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심리학’이 여전히 잘 팔린다. 직장인들은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 등을 호소하고 학생들은 고된 학업으로 괴로워한다. 직장인은 워라밸, 학생들은 ‘스라밸(스터디 앤 라이프 밸런스)’을 외치지만 오래도록 관행처럼 굳어 온 제도와 그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관습이 그런 희망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외부 세계를 뒤집어엎을 수 없으니 남는 선택지는 한 가지다. 마음속에 벌어진 상처를 잘 봉합하고 새 살이 돋게 만드는 일이다.
현대인 거의 누구나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지만 저마다 표현하는 바는 다르다. 불안하다. 우울하다. 행복하지 않다. 즐겁지 않다. 무기력하다. 비관적이다. 외롭다. 피곤하다. 설레지 않는다. 단조롭다. 위태하다. 조급하다. 등등. 증상이 제각각인 만큼, 각자가 집어 들어야 할 처방전 역시 다양하리라. 아픈 심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이 그토록 다양한 치료 이론들과 검사 방법을 자랑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심리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제법 다수의 증상에 잘 듣는 것으로 알려진, 기가 막힌 비법 한 가지가 전해 내려온다. 이른바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라 불리는 자원이다. 모든 증상에 완벽하게 들어맞진 않아도 거의 모든 심리적 문제에 효험을 보인다고 알려진 비법으로 이해하면 좋다. 마치 흔히 보약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삼’ 같다고나 할까.
사회적 지지
사회적 지지란 개인이 정신 건강상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악영향을 줄여줄 수 있는, 대인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 심리 자원의 하나로, 대개 힘든 일이 있을 때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지지의 이점은 엄청나서, 대개 심리학이 겨냥하는 연구 목표(종속 변인)에 이 ‘사회적 지지’를 독립 변인으로 투입하면 웬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사회적 지지가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학술적 증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즉, 주변에 나를 알아주고 믿어주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수준의 삶의 만족감, 주관적 안녕감, 자기효능감, 자아존중감, 직무만족도, 낮은 정신병리 유병률, 낮은 자살 시도 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내담자(환자)를 상대하는 대개의 상담가(임상가)는 사회적 지지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한다. 내담자(환자)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중요한 타인이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내담자(환자) 파악 시 가장 중요시되는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심리학자는 과학자지, 단지 이익만 목적으로 하는 장사꾼은 아니다. 순전히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 ‘사회적 지지’의 효험이 떨어질 만한 소리는 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 지지가 정신 건강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가를 설명해야 하고, 그것을 전문적 도움을 통해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자들은 그간 심리학계에서 일종의 ‘인삼’과도 같이 여겨지던 ‘사회적 지지’ 요소에도 한계점이 있음을 정직하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효과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조언(advise)은 보통 양날의 검처럼 취급된다. 잘 사용하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도리어 조언을 듣는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적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인 ‘조언’이, 조언을 받는 이의 자존심을 건드린 나머지 결국 조언자의 의도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사회적 지지’라는 개념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적 지지라 해도 다 같은 것이 아니며, 효과가 균일하지도 않다.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떤 방식의 사회적 지지가 더 효과적인가? 아직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없던가? 바로 그런 배경 하에서 심리학자들이 탄생시킨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지지의 가시성(Social Support Visibility)이다.
가시적 지지(visible support)란, 지지를 받는 이가 감각적으로 지각 가능한 형태의 도움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직접적으로 조언/충고/위로 등을 건넨다든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비)물질적 수단을 직접 제공하는 등의 지지가 가시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반면 비가시적 지지(unvisible support)는 지지를 받는 이에게 포착되지 않는 형태의 모든 사회적 지지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비록 그가 알아주지는 않지만 그를 위해 열심히 헌신한다면? 이는 비가시적 지지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마치 소싯적 친구들과 즐기던 ‘수호천사 놀이’의 그 ‘수호천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한편,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 비가시적 지지의 개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확장될 수 있다. 지지의 수혜자(recipient)가 눈앞에서 지지 행위를 하더라도 지각자가 그 행위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러한 형태의 지지 역시 비가시적 지지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범주에는 다음과 같은 예시들이 포함될 수 있다.
