를 하기가 힘들거든요. 히틀러도 분권 국가였던 독일을 중앙집권 국가로 만들었죠. 저도 여기서 독재하겠다고 하면 바로 독재할 수 있어요.
리: 도지사가요?
최문순: 여기 인사권을 100% 제가 갖고 있으니까요. 말 안 듣는 사람 자르고, 승진 안 시키면 도지사도 독재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독일, 프랑스는 분권 국가를 해야 한다고 헌법에 쓰여 있어요. 분권 국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에요.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경찰, 군, 검찰 다 쥐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독재국가로 돌아갈 수 있어요. 이명박, 박근혜도 바로 독재로 갔잖아요. 돈과 권력을 나눠서 대통령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거죠.
리: 지방분권부터 해서 여러 레벨의 분권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식으로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최문순: 개헌의 핵심은 분권이에요. 대통령제, 내각제 그런 논의는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들끼리 어떻게 할까 따지는 거예요. 분권이 되어서 권력을 내려놓으면 대통령을 몇 년 하든 상관이 없잖아요? 권력을 우선 시도로 내리고, 그다음에 시군구로 내리는 거예요. 그러면 다시 주민들한테 내리는 거고요. 예를 들어 인제군 상남면에 예산 10억을 준다고 하면 주민들이 토론해서 다리를 놓을 건지, 복지로 나눌 건지 스스로 결정하는 거죠. 그게 민주주의에요.
리: 그게 민주주의이기는 하지만 다들 바빠서 참여를 못 하니까 간접 민주주의로 가는 것 아닌가요?
최문순: 바빠서 참여를 못 하는 게 아니고 그렇게 줘보지를 않은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 예산 400조 중 80%는 중앙정부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한 5% 결정하고 20% 정도는 지방정부가 결정해요. 권력과 돈은 한 군데 붙어 다녀요. 돈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갖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돈을 갖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리: 분권이 잘 이루어져서 도 예산을 뜻대로 집행할 수 있게 되면 강원도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최문순: 예산이 현장에 가장 적합하게 쓰이는 형태가 되죠. 손실되는 예산, 허투루 쓰이게 되는 예산이 없게 되죠. 그리고 사람들의 세계관이 종속적이지 않고 주체적이게 될 거예요. 지금은 저부터 중앙정부와 국회에 예산 따러 다녀야 해요. 그리고 또 건축 같은 큰 덩어리 위주로 따게 되죠. 그런 과정을 주민들이 결정하면, 국가 운영이 훨씬 더 책임성 있어질 거예요.
평창 그 후: 남북 관계의 새로운 시작점에서
리: 사실 평창이 거의 망하는 분위기였다가 갑자기 성공했잖아요. 불안하진 않으셨어요? 다음 선거는 어렵겠다던가…
최문순: 전부 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북한이 참가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죠. 사실 2011년 7월에 처음 유치됐을 때부터 북한의 참가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설득해왔어요.
리: 그땐 민주정부도 아니었는데도 북한 참석을 추진했나요?
최문순: 사실 무슨 행사를 하든 북한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면 잘될 수가 없어요.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뭐든 북한과 같이하면서 평화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단순하고 쉬운 건데 오랫동안 전쟁의 여파, 정치적 고려 같은 것들로 해오지 못한 걸 한꺼번에 뒤집은 게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고 봅니다.
리: 사실 보수정당하고 보수언론에서 굉장히 많이 비판했는데, 힘드셨겠어요.
최문순: 제가 한번 북한과의 공동입장, 분산개최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가, 조직위원회에서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거부감이 심했죠. 그렇게 한반도를 지배해 온 분단체제 속에서 보수정당들이 정치적 이득을 얻었던 거죠. 그런 시대를 끝내야 된다는 게 국민들의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평창올림픽 같은 계기를 통해 서서히 이 지역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리: 아까 항상 현장에 나가보신다고 하셨잖아요. 평창 이후에 도민들의 생각이 바뀐 게 좀 피부로 전달되세요?
최문순: 그렇죠. 가장 강하게 느꼈던 게 북한에서 온 현송월 단장과 예술단을 강릉 시민들이 전부 박수 치고 환영해줬어요. 외부에선 굉장히 비판이 많았죠. 언론의 영향, 레드콤플렉스의 영향을 안 받게 된 거예요. 북한의 참가가, 평화가 좋다는 걸 저절로 아는 거죠. 그걸 누가 모르겠어요. 다섯 살배기도, 강아지도 아는 단순한 진리에서 너무 멀어져 있었던 거죠. 우리 강원도 지역이 한국전쟁의 고통이 많았던 지역인데도 북한의 참가를 꾸준히 찬성해주고 지지해줬죠.
