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아파트에 붙은 이 공고문을 기억할 것이다. 이 공고문은 서울시가 지원하는 청년 행복임대주택 건축예정지 인근 일부 주민들이 붙인 것이다. 서울시는 민간사업자들이 서울시내 55곳 부지에 건물을 지어 8년간 의무적으로 임대주택으로 운영하는 조건으로 세제 혜택과 용도변경 및 용적률 상향을 지원한다. 청년들은 시세보다 싼 월세를 내고 보증금을 무이자나 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어 이득이다.
그러나 반대 주민들은 동네에 청년 임대주택이 생기면 우범지역이 돼 이미지가 손상되고, 집값도 떨어질 거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의 많은 질타가 뒤따랐다. 그런데 비난은 주로 반대 주민들의 도덕성이나 주장 자체를 문제 삼았을 뿐, 진짜 무서운 부분은 계속 놓치는 건 아닌가 싶다. 나는 반대 주민들의 주장 자체보다 그 주장을 끌어내는 방식이 무섭다.
공고문을 잘 보자. 분명 어마어마한 주장들을 나열한다. 그런데 눈 씻고 찾아봐도 근거랄 게 하나도 없다. ‘이 공고문과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이 일어날까 봐 그냥 불안해하고 있구나’ 말고는 아무런 정보 값이 없다. 이 그냥 그럴 것 같은 감각. 나는 이게 너무 소름 돋는다. 우리는 불안하면 기꺼이 근거도 없이 청년들을 범죄자 취급할 수 있다! 나치의 구호가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주민들의 생각이다.
당신은 안 그럴 것 같지만, 누구든 자기 집 앞에 청년 임대주택을 짓는다고 하면 또 말이 달라질 수 있다. 누구든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 불확실성이 생기는 걸 싫어하니까. 슬픈 건 불안 자체보다 그 불안에 너무 쉽게 충동질 당하는 인간의 나약한 정신 아닐까. 나는 반대 주민들에게 원망보다는 측은함을 느낀다. 그들과 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은데, 대처하는 방식에 편차는 너무 커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통계학과 학생이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는 과학도가 많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과학도들은 과학도가 아닌 사람들 못지않게 불안감에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겁쟁이들이 꽤 있다. 이들은 불확실하고 주관적인 상황에 관한 종결욕구가 강한데, 실제로 이들이 하는 작업의 상당 부분이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을 수학적 언어로 고정(정리)해놓는 일이다. 또 사회 현상을 측정 가능한 개념으로 정의하고 관찰을 반복해 ‘예측 가능한(확률로 계산 가능한)’ 규칙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재밌는 건 통계학과에서는 ‘A인지 불안하면 통계를 내보고 판단하자’ 식으로 훈련받는다면, 청년 임대주택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A인지 불안하니까 반대한다’ 식으로 자신들의 걱정을 조합해 입장부터 만들고 재생산하며 걱정을 증폭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하지만 공포를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당하면, 사실을 바로 보고 사실에 기반해 동료 시민과 의견을 나눌 줄 아는 공적 감각이 훼손돼, 알고 보면 터무니없는 믿음에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반대 주민들은 청년-빈민과 범죄자를 구분하는데 1차적으로 실패했다. 아직 별다른 재산이 없을 법한 청년들은 가난할 수 있고, 가난하니까 작은 평수 공간에 사는 거고, 청년 임대주택은 그들의 수요가 몰리던 원룸·고시원·기숙사의 그럴싸한 대체재일 뿐이다. 결국 반대 주민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그런 청년-빈민의 공간이 생기면, 즉 청년-빈민이 유입되면 우범지역이 된다고 주장하는 셈인데 이게 정말로 설득력 있는 생각일지 썰을 풀어보자.
우선 청년 대상의 임대주택 사업은 서울시만 하는 게 아니라 한국주택공사(LH)가 5대 광역시에서 한다. 그리고 신청자격은 보통 해당 주택지역, 인접 지역에서 근로(사업)소득이 있는 업무에 종사하거나 학교를 다니는 등의 만19~39세 사회초년생, 대학생,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청년들이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그 지역에 상주하는 인구로 편입돼 전체 상주인구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짐을 의미한다. 이 비율을 상주인구청년비율(=청년 상주인구/전체 상주인구*100)이라고 정의하자.
상주인구 최신 통계는 2015년 인구총조사이며 국가통계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범죄율 통계는 5대 광역시의 경찰서들이 매년 관내에 5대 범죄(살인, 강간, 강도, 폭력, 절도) 발생건수를 공공데이터로 공개하는데, 이 값들을 해당연도 각 행정구의 거주인구 수와 가공하면 범죄율 지표로 쓰이는 거주인구 1만 명당 범죄발생건수를 얻는다. 이 데이터는 편의상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이 2017년 2월에 정리해둔 것을 활용했다.
이제 5대 광역시 74개 구 상주인구에서 청년이 차지하는 비율과 범죄율의 상관관계를 R로 스피어만 상관분석을 해보자.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는 위와 같은 행렬로 나타낼 수 있으며 각 칸은 -1부터 1 사이 상관계수를 가진다. 상관계수가 1이나 -1에 치우칠수록(그림 상에서는 색이 진할수록) 두 변수의 상관관계가 높다. 그런데 초록색 네모 칸을 보면 상주인구청년비율과 범죄율의 상관계수는 0.26밖에 안 돼서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상관계수<±0.3일 때 낮다고 한다).
