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보고서가 적은 회사가 좋은 회사입니다. 저도 책을 통해서나 아티클을 통해 수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가 없기는 어렵습니다. 법인이 혼자 할 수 없는 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성격의 조직이란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어떻게든 수요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보고서는 보고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고서를 만들게 된 생각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일하시는 분은 대부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산출물 그 자체보다는 그 사고를 한 사람의 생각이 더 가치를 지니죠. 그래서 더더욱 대충 만들 수 없습니다. 평가되는 것은 물론, 커뮤니케이션의 경제성에 영향을 미치고 조직의 생각을 대변하니까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생각하는 힘’은 보고서를 만드는 개인의 커리어가 성장하도록 영향을 끼칩니다. 생각을 모아 정리하는 기술은 지식 근로자에게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결과물이기 때문이죠. 흔히 ‘모든 일은 영업이다’라고 말하지만, 사무직으로 일하다 보면 ‘모든 일은 기획이다’라는 말이 더 정확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꾸며서 실행하고 사후 관리까지 해내는 과정은 모든 기업에 몸담은 사람들이 마땅히 꾀해야 할 능력입니다. 하물며 오퍼레이팅도 개선할 방법을 찾는 게 현대 경영인데, 기획적인 사고는 당연히 개인의 값어치를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죠. 그 기술을 확인하는 방법이 바로 사고의 총아인 ‘생각한 내용’, 즉 보고서인 것입니다.
구두 장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은 ‘잘 만들어진 구두’입니다. 그처럼 ‘생각하는 사람’의 결과는 보고서를 포함한 보고 내용입니다. 그걸 잘하는 방법은 이미 시중에 숱하게 책이 나왔고, 한 달에 몇십만 원씩 가는 강좌가 절찬리에 팔립니다. 심지어 저도 아티클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술에는 자습서가 필요합니다. 이론은 큰 관점을 기르도록 도와주지만, 구체적으로 과업을 수행할 때에는 단순히 이론을 습득하는 것 이상으로 고민해야 하고 창의력을 더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자습서는 이를 쉽게 하기 위해 도와주는 훈련인 셈이죠.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보고서를 포함한 ‘보고’에는 텔레비전 뉴스만 한 추천 교재도 또 없습니다. 왜냐고요? 뉴스 기사는 몇 분 안에 새로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거기에 일정한 관점을 넣어서 살짝 시청자를 설득하기도 해야 합니다. 모르는 내용에 설명을 붙여가면서 몇 분 안에 불특정 다수에게 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거기에 주장까지 설득하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탐사 보도의 경우에는 몇 달 이상씩 준비하며 만들지만, 단 몇 시간 만에 만들어내는 뉴스 기사도 많습니다. 그래서 더 배울 점이 많습니다. 준비하는 기간이 짧고 시간이 지나면 눈앞에서 사라지는 프레젠테이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획자는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을까요?
뉴스 그래픽은 보고서의 정수입니다
물론 모든 뉴스 기사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한 배경 설명이 없을 때도 있고, 굳이 필요한가 싶은 자료 화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뉴스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그래픽을 활용합니다. 말하자면 기획자의 보고서에서 빠질 수 없는 숫자나 업무 프로세스, 경쟁사와의 비교, 시장의 동향을 나타낼 때 쓰는 그래픽의 원리가 담긴 좋은 참고서가 매일 뉴스에 나오는 셈입니다.
보고서에서 그래프는 항상 강조할 것과 대조할 것을 먼저 구분하고 배치와 컬러를 사용해 강조할 것이 눈에 잘 보이게 구성하는 게 보통입니다. 유량인지 저량인지에 따라 추세를 보이는 그래프를 쓸 것인지, 단면을 놓고 비교하는 데 효과적인 것을 쓸 것인지, 혹은 비율이나 절댓값 중 더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등에 따라 어떤 그래프를 사용할지가 기본적으로 결정됩니다.
뉴스 그래픽은 이런 극적인 대조와 흐름이 잘 나타나게 설명합니다. 도식화에 자신이 없는 분은 텔레비전 뉴스를 자세히 보면서 왜 저 그래프를 썼고 저기서 방송사가 어떤 의도를 숨겨두었는지 스스로 파악해가는 것도 학습이자 재미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뉴스 그래픽을 볼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중점적으로 봅니다.