리: 평창올림픽 자체는 잘 끝났는데 건물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딜레마가 남아 있잖아요. 국제대회는 다 빚잔치로 끝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최문순: 저는 관점을 달리해야 된다고 봐요. 자산으로 봐야죠. 공공 인프라 중에 이익 내려고 하는 게 있나요? 철도, 도로, 항만 같은 것처럼 체육관도 이익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보정하기 위해, 우리가 내 돈 내고 지어서 우리가 활용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딜레마도 이미 다 계산해서 지었어요. 개·폐막식장 같은 경우에는 이미 헐고 있습니다.
리: 벌써요?
최문순: 네, 곧 다 철거합니다. 원래 임시로 해서 돈을 적게 들여 지었어요. 아깝다는 반론도 많았지만 헐어버리기로 결정했죠. 지금 있는 것들도 좋은 방안이 안 만들어지면 작은 규모로 남기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2022년에 동계아시안게임을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해보다는 의견이 나오니까, 또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여론이 늘어나고 있어요.
리: 막상 없애려니 좀 아쉽기도 하군요.
최문순: 또 우리나라 선수들이 봅슬레이 트랙, 쇼트트랙 경기장 등에서 메달을 땄잖아요? 봅슬레이 트랙 같은 경우에는 국내에 처음 생긴 거예요. 그분들이 메달을 딴 게 본인들의 노력도 있지만, 그에 못잖게 경기장, 훈련장이 있었기 때문에 메달을 딴 거죠. 유지 비용도 저희 계산으로는 연 45억 정도밖에 안 돼요. 그리고 서울올림픽 시설들은 지금도 다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아주 작고 아담한 시설이죠.
리: 평창 올림픽 덕에 남북관계가 급속히 풀리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보세요?
최문순: 지금까지의 관계 진전이 간헐적이고 단기적이었다면, 이번에는 근본적인 변화를 진행하는 거죠. 평창 전만 해도 평화협정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몰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까지 공공연히 이야기하게 된 건 엄청난 진전이죠. 한반도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니까요.
개발과 보전은 반대말이 아니다: 1%의 이용과 99%의 보전
리: 요즘 수도권 지자체 후보들은 거의 개발 공약을 안 내고 있어요. 환경 문제, 교육 문제 이런 것에 많이 집중하는데, 그래도 강원도는 사실 개발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최문순: 많이 필요하죠. 대부분 개발이라는 말을 난개발이랑 비슷한 뜻으로 써요.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마구잡이로 건물을 뚝딱 세우는 데에 개발이라는 말을 썼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개발 속에는 환경을 잘 보전하는 것도 포함돼요. 제 슬로건이 ‘1%의 확실한 이용과 99%의 보전’입니다. 보호면적도 계속 늘리고 있어요. 다만 이용을 할 때는 확실히 이용하자는 거죠.
리: 1%의 이용 방안은 어떤 건가요?
최문순: 사람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거죠. 저는 환경론자인데, 설악산 케이블카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사람들이 걸어서 산에 올라가는데, 그러면 땅이 패고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빗물이 등산로로 흐르면서 산이 망가져요. 케이블카를 만들고 등산로를 폐쇄하는 거죠. 이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데 개발과 보전을 적대적으로 보니까 안 되는 거죠. 환경도 지키고 개발도 하는, 조금 더 진보적 형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 지사 생활하시면서 운빨이 좀 따르는지 평창 동계올림픽도 있었고, 강원도 관광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늘었거든요. 어떤가요?
최문순: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원도가 지리적 거리는 더 가까운데 교통 거리가 많이 멀었어요. 부산은 2시간 반이면 가는데 강릉은 4~5시간 걸렸죠. 이제 강릉선 KTX가 들어서면서 교통 거리도 제자리를 잡았죠.
리: 어떻게 더 확대하고 키워나가실 생각이세요?
최문순: 중요한 건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북한으로, 대륙으로 가는 전진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강원도가 섬 같은 상태죠. 사실 섬보다도 못해요. 섬은 사방으로 갈 수 있지만, 우리는 한쪽이 막혀 있는 토지로 따지면 맹지(盲地) 같은 데에요. 그러니까 발전의 한계가 일찍 왔죠. 이제 북한으로 가는 여러 인프라를 늘려서 이걸 극복해야 하고 강원도가 그 중심에 있는 거죠.
