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초고속 승진의 전설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구청장을 경험해 보니까 어떠세요?
이성(구로구청장): ㅍㅍㅅㅅ를 어떻게 발음해야 됩니까?
리: ……
이성: 아, 제가 8년 동안 구로구청장을 했는데요. 원래 30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제가 어떤 새로운 일을 한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잠깐 출마를 위해 사직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는, 그런 느낌이 더 강했어요.
리: 공무원 하시던 시절에 몇 급까지 가셨어요?
이성: 1급까지 갔죠.
리: 고속승진하셨네요. 무슨 장점이 있길래 그렇게 초고속 승진을 하신 건가요?
이성: 그냥 죽어라 일한 것밖에 없어요. 미친 듯이. 매일 아침 6시에 나와서 퇴근하면 12시 넘고 그랬거든요. 그땐 토요일은 당연하고 일요일도 안 쉬고 출근했어요. 공휴일도 나오고. 1년 365일 중에 359일을 출근한 적도 있어요.
리: 뭘 한다고 그렇게 열심히…
이성: 그땐… 일이 있으면 직원들이 다 퇴근해도 나 혼자 다 해놓고 갔어요. 혼자 타자 치고, 책상 위에 깔고 자고,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지냈어요. 그러니 빨리 승진이 된 거고. 마흔넷에 서울시 국장이 된 거니까요.
‘누구 사람’ 되기 싫어 사표를 던지다
리: 보통 그러면 장관, 차관에 욕심을 내지 않나요?
이성: 저는 서울시 공무원이다 보니 장차관은 아닐 거고, 부시장은 했겠죠. 그런데 제가 좀 일찍 퇴직했어요. 2010년에, 정년 6년 남겨두고 54세에 나왔거든요. 공무원 생활을 30년이나 했고, 부시장을 하겠다는 욕망이 컸던 것도 아니고. 누가 나가라고 부탁하기 전에 먼저 내가 나가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보통 고위공무원들은 대부분 후진을 위해서 사표 좀 내라, 이래서 나가거든요.
리: 그러면 공무원 시절에 마지막 직급이 무엇이었던 건가요?
이성: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 본부장을 하다가, 마지막에 감사관 잠깐 하다가 나왔어요. 오세훈 시장 시절에. 사실 그만두게 된 것도 오세훈 시장하고 관계가 있었죠.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에요. 시장으로서 좀 안 맞았던 거고. 저는 역대 서울시장들하고 다 각별하게 지냈어요. 김용래 시장, 고건 시장, 조순 시장… 이명박 시장도 안 친하다고 할 수는 없고.
리: 이명박 시장과도 같이 일하셨나요?
이성: 아니요, 그때는 제가 서울시를 나갔죠. 구로구 부구청장을 하고 유학도 다녀오느라. 그래도 제가 서울시장 인수위원회 국장을 했잖아요. 독특한 경우죠. 일종의 공무원 측 인수위원장인데 후임 시장하고 같이 근무 안 했다는 게. 제가 스스로 택한 거였어요. 그때 신문에도 제가 서울시 인사를 좌지우지할 거라고, 이명박의 성골이라고 해서 실세 인양 신문에 기사도 나오고 그랬어요.
리: 그때 라인을 잘 붙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성: 그때 그랬으면 제가 장관도 했을 거예요. 인수위 하던 사람들 다 국회의원 되거나 장관 되거나 했으니까.
리: 그런 좋은 찬스를 왜 (…)
이성: 그때 저는 ‘누구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기 싫었어요. 인수위 끝나고 이명박 시장에게 부탁해서, 시청에서 근무 안 할 거라고 했죠. 이명박 시장이 펄쩍 뛰었는데, 완강하게 버텼어요. 그러니까 6개월만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했는데, 끝내 4년 동안 안 들어갔어요. 그때 서울시에 있었으면, 아마 실세 역할 했을 거예요. 나중에 이명박 대통령 되고 나서 청와대 따라가거나, 장관 했을 거고. 제가 소개한 사람들이 청와대 비서관 하고, 국회의원하고 그랬으니까요.
