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울산, 경남을 통틀어 유일한 지역구 3선 의원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부산에서 후보자로 나서겠단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정미영: 제가 부산, 울산, 경남에서 늘 야당이었던, 여당이면서도 야당인 당의 유일한 지역구 3선 구의원이에요. 구의원은 물론 시의원, 구청장, 국회의원 다 해도 지역구로 3선 한 건 저밖에 없어요.
리: 열린우리당에서 처음 정치인 생활을 시작하신 거죠? 그 이전에 계기는 없으셨나요?
정미영: 제가 2005년에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가입했는데, 그 전에도 지역 활동을 많이 했어요. 아파트 부녀회장도 하고, 주민센터 일본어 강사도 오래 하고, 아들 둘 기르면서 학부모 활동도 했죠. 제 큰아들 이름이 순돌인데…
리: 진짜 이름이에요?
정미영: 진짜예요. 둘째는 순걸이고. 애들 아빠가 지은 이름이에요.
리: 아빠가 센스가 없어 보이는데… 아빠는 뭐 하세요?
정미영: 부산대학교 교수예요.
리: 고루한 사람이 교수가 되기 좋죠. 왠지 아빠가 자유한국당 지지자일 것 같은데…
정미영: 전혀 아닙니다. 제가 열린우리당을 선택하게 된 것도 남편 때문이었고요. “정당을 선택한다면 무조건 이 정당을 선택해서 정치의 길을 가야 한다, 성공과 좌절은 상관없다”고 말할 정도였죠.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의논의 상대가 되어주었던 게 제 남편이에요. 고루한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리: 그 여러 가지 활동이 정치와 연결된 일이었나요?
정미영: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작은도서관운동, 부녀회 활동 같은 지역 활동이었죠. 그런데 지역주민들이 2004년 보궐선거 구의원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어요. 근데 2006년 선거까지 지역주민들 권유가 계속 이어졌어요.
리: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거예요? 아파트 땅값이라도 올려줬어요?
정미영: 전혀 그런 거 없습니다. 아마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소통하고,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모습이 매력이 됐던 것 같아요.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앞장서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거든요.
리: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사실 구의원이 그런 민원 해결해주는 역할도 많이 하잖아요.
정미영: 저희 아파트 단지 뒤쪽 교차로가 경사가 심한데다, 경사 끝 지점에 콘크리트 벽이 있어서 진입하는 차량들이 시야확보가 안됐어요. 작은 교차로인데 거기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교통사고가 났어요. 또, 저희 아파트가 부산대학교에서 매우 가깝습니다. 보도와 차도 경계가 없으니까 불법주차가 너무 심해서 사람들이 차도로 다녔어요. 제가 문제도 계속 제기하고 반상회도 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노력했죠. 그런데 이 문제를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2006년에 구의원이 되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게, 다리 난간을 시야가 확보되게끔 자른 일이었어요.
리: 답답해서 내가 직접 하겠다는 거군요. 일주일에 몇 번씩 사고가 날 정도면 절대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왜 민원을 넣어도 해결을 안 해줬을까요? 구의원, 시의원이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거잖아요.
정미영: 그 당시 정치인들이 아무도 관심이 없었나 봐요. 그리고 우리 아파트를 포함해서 아파트단지 주변에 인도를 설치해서 차량들이 인도를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었죠.
평범한 아줌마가 열린우리당을 택하게 된 이유
리: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한나라당으로 가면 편할 거란 생각은 안 하셨어요?
정미영: 똑 부러지게 말은 못 하겠지만, 대학 시절부터 제가 갖고 있던 정치의식, 사회 문제에 대한 사고방식이 열린우리당하고 맞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 정당을 선택했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리: 빨갱이?
정미영: 정신이 나갔구나 하는 거였죠. 저도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당선이 되더라고요.
리: 근데도 뽑아줬어요? 그 사람들도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정미영: 기사를 검색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떨어진다고 생각했죠. 매우 이상하게 당선이 됐습니다 제가. 더 웃긴 건, 그때 선거 사무장이 애 셋 딸린 30대 아줌마, 그러니까 4시 되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 마중 가야 하는 아줌마였어요.
리: 공약은 뭘 내거셨어요?
정미영: 우리 지역문제를, 우리 아줌마들이 한 번 대표를 뽑아서 해결해보자. 그게 공약이었어요. 아줌마들이 정당을 떠나 한마음이 된 것 같아요.