- 색채의 사용: 배경 컬러와 강조 컬러를 어떻게 쓰는지
- 그래프의 종류: 심플하면서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그래프는 어떤 것을 쓰는지
- 대조군 정의: 비교 대상이 전체의 평균인지 다른 대상인지, 절댓값으로 비교하는지 비율로 하는지
- 관련 GIS 자료: 지리적인 정보를 함께 담을 때 어떤 범위에서 어떤 그래픽을 참고하는지
뉴스를 많이 보고, 보고서에 실제로 테스트해보면 깔끔하게 다듬어진 생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뉴스 구성은 보고의 기본입니다
두괄식
짧은 뉴스에서 결론이 먼저 나오고 결론의 배경 설명을 하거나 일의 순서 혹은 각계의 견해를 담는 식의 두괄식 구성도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아나운서가 하나의 주제를 요약하여 설명할 때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주제를 설명하는 내용에서 핵심 근거는 어떤 권위로 내세우는지를 봅니다.
기사에 들어가면 기자가 처음 말하는 문장은 어떤 형태이고 이후 어떤 단락들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지 봅니다. 하나의 짧은 브리핑과 다를 바 없습니다. 벤처 캐피털에서 하는 ‘엘리베이터 테스트’ 같이 짧은 시간에 일의 핵심을 이야기해야 하는 기획자의 일상에서 이것이 일인 기자들은 어떤 구성으로 이야기를 돋우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용
권위를 인용한다는 것은 주장에 대한 신뢰를 극대화하는 일입니다. 자칫 ‘뇌피셜’에 그치는 보고가 되지 않기 위해 뉴스에서 어떤 것을 인용하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뉴스 인용은 인용한 내용보다는 누구 혹은 어디서 인용했는지 출처를 중심으로 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짧은 영상 매체에서 전문적인 설명은 이해를 떨어뜨리기에 별거 없는 인용이 많지만 인용이 학술지에서 이뤄지는지, 권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뤄지는지, 정부 기관의 발표나 앞선 조사 내용을 토대로 이뤄지는지는 보고서 및 어떤 회사 보고에서든 활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낯선 단어에 대해서는 정의를 하는 화면을 별도로 만들기도 합니다. 업무에서도 기술적인 새로운 용어는 별도로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뉴스에서 시청자들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는지 보는 것도 공부가 됩니다.
제목
보고서의 타이틀, 각 페이지의 타이틀을 붙이는 것도 때로는 고역일 때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들로 최대한 수식어 없이 건조하게 팩트만 담아 제목으로 할 수 있는가는 언제나 어려운 부류의 일입니다. 내용에 따라서 보고 받는 사람에 따라서 구조적인 내용이 제목으로 오기도 하고 주장이 제목이 되기도 하며 다소 부드러운 내용이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뉴스 기사들도 그렇습니다. 모두 딱딱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제목이든 중요한 것은 제목을 통해 내용의 핵심 주제가 읽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비싼 게 주제라면 단순히 ‘○○○가 더 비싸다’ 보다는 ‘○○○가 선진국 대비 5배 더 비싸다’ 혹은 ‘○○○가 역대 최고가를 갱신했다’는 식으로 형용사를 빼고 내용의 가치를 부각하는 데이터의 가치를 함께 나타내는 것이 좋습니다.
제언
시작한 주제를 마무리하는 것도 도입부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회사라면 보고서를 통해 무엇을 사업에서 어떻게 하자는 내용이 있어야 실제 영향력 있는 내용이 되니까 말이죠. 단순히 현상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면 건설적이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을 한 셈입니다.
뉴스도 뭔가 주제를 던지고 근거를 하나씩 들면서 현재 상태에서의 문제점 등을 드러낸 후에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인지, 누가 뭘 해야 한다든지 등의 의견을 마지막에 포함합니다. 때로 하나의 주제에 여론이 정립되지 않고 가치 판단의 문제가 존재한다면 반대 의견을 드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기업 보고서에서 반대 의견만 단순히 들고 마치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구성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고를 통해 다음 이어질 액션이 무엇이고 그중 유의할 부분으로는 이런 것이 있다는 식으로 의견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좋은 보고서란 미리 ‘이후 무엇을 하겠다’가 이미 정리된 상태에서 그것을 위한 보고 내용을 앞에서부터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다른 자습서, 인포그래픽
뉴스와 흔히 비교되는 것으로는 ‘인포그래픽’이 있습니다. 많은 정보를 한 장의 그림에 섬세하게 담아내는 것이죠. 인포그래픽 역시 어떤 그래픽에 정보를 어떻게 담을까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좋은 자습서입니다.
하지만 인포그래픽의 방대한 단위 면적당 정보의 양은 당장 회사 생활에서 실전용 보고서를 만드는 데는 좀 괴리가 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가 좋은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연령대가 어떤 배경 지식을 가졌든 간에 이해할 정도로 심플하게 정리해서 선보이는 것 말이죠.
물론 뉴스 볼 시간이 없는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짧은 프레젠테이션인 뉴스 기사 하나를 제대로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기에 기사 영상을 찾아서 낱개로 보는 것도 출퇴근 지하철에서 하면 좋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원문: Peter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