리: 장관이나 의원쯤 되면 자기 능력이나 의지로 할 수 있는 마지막이잖아요. 그 이상 올라가는 건 하늘의 뜻이고. 그러면 욕심이 날 만 하지 않나요?
이성: 저는 장관을 하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인수위원회까지만 하겠다 이런 생각이었고. ‘누구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기 싫었어요. 그전에는 고건 시장이나 조순 시장하고 친했어요. 아마 제가 부담이 없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승진을 시켜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청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비교적 시장님들이 듣기 어려운 얘기를 제가 솔직하게 하는 편이고.
리: 오세훈 시장 때는요?
이성: 오세훈 시장 될 때쯤에는 내가 시청을 떠날 때가 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사실 그 1년 전, 2009년부터 제가 신년 인사 회의할 때 직원들에게 얘기를 했어요. 올해가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해라고. 예고를 했죠. 그런데 직원들이 그리 귀담아듣지 않더라고요. 진짜 나갈 거라고 생각 안 했고. 그러다가 2009년 10월에 사표를 냈어요.
리: 사표? 그리고요?
이성: 그때부터 시장하고 저하고 줄다리기가 시작됐죠. 정무부시장 보내고. 행정국장 보내고, 결국 시장님이 찾아와서 사표 철회하라고 하고. 그러다 다음 해 2월 되어서야 사표가 수리됐어요.
이인영, 박영선의 삼고초려
리: 그때부터 선거 출마하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이성: 사실 일단 시청을 나오고 보겠다는 생각이었고 그만둔 다음에도 뭐라도 할 수 있겠지, 이런 막연한 믿음이 있었어요. 농사를 하든 뭐든 먹고 살겠지. 그런데 2009년 봄쯤 되니까 구로구에 있는 이인영 국회의원이 저를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어떤 땐 1주일에 한 번, 최소한 한 달에 두 번은 찾아오고.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으면서 내년 지방선거 때 출마할 수 없냐고.
리: 그러면 사표 쓰기 전에 다 출마 계획이 잡혀 있던 거네요.
이성: 그건 아닌 게, 설득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고 온순한 편이라서. 정치랑 잘 안 맞잖아요. 집사람은 저보다 더 내성적이고. 또 정치를 안 해본 사람이고, 그래서 잘 모르잖아요. 출마하면 몇십억 든다 이런 얘기도 많이 들어서. 돈이 없는데 무슨 재주로 출마하느냐. 그래서 출마하겠다고 얘기 못 하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는데. 그 후로도 계속 한 달에 두 번 이상 꼬박꼬박 오시는 거예요. 여름 되니까 이인영 의원님이 박영선 의원님도 데리고 와서 같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10월에 사표 내면서, 한번 해보겠다고 했죠.
리: 그리고 딱! 구로구청으로!
이성: 아니오. 그때는 서울 전역이 다 한나라당 압도적 우세였고, 구로구도 강남구보다 더 표차가 크게 난 곳이었거든요.
리: 진짜요? 민주당이 계속 잡는 곳이라고 알았는데.
이성: 그때만 해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연속 4선을 하기도 했고, 전임 구청장은 서울 전체에서 강남보다 더 큰 표차로, 득표율 1위 했던 곳이에요. 오랜 세월 그러다 보니까 민주당으로 구청장 출마하겠다는 사람 자체가 없었어요. 그러니 두 분 의원님이 계속 나를 찾아온 거죠.
리: 후보님이 구로구하고 어떤 연이 있었길래요?
이성: 제가 인수위원회 국장직을 끝나고 구로구에서 부구청장 4년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출마를 하게 되었다, 하니까 오세훈 시장이 난리가 난 거죠. 그래서 오세훈 시장이 한 다섯 개 구를 얘기하면서 아무거나 갖다 찍으면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을 주도록 하겠다, 민주당으로 보낼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했죠.