리: 기적 같은 일이네요. 2006년이면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꽤 내려갔을 때로 기억하는데요.
정미영: 그때 아마 열 몇 명밖에 안 됐을 거예요. 지역 비례를 제외하면, 여성으로선 부산, 울산, 경남에서 유일하게 제가 당선됐죠. 남자분들도 매우 드물게 당선됐고요.
리: 부산 태생으로 계속 부산에서 자라신 건가요?
정미영: 네, 그렇죠. 금정구에서 살았어요. 초중고, 대학교까지 금정구에서. 부산대학교 84학번이에요.
리: 저는 84학번이 대한민국 최고의 황금학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공부를 열심히 하신 편이에요, 아니면 돌도 던지고 그러셨어요?
정미영: 돌을 던지는 데 앞장서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집이 그렇게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학교를 졸업했어요. 대학교 때도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거나, 아니면 방학 때 항상 아르바이트했어요. 제일 오래 했던 아르바이트가 보세공장에서 단추 따는 일이었어요. 흔히 시다라고 말하죠.
리: 그래서 돌 던질 여유도 없었다?
정미영: 핑계일지는 모르겠는데, 학교 다닐 때는 최선을 다해서 학점을 받아야 했죠. 쉴 때는 부모님을 도와야 했고요. 그런 강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다른 방향에 시선을 돌릴 형편이 못 되었어요.
금정구의 첫 야당 출신 여성 구의원이 되다
리: 덜컥 당선이 돼버렸어요. 처음에 나갈 때 당선될 거라고 생각했나요?
정미영: 떨어질 거라고 한 번도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리: 자신 있게 당선된 후, 출근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정미영: 처음 4년 동안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의회가 생긴 이래 야당 여성 의원이 처음 들어왔는데, 사사건건 제가 이의제기를 하고 문제 제기를 하니 그분들도 힘들었겠죠. 제 첫 5분 자유발언 제목이 ‘의회는 자성을 구청장은 투명행정을’ 이었어요. 그런데 그 5분 자유발언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거예요. 제가 그러면 당신들 공천 준 국회의원들에게 전화해서 당신들이 한 짓을 다 말하겠다, 하고 진짜 전화했어요. 내일 구청 로비에 기자들 불러서 기자회견 할 테니까, 5분 자유발언 허락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하니까 해줍디다. 그 자유발언으로 의회랑 구청이 뒤집어졌죠.
리: 그 사람들하고 같이 일해야 하는데 꽤 미움 받으셨겠어요? 발의를 하는데 아무도 도장을 안 찍어준다거나…
정미영: 잘 아시네요.
리: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나요? 지나고 나면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 많잖아요.
정미영: 제가 작은 도서관을 운영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들어가자마자 작은도서관 지원조례를 대표발의하며 금정구 주민 2,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거든요.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봉사자 아주머니들이 그 예산을 심사하는 날 아침에, 반대하는 의원님들한테 장미꽃을 한 송이씩 주면서 잘 부탁드린다고까지 했어요. 그런데 결국 그걸 부결시키더라고요. 정말 같이했던 분들께 너무 미안했죠.
리: 결국 어떻게 됐어요?
정미영: 결국 제가 3선 되고 난 뒤에 통과시켰습니다.
리: 일을 하려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다른 정당 의원과도 이야기해야 하고, 구청장도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힘드셨겠어요.
정미영: 정당이 달라도 정당에 따라 입장이 다를 뿐, 금정구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건 같죠. 상대방을 폄하하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리: 초선할 때는 그렇다 치고, 재선, 삼선 하면서 조금씩 뭔가 바뀌지 않았어요?
정미영: 야당 의원님들, 젊고 능력 있는 의원님들이 많이 들어오시면서 의회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어요. 주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처음엔 저 혼자 목소리를 내다가 여러 명이 목소리를 내게 되니, 구청 직원들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리: 12년 중에 가장 극적이라고 할 만한 변화는요?
정미영: 예산을 쓸 땐 공적인 카드를 사용하고 그 포인트를 세입예산으로 잡게 되어 있는데, 1988년 구청이 생긴 이래 한 번도 세입예산으로 잡지 않았어요. 2006년 돼서 잡았죠. 또 세입세출예산외 현금이라고, 예산서에 없는 예산들이 있었어요. 의회의 심의가 필요 없는 예산이었는데,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죠.
리: 나름 감시와 투명성이 많이 좋아졌군요. 의원 하기 전에 뭘 하셨길래 그렇게 예산을 잘 파악하시나요?