수도권 집중 권력을 반드시 분산해야 하는 이유
리: 운동권, 기자, 노조위원장, 사장, 국회의원, 지사… 온갖 일을 다 하셨는데 어떤 순간이 가장 재미있고 행복하셨어요?
최문순: 재밌는 자리는 사실 별로 없어요. 다만 누가 제 사주를 보더니 계속 뭘 바꿔야 하는 사주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을 하든 인간의 존엄을 확대하고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 잘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한이 큰 자리가 좋아 보이지만 그만큼 책임도 크죠.
리: 책임 때문에 여러 가지 구설수를 겪으셨는데, 그중 가장 기억나는 건 역시 그 숙취 사건…
최문순: 그건…
리: 딸이 둘인데, 집에서 아들 낳으라고 종용하지 않았습니까?
최문순: 딸들에게 참 미안하죠. 지금도 선거 때는 딸들이 주말마다 오고, 급하면 휴가도 내고 그래요. 저는 딸이 좋았는데, 어머니께서 셋째는 아들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사실 어머니 세대는 아들 말고는 노후대책이 없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딸은 시집가고,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게 없으니까…
리: 압박이 심했을 텐데, 사모님은 그걸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최문순: 우리 세대만 해도 아들을 낳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별로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세대는 아예 안 낳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 낳는 거를 경제적으로 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출산장려 정책을 많이 하는데 사실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거잖아요. 이런 여건을 두고, 자꾸 의식을 바꾸려고 한다거나 출산장려금으로 50만 원 주는 건 사실 사기죠.
리: 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나요?
최문순: 프랑스는 출산율이 2.0명 정도 돼요. 한 명 낳을 때마다 월 75만 원을 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3명 낳으면 225만 원이에요. 아이 낳는 것만으로도 최저생활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정책을 우리는 안 하죠. 그래서 우리 도에서 먼저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공약으로 아기 1인당 6년 정도 매달 50만 원 정도 지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리: 도에 그렇게 돈이 많나요?
최문순: 그렇게 감당 못 할 정도의 돈이 아니에요. 애초에 강원도는 애들이 워낙 적어서(…)
리: 딸들은 정치하는 아빠에 대해서 뭐라고 하시나요?
최문순: 집사람하고 애들은 싫어하죠. 정치라는 게 절반은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아무리 잘해도 반은 그러니까 아무래도 좋은 소리 듣기가 힘들죠. 관두라고 그러죠. 그러면서도, 어쨌든 선거 때 가면 같이 끌려들어 오고 그러죠. 뭐 정치인들은 다 그럴 겁니다.
리: 지방대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 언론에서는 별로 이야기를 안 해요.
최문순: 여기도 동해시에 있던 한중대가 폐교됐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있던 원룸, 상가도 페허 상태가 됐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일 심각한 문제는 갈 학생 자체가 없는 거죠. 또 하나는 서울에 대학이 다 있고 돈과 권력, 정보, 지식 이게 다 서울로 몰리는 체제로 만들어져 있는 거죠. 그런 체제는 깨지지 않으면 지방대학들은 살 수 없어요.
리: 결론이 항상 씁쓸하신데요… 힘들다, 하기 힘들다 이런 쪽으로.
최문순: 이게 본질이니까 이걸 계속 이야기해야죠. 그걸 하려면 권력을 대통령과 국회의원, 도지사 이런 사람들에게서 뺏어서 국민들한테 돌려주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어요.
리: 국민들에게 돌려주면 오히려 수도권으로 더 몰리지 않을까요? 거기에 인구 절반이 있는데요?
최문순: 그걸 보정하는 정책들을 펴야죠.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예를 들어 중국에 가면 성장(省長; 중국의 도지사)이 엄청 쎄요. 방송 체제도 이렇게 되어 있어요. 고향이 어디시죠?
리: 저는 경상북도 경주입니다.
최문순: 그러면 거기에는 대구MBC가 경북을 모두 커버하잖아요? 그런데 이 체제는 말이 안 돼요. 대구경북에 있는 사람들이 맨날 자기들 이야기할 게 뭐 있어요. 춘천MBC도 마찬가지예요. 막국수 맛있다는 이야기를 맨날 춘천MBC가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막국수 맛있다는 이야기를 대구경북에다가 할 수 있어야죠. 그래야 거기 사람들이 막국수 먹으러 올 것 아니에요?