리: 그때는 새누리당으로 나가면 그냥 이기는 거잖아요.
이성: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나는 그런 걸 원하진 않는다. 사실 구청장 해보려고 사표를 낸 것도 아니고, 그만둘 생각을 했는데 출마 제안을 받은 거니까. 꼭 구청장을 한다면 민주당으로 나가겠다. 왜냐, 두 분 국회의원이 나라에서 굉장히 유력한 국회의원인데, 날 위해서 여덟 달 동안 찾아왔는데 그 신의를 버리고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새누리당으로 갈 수는 없다, 강남구청장 준다고 해도 안 갑니다, 지든 이기든 상관없으니까 지더라도 민주당으로 구로구에 출마할 거라고 했죠.
뉴타운 공약 광풍 속에서 홀로 “아이 키우기 좋은 구로”를 내세우다
리: 선거에 나간다는 것은, 특히 특정 지역을 잡아서 나가는 건 여기서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거나, 여기서 꼭 내가 되어야 한다는 대의가 있는 거잖아요. 어떤 생각으로 나오신 거예요?
이성: 저는 원래 공무원이어서, 구청장 되면 잘 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특히 진짜 지방자치다운 지방자치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무슨 대형 개발 사업보다도, 지방자치에 대한 모델을 보여주겠다는 것. 더 이상 구청장이 주민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던 시대는 끝났다, 그건 옛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던 시절 얘기라는 거죠. 구청장이 중심이 아니라,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 듣고, 주민들이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고, 주민들과 함께 주민들이 뿌려 나가는 구정을, 민주주의를 보여주겠다.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풀뿌리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실제로 보여주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리: 예전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개발이 엄청난 과제로 나왔는데 지금은 그게 거의 없더라고요. 환경, 삶의 질, 교육 이런 얘기가 많은데 2010년이면 아직 한국에서 재개발, 뉴타운 이런 애기가 많을 때잖아요.
이성: 저는 그런 공약을 안 걸었어요. 제 구호는 “아이 키우기 좋은 구로”였어요. 슬로건 보고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얘기 한다, 뚱딴지 같은 소리 한다고 했죠.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슬로건은 듣도 보도 못한 거였죠. 근데 저는 선거 공보물에도 아이 키우기 좋은 구로를 내세웠어요. 어린이에 대한 안전, 보육, 어린이집 확충, 이런 것. 구로구가 어린이 안전조례를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안전과 관련한 법률입니다.
리: 보육이라면 국가적 차원에서 나올 것 같은데, 일찍부터 하셨네요.
이성: 네. 그 외에도 보육 정책들을 많이 내세웠죠. 0세 아동 의료비 지원, 법정 예방접종 무료 접종. 예방접종이 열세 가지인가 있는데, 그중 일부는 무료지만 절반 이상은 본인이 돈을 내고 접종해야 됐어요. 그런데 전국에서 최초로 법정 예방접종을 모두 무료로 한 게 구로구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전체가 무료접종하죠. 또 태어나서 1년 동안 아이가 병원에 가면 본인 부담금을 구청이 부담하겠다, 0세 아이에 대한 무상의료죠. 0세 때는 면역력이 없잖아요. 근데 병원비가 아깝다고 병원에 늦게 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영아 사망률이 일반 영아사망률보다 5~6배 높아요. 태어나서 6개월 동안이 단순 감기가 폐렴이 된다거나, 장애아가 되는 결정적 순간이죠. 단지 병원을 늦게 가서 벌어지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돈을 구청이 부담하겠다. 지금은 정부에서도 이 정책을 심각하게 검토해요. 그리고 만 2세의 아이들에 대해 보육수당을 월 5만 원씩 주겠다고 했죠. 지금은 정부에서, 국가에서 보육수당 20만 원씩 다 주잖아요.