즉 5대 광역시 각 구에 상주하는 인구 중 청년의 비율이 높을수록 해서 범죄율도 같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힘주어 말하기에는 강도가 약하다. 그렇다고 상관관계가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없지 않냐? 맞다. 그렇다면 청년 임대주택을 지으면 우범지대가 된다고 0.26만큼은 생각해도 되냐? 그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단정 짓다가는 금방 모순에 부딪힐 수 있다. 자, 다시 같은 초록색 네모 칸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이른바 주간인구지수라는 변수와 범죄율의 상관계수가 0.26보다 높은 0.44가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간인구지수란 무엇인가. 지역의 주간인구를 상주인구로 나눠 100을 곱한 비율이다. 상주인구는 한 지역에 주소를 두고 상주하는 인구로서 잠깐 머물거나 부재한 사람은 제외한다. 주간인구는 그 지역의 상주인구에 통근·통학하러 나가는 사람은 빼고 들어오는 사람은 더한, 낮에 활동하는 인구를 뜻한다. 즉 상주인구가 주간인구보다 많을수록(주간인구지수가 낮을수록) 베드타운, 주간인구가 상주인구가 많을수록(주간인구지수가 높을수록) 도심 지역에 가깝다.
그런데 청년층이든 중년층이든 전 연령층이든 주간인구지수가 높아질 때 범죄율도 같이 높아지는 상관관계가 0.26보다 큰 0.44만큼 존재한다. 왜 그럴까?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17년 2월 SBS 박원경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주간인구 증가율이(주간인구지수가) 높은 곳은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섞이면서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에 대한 애착과 지역민으로서의 책임감, 평판 관리의 필요성 등이 낮기 때문에 갈등이나 대립이 범죄로 좀 더 쉽게 이어지는 경향이 높다.
나는 범죄학 전문가가 아닌 일개 통계학과 학부생에 불과해 외지인이 많을수록 갈등도 많고 범죄도 일어나기 쉬운지 단정은 못 하겠다. 범죄의 원인은 다양한 변수들이 있을 수 있고 그 변수들 각각이 실제로 얼마나 범죄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려면 회귀분석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분석이 반복적으로 필요하다. 회귀분석 자체는 통계학과 학부생들도 쉽게 수행할 수 있지만, 그 ‘다양한 변수들’을 무엇이라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관련 분야에 충분한 전문지식과 통찰이 필요하다. 따라서 난 휘귀분석까지는 안 할 거다(헤헤 이러니까 썰이라는 거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누군가 ‘한 지역에 상주하는 청년 비율이 높아질 때 범죄율도 높아지는 경향이 0.26만큼 있으니까 청년 임대주택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0.26만큼의 강도로 주장한다면, 같은 논리로 ‘어느 지역에 청년층의 상주인구와 주간인구 사이에 갭이 클 때 범죄율도 높아지는 경향이 0 있으니까 갭을 줄이기 위해 청년 임대주택을 지어 청년층을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해주자’고 0.44만큼의 강도로 주장할 수도 있다. 즉 모순되는 두 주장이 양립한다. 왜 그럴까?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학에는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상어 피해량도 늘어난 걸까?’라는 농담이 있다.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고 동시에, 관광객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일이 늘어나는 탓에 연안에 육식 동물인 상어가 출몰한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상어 출몰 자체는 실제로는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독립적 사건이다. 그냥 같은 시기에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많이 사 먹는 것뿐이다. 이렇게 겉보기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3의 변수를 통제해주면 그 관계가 사라지는 관계를 겉보기 관계, 허위관계(spurious relationship)라고 한다.
즉 두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고 해서 서로 인과관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영등포구 당산동의 청년 행복주택 반대 주민들이 하는 실수가 바로 이런 거다. 그들이 어떻게 청년-빈민과 범죄자를 연결하는 신박한 생각을 해냈는지 모르겠다. 그들도 나름 인생을 살면서 모종의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시적인 형태의 상관분석 비슷한 것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령 길에서 시비가 붙은 적이 있는데 상대가 젊은 사람이었다거나, 공고문을 붙이기로 결심하기 전날 백수 아들이 또 취업에서 낙방해 kibun이 상한 상태였다거나. 뭐 편견과 배제가 강화되는 여러 계기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보여줬듯, 그런 원시적인 사고방식보다 덜 직관적이고 더 체계적인 스피어만 상관분석을 동원할 때조차도 쉽게 결론을 얻을 수 없다. 스피어만 상관분석조차 ‘어떤 변수가 상관계수가 낮게(혹은 높게) 나왔으니까 이 부분을 왜 그런지 좀 더 고민해보자’라고 생각의 방향 설정을 도와주는 참조 역할이지 인과관계를 발견하려면 더 고차원적인 분석과 큰 책임이 따른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반대 주민들은 청년-가난-범죄자라는 단순한 도식을 성급하게 완성하는 걸까? ‘범죄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있을 정도로 범죄의 원인은 전문가들조차도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문제인데도? 단지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대 주민들은 악마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흔한 이웃들이다. 그렇기에 더 무서운 일이다. 영등포구 당산동만이 아니다. 2편에서 다룰 강동구 성내동의 반대 주민들에게서도 불안은 고개를 든다. 불안을 통제하는 공적 감각이 훼손된 사회는 온갖 곳에서 변화를 발목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