리: 오… 생각도 못 했는데, 그렇네요.
최문순: 중국의 방송체제는 이렇게 되어있어요. 예를 들어 호남성에는 채널이 2개 있어요. 호남성에서만 볼 수 있는 채널, 그리고 전국에서 볼 수 있는 채널. 예전에 드라마 〈대장금〉을 호남성 채널에서 틀었어요. 그러니까 CCTV랑 맞짱 뜨는 거죠. 한국으로 치면 대구MBC, 춘천MBC가 서울MBC하고 맞짱 뜨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서 지역에서 그 힘을 똑같이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죠.
리: 한국 언론이 유독 중앙집권적이긴 하죠.
최문순: 한국은 예전 정권이 지역 사람들을 지역에 전부 다 묶어놨어요. 이게 지역감정이 생기게 된 원인이기도 해요. 자기들끼리의 논리만 서로 듣게 되니까요. 춘천 사람들은 충북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구 사람들은 광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는 이런 게 있어야 되는데 시스템 자체가 다 지역을 지역에 묶어놓은 거예요.
리: 중요한 문제가 나온 것 같은데, 지역 언론이 대한민국에 거의 존재하지도 않고, 있어도 지역 토호들하고 엮여있다는 비판들이 많거든요. 어떻게 지역 언론을 활성화하고 감시할 수 있을까요?
최문순: 지역 언론들이 자기 지역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편성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MBC든 KBS든 전국이 단일하게 9시 뉴스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무한도전도 하고 그렇잖아요? 전국을 하나로 묶어놓고 지역에서는 뉴스 말미에 조그만 뉴스를 하는 식으로 하죠. 그런데 그게 언론만 그런 게 아니라 행정, 정치 다 그래요. 그러니까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서 삶을 영위하는 것보다는 서울로 가게 되는 거죠. 이건 나라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는 데 결정적인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그걸 해체하는 게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생각해요.
좋은 권력은 없는 권력: 대통령이라는 이름부터 바꿔야
리: 지사님 본인도 엘리트이시지만 사실 엘리트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잖아요. 항상 마이너하고…
최문순: 사실 엘리트, 지도자 이런 말이 없어져야 돼요. 대통령도 의장이라는 말로 바꿔야 합니다. 역사의 발전과정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권력에서 벗어나는 게 역사의 핵심이에요. 명예혁명이 뭐냐면 사람이 왕의 소유물인 세상에서 벗어나서 왕을 권력이 없는 허수아비로 만드는 겁니다. 그런 허수아비 왕도 필요 없다고 한 게 미국 혁명이고요. 그래서 대통령을 만들었죠. 그런데 그 대통령이라는 게 사실 president, 그냥 의장, 사회 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가져다가 도로 왕으로 만든 거죠.
리: 너무 막 나가는데요. 나름 같은 당 사람이 대통령 됐는데(…)
최문순: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바꿔야 돼요. 권력으로부터의 압제를 얼마나 빨리 벗어나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발전 속도가 달라져요. 늦게 벗어난 나라가 빨리 벗어난 나라의 식민지가 됐어요. 권력을 분산할수록 선진국으로 더 빨리 발전해요. 지금 우리가 빨리 분산시키지 않으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조로(早老)한 나라가 될 거예요.
리: 생각해보면 몇 년 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새누리당이 인재도 많고 무능한 정당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망한 느낌까지 드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세요?
최문순: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거죠. 우리나라는 작년에 촛불혁명이라는 명예혁명을 했어요. 그래서 권력을 밑으로, 밑으로, 밑으로 내려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같이 의사결정을 하는 단계로 가고 있죠. 그런데 한국당은 아직도 과거의 절대왕정처럼 몇 사람이 전체를 총괄하는 시스템에 매몰되어있는 거죠. 그것을 빨리 버리지 못하면 소멸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보수세력이 견고하게 있어야 되는데 말이죠.
리: 민주당도 보수정당 아닌가요? 민주당은 어떻게 보시나요?
최문순: 사실 저 같은 사람이 보수세력이에요! 저 같은 사람이 보수세력이고, 다이나믹하고 발랄한 사람이 진보세력이 되어야죠. 딸들이 저를 보면 보수꼴통이라고 해요. 그렇지만 사람들을 대하거나 이럴 때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나라가 진보적으로 발전하려면 제가 보수세력이 되고 발랄하고 젊은 사람들이 진보세력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리: 이제는 갑자기 진보정당 편을 드는군요…
최문순: 서유럽에 가면 민주당은 사실 상당히 우파에 가까워요.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죠. 우리나라의 정치이념 스펙트럼이 그만큼 오른쪽에 가 있는 거죠. 진취적이고 발랄하고 분단의 무게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진보적, 사회적 흐름을 이끌어야 해요. 옛날에 체제에 저항하다보면 한편으로 거기에 편입되어있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리: 인류가 항상 진보한다는 명제를 믿으시는 건가요?