보육과 교육을 확 바꾼 구청장
리: 그런 생각을 어쩌다 하시게 된 거죠? 애들도 이미 다 커서 생각을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성: 제가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 첫째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 국방보다 더 큰 문제가 저출산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저출산이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보육, 양육 문제에 몇 배 이상 집중하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죠.
리: 보육, 양육 다음 단계가 정규교육 과정이잖아요. 그쪽에도 많이 신경을 쓰셨나요?
이성: 그랬죠. 구로구 교육이 지금 경천동지할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교육 인프라도 많이 늘어났어요. 여긴 강남처럼 학원이 많고 그렇진 않잖아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학교의 시설이 좋지 않다는 것. 학교 분위기도 학교 폭력 문제도 있고, 학교가 아이들에게 즐거운 학교가 아니라는 것. 또, 학부모 입장에서 보자면 여기서 학교를 보내면 아이들이 대학 가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 여기 고등학교들이 대학을 못 보낸다는 거죠.
리: 심각한 문제죠. 사실.
이성: 실제로 서울 전체에서 구로구가 대입 성적이 제일 나빠서, 한 해에 서울대 합격생이 두 명밖에 없고 그랬어요. 강남, 서초에서는 한 학교에서 10명이 가는데, 구로구는 전체에서 2명 가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심각하죠.
리: 그러네요. 강남구 같은 데는 한 해에 100명도 넘게 갈 텐데.
이성: 한쪽에서는 학력 수준을 높여야 하고, 한쪽에서는 학교 환경 개선, 학교를 즐겁고 다양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 두 가지 다 필요했죠. 그래서 만든 게 학교 부적응 아동을 위한 상담소. 학교 밖 아이들을 전담하는 상담소와 그 아이들을 교육할 대안학교를 두 개 만들었어요. 또 진로 직업 체험센터도 만들고. 그러고 나서 저희가 구립 학습 지원센터를 만들었어요.
리: 어떤 거죠?
이성: 우리가 영어나 수학을 가르쳐줄 수는 없으니까,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거죠. 스케줄도 짜주고, 자율학습 방에서 동아리를 만들어 공부도 하고. 지도교사가 있어서 상담도 하고. TV에도 나온 ‘공부의 신’을 모셔놓고, 아이들을 지도하도록 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친 거죠. 거기서 좋은 대학 들어간 아이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리고 학부모가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이런 학부모 교육과정도 만들었죠. 지금도 굉장히 인기 있습니다.
리: 그래서 작년에 서울대 몇 명 들어갔습니까.
이성: 작년에 15명 갔죠. 예전에는 구로구 전체에서 서울 4년제 대학 간 학생이 300명, 졸업생의 16% 정도만 들어갔어요. 올해 같은 경우는 880명인가 들어갔습니다. 37% 정도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가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구로구 고등학교에 대해 주민들이 큰 불만이 없어요. 어지간한 구보다 대입 성적이 좋다는 생각도 있고. 실제로 몇 개 고등학교는 목동 아이들도 많이 와 있어요.
리: 그건 좀 오버인 것 같습니다만, 네…
이성: 또, 저희가 장학제도를 만들어서, 구청과 15개 동에서 각자 장학회를 만들어서 지금 16개 장학회가 있습니다. 회원님들이 보람을 느끼면서 기부를 해주셔서 매년 2억 3,000~4,000만 정도. 1년에 230명 정도 장학금을 주죠. 또 제가 1년에 100억 이상 교육 예산을 쓰겠다고 공약했어요. 1년에 100억 쓰는 곳이 없어요. 전국 200개 넘는 자치단체 다 해도 1년에 교육 예산 100억 이상 쓰는 곳이 몇 곳 안 될 거예요. 우리가 강남보다 더 많이 써요. 작년, 재작년 교육 예산이 160억 나갔거든요.
근면과 성실로 험지에서 살아남다
리: 2010년도였다는 걸 감안했을 때 공약이 너무 시대를 앞서나가는 것이었는데, 주민들 호응이 있었나 봐요.