정미영: 도서관에도 근무했고, 무역회사에서 한 8년 넘게 근무했어요. 그리고 원래 여성이 살림을 하기 때문에 예산을 자세히 잘 보죠.
리: 그럼 지난 12년 동안 했던 정책 중, 이건 참 잘한 것 같다 하는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정미영: 정책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금정 온천천 작은 콘서트에요. 구의원으로서 한 게 아니고 금정구를 사랑하는 지역 주민 정미영으로서 한 일이에요. 어릴 적엔 온천천에서 개구리 잡고 메뚜기 잡으며 자랐는데, 요새 거기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어요. 슬픈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추억도 만들어 줄 겸 2010년에 온천천변에 현수막 하나 걸고, 친구 딸 하나 출연시키고 후배 노래 부르라 그러고 해서 음악회를 시작을 했어요. 구청이나 이런 데서 예산을 대주는 건 10원도 없어요. 무대제작, 참가자 모두 봉사에요. 그런 콘서트를 8년 동안 유지해왔는데 8회째를 맞이하면서 참여자·출연자가 1,000명에 육박하게 되었어요.
리: 1,000명이면 다소 아쉽지 않나요?
정미영: 실제로 구에서 하는 음악회는 비싼 가수를 모시고 무대를 꾸며서 하루에 억 단위로 돈을 씁니다. 하지만 거기에 오는 사람들은 다 관변단체 주민들이 대부분이고, 어르신들을 차로 실어서 모시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것이 아니라, 진정 주민들 손으로 만들어서, 주민들이 즐기고 주민들이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거예요. 이렇게 자발적인 분들 1,000명이 모인다는 건 아마 예가 없을 거예요.
3선 의원이 구청장에 도전하게 된 이유
리: 3선까지 하고 나니 구청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가요?
정미영: 12년 동안 구청의 예산·행정·조직을 들여다보고 느낀 것이, 보수 정당의 지배하에서 낡은 정치 행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거였어요. 금정구는 김진재 의원과 그 자제분(김세연 의원)이 계속 국회의원을 했어요. 수십 년을 그 집안 중심으로 정치 행정이 이루어져 온 거예요. 김진재 어르신의 과거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벗어난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이 탄생해서 금정의 정치 행정 구도를 바꿀 필요가 있어요.
리: 김진재란 분은 어떤 분인가요?
정미영: 오선 국회의원이에요. 자제분인 김세연 의원도 재산이 굉장히 많죠. 그 집안에서 활동했던 분들이 구청장도 하고, 구의원도 하고, 시의원도 하며 쭉 내려온 거예요.
리: 특권 집중이 굉장히 쉬운 구조인 것 같은데요.
정미영: 맞습니다. 말씀드리기 예민한 사안들도 있죠. 사회단체 보조금을 심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있지도 않은 유령단체에 예산을 편성해놓은 거예요. 제가 본심사 전에 이러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이의제기를 했음에도 결국 통과를 시켰어요. 야당 여성의원이니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나 봐요. 회의장에 들어가면서는 녹음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 녹음하겠다 고지하고 이의제기를 했는데, 그랬는데도 통과시키더라고요. 그 내용을 후에 부산일보 이자영 기자가 알게 되며 기사화되고, 검찰 쪽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하게 돼요.
리: 세상에.
정미영: 안타까웠던 게, 누군가 지시를 해서 그 보조금을 편성했을 텐데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5급이나 높은 분들은 다 빠져나가고, 말단에 있는 9급이나 8급같이 진짜 서류 작업해주는 직원만 피해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원들에게, 다음부터는 위에서 시켜서 가짜 서류를 만들거든 절대로 본인 이름 쓰지 말고 상사 이름을 쓰라고 얘길 했죠.
리: 초선부터 대단하셨어요. 재선, 3선 하시면서 스스로 달라지거나 업그레이드된 점이 있다면요?
정미영: 저 혼자 업그레이드가 된 게 아니라 구의회, 구청,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함께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직원분들도 요즘은 잘 이해해주세요. 어느날 갑자기 정미영이란 열린우리당 구의원이 툭 튀어나오면서 조금씩 변해 온 거죠. 지역 주민 여러분의 변화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3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리: 그렇게 구청장까지 출마하게 되시는 거군요.
