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한국 고용정보원에서 ‘한국의 지방 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인구 구조를 고려하였을 때 226개 시군구 중 약 35%인 79개 지역이 30년 이내 소멸할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에 직면했던 일본의 선행 연구에 기초한 이 연구보고서가 발표된 이래, 한국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지방 소멸에 대한 걱정이 과도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현재 지방 소멸은 저출산/고령화 이슈의 일환으로 국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중대한 문제로 간주된다. 최근 중앙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라는 명칭을 ‘지방 정부’로 변경하고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안을 마련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방 소멸은 단순히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지역 인구구조 변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방 소멸을 가져온 원인, 또 지방 소멸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민의 삶, 지역 간 불평등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개 지방 소멸이 문제인 지역일수록 주거, 교육, 고용, 의료와 복지 등 사회적, 경제적 생활을 구성하는 기반이 취약하다는 특성을 가진다.
인간의 기본 필요를 충족시킬 만한 경제적, 사회적 자원이 불충분한 일종의 ‘박탈’ 상태로, 이는 그 자체로 주민들의 건강과 건강 형평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올해 초 국제학술지 《역학과 지역사회보건》에 실린 스웨덴 연구팀의 논문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구팀은 1988년부터 2012년까지 총 25년 동안의 국가 사망통계 자료와 인구등록자료를 활용해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의 장기적 변화 양상을 살폈다. 또한 이러한 변화 양상이 지역의 박탈 수준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고자 했다.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 등에 의해 막혀서 심장근육에 허혈을 일으키는, 소위 ‘심장마비’에 이르게 하는 질환이다. 서구에서는 가장 흔한 사망원인 중 하나이며 한국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인이다.
연구팀은 지역을 인구 1,000~2,000명 정도의 동네로 세분하고, 주민 중 저학력 비율, 저소득 비율, 실업률, 사회복지 수급률을 종합해 ‘동네 박탈 지수’를 산출했다. 이 점수에 따라 ① 박탈된 지역, ② 중간 지역, ③ 풍족한 지역의 세 집단으로 구분하고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의 변화를 검토했다. 또한 관찰 기간을 1988~2002년과 2002~2012년의 두 시기로 구분한 후 이들 세 집단 사이에 사망률 변화 양상에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전체적으로 관상동맥성 심장질환 사망률은 25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치료법이 개선되고, 무엇보다 비만이나 흡연, 동물성 지방 섭취 같은 위험요인이 잘 알려지면서 개인과 국가 수준에서 다양한 공중보건 개입이 시행된 덕분이다.
그러나 박탈이 심한 동네와 풍족한 동네 사이에는 상당한 사망률 격차가 존재했고, 이러한 차이는 25년 내내 유지되었다. 박탈이 심한 동네들에서 사망률이 높고, 박탈이 가장 덜한, 즉 풍족한 동네들에서 사망률이 낮은 현상이 일관되게 나타난 것이다. 또한 시간 경과에 따른 사망률 감소는 풍족한 동네들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난 반면, 박탈이 심한 동네들에서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관상동맥성 심장 질환을 예방과 치료 방법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발전의 효과가 박탈된 동네와 그렇지 않은 동네에 똑같은 효과를 미치지는 못했다고 해석했다. 이 연구는 스웨덴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에도 시사점을 준다.
지방 소멸을 가져오는 지역의 인구 유출과 저출산은 저발전, 경제적/사회적 박탈과 분리할 수 없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은 지방 소멸에 도달하기 전 이미 심각한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을 낳는다. 지역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역량 박탈을 해소하는 것, 즉 모든 지역에서 ‘건강한 삶의 가능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방 소멸을 막는 방법일 것이다.
원문: 시민건강증진연구소 / 필자: 민동후 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