최문순: 그렇죠. 그리고 그 핵심이 권력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인간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모든 혁명은 그거였어요. 그 혁명을 통해서 빨리 돈과 권력같은 지배 체제로부터 벗어난 나라들이 빨리 경제적으로도 성장하는 거죠.
리: 지금까지 지사 생활은 10점 만점에 몇 점인가요? 그리고 이번에 또 하면 몇 점 나올 것 같으신가요?
최문순: 한 70점에서 80점 정도 될 것 같아요. 잘한 것은 역시 올림픽하고, 또 시작된 남북 대화의 기반을 놓았다는 것들. 안 된 것은 우리 지역사회의 일들인데, 앞으로 잘 해결해야죠.
리: 이번에 또 지사를 하게 된다면 최문순 이전의 강원도와 이후의 강원도는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요?
최문순: 역시 남북관계를 발전시킨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남북관계의 발전이 이제 한반도의 체제, 국제정치의 체제를 변화시키고 우리나라의 정치를 변화시킬 겁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같은 중앙집권 체제가 된 이유 중 하나가 남북대결 구도가 100%의 원인은 아니지만 주요한 원인 중 하나에요. 그게 해소되면서 정치체제, 경제체제가 바뀌어야 합니다.
리: 나중에 자서전을 쓰시면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적으실 것 같으세요?
최문순: 이웃집 아저씨로 쓰고 싶어요. 동네 아저씨. 편한 이미지로요. 편하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예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소통이라는 게 ‘소통하자!’ 그러면 되는 게 아니에요. 소통이 안 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위계적인 질서에요. 권력 질서, 상하 관계, 수직적인 질서. 그런 구조 속에서는 죽었다 깨도 소통이 안 돼요.
리: 그러면 최문순이 생각하는 소통의 조건이란?
최문순: 소통이 되려면 편해야 해요. 권력 관계가 무너져야 되는 거죠. 무너지려면 나눠줘야 되고요. 또다시 분권으로 돌아가는 거죠. 분권이 되면 저절로 소통이 돼요. 지금 우리나라 같은 체제는 소통이 안 되는 체제에요. 중앙집권적인 체제에서는 아무리 소통을 강조해도 안 돼요.
리: 지사님은 딸과 소통 잘 하세요?
최문순: 저는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딸은 아니겠죠(웃음). 그래도 비교적 권위주의적인 체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웃음).
리: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할까요…? 혹시 뭐 어떻게 체크를 해보신 적…
최문순: 그런데 권력이라는 것 그 자체로 불편해요. 제가 국장급들한테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아무리 좋은 상관도 없는 것만 못하다는 거예요. 좋은 상관은 없어요. 없는 게 제일 좋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올라가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그게 또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니까요. 모든 사람이 내려오는 게 제일 좋아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고요.
리: 그래도 권력 가져보니까 조금 좋지 않나요?
최문순: 꼭 그렇지는 않아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권력을 갖는다는 건 칼날 위를 걷는다는 거랑 똑같아요.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권력이 없는 사회, 대통령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로 가야 해요. 옛날 중국 고사 중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상당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어요. 대통령, 도지사가 맨날 TV에 나오는 건 잘못된 거예요. 없는 것처럼 보여도 저절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너무 모든 걸 분권으로 연결시켜서 미안한데, 굉장히 진실에 가까운 거예요.
리: 마지막 질문으로, 지사님 본인은 권력을 내려놓기 위해 어떤 걸 하고 있나요?
최문순: 일단 권력을 직접 행사하지 않으려고 그러죠. 시스템을 만드는 거예요. 인사를 할 때는 최종 결재권자이기는 하지만 가능한 제가 결정하지 않고 투표로 결정하고요. 여기서는 국장을 투표로 뽑아요. 그런데 부하직원들만 뽑는 게 아니라 동료, 상사들도 같이 뽑고요. 그래서 그 순서대로 올라가게 하는 거죠.
리: 알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문순: 출마한 이래 제일 오래 인터뷰했네요. 고맙습니다.
데이터 시각화로 알아보는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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