정미영: 제가 주민센터에서 일본어 강사를 19년 했습니다. 지금도 하고요. 그리고 15년 동안 작은 도서관을 하면서 운영자와 늘 소통했어요.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들이에요.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추억을 남기기 위해 8년째 금정 온천천에서 재능기부 음악회를 열었고요. 길게는 19년, 짧게는 8년 동안 꾸준히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준비를 해 온 거죠.
리: 지역 주민들과 술 드셔야 하는 경우도 있죠? 술 드시고 뻗은 적은 없으세요?
정미영: 제가 의정활동을 시작할 때는 의원들이 술 사고 밥 사는 거란 통념이 너무 강했어요. 꼭 사진 않더라도 그런 자리마다 참석하길 바라는 분들이 많아서 힘들었죠. 나중엔 이렇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서, 저는 노래방 안 가고 술집 안 간다고 얘길 했어요.
리: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슬퍼하시겠는데요.
정미영: 아뇨,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그걸 안 한다고 의정활동이 힘들진 않더라고요.
주민들과 소통하는 행정을 꿈꾼다
리: 제가 가는 곳마다, 자유한국당이 지방을 너무 오래 잡고 있어서 고인물 대잔치가 되었다는 지적을 해요. 어떻게 일신할 수 있을까요?
정미영: 맞아요. 제 슬로건이 ‘구민이 주인인 정의로운 금정’입니다. 주민들과, 구청직원들과 늘 소통하며 행정과 예산 편성을 해 나가려고 해요.
리: 그래도 청장이 기본적인 방향성은 제시할 수 있을 텐데, 어느 쪽을 강화하고 싶으세요?
정미영: 지금 금정구의 재정자립도는 냉정하게 말해 20%도 안됩니다. 정해진 일을 제외하고 나면, 구청장이 임의로 쓸 수 있는 예산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재편성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먼저 아파트 관리비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공동주택 관리팀을 신설하는 거예요. 그리고 공사립 작은 도서관을 걸어서 10분 거리마다 확보하는 것. 거길 맘카페와 실버카페로도 만들 거예요. 그리고 실질적인 주민참여예산제를 하고 싶어요.
리: 작은 도서관에 맘카페 플러스 실버카페라는 게 재미있네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정미영: 책만 빌려 가는 게 아니라, 차도 마시고 아이들도 뛰놀 수 있게 하는 거죠. 가능하다면 여기에 능력 있는 어르신들을 활용해 여러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예요. 아이들과 부모, 어르신들 세 세대가 공유하는 공간이 되며 자연스레 거기에서 지역 문제도 소통할 수 있겠죠. 지금은 사람들끼리 소통하지 않아요. 익명사회잖아요. 그런데 그 작은 도서관이 공동체를 복원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예요.
리: 걸어서 십 분 이내에 하나씩이면, 무진장 많이 만들어야겠는데요.
정미영: 만드는 게 어렵진 않습니다. 이미 있는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고요. 건축법과 관련 법령에 따라 300세대 이상의 주택에는 반드시 작은 도서관을 만들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만들긴 했는데 방치된 공간이 많습니다. 이 공간들을 활용하는 거죠.
리: 다른 정책은 어떤 게 있죠?
정미영: 아파트 관리비 거품 빼기. 부산에선 최초의 공약입니다. 금정구의 약 60%가 공동주택에 거주하거든요. 이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해 공동주택관리지원팀을 만들려고 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의견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파트관리지원단이라고 또 따로 전문가 집단을 만들 거예요. 필요한 공동주택이나 단체에 저희가 지원을 해드리는 거예요.
리: 이분들이 그럼 아파트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미영: 만약 장기수선충당금이 3만 원이 나온다면, 이걸로 어떤 장기수선이 가능할지 물어볼 데가 필요하겠죠. 아파트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면 전기 전문가를 파견해 진단을 해드리는 거죠. 아파트 단위로서는 하기 힘든 건데 전문가를 구청에서 제공해드리면, 공공의 전기세도 절약이 되고 자연스럽게 아파트 관리비도 내려가게 되는 거죠.
리: 이런 정책들은 어디서 발굴하세요?
정미영: 이미 서울 같은 곳에서는 하고 있어요. 벤치마킹 한 거죠. 제가 또 아파트에 오래 살다 보니 생각한 것도 있고요.
주민들과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는 깨끗한 정치인
리: 이번에 승리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세요?