이성: 저는 이기리라고 생각 안 했어요. 당연히 질 거라고 생각하고 나왔고… 공식 여론조사 나온 게 새누리당 후보가 65% 정도, 제가 20~30% 정도. 당시 새누리당 후보하고 3배 차이 났는데 그걸 따라잡은 거죠.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다시 하라 그러면 못 할 거예요. 제가 정치를 안 해봤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리: 어떻게 하셨길래…
이성: 저는 그때 진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사람이 다 진다 생각했거든요. 구민들도 그렇지만 심지어 민주당원들도 90%는 제가 진다고 했어요. 열심히 해도 진다고. 지는 편에 누가 오겠어요. 민주당 분들이야 저를 열심히 도왔지만, 일반 주민들은 지는 편에 안 오잖아요. 그래서 저랑 집사람이 3월부터 6월까지, 100일 넘게 새벽 4시 반에 나와서 밤 12시에 집에 들어왔어요.
리: 뭐 하셨어요?
이성: 구로구 지도를 사놓고, 간선도로는 물론이고 골목길까지 구로구에 있는 모든 길을 다 갔어요. 구로구에 있는 점포를 거의 다 갔어요. 골목길, 산동네… 그러니까 몇십 년 살면서 우리 가게에 후보가 오는 건 처음이라는 세탁소 주인도 계셨고. 그걸 걸어서, 종일 걸어 다니다 보니 어떤 가게는 10번도 넘게 들리게 되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좀 그만 다니시라고, 몸도 마르고 굉장히 힘들었죠. 새벽 2시에 택시기사 교대하는 곳에서 인사도 하고. 새벽 4시엔 환경미화원 분들에게 인사하고. 160개 넘는 경로당 다 돌면서 세배 드리고… 그러다 보니 민심이 바뀌더라고요. 선거 보름 전쯤 되니까 여론조사에서 동률이 나와요. 그래서 실제로 선거는 제가 굉장히 대승했어요. 그때 제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이기고, 그 뒤로는 민주당이 한 번도 안 졌어요.
민원인과의 소통이 갈등 해소의 지름길
리: 현실적으로, 내가 하면 엄청 잘하겠다 싶었는데 되어 보니까 어려움이 없던가요?
이성: 구청장이란 직책이 쉽진 않아요. 언제나 어렵죠. 주민들하고 만나는 거니까요.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고. 싫어하는 분들도 있고. 정치성향이 다른 분들도 있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분들도 있고. 언제나 쉽지 않죠. 어떻게 잘 조정하느냐가 굉장히 난제 중의 난제지요. 제가 느끼기엔 해결하지 못하는 민원이 해결할 수 있는 민원보다 더 많고, 특히 오래된 민원은 그만큼 해결이 어려우니까 오래가는 거예요.
리: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성: 근데 주민들하고 갈등이 생기는 건, 민원이 해결되는 것보다도 관청에서 이야기를 잘 안 들어준다, 불공정하다, 우리 얘기를 제대로 들어주면 해결될 텐데, 이런 불신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민들하고 많이 만났어요. 구로구청은 그 전에 한 8년간 연중무휴로 구청 앞에서 시위하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취임하고 나서는 8년 동안, 첫 4년은 시위가 딱 하루 있었고. 두 번째 임기 4년 동안에는 사나흘? 완전히 시위가 사라졌죠.
리: 구청장이 굉장히 바쁘잖아요. 직접 민원을 듣는다는 게 보기에는 좋아 보일 수 있는데 시간적으로는 효율성이 되게 없어 보이거든요.
이성: 그래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제가 취임하던 날, 구청장실 복도를 민원인들이 점거하고 있었어요. 한 6개월간 농성했는데, 취임하자마자 그분들하고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왜 추운데 여기서 이불 깔고 자냐고. 여기서 이야기하지 말고 구청장실에서 얘기하자고, 앞으로 내일도, 모레도 만나서 얘기할 거니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밥도 드시고, 아이들도 돌보시라 그랬죠.