- 자신이 과거에 그러한 유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를 넌지시 들려주기
- 제삼자의 손발을 빌려 자신의 도움이 수혜자에게 전달되도록 유도하기
- 자신과 수혜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공동으로 그 문제를 극복해나갈 수 있음을 말하기
그리고 기존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지지의 가시성 여부는 사회적 지지의 실제 효과에 다른 영향을 미친다. 쉽게 설명하자면 직접적·가시적으로 지지를 보낼 때 더 효과적인 상황이 있는 반면 간접적·비가시적으로 지지를 보낼 때 더 효과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심리학자 Zee와 동료들(2018)이 주목한 변인은 바로 수혜자의 동기였고, 특히 조절 방식 이론(Regulatory Mode Theory)에서 상정하는 평가(assessment) 동기와 행위(locomotion) 동기 개념을 통해, 수혜자가 어떤 동기를 가졌느냐에 따라 효과적인 사회적 지지 전략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평가 동기가 높은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처한 사태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데 많은 관심을 둔다.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자 타인의 피드백이나 타인과의 비교 등에 자주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행위 동기가 높은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평가’하기보다는 일단 움직여서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평가 동기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비가시적 지지, 행위 동기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시적인 지지가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한 한 실험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실험의 과제는 다른 참여자 한 명과 1:1로 짝을 짓고, 컴퓨터 채팅을 통해 한 명이 자신의 현재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른 한 사람이 응답 메시지를 보내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참여자가 ‘고민을 털어놓는 입장’에 놓이도록 조치가 이뤄졌으며, 응답 메시지는 실험자들이 준비한 내용이 임의로 전송되었다. 평가 동기, 혹은 행위 동기를 가진 다수의 실험 참여자들은 실험 전 임의의 두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먼저 ‘가시적 지지’ 조건에서 고민을 털어놓은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응답 메시지를 보았다.
그래, 그것참 어려운 일이지. 나는 네게 그저 최선을 다해 견디면 될 거라고 조언하고 싶어. 비록 그 일이 매우 힘들어 보이겠지만 나는 네가 그 일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어. 잘 될 거야! (가시적 지지 조건)
다음으로 ‘비가시적 지지’ 조건에서 고민을 털어놓은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응답 메시지를 받는다.
그래, 그것참 어려운 일이지. 나는 최근에 그것과 비슷한 경험을 겪었고, 그저 최선을 다해 견뎠어. 비록 그 일이 매우 힘들어 보였지만 나는 그 일을 헤쳐 나갔어. 결국 괜찮더라고. (비가시적 지지 조건)
그리고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그래프 좌측의 평가(assessment) 동기를 가진 참여자들을 먼저 보면, 가시적 지지를 받은 이들보다는 비가시적 지지를 받은 이들이 더 자신이 받은 조언의 효과성을 더 크게 느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그래프 우측의 행위(locomotion) 동기를 가진 참여자들을 보면, 반대로 비가시적 지지를 받은 이들보다는 가시적 지지를 받은 이들이 더 조언에 대해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타인과의 비교에 민감한, 따지고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넌지시 조언하기’가 더 효과적이고, 뭐든지 일단 행동하고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조언하기’가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더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가설은 동일하되 세부적인 조건을 달리 한, 세 차례의 추가 실험이 더 있었고, 모두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마치며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 중 하나는 ‘도와주고도 욕을 먹을 때’다. 분명 나는 그(녀)를 돕겠다는 선한 의도를 갖추었고, 그것을 위해 내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여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상대방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불쾌해하고 앞으로는 이런 도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핀잔을 주기까지 한다.
사실 그렇다. 내 의도를 몰라주는 상대방에게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고, 어찌 되었든 도와주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므로 그것은 그것 그대로 존중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설픈 지지’로 인해 상대방에게 상처가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왕 사회적 지지를 보내기로 한 김에 조금만 더 세심해진다면 어떨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아니면 넌지시 도움을 주는 것이 더 나을까? 잊지 말자. 남을 돕는다는 것에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과 상황에 맞는 도움이 있을 수 있으니 직접적인 충고만 남발하는 것은 금물이다. 부디 넌지시 돕는 요령 또한 가져보도록 하자.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참고문헌
- Bolger, N., & Amarel, D. (2007). Effects of social support visibility on adjustment to stress: Experimental evid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2(3), 458-475.
- Zee, K. S., Cavallo, J. V., Flores, A. J., Bolger, N., & Higgins, E. T. (2018). Motivation moderates the effects of social support visibi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4(5), 735-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