정미영: 선거란 것은 항상 투표함을 열어봐야 압니다. 저는 6월 12일 자정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리: 이번엔 시의회, 구의회도 바꿀 기회에요. 만약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정미영: 그동안 부산시 시의회 의원이 하나도 없었어요. 구청장도 없었고요. 보수 정권이 지금까지 부산의 모든 예산을 장악했습니다. 이제 그걸 견제해야죠.
리: 반대로 구청장이 되면, 견제를 받는 입장이 될 수도 있어요.
정미영: 견제를 받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죠. 긍정적인 견제는 물론 좋은 일이지만요. 저는 깨끗한 정치, 주민들과 소통하는 정치를 통해, 항상 내 곁에 있는 구청장이 되고 싶어요.
리: 많은 사람이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인 거 같아요. 본인만의 소통 방법이 있다면요?
정미영: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는 계획에 불과하죠. 하지만 지금까지 19년 동안 주민센터에서 강사를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주민들을 만나 얘기해왔잖아요. 그렇게 한결같이 해왔던 것처럼 소통할 거예요.
리: 여기서 여러 선거를 치르셨을 텐데, 부산이라는 동네는 어떤 동네인가요?
정미영: 제가 처음에 열린우리당 가입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정말 별종이라고 그랬어요. 명함을 나눠드리는데 침을 뱉어서 돌려주기도 하고, 명함을 찢어서 얼굴에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에 구청장으로 출마하면서 지인분들에게 입당을 권유하니 1,200명 정도가 가입을 해주셨어요. 그때 느낀 게, 어느 정당이든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만 한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는 것. 그분들이 함께했기에 구청장에도 나올 수 있었죠.
리: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도 열심히 하셨죠? 그땐 기분이 어땠어요?
정미영: 2012년에는 제가 문재인 라디오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했어요. ‘정미영의 달님소식’이라고 한 70일 정도 문재인 편파방송을 했었어요.
리: 문재인 대통령 팬인가 봐요.
정미영: 당연하죠. 진솔하고 능력이 있잖아요. 대한민국을 잘 이끌지 않습니까. 그런 분이라고 처음부터 신뢰했기 때문에 2012년부터 도운 거고, 2017년에는 민주종편에 출연해서 ‘더깔때기’란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부산 선대본의 여성본부장으로서 전국 최초로 509 여성 지지 선언을 이끌어냈고요.
리: 남편이 멋있어요, 아니면 문재인이 멋있어요?
정미영: 우리 남편이 멋있죠.
리: 아, 죄송합니다. 안 계신 줄 알았어요. 촛불은 계속 나가셨어요? 부산에서 본 촛불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정미영: 박근혜 최순실 사태를 보며 우리나라가 정말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서 슬펐어요. 우리가 그렇게 아니라고 말할 때 왜 우리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이제 그 말을 들어주셔서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사실은 머리만 교체된다고 바뀌는 건 없어요. 수족이 있어야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역 골목마다 제발 촛불의 민심이 흘러내려서 지역 정치가 교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리: 부산 서면에서 엄청나게 촛불이 모였다고 하던데 그렇게 많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정미영: 저는 많이 나온다, 적게 나온다 따지지 않고 무슨 일이 있을 때면 늘 현장에 나갔어요. 물론 주민들이 많이 동참해주시는 걸 보고 기뻤다고 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씩은 변해가는구나, 내가 사는 부산이 조금은 바뀌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부산 시민들이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단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그동안 민주당이 험지라고 너무 괄시한 느낌도 있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 민주당이 부산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정미영: 문재인 정부와 오거돈 부산시장, 각 구마다 저와 같은 구청장, 구의원, 시의원들이 부산 시민들이 갈망해왔던 구민중심의 정치를 이번엔 해내지 않을까 생각해요. 초심을 잃지 않고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 돼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 이번에 만약 당선된다면 기존의 금정구와 앞으로의 금정구는 어떻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미지로 비유를 한다면.
정미영: 지금까지는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산 편성, 정치, 행정의 방향이 설정되어 있었죠. 이제 저처럼 평범한 아줌마, 출퇴근하는 평범한 구민들을 중심으로 돌려놓고 싶어요.
리: 구청장이 되고, 은퇴할 시기가 되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청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정미영: 깨끗한 정치인. 늘 나와 함께 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리: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정미영: 금정구청장 후보 정미영, 정말 오랫동안 금정구청장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준비 많이 했습니다. 능력과 소통 믿어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 6월 13일 꼭 기억하셔서 기호 1번 정미영을 믿어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고 구민을 섬기는 정치 꼭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리: 외운 멘트처럼 딱딱한데요.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