리: 그 사람들은 어떤 일로 복도에 계시게 된 건가요?
이성: 재개발 때문에 그랬어요.
리: 그 전 구청장님은 안 만나줬던 거예요?
이성: 안 만나줬죠. 여러 사유가 있었어요. 시장 재개발인데, 시장에서 장사하다가 건물주에게 쫓겨난 분들이었어요. 임대료를 내러 가도, 건물주가 문을 닫고 안 만나주다가. 그러다 임대료 연체했다는 핑계로 건물주가 다 쫓아낸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재개발 신청을 했어요. 상인을 쫓아내기 위해 임대료 연체라는 핑계를 만들고, 쫓아내고 변칙적으로 재개발 신청을 한 건데. 구청이 허가를 받아줬어요. 그러니 상인들은 구청이 잘못했다고 하는 거고.
리: 구청이 잘못했네요. 어떻게 하셨어요?
이성: 그 사람들하고 쭉 대화를 시작했죠. 이거는 구청이 잘못한 건 맞다, 구청이 잘못했다고… 옛날에 일어난 일이지만 사과드린다고. 지금 소송이 진행 중인데, 여러분들이 질 거다. 구청이 이길 거라고. 구청이 잘못했지만 법적인 잘못은 아니다. 구청은 법적으로 하자 없이 일을 한다. 그래도 어쨌든 내가 봤을 때 구청이 행정을 잘못한 거니 사과드린다고요. 여러분들이 건물주와 협상할 때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내가 건물주를 어떤 방식으로든 압박해서 원위치를 찾아주겠다, 행정력을 발휘하겠다고 했죠.
리: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이성: 건물주가 재개발하려면 구청하고 협의해야 할 거 아니에요. 우리가 그걸 무기로 건물주에게 원상 복구하고 상인들하고 합의하라고 요구했죠.
리: 생각해보니까 행정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엄청 많네요. 그런데 역으로 본인이 구청장이 아니라 그냥 공무원이면, 위에서 개발하라고 하면 그냥 그대로 할 거 아니에요.
이성: 재개발은 우리가 하라, 하지 말라 할 일은 아니에요. 주민들의 다수가 어디에 가 있냐, 주민들의 뜻이 어디 있냐 하는 문제죠. 어느 편도 못 들어요. 하지만 아까 상가 사례는 명백히 건물주의 욕심이고, 반칙이죠.
도서관 도시에 이어 스마트 도시로, 구로구의 끝없는 도전
리: 구청장을 두 번 하셨는데, 더 큰 뭔가를 하고 싶진 않으세요? 3선 도전하셨는데.
이성: 아무래도 선거는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쉬웠죠. 3선 선거는 어렵다고 하는 선거고요. 3선은 견제 심리나, 여러 피로감이 있기 때문에 역대 선거에서 3선 성공률이 높지 않았어요. 구로구에서 3선 도전에 성공한 분이 한 분도 없어요. 그래도 워낙 민주당의 분위기가 좋고, 제가 아직 젊기 때문에… 전임 구청장이 초선 도전할 때 나이가 지금 제 나이에요. 충분히 의욕도 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3선에 도전하는 거죠.
리: 초선, 재선에서 소통과 교육에 대한 얘기를 하셨잖아요. 3선까지 한다는 건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뜻이 있을 텐데, 뭘 주목하고 계세요?
이성: 8년 동안 구로구의 도시 기반을 잘 닦아왔다고 생각해요. 부족했던 생활체육시설, 녹지공간, 복지시설, 교육시설 골고루 잘 채웠고요. 특히 보람 있는 건 도서관인데, 서울에서 가장 도서관이 많은 구가 구로구에요. 91개가 있어요. 걸어서 10분 거리에 다 도서관이 있는 셈이죠. 서울 서남권 거점 도서관도 착공 예정에 있고.
리: 도서관의 특색이나 이용률은 어떤가요?
이성: 시스템도 좋죠. 저희는 서울에서 최초로 타 도서관에 있는 도서를 인근 도서관으로 배달해서 빌려보는 시스템을 갖췄어요. 도서관 연동 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매년 책 축제도 하고요. 구로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올해의 책도 뽑고, 각급 학교 학부모회에 독서클럽을 의무화해서 독서 운동도 하고요. 서울에 딱 하나 있는 문학의 집도 있죠.
앞으로 구로구의 방향에 대해선, 구로구가 원래 산업도시거든요. 구로공단이 있던. 지금도 디지털산업단지가 있잖아요. 이런 특색을 살려서 세계적인 스마트 도시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그래서 작년에 조직을 만들었어요. 구청에 스마트도시팀을 구성하고, 교수들이나 스마트 도시 업체들하고 자문위원회도 꾸렸고요. 스마트도시 로드맵 골자를 짜는 중이죠. 저희 구로구는 지금 와이파이 무료 도시에요.
리: 이미 와이파이 무료라고요?
이성: 구로구 건물 밖에 나가면, 안양천이든 도로든 산길이든 광장이든 다 무료 와이파이가 뜹니다. 공공와이파이망을 구축했어요. 예전 문재인 대통령 선거 공약 중 하나가 공공 와이파이 확대인데, 구로구에서 벤치마킹한 거예요. 저희는 버스에도 공공 와이파이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또, 구로구 전역에 사물인터넷 중계망이 깔려있어요. 이걸 활용해서 치매 노인들을 위한 위치확인 서비스를 하거든요. 또 어린이집 아이들의 가방에 스티커를 달아놔서, 이걸 사물인터넷망과 연결해서 아이들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했습니다. 독거노인 위치 확인 서비스도 하고요.
리: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은 건가요?
이성: 아까 말씀드렸듯 구로구에 스마트도시 자문단이 100분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분들하고 부문별로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가 논의했죠. 지금 제일 쉬운 위치확인 서비스부터, 앞으로는 미세먼지 예보 시스템도 시작할 거고요. 구로구 60여 곳에 미세먼지 측정시스템을 갖춰서 동네별로 미세먼지를 측정할 거예요.
리: 미세먼지 같은 경우는 예보도 예보지만, 도시별로 대책도 마련하는 중인데요.
이성: 미세먼지를 줄일 수는 없지만 일단 어린이집, 유치원에 공기청정기를 100% 보급했습니다. 사물인터넷을 통해서 도시 시설물 관리에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가 로드맵을 짜고 있어요. 그것뿐 아니라 자율주행차도.
리: 자율주행차요? 갑자기 너무 나가는 거 아닌가요?
이성: 지금 현대차와 관련된 자율주행차 연구소들이 있는데, 그런 연구소와 공동작업을 하고 있어요. 디지털단지 셔틀버스를 자율주행차로 도입하는 것하고, 불법주차단속 패트롤, 순회하면서 사진 찍는 차를 무인주행으로 해보려고 하고요. 앞으로는 마을버스 노선 중에서 한두 개 노선에 시범적으로 자율주행 차를 도입해 보려고요. 또 구로디지털단지가 전기차 시범도시에요. 전기차 80대를 들여와서 구로구에 있는 사업체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빌딩별로 전기차 충전기도 있고요. 이렇게 스마트 도시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로드맵을 짜고 있어요. 공공 와이파이망을 다 깔았고, 또 LoRa망도 깔았고.
리: 한 것도 많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으신데… 이번 선거 결과 자체는 낙관하고 계세요?
이성: 네.
리: 당연히 이길 거다?
이성: 이번엔 여러 가지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좋은 판세를 맞이하고 있죠. 그래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데이터 시각화로 알아보는 ‘구로구’
“해당 기사에 사용된 데이터 시각화는 뉴스젤리의 시각화 솔루션 DAISY를 이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